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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크리스마스 ㅣ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3
쥬느비에브 브리작 지음, 조현실 옮김 / 열림원 / 2021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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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번 세기 초, 출판사 열림원에서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시리즈의 11번으로 출간한 것을 약 20년 후에 중판, 소위 개정판을 찍은 것이다. 거의 완전히 똑같다. 본문 뒤에 실린 “옮긴이의 말”까지 다 같은데, 시절에 맞게 편집이 읽기 편한 큰 활자체로 널럴해 페이지 수가 좀 늘었다. 당시 열림원 프랑스 여성작가 시리즈는 1번과 2번이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알렉시>와 <세 사람>이, 3번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고통>, 4번 나탈리 사로트의 <황금열매> 등 당시엔 명함만 내밀면 세상 어디에서도 말빨 좀 되는 작가들의 ‘길지 않은’ 소설을 망라해, 나도 4번까지 사서 읽으면서 주위를 기울였는데, 그간 숱하게 얘기했듯이, 봉급쟁이 생활 핑계 대면서 인생을 낭비하느라 책 따위를 읽을 시간을 내지 못해 그걸로 끝이었다. 그러니 도서관 개가실 뒤지며 시리즈 11번 최초 번역판과 개정판을 동시에 발견한 찰나, 어찌 덥석 쥐어들지 않을 수 있었겠느냐는 말이지.
쥬느비에브 브리삭은 1951년에 파리에서 태어나 “좌익 영국 지식인 가정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하는데 유소년 시절에 정규학교 대신 사립학교 또는 홈스쿨링을 했다는 말인지 잘 모르겠다. 엄마 이름이 Helene Miserly. 이름만 본다면 굳이 많은 돈 들여 사교육을 시킬 것 같지 않잖아? 브리삭은 여성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파리 외곽에 있는 샌생드니 학교에서 6년 동안 교사로 지내기도 했다. 청소년 시절부터 오래 거식증에 시달리기도 한 모양이다. 교사시절 이후에는 작가, 편집자, 국경 없는 도서관 프로젝트 같은 것에 참여해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고. 프랑스의 유명한 사서 빠뜨 여사도 이 “국경 없는 도서관” 프로젝트 참여자다.
<엄마의 크리스마스>는 이이의 그리 많지 않은 소설작품 가운데 한 편으로 1996년에 페미나 상을 받았다. 교사생활과 거식증은 이이의 다른 작품들, 우리나라에서도 번역, 판매하고 있는 <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 <올가는 학교가 싫다>, <올가는 괴로워> 등 청소년 문학에 영향을 끼친 듯.
<엄마의 크리스마스>는 영어판 제목이 <으제니오를 잃다 Losing Eugenio>, 원어판은 <Week-end de chasse à la mère> 이건 도무지 우리말로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여간 주인공은 어린 아들 으제니오와 둘이 사는 이혼녀. 이름이 알려진 화가였다가 갑자기 이제 자신의 한계에 도달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단칼에 붓을 꺾고 여태 그린 그림까지 몽땅, 한 점도 남김없이 다 헐값에 팔아버렸다. 다시 붓을 잡으라고 권하는 유일한 친구 마르타의 권유를 여전히 물리치고 있다. 극장에서 일하다가 해고당한 후 잠깐 실업상태로 있다가 지금은 규모가 크고, 이용객 대부분이 학자, 학자의 조교, 고급 공무원, 하이 클래스 직장인 등인 도서관에서 편한 일을 한다.
