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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리가 사랑한 카페
20년 전인 2004년, 최내경은 파리의 유명 카페와 고흐가 마지막 몇 달을 보낸 오베르 쉬르 우아즈 여행기 <파리 예술 카페 기행>을 내고, 2009년에 몽마르트르를 중심으로 카페와 음식점, 그리고 공연장 이야기 <몽마르트르를 걷다>를 낸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올해 두 책을 보완한 성격이 짙은 <파리가 사랑한 카페>를 다시 냈다.
카페Cafe라는 말의 어원이 무엇인지 모르는 나는, 그저 유럽에 커피가 들어왔고, 부르주아 귀족들이 마시기 시작했으며, 젊은이들조차 이에 중독 비슷한 매력을 느껴 바흐조차도 자신의 칸타타 BWV211에서 젊은 아가씨 리센으로 하여금 “아 커피 맛이 정말 기가 막혀! 수천번의 키스보다 더 달콤하고, 좋은 와인보다 더 부드러워. 나는 커피, 커피를 마셔야 해. 나를 즐겁게 해주려면 다른 거 말고 커피나 한 잔 따라 주세요.” 라고 노래하게 만든다. 이 칸타타를 작곡한 바흐가 돌잡이 상에서 자식 많이 낳겠다고 쌀 그릇을 손에 잡으며 겨우 처음 직립보행을 했던 1686년에, 이탈리아 사람 프란체스코가 파리 최초의, 세계 최초가 아니라 파리 최초의 카페 “프로코프”를 열었다. 이로써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에서는 떠돌이 유목민과 대상들이 모래 사막에 주저앉아 쏟아지는 별빛을 어깨에 진 채 걸쭉하게 타 마시던 커피가, 17세기 유럽으로 건너와, 거울로 벽을 장식하고 별빛 대신 커다란 샹들리에에서 고래 기름을 만든 촛불이 불타오르는 호화찬란한 실내공간에, 줄지어 들어선 대리석 테이블 위에 놀려지게 되었다.
그곳을 드나들던 프랑스의 위대한 극작가들, 몰리에르는 일찍 죽어 구경하지 못했지만, 라신, 라퐁텐은 물론이거니와 당대의 계몽주의자였던 장 자크 루소, 몽테스키외, 드니 디드로 같은 양반들도 신민들을 계몽시키고 여유시간이 나면 프로코프 카페에 들르고는 했다 한다. 루소는 장 자크, 디드로는 드니, 근데 몽테스키외의 정식 이름은 도대체 뭐야? 나는 한 번 정도 들어본 것 같다. 그의 작품 <어느 페르시아인의 편지> 앞날개에 나온다. “샤를 루이 드 세콩다 몽테스키외.” 왜 엉뚱한 이야기에 열심이냐고? 내가 경애하는 독일 작가 율리 체가 쓴 <잠수 한계 시간>에서 나오는 건데, 주인공의 대학원 졸업 인터뷰에서 교수가 질문하기를 몽테스키외의 정확한 철자가 어떻게 되느냐는 거였다. 그래서 그이의 이름에 관심이 많았다. 살다 보면 그럴 수 있는 거니까 왈가왈부하지 말자. 참고로 Montesquieu. 잘난 척하고 싶어 썼다.
아주 오래 전에 최내경의 <파리 예술카페 기행>을 당시 내가 밥 빌어먹던 회사의 사보에 소개한 적이 있다. 거기서 이렇게 이야기한 것이 기억난다.
“책을 무작위로 들추어보니 한 문장에 거론된 인물만 해도, 베를렌, 프루스트, 지드, 생텍쥐베리, 발레리, 프레베르, 퐁즈, 크노, 헤밍웨이, 카뮈, 말로, 조르주 퐁피두, 지스카르 데스탱, 프랑수아 미테랑, 자크 시라크, 장 폴 벨몽도, 샤를 트레네, 잭 니콜슨, 미셀 모르간, 모두 합해서 열 네 명인데, 이런 문장은 카페 하나하나를 소개할 때마다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지라 그녀가 거명하는 사람들만 나열한다해도 원고지 스무 장은 너끈하게 채울 듯하는군요.
