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마, 아이야
응구기 와 시옹오 지음, 황가한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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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말부터 매년 가을만 되면 자신은 가만히 있는데도 숱한 매체에서 노벨문학상 후보 리스트에 올려놓아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던 작가 가운데 한 명이 케냐의 키쿠유어(語) 소설가 응구기 와 시옹오였다. 1938년생이니 87년을 살다가 갔다. 우리나라에도 온 적 있다. 박경리 문학상을 받았다.

  케냐의 나이로비 북부 농촌에서 농사를 짓던 아버지 시옹오 와 응구기는 아내가 네 명, 자녀가 스물여덟이 있었는데 작가 응구기 와 시옹오는 세번째 아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n번째 자식이었다. 불운이 이 가정을 덮친 것은 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5년 영국 식민지 시절, 영국이 자기들 마음대로 정한 “제국 토지법”에 따라 시옹오 집안 소유의 토지가 전부 압류되어 영국에서 배 타고 식민지로 온 백인의 소유로 넘어간 일이었다. 많기도 한 이복 형제 가운데 한 명은 2차 세계대전에 영국군으로 참전해 영국 공군의 폭격으로 죽었고, 다른 형은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었는데 1952~1960년에 있었던 마우마우 봉기 당시 “영국 군인들의 정지하라는 말을 듣지 못해서” 영국군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다른 형은 당시 마우마우 단에 들어가 영국 및 식민지 정부와 투쟁하다 죽었으며 응구기 와 시옹오의 친엄마 역시 당시에 영국인과 이들에 협조하는 케냐인으로 구성된 시민군에게 끌려가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이런 사정이 모두 <울지 마, 아이야>에 나온다.

  케냐 원주민들의 일부다처제 식구들은 어머니가 달라도 형제 간의 정은 친 동기간의 정보다 전혀 못하지 않아서, 이런 가정사에도 불구하고 어리지만 공부 잘하는 응구기 와 시옹오만큼은 끝까지 공부를 시키려고 모든 형제들이 나서서 도왔단다. 내전 기간 동안 죽임과 고문을 당하는 순간에도 기숙학교에 다니던 응구기 와 시옹오에게 수시로 편지를 보내 학교를 그만두지 말라고 할 정도로 이복형제들이 이이의 교육에 집착했다고 한다.


  <울지 마, 아이야>에 이런 정황들이 모두 나온다. 아버지 응고토는 1차 세계대전에 소년병 신분의 영국군으로 참전해 백인병사를 위해 군수품을 나르고, 도로를 닦는 등의 일을 하고 돌아왔지만 이 사이에 집안의 토지 전부가 “영국 제국 토지법”에 따라 영국인 하울랜즈의 소유로 넘어가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하울랜즈에게 고용되어 농장 일을 할 수밖에 없었으니 애초부터 비극을 품고 시작하는 상황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응고토의 두 아들, 첫번째 아내 은제리의 장남 보로와, 주인공 은조로게의 친어머니 뇨카비가 낳은 첫아들 므왕가가 역시 영국군으로 참전해 이집트, 예루살렘, 미얀마 전투에 투입되어 므왕가는 돌아오지 못했고, 이야기(구술문학)하기 좋아하던 보로는 우울한 청년이 되어 돌아왔다.

  이들 가족이 사는 집은 ‘자코보’라는 이름의 케냐 원주민의 땅 위에 지은 것으로 당연히 땅 임대료를 지불해야 했다. 자코보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당시 원주민들의 눈으로 보기에 으리으리한 집을 짓고 살면서 아들은 나이로비에 있는 고등학교를 거쳐 런던으로 유학으로 보내고, 주인공 은조로게보다 한두 살 덜 먹었지만 정상적으로 학교에 입학해 후에 같은 반이 되는 딸 므위하키도 나이로비에 있는 여자 기숙학교에 다닌다. 흑인 자코보가 땅을 소유하고 있고 하울랜즈의 농장에 비하면 그리 볼품없지만 그래도 제법 큰 농장을 가지고 있다면, 식민지 시절에 이런 인간은 백이면 백 친영국파라고 보면 된다. 사정에 따라 얼마든지 동족을 고발하고, 사적인 감정으로 없는 일을 있다고 해서 곤욕을 치루게 하는 인간. 어디에도 있다. 식민지 조선에 있었듯 식민지 케냐에서도 이하동문이다. 그리하여 은조로게의 바로 위 이복형 카마우가 말한다.

  “백인은 백인일 뿐이야. 하지만 백인이 되려는 흑인은 고약하고 잔인하지.”

  외국인투자법인의 외국인 사장은 뭐 그런대로 사장질을 한다. 자기도 낯선 고장에 와서 사장질 하려면 현지인들 눈치를 안 볼 수 없거든. 그러나 한국인 사장은? 눈 뜨고 보기 힘든 것과 비슷하다. 요즘에야 시대가 달라져 그러지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혹시 모르지, 여전할 지도. 아마 조금은 그럴 걸? 주인 마님보다 더 무서운 게 그 집구석 청지기라잖아.


  이 작품은 응구기 와 시옹오가 스물네 살에, 우간다 마케레레 대학에 적을 두었을 때 쓴 아주 초기 작품이다. 그래서 소년 은조로게를 주인공으로 하고, 이 아이가 열여덟 살의 청년이 될 때까지를 그린 일종의 성장소설을 썼다. 불운하게 이 시기가 케냐의 마우마우 봉기 기간과 겹쳤고, 작가 자신이 고스란히 이 때를 겪은 만큼 젊은이 답게 식민 모국인 백인 영국인과 부영附英 흑인의 원주민에 대한 학살과 고문을 고발한다. 하지만 작가가 보여주고 싶었던 건 그들의 만행이 아니라 케냐 사람들의 저항이었을 것이고, 이 과정에서 케냐 흑인 가정이 어떻게 무너지고 말았는가, 하는 것이었을 터이다.

  당시가 식민 시절이었으니 등장인물을 극단적 선악으로 구분할 수밖에 없던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선한 쪽은 당연히 약자인 케냐 사람들과 특히 응고토 가족 구성원이고, 악한 쪽의 극단은 백인이자 응고토의 토지를 모두 흡수해버린 영국인 뜨내기, 그러나 지금은 지역의 최고 권력자인 하울랜즈와, 이의 악마적인 흑인 하수인 자코보.

  작게 보면 응고토 가족, 크게 보면 케냐 사람들의 최초 불만은 자신들의 땅을 빼앗긴 것부터 시작한다. 전쟁에 나가 영국을 위하여 싸웠건만 돌아온 건 토지 몰수였다. 이제 자기 땅이었던 곳에 고용되어 농장 일을 해야 하는 현지인. 그럼에도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이에 대하여 항의라도 하면 곧바로 해고되는 난감한 상황에 빠져, 이들이 선택한 것은 집단 파업이었다. 작중에서도 나이든 응고토는 파업에 나서지 않으려 했다가, 파업 현장에 나와 이들을 해산시키려 위협하는 자코보에게 정면으로 나서 맞서는 바람에, 자코보 땅 위에 지은 집에서 쫓겨나고, 그것보다 더 험한 건, 자코보로하여금 앙심을 품게 만든다. 그러니까 총 파업이 두번째 전환점이 되는 셈.