세상 사람이 다 그렇듯이 일부 사람한테는 “정상적으로 살 줄 모른다. 조금 미쳤다.”라는 평판을 듣기도 하지만, 이제는 유일한 가족이자 자기 혈육인 아들 으제니오에게 모든 것을 집중해 살고 있다. 이것 역시 사람들은 으제니오로하여금 뭐든 엄마한테 일임/의존하게 만들어 둘만 생활하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고 평가한다. 심지어 이제 자기 생각을 제법 하면서 그걸 표현하기 시작한 어린 으제니오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뭐 다 이렇게 사는 거 아닌가 싶은데, 평범한 일상 생활에서 굳이 문제점을 뽑아 이를 크게 부풀려 사건을 만들고 펑 터뜨려버리는 인간들을 우리는 작가라고 부른다. 프랑스의 지극히 평범한 이 홀어멈 가정도 예외가 아니다.
작품은 12월 23일에서 26일까지 4일 동안 생긴 일이다. 주인공은 화자 ‘나’이지만 편의상 ‘나’ 대신 그의 이름인 누크, 즉 3인칭으로 쓰겠다. 일일이 작은 따옴표 치기가 귀찮아서.
시작하면 옹색한 아파트 안의 모자, 누크와 으제니오. 이들이 남편, 아빠와 헤어진 이후 2년 동안 살고 있는 곳이다. 당시에 엘리베이터 없는 아파트 계단을 누크는 으제니오를 주로 안고 올라왔는데 이제는 제법 다 컸다고 자기 주장이 보통을 넘는다. 으제니오가 묻는다.
“엄마, 엘리자베스 여왕은 행복하게 살았을까?”
웬 엘리자베스 여왕? 근데 이 여왕이 이들의 우상이자 밥이고 수수께끼이며 속죄양이란다. 이것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하여간 누크는 여왕이 그만하면 행복하게 산 셈이라고 대답한다. 자식한테 좀 실망을 해서 그럴 뿐이라고. 아들 둘 낳고 이혼한 왕세자 부부를 얘기하는 건가?
이들의 대화가 재미있어서 조금 변형해보자.
겨울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돌의자에 앉았는데 (카를 슈테른하임의 희곡 <속바지> 장면처럼) 딱 이때를 맞추어 팬티 고무줄이 끊어졌다면? 돌의자에서 일어나기만 하면 팬티가 드레스 밑으로 툭 떨어진다는 것이 전제사항. 만조백관과 상궁, 무수리가 보고 있는 앞에서 여왕의 빨간 빤쓰가 떨어지면 무지하게 무안한 일이겠지?
엄마: 품위를 지키느라 돌의자에서 일어나지 않고 끝까지 앉아 버티다가 얼어 죽는다.
아들: 건장한 호위병 20명을 불러 여왕이 앉은 채 돌의자를 번쩍 들어 내실까지 옮긴다.
이래서 여왕은 또한 이 가정의 밥이고 수수께끼이고 속죄양이라는 뜻인가보다.
이제 사소한 사는 이야기들. 으제니오가 맥도널드를 먹고 싶다 해서 엄마가 햄버거, 튀긴 감자 한 봉지, 중국 소스와 빨대를 가져와 먹고, 햄버거를 사러 가는 길에 만난, 앞으로 작품에 다시 출연할 일 없는 이웃들, 이런 것들이 자잘하게 깔려 있다. 물론 제일 중요한 건 으제니오를 향한 누크의 배려와, 이를 전혀 중요하지도 않고 고맙지도 않게 생각하며 자신이 당연히 받아야 할 일종의 천부 권리라고 여기는 아들 사이의 갈등이 나열된다. 엄마가 아무리 열심히 새끼 바라지를 해봐라, 불만 없는 새끼들 하나라도 있는지. 누크도 이것을 안다. 자기도 하느라고 하지만 가끔 소리도 빽 지르고, 눈도 흘기며, 손이 번쩍 올라갔다가 슬그머니 내려오기도 하니까. 그리하여 생각하기를:
아픔을 주지 않는 엄마, 한없이 자애롭기만 한 엄마, 완벽한 엄마는 오로지 죽은 엄마밖엔 없다?