게다가 거명된 인물의 무게감이 그걸 읽는 사람을 압도합니다. 세상에나, 베르렌과 프루스트, 그리고 말로가 한 자리에 있다니. 그리고 사람들의 이름을 자세하게 보면 유럽의 다른 나라와 아메리카까지,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제외하고는 빠짐없이 대륙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니, 프랑스 파리의 예술카페라는 용광로 속에서 자기들의 문화를 다 녹인 다음, 그 결과물을 세계 곳곳에 전파한 그곳 카페의 힘, 그리고 카페가 전세계 백인 문화에 끼친 영향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그때 눈 여겨 본 카페가 물랭루즈에서 쇼를 하던 쉬잔 발라동의 손자녀들이 운영하는 카페 메종 로즈였다. 이 메종 로즈가 <몽마르트르를 걷다>에 이어 <파리가 사랑한 카페>에서도 등장한다. 위의 인용문에 이름을 올린 거물들과 비교하면 정말로 하찮은 계급, <목로주점>의 주인공인 제르베즈 아줌마 정도도 되지 않을 인물이 전직 대통령, 작가, 시인, 명배우들과 함께 거론되는 것이 새삼스럽기 마찬가지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유럽 문명과 문화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 오랜 전통과 깊이에 공감하는 분들이 유럽을, 프랑스를, 그리고 파리를 방문한다면 이 책을 가방 속에 넣고 틈틈이 꺼내 보며 파리를 위대한 도시가 되게 만드는데 한 몫을 한 유명 카페와 음식점을 찾아 식도락을 즐겨보는 것도 대단한 유혹일 터이다.
2. 파리 예술카페 기행
최내경이 또 프랑스에 다녀왔습니다. 혼자 간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이번엔 프랑스의 수도이자 세계 예술의 심장인 파리를 중심으로 다녀왔는데, 프랑스가 자랑하는 또 하나의 소프트, 파리를 중심으로 지난 역사상 숱한 예술가, 정치인, 배우, 가수 등을 불러 모아 서로 토론하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술 마시던 자리, 그들로 하여금 그냥 선술집이나 밥집이 아닌 프랑스 문화, 더 나아가 세계 문화의 특별한 코드를 만들어낸 카페에 들러 파리 구석구석을 걸어다니느라 피곤한 다리를 쉬고 허기진 위장을 달랜 기록을 책으로 만들었군요.
프랑스 문화, 가운데 그냥 대충 하나를 찍어 샹송을 이야기해볼까요?
샹소니에 중에서 무슨 특별한 기준이 아니라 그냥 퍼뜩 떠오르는 인물을 한 두 명만 얘기하자면 이브 몽탕, 그리고 조르쥬 무스타키. 이브 몽탕은 이태리 태생으로 프랑스로 건너가 노래를 하고 영화를 찍고 정치도 하고... 죠르주 무스타키 역시 그리스 태생으로 조국 보다는 프랑스에서 자신의 노래 세계를 활짝 핀 가수지요. 프랑스 문화에는 이렇듯 국경이 없습니다. 어느 문화권의 것이던 간에 자존심 센 자기의 문화라는 커다란 용광로 속에 녹여 기어이 프랑스 문화로 만들어내는 그 기이하고 블랙홀 같은 흡인력. 이방의 문화를 소재로 오히려 자신의 것을 더욱 살찌우는 프랑스의 오만스럽고 거염있는, 그러나 부럽기 짝이 없는 것들 가운데 파리 시내의 카페라는 장치가 있나봅니다.
최내경의 책 <파리 예술카페 기행>에서 그녀가 파리의 예술카페에 들러 추억하는 인물들의 면면은 가히 대단합니다.
책을 무작위로 들추어보니 한 문장에 거론된 인물만 해도, 베를렌, 프루스트, 지드, 생텍쥐베리, 발레리, 프레베르, 퐁즈, 크노, 헤밍웨이, 카뮈, 말로, 조르주 퐁피두, 지스카르 데스탱, 프랑수아 미테랑, 자크 시라크, 장 폴 벨몽도, 샤를 트레네, 잭 니콜슨, 미셀 모르간, 모두 합해서 열 네 명인데, 이런 문장은 카페 하나하나를 소개할 때마다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지라 그녀가 거명하는 사람들만 나열한다해도 원고지 스무 장은 너끈하게 채울 듯하는군요.
게다가 거명된 인물의 무게감이 그걸 읽는 사람을 압도합니다. 세상에나, 베르렌과 프루스트, 그리고 말로가 한 자리에 있다니. 그리고 사람들의 이름을 자세하게 보면 유럽의 다른 나라와 아메리카 까지,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제외하고는 빠짐없이 대륙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니, 프랑스 파리의 예술카페라는 용광로 속에서 자기들의 문화를 다 녹인 다음, 그 결과물을 세계 곳곳에 전파한 그곳 카페의 힘, 그리고 카페가 전세계 백인 문화에 끼친 영향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이렇게도 뻑적지근한 인물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던 무수한 예술카페가 아니라, 평생 사랑하고 좌절하고 배신당하고 빼앗기면서 19살에 낳은 아들 위트릴로과 함께, 아들의 친구와 사랑에 빠져 불행한 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쉬잔 발라동, 서커스 단의 곡마사 출신인, 당시 시각과 상대했던 인사들의 이름값에 비교한다면 비루하고 남루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는 발라동의 집을 개조한 카페 “메종 로즈”였습니다.