  세번째이자 결정적 파국은 위에서 여러 번 이야기한 마우마우 봉기이다.

  응고토의 첫번째 아내 은제리는 차례로 보로, 코리, 카마우 세 아들이 있고, 두번째 아내 뇨카비는 전쟁 나가서 죽은 므왕기와 주인공 은조로게, 이렇게 두 아들, 합해서 다섯 아들을 두었다. 이 가운데 보로와 코리가 마우마우 단에 (한꺼번에는 아니지만) 입단해 영국인과 케냐 하수인으로 구성된 시민군과 싸운다. 싸우긴 싸우는데, 주인공의 친형들이니 그냥 싸우는 정도가 아니다. 그동안 자기 딸 므위하키와 은조로게가 은근히 은은한 사랑을 꽃피우고 있는 줄도 모르고 다양한 방법으로 응고토를 위시하여 이이의 아들들을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던 자코보를 죽여버린다.

  한 가족의 가장의 의무 가운데 제일 무거운 의무는 가족을 지키는 일. 이 암살이 자기 아들 중에서 카마우가 한 일일 것이라고 오해한 응고토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시민군 총사령관으로 변신한 전 직장이자 오래 전에 자기 땅이던 “하울랜즈 농장”의 주인 하울랜즈에게 자기가 한 일이라고 자수해버린다. 이미 파업할 때 응고토를 해고해버린 하울랜즈는 이것이 거짓 자수인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응고토에게 모진 고문을 가한다. 죽기 바로 전까지. 그리고 먼 곳의 기숙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던 은조로게까지 학교에서 체포해 펜치로 고환을 조이는 등의 극한 고문을 해 감히 주인공이 반 정도 넋이 나가게 만들었으니, 하울랜즈, 무사하게 소설을 끝내기는 글렀다.

  아니나 다를까, 고문으로 몸이 엉망진창이 된 채 집에 실려온 지 며칠 만에 아버지 응고토가 죽어버리고, 공부 잘하는 막내 은조로게는 반쯤 정신이 나가버렸으며, 성실한 카마우는 감옥에 갇혀 언제 나올지, 벌써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데, 야밤을 틈타 죽음을 바로 눈앞에 둔 응고토의 침상에 그림자처럼 나타난 맏아들 보로는 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귀신처럼 사라져 영국 백인, 하얀 귀신을 쥐도 새도 모르게 암살해버린다. 작품 중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둘째 아들 코리는 일찌감치 마우마우 단에 들어가버려 소식도 없다. 이제 이 집안에 남은 유일한 남자는 은조로게.

  응구기 와 시옹오는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은 케냐 사람들. 흑인들은 화해를 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어떻게? 스물네 살의 작가, 훗날 매해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자 목록에 들 “아프리카 문학의 거인”으로 빛나지만 아직 구상유취한 신삥 작가는 별로 세련되지 못한, 그러니까 더 쉽게 말해서, 뻔한 방식을 선택해 “가능하지 않은 화합”을 주장한다. 역자 황가한은 이 방식을 아프리카 문학의 최고 거봉이자 후대 아프리카 출신 작가들의 롤 모델 치누아 아체베의 대표작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의 오콩고와 비교하며 이들의 앞에 그나마 희망이 남아 있음을 강조했을 것이라 주장하기도. 근데 “화해”라는 것이 정말 가능한 건가? 짧은 작품이니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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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5-10-08 15: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번 노벨상 후보에만 올라가는데,,, 이번에도 안되겠지요?!
왠지...!
내일 발표네요

Falstaff 2025-10-08 15:11   좋아요 1 | URL
ㅎㅎ 갔어요, 올해.
나머지 휴일 편하게 보내셔요.

감은빛 2025-10-10 06: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녀가 스물여덟명이라면, 저는 아이들 이름도 다 못 외우고 얼굴도 바로 못 알아볼 것 같아요. 길에서 만났을 때 화장한 엄마와 동생을 못알아본 적이 있었거든요. 이 많은 아이들의 이름은 어떻게 지어줬을지도 궁금하네요. 저는 둘 밖에 없는 아이들 이름 짓느라 매번 출생신고 마감일까지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느라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어요. ㅎㅎㅎㅎ

좋은 글에 쓸데없는 댓글을 주저리 달았네요. 아까 올해 노벨상 수상자의 단편집에 남긴 글도 읽었어요. 헝가리와 케냐 작가들(뿐만이 아니겠지만)에 대해 어떻게 이렇게 잘 아시는지 궁금하네요.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Falstaff 2025-10-10 07:01   좋아요 1 | URL
만일 n번째 자녀 응구기를 부르려 하면, 응구기의 아버지 시옹오는 1번 부터 n번까지 아이들 이름을 다 불렀을 겁니다. ㅎㅎㅎ 전에도 식구 많은 집안에 항용 그랬듯이요.
이이의 작품 가운데 민음사 세계문학 시리즈로 나온 <피의 꽃잎들>이 제일 좋았다고 기억합니다. 읽어보셔도 좋을 듯하네요. ^^
 
엄마의 크리스마스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3
쥬느비에브 브리작 지음, 조현실 옮김 / 열림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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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이번 세기 초, 출판사 열림원에서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시리즈의 11번으로 출간한 것을 약 20년 후에 중판, 소위 개정판을 찍은 것이다. 거의 완전히 똑같다. 본문 뒤에 실린 “옮긴이의 말”까지 다 같은데, 시절에 맞게 편집이 읽기 편한 큰 활자체로 널럴해 페이지 수가 좀 늘었다. 당시 열림원 프랑스 여성작가 시리즈는 1번과 2번이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알렉시>와 <세 사람>이, 3번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고통>, 4번 나탈리 사로트의 <황금열매> 등 당시엔 명함만 내밀면 세상 어디에서도 말빨 좀 되는 작가들의 ‘길지 않은’ 소설을 망라해, 나도 4번까지 사서 읽으면서 주위를 기울였는데, 그간 숱하게 얘기했듯이, 봉급쟁이 생활 핑계 대면서 인생을 낭비하느라 책 따위를 읽을 시간을 내지 못해 그걸로 끝이었다. 그러니 도서관 개가실 뒤지며 시리즈 11번 최초 번역판과 개정판을 동시에 발견한 찰나, 어찌 덥석 쥐어들지 않을 수 있었겠느냐는 말이지.