며칠 있으면 크리스마스. 아직 집에 크리스마스 트리도 만들지 않았고, 명절을 어떻게 보낼 생각인지 계획한 것도 없으며, 심지어 어떤 선물을 해줄지 묻지도 않았다. 으제니오는 이번 크리스마스도 작년, 재작년처럼 좁은 아파트에서 엄마하고 둘이서 조촐하게 지낼 생각을 하니 짜증이 나는 모양이다. 누크도 아들의 심사를 눈치채지 못할 리 없건만 그렇다고 연락할 친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친구들은 다 친구들 나름대로 계획이 있을 것인데, 생각해보니 마르타 말고는 친구다운 친구도 없다. 마르타 집에는 15년 전에 한 번 가봤을 뿐이다. 마르타는 괜찮은 결혼생활을 하고 있으나 젊은 시절의 계획 대로 무자식 상팔자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남편과도 나쁘지 않지만 따로 만나는 남자, 그러니까 샛서방과의 섹스는 할 때마다 숨이 넘어갈 만큼 좋다. 그러니 이 가족한테 신경 쓸 틈이 없을 것. 가까운 친척도 없고, 친구도 없다. 그것도 괜찮은 일. 아무리 크리스마스라고 해도 모자 둘이 따뜻한 방 안에서 맛있는 거 먹고 즐거운 이야기하며 지내면 그게 장땡이지 뭐가 부러울꼬?
이건 엄마 생각일 뿐. 아이는 전혀 아니다. 그리하여 시리얼을 먹으면서 일단 요구하기를, 나, 새 한 마리 사줘.
그래서 모자는 추운 겨울날 외출을 감행한다. 도핀가의 밀집한 장난감 가게 가운데 한 곳을 들렀다가, 샤틀레 광장을 지나니까 애완동물 가게가 또 나란히 서 있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마침 눈에 띄는 간판이 있다. “파파게노.” 가게 이름이 ‘새잡이’라서 새 하나는 믿고 살 수 있겠다 싶어 시뻘건 얼굴의 식인귀처럼 보이는 여주인한테 카나리아 한 쌍을 산다. 아담과 이브. 암수 구성이겠지? 식인귀 여사님이 그렇단다. 결론적으로, 아니다. 둘 다 수컷이었고, 몸집이 작은 이브는 바로 다음날 아침에 아버지를 만나러 천국으로 날아간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한 아름 들고 온 새 두 마리, 새장, 각종 사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작은 장난감 등은 몰라라 하고 소파로 튀어 올라가더니 TV를 켜고 오락 프로그램을 보는 으제니오. 아이가 사온 것을 정리하느라 옷도 벗지 못하는 누크한테 대로 외친다.
“나 배고파!”
크리스마스 전날에도 출근한 누크. 어제는 해가 서쪽에서 떴는지 친구 마르타가 전화해서 같이 밥 먹자고 하더니, 식당에서 이번 크리스마스, 내일 자기 집으로 오란다. 방사선 촬영을 전문으로 하는 치과의사이자 무자식상팔자주의자. 자기만 보면 요즘 만나는 남자가 얼마나 섹스를 잘 하는지 일일이 설명하려는 마르타. 마르타한테도 자기 마음을 까발린 친구는 누크 한 명밖에 없을 터이다. 탁 보면 알지.
때마침 으제니오가 직장에 전화해 엄살을 피우는 바람에 반차를 내고 집에 돌아와, 마르타가 예약해놓은 기차를 타고 브루타뉴의 집에 도착해, 무려 열다섯 명에 이르는, 아니지 모자를 빼면 열세명의 식구와 함께 크리스마스 밤을 보내는 으제니오와 누크. 뭐 행복한 크리스마스였다면 소설이 안 되겠지? 그렇기는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다음날, 그러니까 12월 26일 아침에 벌어진다. 무슨 이야기?
아이고, 그게 결말인데, 당연히 안 알려드리지.
그저 이 책의 세 가지 언어로 된 제목으로 추리를 해보시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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