물론 몽마르트를 이야기하면서 쉬잔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지만, 무수한 쉬잔들을 생산해냈던 나폴레옹 3세의 퇴폐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그 시절, 몽마르트의 후미진 뒷골목에서 로트렉과 모딜리아니가 일본의 기모노를 입고 압생트를 마시며 쉬잔 발라동과 함께 아편에 몰두해야 했던 세기말의 로망을 최내경은 그들보다 조금 후세에 세기의 지성으로 찬사를 받았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와 같은 무게, 아니면 적어도 상당히 비슷한 무게로 다루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최내경의 파리 기행, 그것도 자칫하면 식도락 기행이라고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예술카페로 향한 걸음. 작가는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을까요. 거위 간 요리와 타르타르 소스를 첨가한 스테이크, 크루아상, 위스키나 코냑을 넘어서는, 파리의 수많은 카페에서 작가는 미각과 더불어 무엇을 보고 듣고 만지고 느꼈을 겁니다. 그 “무엇”이 비행기 삯만 해도 수백만원이 넘는 파리로 날아가 대뇌에 깊이 각인하고 싶었던 것이었을 겁니다.
그녀는 예전 저작인 <고흐의 집을 아시나요>에서와는 달리 그 “무엇”에 관하여 확실한 단어로 설명합니다.
“지금도 그들은 카페에서 만나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토론을 하기도 헤어짐을 아쉬워하기도 한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 모두는 이 카페들을 꼭 한 번 둘러보길 바란다. 계획만 세운다면 누구든 가능하리라고 본다. 그러면 여러분 모두는 이전보다 시 공간이 훨씬 넓어진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잊지 못할 추억으로 떠올릴 그런 순간을 가지는 멋진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 기분은 무척 행복할 것이다. 이 책으로 여러분 모두가 예술가와 문인들과 함께 한 멋진 여행이 되었길 바란다.”
최내경은 행복을 위해서 독자들에게 파리의 예술카페들을 소개했군요. 추억을, 그것도 세계적인 예술가와 문인들과 함께한 멋진 여행의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독자들에게 작가는 파리의 예술카페로의 여행을 권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것이 지금 당장이 아니어도 좋고, 10년 이내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언젠가는 파리에, 그 카페에 들어 딱딱한 빵 한 조각에 커피 한 잔이라도 해보고 말리라, 하는 희망뿐이어도 작가는 우리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 가지고도 스스로 행복해할 것입니다.
3. 고흐의 집을 아시나요?
어느새 가을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당신은 외롭지 않습니까. 당신 가슴 속 깊숙한 고독의 빈자리로 문득 황황한 바람이 불어오지는 않습니까. 어려운 시절, 거친 생활을 살아내느라 무수한 사람들 사이에 부대끼고 함부로 관계들을 만들어가면서도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아무도 없는 사막을 바라보지는 않나요. 부모와 배우자, 그리고 정겨운 살붙이들이 아주 가끔은 전혀 낯선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하겠군요.
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가을에.
가끔은 길을 떠나고 싶습니다. 지구라는 별자리에 오직 당신만이 혼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때, 당신은 헤진 배낭을 메고 그저 길을 나서고싶어질 것입니다. 당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 지친 발걸음을 쉬고싶겠지요. 당신은 신발끈을 풀고 고단한 발바닥을 두드립니다. 그러다가 무거운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두리번거려봅니다. 저런, 그러고보니 외로운 당신을 품고있는 공기 속에서 위대했으나 고독했던 영혼들이 당신을 지켜보고 있군요.
당신은 행복합니다. 위대한 예술품을 만들어낸 고독한 영혼들이 당신과 함께하니까요.
그러나 정말로 자리를 박차고 길을 나설 수 있으면 대단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거나 부모를 잘 만난 사람이겠지요. 보통의 당신은 길 떠날 생각조차 못할 확률이 많습니다. 시간이 없고, 돈이 없는.... 하지만 언젠가 길을 떠나리라, 마치 비밀스런 에로스의 약속인 양 마음 한 쪽엔 그런 갈증을 이 가을에도 당신은 품고 있겠지요. 그 희망, 사실은 조금은 덧없는 그런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뒤 돌아보지 않고 베낭을 멜 희망이 있는 당신은 지금 불행하고, 그럴 희망을 갖지 않은 당신은 언제나 불행합니다.