  쥬느비에브 브리삭은 1951년에 파리에서 태어나 “좌익 영국 지식인 가정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하는데 유소년 시절에 정규학교 대신 사립학교 또는 홈스쿨링을 했다는 말인지 잘 모르겠다. 엄마 이름이 Helene Miserly. 이름만 본다면 굳이 많은 돈 들여 사교육을 시킬 것 같지 않잖아? 브리삭은 여성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파리 외곽에 있는 샌생드니 학교에서 6년 동안 교사로 지내기도 했다. 청소년 시절부터 오래 거식증에 시달리기도 한 모양이다. 교사시절 이후에는 작가, 편집자, 국경 없는 도서관 프로젝트 같은 것에 참여해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고. 프랑스의 유명한 사서 빠뜨 여사도 이 “국경 없는 도서관” 프로젝트 참여자다.

  <엄마의 크리스마스>는 이이의 그리 많지 않은 소설작품 가운데 한 편으로 1996년에 페미나 상을 받았다. 교사생활과 거식증은 이이의 다른 작품들, 우리나라에서도 번역, 판매하고 있는 <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 <올가는 학교가 싫다>, <올가는 괴로워> 등 청소년 문학에 영향을 끼친 듯.


  <엄마의 크리스마스>는 영어판 제목이 <으제니오를 잃다 Losing Eugenio>, 원어판은 <Week-end de chasse à la mère> 이건 도무지 우리말로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여간 주인공은 어린 아들 으제니오와 둘이 사는 이혼녀. 이름이 알려진 화가였다가 갑자기 이제 자신의 한계에 도달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단칼에 붓을 꺾고 여태 그린 그림까지 몽땅, 한 점도 남김없이 다 헐값에 팔아버렸다. 다시 붓을 잡으라고 권하는 유일한 친구 마르타의 권유를 여전히 물리치고 있다. 극장에서 일하다가 해고당한 후 잠깐 실업상태로 있다가 지금은 규모가 크고, 이용객 대부분이 학자, 학자의 조교, 고급 공무원, 하이 클래스 직장인 등인 도서관에서 편한 일을 한다.

  세상 사람이 다 그렇듯이 일부 사람한테는 “정상적으로 살 줄 모른다. 조금 미쳤다.”라는 평판을 듣기도 하지만, 이제는 유일한 가족이자 자기 혈육인 아들 으제니오에게 모든 것을 집중해 살고 있다. 이것 역시 사람들은 으제니오로하여금 뭐든 엄마한테 일임/의존하게 만들어 둘만 생활하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고 평가한다. 심지어 이제 자기 생각을 제법 하면서 그걸 표현하기 시작한 어린 으제니오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뭐 다 이렇게 사는 거 아닌가 싶은데, 평범한 일상 생활에서 굳이 문제점을 뽑아 이를 크게 부풀려 사건을 만들고 펑 터뜨려버리는 인간들을 우리는 작가라고 부른다. 프랑스의 지극히 평범한 이 홀어멈 가정도 예외가 아니다.


  작품은 12월 23일에서 26일까지 4일 동안 생긴 일이다. 주인공은 화자 ‘나’이지만 편의상 ‘나’ 대신 그의 이름인 누크, 즉 3인칭으로 쓰겠다. 일일이 작은 따옴표 치기가 귀찮아서.

  시작하면 옹색한 아파트 안의 모자, 누크와 으제니오. 이들이 남편, 아빠와 헤어진 이후 2년 동안 살고 있는 곳이다. 당시에 엘리베이터 없는 아파트 계단을 누크는 으제니오를 주로 안고 올라왔는데 이제는 제법 다 컸다고 자기 주장이 보통을 넘는다. 으제니오가 묻는다.

  “엄마, 엘리자베스 여왕은 행복하게 살았을까?”

  웬 엘리자베스 여왕? 근데 이 여왕이 이들의 우상이자 밥이고 수수께끼이며 속죄양이란다. 이것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하여간 누크는 여왕이 그만하면 행복하게 산 셈이라고 대답한다. 자식한테 좀 실망을 해서 그럴 뿐이라고. 아들 둘 낳고 이혼한 왕세자 부부를 얘기하는 건가?

  이들의 대화가 재미있어서 조금 변형해보자.

  겨울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돌의자에 앉았는데 (카를 슈테른하임의 희곡 <속바지> 장면처럼) 딱 이때를 맞추어 팬티 고무줄이 끊어졌다면? 돌의자에서 일어나기만 하면 팬티가 드레스 밑으로 툭 떨어진다는 것이 전제사항. 만조백관과 상궁, 무수리가 보고 있는 앞에서 여왕의 빨간 빤쓰가 떨어지면 무지하게 무안한 일이겠지?

  엄마: 품위를 지키느라 돌의자에서 일어나지 않고 끝까지 앉아 버티다가 얼어 죽는다.

  아들: 건장한 호위병 20명을 불러 여왕이 앉은 채 돌의자를 번쩍 들어 내실까지 옮긴다.

  이래서 여왕은 또한 이 가정의 밥이고 수수께끼이고 속죄양이라는 뜻인가보다.


  이제 사소한 사는 이야기들. 으제니오가 맥도널드를 먹고 싶다 해서 엄마가 햄버거, 튀긴 감자 한 봉지, 중국 소스와 빨대를 가져와 먹고, 햄버거를 사러 가는 길에 만난, 앞으로 작품에 다시 출연할 일 없는 이웃들, 이런 것들이 자잘하게 깔려 있다. 물론 제일 중요한 건 으제니오를 향한 누크의 배려와, 이를 전혀 중요하지도 않고 고맙지도 않게 생각하며 자신이 당연히 받아야 할 일종의 천부 권리라고 여기는 아들 사이의 갈등이 나열된다. 엄마가 아무리 열심히 새끼 바라지를 해봐라, 불만 없는 새끼들 하나라도 있는지. 누크도 이것을 안다. 자기도 하느라고 하지만 가끔 소리도 빽 지르고, 눈도 흘기며, 손이 번쩍 올라갔다가 슬그머니 내려오기도 하니까. 그리하여 생각하기를:

  아픔을 주지 않는 엄마, 한없이 자애롭기만 한 엄마, 완벽한 엄마는 오로지 죽은 엄마밖엔 없다?


  며칠 있으면 크리스마스. 아직 집에 크리스마스 트리도 만들지 않았고, 명절을 어떻게 보낼 생각인지 계획한 것도 없으며, 심지어 어떤 선물을 해줄지 묻지도 않았다. 으제니오는 이번 크리스마스도 작년, 재작년처럼 좁은 아파트에서 엄마하고 둘이서 조촐하게 지낼 생각을 하니 짜증이 나는 모양이다. 누크도 아들의 심사를 눈치채지 못할 리 없건만 그렇다고 연락할 친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친구들은 다 친구들 나름대로 계획이 있을 것인데, 생각해보니 마르타 말고는 친구다운 친구도 없다. 마르타 집에는 15년 전에 한 번 가봤을 뿐이다. 마르타는 괜찮은 결혼생활을 하고 있으나 젊은 시절의 계획 대로 무자식 상팔자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남편과도 나쁘지 않지만 따로 만나는 남자, 그러니까 샛서방과의 섹스는 할 때마다 숨이 넘어갈 만큼 좋다. 그러니 이 가족한테 신경 쓸 틈이 없을 것. 가까운 친척도 없고, 친구도 없다. 그것도 괜찮은 일. 아무리 크리스마스라고 해도 모자 둘이 따뜻한 방 안에서 맛있는 거 먹고 즐거운 이야기하며 지내면 그게 장땡이지 뭐가 부러울꼬?

  이건 엄마 생각일 뿐. 아이는 전혀 아니다. 그리하여 시리얼을 먹으면서 일단 요구하기를, 나, 새 한 마리 사줘.

  그래서 모자는 추운 겨울날 외출을 감행한다. 도핀가의 밀집한 장난감 가게 가운데 한 곳을 들렀다가, 샤틀레 광장을 지나니까 애완동물 가게가 또 나란히 서 있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마침 눈에 띄는 간판이 있다. “파파게노.” 가게 이름이 ‘새잡이’라서 새 하나는 믿고 살 수 있겠다 싶어 시뻘건 얼굴의 식인귀처럼 보이는 여주인한테 카나리아 한 쌍을 산다. 아담과 이브. 암수 구성이겠지? 식인귀 여사님이 그렇단다. 결론적으로, 아니다. 둘 다 수컷이었고, 몸집이 작은 이브는 바로 다음날 아침에 아버지를 만나러 천국으로 날아간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한 아름 들고 온 새 두 마리, 새장, 각종 사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작은 장난감 등은 몰라라 하고 소파로 튀어 올라가더니 TV를 켜고 오락 프로그램을 보는 으제니오. 아이가 사온 것을 정리하느라 옷도 벗지 못하는 누크한테 대로 외친다.

  “나 배고파!”


  크리스마스 전날에도 출근한 누크. 어제는 해가 서쪽에서 떴는지 친구 마르타가 전화해서 같이 밥 먹자고 하더니, 식당에서 이번 크리스마스, 내일 자기 집으로 오란다. 방사선 촬영을 전문으로 하는 치과의사이자 무자식상팔자주의자. 자기만 보면 요즘 만나는 남자가 얼마나 섹스를 잘 하는지 일일이 설명하려는 마르타. 마르타한테도 자기 마음을 까발린 친구는 누크 한 명밖에 없을 터이다. 탁 보면 알지.

  때마침 으제니오가 직장에 전화해 엄살을 피우는 바람에 반차를 내고 집에 돌아와, 마르타가 예약해놓은 기차를 타고 브루타뉴의 집에 도착해, 무려 열다섯 명에 이르는, 아니지 모자를 빼면 열세명의 식구와 함께 크리스마스 밤을 보내는 으제니오와 누크. 뭐 행복한 크리스마스였다면 소설이 안 되겠지? 그렇기는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다음날, 그러니까 12월 26일 아침에 벌어진다. 무슨 이야기?

  아이고, 그게 결말인데, 당연히 안 알려드리지.

  그저 이 책의 세 가지 언어로 된 제목으로 추리를 해보시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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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불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체사레 파베세 지음, 김운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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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쿠네오 지방의 산토스테파노벨보(Santo Stefano Belbo)에서 1908년에 태어난 소설가, 시인, 역자, 문학평론가.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이후 교육은 서부 알프스 남부를 면한 토리노의 마시모 다젤리오 고등학교에서 받았는데, 특히 영문학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다. 월터 휘트먼의 시에 관한 논문을 써서 토리노 대학을 졸업한다.

  1908년생이 20대를 맞으면 1930년대. 이탈리아는 일 두체, 무솔리니가 집권하여 반도 전체에 검은 티셔츠를 입은 파시스트들이 창궐한다. 파베세 주변에는 파시즘에 반대하는 동료들이 많았다. 비정치적인 성향의 파베세도 반파시즘 서클에 가입했을 지경인데, 1935년에 정치범의 편지를 가지고 있다는 죄목으로 체포당해 잠깐 형무소 구경을 하고 남쪽으로 유배 비슷한 confine(유배, 추방) 당하기도 했다. 이후 파시스트 군대에 소집되었으나 천생 약골인 파베세는 마침 천식이 도져 군병원에서 반년 동안 천식만 다스리고 돌아온 꼴이 되었으니, 이걸 뭐라 그래? 맞다. 새옹지마塞翁之馬. 다시 토리노에 돌아오니 그곳엔 벌써 독일군이 점령하고 있었고, 친구들 대부분은 항 독일 파르티잔을 꾸려 산으로 들어갔다. 파베세는 마음은 굴뚝이지만 차마 파르티잔까지는 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토리노에 남아 있으면서 독일군에 협조하지 않을 수 없을 터이니 북부 이탈리아 시골의 한 언덕에 몸을 숨긴다.

  전쟁이 끝난 후에 파베세는 이탈리아 공산당에 입당해 당의 신문인 <루니타>에서 일했다. 종전이 1945년이고 파베세의 몰년이 1950년이니 이 기간은 그리 길지 못했다. 신문사에 근무하던 때가 그가 가장 활발하게 글을 쓰고, 책을 발간한 시기였단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자신의 고향인 피에몬테의 랑게 지방을 자주 방문했다고 한다. 당연히 출생지인 산토스테파노벨보 지역을 중심으로 주변을 돌아보았을 것이다. <달과 불>을 감안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가족이 다 고향을 떠 대도시에 살았으면서도 해마다 파베세와 파베세의 아버지가 태어난 산토스테파노벨보에서 여름을 지내는 걸 행사처럼 했던 모양이니.

  이후 파베세는 여배우 콘스탄스 다울링과 짧지만 격렬한 연애를 시도했다가 장렬하게 걷어 채이고, 그래서 우울증이 조금 도졌나 싶은데, 정치적 환멸까지 덮치는 바람에 엣다 모르겠다 싶어 안정제, 바르브투르산염을 한 주먹 꿀떡 삼키고 그 길로 천국의 안녕을 찾아갔으니 그의 나이 마흔둘, 한반도에선 낙동강 전투가 한참이던 1950년 8월이었다.


  <달과 불>의 무대는 파베세가 태를 묻은 땅 산토스테파노벨보 마을이다. 화자는 이곳에서 태어나 세상을 둘러보고 재산을 불린 상태로 일년에 한 번 정도 고향에 돌아와 여름을 지내는 ‘나’. 얼핏 생각하면 ‘나’가 작가 체사레 파베세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아니다. 이 책은 픽션. 그래도 작가가 외부에서 얻은 경험이 없었더라면 작품을 이렇게 쓸 수 없었을 터이니 당연히 작가의 흔적이 여기저기 드러난다.

  ‘나’는 어디서 태어났는지 모른다.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심지어 어머니 얼굴 한 번 본 적 없다. 당연히 산토스테파노벨보, 즉 살토 마을에 집도 없다. ‘나’는 살토 마을의 알바 성당 계단에 버려졌다. 서양에서는 사생아를 낳기는 했는데 키울 자신이 없으면 대개 성당이나 교회 계단 앞에 바구니에 넣어 버리는 모양이다. 우중충한 소설 <리틀 라이프>에서도 주인공 주드 역시 교회인가 성당 옆 쓰레기더미 위에 발가벗겨진 상태로 발견된 거 기억하시지? 이런 아이들이 크면 다 주인공 한다니까?