그날을 기다리나요? 그렇다면 당신이 기다리고 있는 일탈의 그날을 위해 이 책을 소개합니다. 《고흐의 집을 아시나요?》.
프랑스.... 혹은 불란서를 소리내 발음해보십시오. 그것은 이미 당신에게 어떤 동경으로서의 보통명사입니다. 유럽의 중심, 세계 2위의 농산물 수출국이라는 지리부도적인 지식보다도 당신의 가슴 속에서 프랑스는 로제 마르탱 뒤 가르, 앙드레 말로 같은 작가, <암흑가의 두 사람>에서의 쟝 가뱅과 알랭 들롱의 우수 깊은 눈동자, 장-폴 고띠에, 크리스티앙 디오르 등의 패션 디자이너... 이런 소프트가 먼저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아니죠, 당신을 포함한 많은 우리 보통의 사람들은 의당 그러리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몽마르트 언덕의 노천 카페에 몰려앉아있는 혁명가 레닌과 바쿠닌 같은 망명 이방인의 모습을 상상할 수도 있겠군요.
그런데 프랑스의 무수한 소프트 중에 프랑스를 프랑스답게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소프트는 무엇일까요. 루브르 박물관의 눈썹 없는 여인 <모나리자>를 위시한 미술품을 제일 윗자리에 놓지 않으면 많이 서운하리라 생각합니다.
책《고흐의 집을 아시나요?》는 그러나 고흐의 작품에 대한 설명서나 입문서가 아닙니다. 《고흐의 집을 아시나요?》에서 고흐를 발견할 수 있는 페이지는 얼마 되지 않는군요. 그의 그림도 여섯 컷의 사진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 책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앞에서 얘기했듯, 어느날 갑자기 단행할 당신의 일탈, 그 여행길에 당신의 헤진 베낭 속에 담아갈 안내서입니다. 당신은 이 책과 함께 지난 세기와 지지난 세기에 가장 고독했고 우울했던 영혼들의 흔적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즉, 고흐의 작품을 보러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고흐가 자신을 향해 권총을 발사했던 그 무서운 고독과 절망의 시절을 온전히 담아낸 다락방으로 당신의 발길을 옮길 수 있게하는 책이지요. 낡은 침대가 놓인 그 좁은 다락방에서 밤새도록 신음을 하던 고흐를 당신은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비뚤배뚤하게 원색으로 불안하게 그려놓은 오베르 교회, 위대한 그 그림을 볼 수 있게 안내하는 것이 아니고, 어느 천재에 의하여 불멸의 명화로 그려진 교회 건물을 당신은 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시간의 마모는 직접 고흐의 집을 찾아나선 나그네의 발길에 쓸쓸한 회한 만을 선사하기 십상입니다만, 고독했던 천재의 숨결마저 어느 한 구석에서 발견하기 기대난망이겠지만 굳이 그 집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당신의 외로운 영혼을 위해서일 것입니다.
작가 최내경은 고흐가 최후를 보냈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셋집을 비롯해서 베르디 오페라 <돈 카를로> 1막의 무대가 되는 퐁텐블로 숲 가의 밀레의 집과 아틀리에, 거장 다 빈치가 만년을 보낸 클로 뤼세, 프랑스 회화의 다른 큰 축을 이룬 남프랑스 지방, 그리고 파리를 대단원으로 해서 간결하게, 그렇습니다, 우리가 섣부른 기행문에서 흔히 읽을 수 있는 허접한 감상을 첨가하지 않고 담담히 그려내고 있습니다.
최내경의 글은 이렇듯 조금은 건조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아까운 지면을 빌어 소개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여백에 대한 매력이지요. 작가는 고흐의 집으로 가는 길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가면 어느어느 것이 있다고 말을 합니다.
그 다음의 지면은 당신의 순서입니다. 최내경의 책을 헌 베낭에 넣고 남프랑스에서 다시 파리로 향하는 밤 열차를 탄 당신은 열차 객실에서 이방의 문자로 인쇄된 《고흐의 집을 아시나요?》를 꺼내 그 빈 여백에 당신의 감상을 적어놓을 수 있습니다. 최내경은 남부에까지 가서 왜 엑상 프로방스의 세잔의 집엔 들러보지 않았을까...를 빈 자리에 쓸 수도 있고, 끝없이 펼쳐지는 남 프랑스의 들녘을 밤기차에서는 볼 수 없었다고 써놓아도 좋을 것입니다. 그건 당신의 몫이니까요.
당신 속의 외로운 영혼을 위하여, 어느날 문득 저질러질 일탈을 위하여 기쁘게 《고흐의 집을 아시나요?》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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