  알바 성당의 주임신부는 ‘나’를 바르질리아와 파르디노에게 키우라고 했는데, 이 부부는 벌써 두 딸 안졸리나와 줄리아를 둔 지독하게 가난한 농부였다. 훗날 생각해보니 혹시 ‘나’를 거둔 이유가 내 덕분에 빈민구제원에서 매달 5리라씩 나오는 양육비 지원금을 받기 위해 그랬던 것이 아니었나 싶기는 했다. 당시 맡겨진 사생아를 기르는 유일한 사람/계급은 가난한 (주로)농부 부부로 그나마 현금을 만져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농부 파르디노는 ‘나’가 좀 더 자라면 여기 ‘가미넬라 오두막’을 떠서 더 큰 농가로 이사해 ‘나’와 함께 일하면서 더 잘 살아보고 싶은 마음에 키우려 했던 듯하다. 바르질리아와 파르디노는 결코 ‘나’에게 티가 날 만큼 못되게 굴지 않았고, 두 딸 역시 친형제만큼은 아니겠지만 그 정도면 합리적인 남매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깝게 지낸 듯하다. 그러나 그건 희망사항일 뿐, ‘나’가 열두서너 살에 이르자 바르질리아가 병들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파르디노는 가미넬라 집을 팔아 두 딸을 데리고 코사노로 이사했다. 나는 가미넬라 오두막에 비해 무척 큰 모라 농장의 하인으로 보내 버리고. 알고보니 파르디노 역시 코사노의 농장 하인으로 들어간 거였다. 나중에 나오는데, 두 딸 모두 결혼했지만, 동생 줄리아는 결혼하자마자 들판에서 일하다 번개를 맞아 즉사했으며, 안졸리나는 아이를 일곱인가 줄줄이 낳고 없는 살림에 엉망으로 살았던 모양이다. 파르디노는 사위들한테 핍박을 받으면서 나중에는 코사노 마을의 성당 부근에서 동냥을 하다가 거리에서 죽었나? 하여간 비슷하게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나’는 모라 농장에 하인으로 들어갔지만 그곳에서 당당한 성인으로 자라 관리인도 함부로 소리치거나 채찍을 들지 못하는 지위를 얻는다. 농장 주인 마테오 씨는 먼저 세상을 뜬 첫 아내와의 사이에 다 큰 두 딸, 이레네와 실비아를 두었고, 두번째 결혼하여 얻은 계모 사이에 작고 예쁜 딸 산티나를 낳았다. 이곳에서 온전하게 사춘기를 보낸 ‘나’는 당연히 농장주의 두 딸 이레네와 실비아에게 상당한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었는데, 내가 보기에 이런 과정을 지극히 무난하게 거쳤다.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공부를 했더라면 잘 했을 거 같다. 사춘기의 폭격을 잘 다스리기가 쉬운 게 아니거든. 특히 어린 수컷들 말이지. 근데 이레네와 실비아는 지금이 딱 십대 말부터 이십대 초기이니 어찌 혼담과 연애담이 오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모라 농장에 피어난 두 꽃을 따기 위해 탐욕스런 벌과 나비들이 몰려들고, 꽃송이 둘 가운데 적어도 하나는 꽃 모가지가 부러질 수도 있는 거 아닐까? 불행한 생각은 들어맞는 경우가 많다. 좀 더 분방한 실비아는, 동네에서 1번은 아니더라도 꽤 있는 집의 음전한 처녀지만 아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뱄고, 자기 딸이 이런 신세가 됐다는 걸 안 마테오 씨가 충격을 받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재수없게 딱 시기가 맞아서 그랬는지, 이 사실을 알자마자 뇌졸중이 발생해 반신불수가 되어 버린다. 실비아는 자기 일이니 자기가 처리한다고 독한 마음을 먹고 당연히 무면허 산파를 찾아가 중절수술을 해버렸는데, 다음 날 돌아와 매트를 피범벅으로 만들더니 그 길로 죽어버렸다.

  이레네는 집안이 이렇게 어지러워지자 어쩔 수 없이 동네에 좀 사는 집 건달 아르투로와 결혼했다. 집 재산의 절반을 뚝 잘라 지참금으로 만들어서. 결혼하자마자 아르투로는 농장으로 들이닥쳐 이레네 소유의 모든 부동산을 팔아버리고 토리노로 이사한다. 워낙 술과 도박에 일가견이 있는 사위 아르투로는 금세, 정말 눈 깜빡 할 새에 이레네의 지참금을 날려 버리고, 이제 이레네를 들들 볶기 시작한다. 아무리 볶아도 이젠 평소 얌전하고 착한 심성에 피아노까지 잘 치는 이레네를 눈에 가시처럼 싫어한 계모한테 5리라짜리 지폐 한 장 얻어내지 못하자, 아르투로는 작품이 끝날 때까지 숨이 넘어가지 않는 이레네를 때리기 시작한다. 이레네, 조금만 참아라. 세월은 빨리 갈 것이고, 술 처먹고 도박하는 네 남편이 너보다 훨씬 먼저 약해질 터이니 그 때가 오면 마음 단단히 먹고 복수할지어다.


  한편, 젊은 시절의 동네 악사이자 ‘나’의 가장 친한 친구 누토. 행사나 축제, 무도회가 있으면 그곳이 벨보강 인근의 지역사회이기만 하면 악단을 꾸려 달려가 밤새도록 몇 날 며칠 동안 클라리넷 불고, 트럼펫 불고, 술 한 잔 마시고, 또 연주하고, 술과 고기 먹고, 다시 연주하고, 춤추고, 포도주 마시고, 연주하고, 술과 고기 먹고, 새벽놀이 지고, 춤꾼들이 전부 뻗어버리는 것을 보고난 다음에, 식당 옆 아무 곳에서나 악단들과 찌그러져 자다가 변변치 않은 수고료를 받으면 단원들끼리 또다시 포도주와 걸진 고기를 먹고 비틀비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지상 최대의 낙으로 삼았다.

  그래도 머리가 깨어 일찍 글자 읽는 법과 쓰는 법을 배워, 하여간 활자가 찍힌 종이가 눈에 띄었다면 무조건 읽고 보는 성격이라 아는 게 많았다. 특히 유산자와 무산자, 재산의 생성과 분배, 그리고 계급에 관해서는 아주 빠삭해 훗날 공산주의자가 될 충분한 자질을 쌓았다.

  음악을 연주하면 신나고 좋기는 하지만 집에 가져가는 것이 거의 없는 걸 깨달았다. 나이가 들었다는 뜻이다. 이제 인생을 탕진하는 것이 지겨워졌고 그래서 아버지한테 가업인 목수일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손재주가 여간 좋은 게 아니라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안다. 음악이 좋기는 하지만 음악은 자기를 지배하는 나쁜 주인이란다. 인생을 탕진하는 악습만 붙여주는 주인. 누토의 아버지는 그런 아들에게 음악 대신 차라리 여자한테 빠지는 것이 낫겠다고 말하고는 했다.

  누토는 ‘나’에게 달과 불에 관한 미신을 말해준다. 예컨대 보름달이 떴을 때 소나무를 자르면 벌레들이 다 먹어버릴 것이라는. 나무통은 초승달이 떴을 때 씻어야 하고, 접붙이기도 초승달 무렵에 하지 않으면 잘 붙지 않는다는 미신. “만약 달과 불이라는 미신을 이용해 농부들을 강탈하고 무시 속에 머물게 한다면, 바로 그가 무지한 자이며, 그를 광장에서 쏘아 죽여야 한다.”고 즉 미신을 퍼뜨려 가난한 농부나 생산자를 강탈하는 계급, 부르주아 계급을 척결해야 한다는 누토의 공산주의적 생각이다. 이 작품은 공산주의자며 공산당 기관신문을 만드는 직업을 가진 작가가 쓴 작품인 것을 읽는 내내 감안하는 것이 좋다.


  ‘나’는 전쟁 전에 군대에서 제대를 하고, 밀라노에서 일을 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전쟁 기간 중에 제법 돈을 만진 다음, 다시 밀라노로 돌아와 큰 돈을 일구었다. 작가 체사레 파베세가 그랬듯이 작품 속 주인공 ‘나’는 작년부터 8월 중에 그래도 ‘나’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유일한 고장 산토스테파노벨보에 와, 광장에 있는 안젤로 여관에서 두 주일 정도 묵었다. 이 기간 동안 성모승천대축일, 8월 15일도 끼어 있어 옛 생각을 하며 가톨릭 축제와 무도회에 참석하지는 않지만 구경할 수는 있다. 예전 친구 누토가 미친듯 클라리넷을 연주하던. 가톨릭 믿는 사람들은 해마다 광복절이 되면 시가행진, 축구시합, 가면무도회 등 시끌벅적한 축제를 벌인다. 성모승천대축일. 성모가 승천했다니까 죽었다는 얘긴데 성모 마리아가 죽은 게 그리 기뻐서 축제를 연다. 그들이 말하는 죽음은 우리가 아는 죽음이 아니라, 성모니까 성자 즉 그리스도와 성부聖父이자 성부聖夫인 하느님 가까이 곁으로 가는 길이니 축하하지 않을 수 없는 일.

  올해도 ‘나’는 고향에 왔다. 마흔이 넘었고, 떠나기 전보다 더 커진 몸을 가진 건장한 사내. 사람들은 ‘나’가 집을 사러 돌아왔다고 생각하며 ‘아메리카노’라고 부르면서, 자기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부자일 것이라 여겨 자기 딸들을 인사시키는 데 여념이 없다.

  ‘나’는 고향을 둘러보기 원한다. 벽돌 하나, 나무 하나하나, 포도밭과 염소, 개울, 수풀, 밀밭 등등. 다 자신의 흔적이 묻은 곳. 그리고 가미넬리 오두막과 모라 농장의 변한 모습과 그 안에 살던 사람들을 향한 일종의 그리움과 회한과 이젠 흐려져 없어지고 만 언짢음. 특히 당시 자기보다 조금 더 위, 그리고 또래나 약간 작은 나이의 아가씨들은 어떻게 됐을까?

  공산주의자 친구 누토와 함께 ‘나’는 고향 살토 마을 인근을 걸으며 만나고, 보고, 듣는다. 이탈리아 작가들의 심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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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의 모든 것
백수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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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2년 인천생. 가정사는 소개하지 않겠다.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현재 한신대 문예창작과 교수. 이 책이 다섯 번째 소설집인 것 같다. 말로만 백수린, 백수린 하는 걸 들었지 여태 한 권도 읽어보지 않은 게 좀 뒤늦은 것 같기도 하고 진작 읽어볼 걸, 후회도 되고 그렇다.

  재미있는 것이, 정말로 재미있다는 얘기는 아니고, 1982년생이면 지금 마흔셋 정도. 그럼에도 나이든 노인이 연이어 등장한다는 점. 읽으면서, 조금 위험한데, 싶은 골목길이 자주 눈에 띄었다. 책에 실은 작품은 마흔 앞뒤로 쓴 것이 터, 노인의 심리상태를 포착해 추리할 수 있을 뿐 그들의 관점을, 그들이 납득할 수 있게 표현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는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다. 거꾸로 말하자면 지금부터 20여 년 전, 작품 속 등장인물이 20대 초반이던 시절에, 지금 세대가 아닌 20년 전 세대들의 행동이나 사고방식에 관해서는 적절하게 묘사할 수 있겠지. 자기도 한 때는 스무살이었으니까. 그리하여 나는 책 속의 작품들을 읽으며, 빼어난 감수성과 섬세한 문장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서재에 앉아 책상 위에서 쓴 글이라 단정했다. 그런데 딱 이 순간, 이런 문장이 눈에 띈다.


  “스무 살 때 다혜는 자신이 언젠가는 늙을 것이라는 사실을 조금도 믿지 못했다. 겨우 스물여덟 살이었을 때는 이제 늙어버린 노인의 마음을 알 것만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노인의 마음을 안다고 믿었다니. 주제넘은 오만. 어리석은 소리. 다혜는 아무것도 몰랐다. 여전히. 지금도.” (<눈이 내리네> p.209)


  그리하여 나는 피시식. 세웠던 날을 접었다. 백수린이 참 사려 깊은 작가구나.

  문장이 정치精緻하다. 매 순간 정치하려다 보니 과장이 심하고 상황도 안 맞는 순간이 잦은 빈도로 눈에 띈다. 어떤 장면인지 탁 집어서 이야기하지 않겠다. 백수린을 좀 더 읽어보고 난 다음에 말하자.

  굳이 사족을 붙여볼까? 개 좋아하는 개엄마, 개아빠들은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을 듯.


  진짜 사족. 40년 전에 청년이었던 나는 오정희를 정말 좋아했다. 백수린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오정희를 읽어도 그때만큼 좋을까? 그래서, 정말로 오정희를 다시 읽어볼까, 잠깐 생각했다가, 관뒀다. 좋았던 건 좋은 순간으로 남겨두겠다는 심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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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5-10-03 0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백수린 작가가 어릴 때 할머니 밑에서 자라서 그 관계가 각별했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할머니, 엄마, 노인 등이 등장하고 그들의 심리를 묘사한 작품들이 많은 것 같아요.

Falstaff 2025-10-03 08:0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표현은 참 읽기 좋았는데, 본문에 썼다시피 묘사가 과한 기분이 막 들더군요. 근데 사실은 저도 읽고 벌써 날짜가 훌쩍 지난 바람에 잘 기억나지 않네요.

반유행열반인 2025-10-03 06: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백수린 작가를 어느 순간부터 할머니 소설 전문이라 칭하게 되었는데요 이 책은 읽고 낫배드지만 얼른 팔자 해서 지금은 제게 없네요. ㅎㅎㅎ

Falstaff 2025-10-03 08:08   좋아요 1 | URL
할머니 소설 전문, 그거 말 됩니다! 쉽지 않은 작업에 도전한 작가에게 박수!

2025-10-03 09: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곡 2025-10-03 09: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잘 읽었습니다 백수린의 단편 ‘흑설탕 캔디‘ 추천합니다 프랑스에 간 한국 할머니 이야기랍니다 백수린 소설집 ‘여름의 빌라‘와 공동작품집 ‘나의 할머니에게‘에 실려 있습니다

Falstaff 2025-10-03 10:19   좋아요 1 | URL
예. 기억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stella.K 2025-10-03 1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오정희 작가를 좋아하셨다니 뭔가 특별한 고백 같습니다. 이럴까, 저럴까 하시는 폴님도 좋아 보이고요. ㅎㅎ
명절 잘 보내십시오!^^

Falstaff 2025-10-04 04:14   좋아요 1 | URL
제 또래들은 다들 오정희 좋아했어요. 특별한 거 하나도 없습니다. ㅎㅎㅎ
별 님도 추석 즐겁게 보내셔요!
 
바츠먼의 변호인 묘보설림 17
탕푸루이 지음, 강초아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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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오. 탕푸루이가 타이완에서 엔지니어 아버지, 공무원 엄마 사이의 아들로 태어난 1982년 9월에 나는 대한민국 충청남도 연무읍 육군 제2훈련소에서 박박 기고 있었으니 거 참. 아, 미리 이야기하고 시작하는 편이 좋겠다. e마트에서 파는 넙치회 안주로 쐬주 한 병 까고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오늘은 취중 독후감을 써야겠다. 웬만하면 안 쓰고 그냥 자빠져 자려고 했는데, 자꾸 독후감 쓰는 걸 미루면 나중에 코피 나는 걸 잘 알아서,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쓸 수밖에. 이까짓 것이 뭐라고 책 읽었으면 그만이지 죽어라 독후감을 쓰고 염병을 하는지 나도 참 팔자소관인 거 안다, 알아. 그러니 뭐라 하지 마시라.

  탕푸루이는 국립 중칭中正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다시 푸젠輔仁대학 재정경제법학대학원에서 석사를 한 후 2010년에 변호사 자격증을 땄다. 그러나 법학과는 관계없이 학부 2학년 때 영상창작에 뜻을 두어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에 지원했지만 장렬하게 물을 먹고, 자신으로서는 제2 지망이랄 수 있는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것이니 적어도 소부르주아 집안의 자제였던 것 같다. 완전히 짐작이다. 보통 집안 아이들은 쉽게 선택하기 힘든 과정이라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본 것뿐이다.

  5년 동안 변호사 일을 하다가 (갑자기 미쳤는지, 갑자기는 아니겠지만) 타이완 정부 장학금으로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에 들어가 영화연출로 석사를 받고, 시나리오 작가와 영화감독으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오늘 독후감을 쓰는 <바츠먼의 변호인>을 발표해 타이완의 문학상을 쓸어 담았다. 그러니 타이완 예술계의 기린아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겠다.


  <바츠먼의 변호인>은 크게 봐서 ①타이완 사회에서의 약자 계급 차별과 ②사형제도 폐지/유지에 관한 이슈를 다루고 있다.

  1911년에 중화민국을 수립한 장개석 정권은 40년대 완전히 폭망해 그때까지 자기들이 수집한 중국의 온갖 문화재를 배에 싣고 타이완으로 후퇴했다. 이때 본토에서 섬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대부분은 한족漢族이었다. 이들은 타이완의 선주민들을 변두리로 쫓아내고 섬에 정착한다. 이 과정에, 타이완을 하나의 독립한 국가로 본다면, 이주해 온 한족과 나라 안 다수를 차지하는 상대적 소수인 선주민 사이에 갑과 을, 우량과 불량 비슷한 계급의 차별이 발생하는데, 한족의 정착 초기에 다수의 선주민을 탄압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건 한족들이 그렇게,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할 뿐이었고, 선주민들의 앙가슴에는 못이 박혀도 보통 깊게 박힌 게 아니었겠지? 그런데 이런 게 날이 가고 해가 가면서 조금씩이라도 해소가 되어야 마땅할 터이지만 아예 사용하는 언어까지 달랐던 이민족을, 한족은 자신들도 본토에서 쫓겨온 주제에, 타이완 경제의 3D 산업을 담당할 천민 취급 비슷하게 했던 모양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주위 환기. 그렇다는 게 아니라 책을 읽어보니까 그러지 않았나 싶은 거다.)


  타이완의 제일 북쪽 꼭대기에 있는 지룽基隆시. 나 대학 졸업하고 초년 봉급쟁이 할 때 수입import구매 담당이었는데 당시 타이완의 무역항 가운데 하나가 지룽시였다. 물론 가오슝이 제일 큰 무역항이었지만 우리나라로 오는 배는 지룽, 키룽Keelung이라 했었고, 이곳이 더 유리해 잘 기억하고 있는 동네다. 아이고, 당시에 이과 출신이 무역한다고 신용장, 적하보험, 선하증권 이딴 거 열라 공부했던 기억이 새롭네. 공부 잘한다고 사수한테 귀염 좀 받았건만 다 옛 이야기다.

  이 지룽시가 1960년대 이전부터 근해어업, 원양어업 할 것 없이 타이완의 어업 중심지로 자리잡았으나, 60년대 들어 세계 3위권의 수산업으로 명성을 떨칠 즈음해서 갑자기 닥친 문제가 선원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거였다. 그리하여 타이완 정부는 주로 북부지역인 화둥華東 지역의 선주민 가운데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했던 아미족族 사람들을 데려와 어선의 어부로 투입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장시간 노동에 낮은 임금이었겠지. 안전에 관한 의식이 없던 때이니까 작업중 사고는 선주 측에서 나 몰라라 했을 것이고. 당시 3세계의 크지 않은 기업체 생각하면 아주 딱일 듯하다.

  이 가운데 1971년에 화롄현 위라진鎭에서 아들 하나 들쳐 업은 아내와 함께 지룽에 도착한 젊은 가장이 있었으니 이름이 ‘퉁서우중’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그때부터 11년이 흐른 1982년 9월 18일. 퉁서우중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피 묻은 칼을 옆구리에 차고 늦은 밤에, 폐선박의 목재를 써서 지은 21평 건물에 열네 명이 사는 집으로 들어왔다. 그는 얼마 전에 어부 일을 하다 사고로 바다에 빠져 죽은 사촌동생의 뒷일을 논의하다가 열을 받아 술을 과하게 마셨고, 도무지 화를 다스리지 못하여 수박 써는 칼을 품고 선박회사에 갔다가, 때마침 사무실에서 나오는 회계부장의 가슴과 목을 무지막지한 칼로 썩, 베어 버렸다. 선뜩한 기운을 느꼈는지 회계부장의 뒤를 쫓아 나오던 다른 한 사람도 퉁서우중의 눈에 띄자 마자 역시 가슴과 목을 스윽, 그어버렸던 거였다. 목과 가슴을 베었으니 피가 보통 튀었겠느냐는 말이지. 그리하여 저승야차의 모습을 하고 집에 도착해, 방에 들어오지는 않고 벽에 철퍼덕 기대 앉았는데, 이때 아들 퉁바오쥐는 난생 처음 피냄새를 원 없이 맡을 수 있었으며, 아이의 인생에서 범죄란 조금도 낯선 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나중에, 아주 나중에 알게 되지만, 퉁바오쥐는 소외당하고 핍박 받으며 온갖 사고에 노출되었으면서도 전혀 보상도 받지 못하는 아미족의 일원으로써 아버지 퉁서우중을 한 명의 영웅 비슷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었는데, 이건 아들 퉁바오쥐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당시 바츠먼 부락에 살던 아미족 사람들 대부분 그렇게 여겼던 모양이다.

  퉁서우중이 날 선 수박 써는 칼을 휘둘렀음에도 칼에 베인 선박회사 회계부장과 다른 한 명은 기적적으로 목숨을 보전해 퉁선생은 살인이 아니고 살인미수 죄를 적용받아 최종 10년 징역형을 받고 출소했다. 당시 판사는 술에 취하여 심신미약 상태였고, 산지부락 출신 선주민이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야만스러운데 거기다가 친족의 사고로 충격을 받아 저지른 사고여서 형량을 줄였다고 판결했다. 즉 산골 출신 선주민, 쉽게 말해 인디언이라서 천성이 무식하고 험해 그 거친 기질을 감안해 좀 봐줬다는 얘기다.

  퉁서우중의 형기 중, 이제 살림을 꾸려야 하는 아내 마제는 애초에 건강하지 않은 체질이었음에도 먹어야 사니까 새우가공공장에 들어가 새우 껍데기 까는 일을 했다. 1982년 혹은 83년임에도 타이완에서는 붉은 고무장갑이 없었는지 직원들이 맨손으로 껍데기를 깠는데, 건강 체질이 아닌, 즉 체내 저항력이 부족한 마제는 조직염과 패혈증에 감염되어 고통스럽게 삶을 접고 만다. 이제 식구 중에 하나 남은 건 아들 퉁바오쥐.


  삶이 자신을 버리는 거 같으면 오히려 독해진다. 퉁바오쥐는 스스로 동정하는 것을 거부하고 아미족 커뮤니티의 보살핌 속에 어떻게 생활을 해가면서도 시간만 나면 동네 성당 창고에 몰래 들어가 공부하는데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게 이 지긋지긋한 바츠먼 부락을 뜰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을 아는 바에야. 반드시 이곳을 뜨고 말 테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 근데 그게 쉽게 되는 거야? 웃기지? 하지만 퉁바오쥐는 정말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퉁바오쥐가 아무리 열라 공부했다 하지만 타이완 부모 역시 자식 교육에 관한 한 우리나라 부모한테 꿀리고 싶어하는 마음이 1도 없는 족속이라 쉽게 대학에 입학할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최고의 대학은 아니고 서열 10위 정도 하는 학교의 법학과에 “원주민 특별 전형”으로 입학했고, 학교에 다니면서 놀라운 순발력과 법학 지식으로 타이완 법대생 가운데 이름을 떨쳤는데, 이때 알게 된 사람이 천칭쉐. 명성 드높은 고관 집안의 딸이자 훗날 타이완에서의 사형 철폐를 끝까지 주장하는 법무부 장관이 될 인물이었다. 퉁바오쥐는 대학을 졸업하고 타이페이 법원의 법정 변호사로 일하면서 다시 천칭쉐를 만나게 된다.

  두 명의 청춘이 20년이 흘러 40대가 되어 법정변호사-법무부장관으로 만나게 되는 것은 타이완의 산골 부락민 아미족이 아니라, 아미족 대신 원양어선을 타고 어부일을 하기 위하여 인도네시아에서 해외취업을 온 젊은 청년 압둘아들이 자기가 일한 배의 선장이자 퉁바오쥐의 어릴 적 친구 정펑췬의 집에 찾아가 정펑췬과 그의 아내를 칼로 찔러 죽이고, 두 살도 되지 않은 딸까지 욕실에서 물에 빠뜨려 질식시켜 죽인 사건 때문이었다.

  뭔가 말이 되지? 40년 전 아미족 선원 퉁서우중의 살인사건과 현재의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 압둘아들의 살인사건. 퉁서우중은 살인미수라 10년형을 받았지만 압둘아들은 1심에서 이제 두 살박이 유아를 포함한 세 명을 살인한 죄과로 사형을 선고받고, 2심에서 법정 변호인 퉁바오쥔을 만나게 된다.  여기에 사형만은 집행하지 않고 싶어하는 사형폐지론자 법무부 장관이자, 젊은 시절 퉁바오쥔의 맞수 천칭쉐. 지금은 사형 폐지 또는 감형이라는 같은 목표를 가지게 된. 그럴 듯하지?

  작품을 쓴 탕푸루이를 높게 평가하는 건, 결국은 악당 그 자체인 천칭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게 도대체 어떤 이유인지 말할 수는 없겠지? 결국 다 그렇게 사는 거다, 하고 끝맺는 탕푸루이.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하지 않았어도 이렇게 만들 수 있었을까? 아쉬운 건 (할리우드 식으로)꼭 유머 코드를 삽입해야 한다는 강박이 좀 있는 것 같았다는 거. 그렇다고 작가한테 이메일까지 보낼 정성은 없고 말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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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2025-10-02 05: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는 건 별로 없지만, Falstaff님 독후감을 기다리는 분들이 많을 거라는 건 압니다!! 일단, ‘아오’가 나오면 재밌는 얘기를 해 주실 것 같아서 기대하게 되는데, 부담이 되실 테니 내색은 안 할게요ㅎㅎ

Falstaff 2025-10-02 06:51   좋아요 1 | URL
에이, 설마 제 잡글 기다리시는 분이 계실까요. 곰돌이 님처럼 만날 읽어주시는 몇 안 되는 분들이 그래서 더 고마운 것입지요. ‘아오‘가 그렇습니까? ㅎㅎㅎ 조심해서 써야겠습니다.

얄리얄리 2025-10-02 15: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 며칠 Falstaff님 개인에 대한 정보(?)를 얻게된 재미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 [경세통언]에서 달착륙 이야기에도 슬쩍 밝히시고, 오늘은 훈련소 이야기도 쓰셔서.. ㅎㅎㅎ

오늘 독후감도 잘 봤습니다. 정독은 못하지만 매일 재미있는 말씀 기다리는 저 같은 사람들 있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Falstaff 2025-10-02 15:59   좋아요 0 | URL
그 정도야 뭐 개인정보라 할 게 있겠습니까.
걍 책 읽기 좋아하는 술꾼입니다. 젊은 때 희망대로 쪼옥 살고 있습죠.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