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손 서문문고 108
사르트르 지음, 최성민 옮김 / 서문당 / 1996년 9월
평점 :
일시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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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소설, 희곡 장르로는 마지막 사르트르가 될 것 같다. 간략하게 말해 이제 더 이상 사르트르를 읽을 것 같지 않다는 건데,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인 사르트르가 마땅하지 않아서는 아니고, 시, 소설, 희곡 장르 가운데 우리말로 번역 출판한 책 중에서 읽어보고 싶은 책이 더는 없다는 것뿐이다. 위키피디아는 사르트르를 프랑스의 “철학자, 극작가,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정치활동가, 전기작가, 문학평론가”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업적은 실존주의 철학을 공고히 한 철학 분야이며 다음이 극작과 소설이다. 나는 그의 소설에 만족해본 적이 없어 성인이 된 후 한 번도 사르트르를 좋아하지 않았다가 극작 <무덤 없는 주검>과 <존경할 만한 창부>를 읽은 후에, 이래서 사르트르, 사르트르 하는구나, 무릎을 쳤다. 이제 세 번째 극작품으로 <더러운 손>을 만족스럽게 읽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더 이상 나를 유혹하는 작품의 제목을 발견할 수 없다.

  <더러운 손>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조금 곤혹스럽다. 행간에는 확실하게 실존적 문제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그렇기는 한데, 이걸 실존주의적 해석으로 일관할 수도 없을 듯하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사르트르는 확실하게 좌파 공산주의자다. 오랜 세월 반공을 국시로 하는 국가에서 낳고 자라고 교육받은 우리나라 사람한테 공산주의자라고 하면 반감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동안 죽어도 반대하라고 교육받은 공산주의는 진정한 공산주의이기보다는 공산주의를 위한 하나 또는 하나로 결집된 소수의 당파를 의미하는 건 아닐까? 레닌-스탈린-마오-김으로 이어지는 교조적, 전체적, 독재적 볼셰비즘이나 볼셰비즘 비슷한 기형 잡탕 말이지. 이들이 주장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한 못된 두목Duce이 등장해 어떤 지구인보다 훨씬 더 부르주아적 생활을 유지하면서 전 국민을 프롤레타리아로 만들어 그들에게 야만적 독재권력을 행사한다는 의미 이상이 안 된다. 일찍이 이를 간파하고 길길이 침을 튀며 반대한 작가들도 많지 않은가 말이지. 대표적인 인물이 <동물농장>을 쓴 조지 오웰과 <레 망다랭>의 작가 시몬 보부아르. 그리고 “트로츠키 만세!” 농담 한 마디 했다가 젊은 세월 골로 간 루트비크 이야기 <농담>으로 데뷔한 쿤데라 아저씨도 절통하게 비웃어주었지 않은가 말이지.

  이리하여 <더러운 손>도 가상의 국가 일리리아에서 공산주의 당파끼리 서로 죽고 죽인 권력투쟁을 비판했다고 봐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실제로 이 희곡을 발표하고, 연극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리자 반공 진영에서 열렬히 환호한 반면, 공산주의 진영에서 맹렬하게 공격을 했다 한다. 웃기는 표현이지만 “사상의 자유가 있는 반공 국가”였던 프랑스에서 1951년에 이를 영화로 만들어 상영에 들어가니까 명맥만 유지하던 프랑스 공산당은 오랜만에 의기투합, 영화를 상영하는 애먼 극장한테 폭파해버리겠다고 위협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후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1976년까지 영화를 상영하지도 않았고 연극 공연도 없었다고 하는데 정확한 건 아니다. 어디 가서 써먹지 마시라.


  가상의 국가 (‘닐리리야’의 두음법칙 아님. 혼동 방지) 일리리아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 중이다. 처음에는 눈치를 보니 독일이 압도적으로 이길 것 같아 당시에 국가를 통치하던 섭정은 망설이지 않고 독일편을 들어 소련에 선전포고를 했다. 그러니 일리리아는 두 나라 가운데 하나다. 헝가리 아니면 알바니아. 근데 섭정攝政이 나오는 걸 보니까 헝가리에 더 가깝다. 이 나라를 대표하는 정치 권력으로 세 집단이 있었다. 섭정을 따르는 폴 공의 친 파시스트 무리, 국민의 60퍼센트 정도가 지지하는 부르주아와 민족주의자의 지도자 카르스키, 그리고 공산주의를 대표하는 에드레르. 만일 국민의 지지를 수치로 할 수 있다면, 폴 공와 카르스키 연합이 80 이상, 공산당이 20 정도의 세력이다. 다만 문제는 전쟁이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독일이 점점 후퇴하고, 빈 곳을 소비에트 연맹이 점령하고 있다는 거. 이제 일리리아의 영토에 소련군이 진입해 들어오는 건 그야말로 시간 문제라는 거였다. 이 난국을 맞아 폴 공과 카르스키 당 대표는 과감하게 일리리아 공산당의 대표 에드레르를 방문하기에 이른다. 세 정치 당파가 연합하여 위원회를 만들어 난국을 타개해 나가자는 뻔한 이유를 대서. 그들은 공산당의 몫으로 위원회 총 12표 가운데 2표를 제시하고, 비록 소수당이긴 하지만 같은 공산국가인 소련이 일리리아로 진입해 들어오기 직전이라 에드레르는 콧방귀를 뀌며 대답한다. 위원회를 총 6표로 하고 이 가운데 3표를 공산당이 가져가야 하겠다고. 그런데 이 순간, 건물 벽에 폭음이 울리며 뭔가가 폭발한다. 이들을 암살하기 위한, 이들이라기보다 차라리 공산당 대표 에드레르 한 명을 제거하기 위해 던진 폭탄이었다. 같은 공산주의자가 던진.

  폭탄을 던진 사람은 공산주의자 올가 로람이었다. 불행하게도 에드레르는 손 끝 하나 다친 곳 없이 멀쩡하다. 이때 에드레르, 폴 공, 카르스키와 한 방에 있던 에드레르의 비서가 작품의 주인공 위고 바린. 공산당원이기는 하지만 저명한 사업가 아버지를 둔 부르주아 출신이며 인텔리겐치아다. 당시에 공산당 운동을 하던 많은 사람들이 가명을 사용했는데, 위고는 하필이면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라는 이름으로 입당을 했다. 그러나 점점 많은 동료 당원들이 위고의 출신을 알게 되고, 머리는 있지만 실제 행동의 경험과 강단이 없다는 것에 위축되고는 하던 위고는 자기들의 하부 코뮌의 우두머리 루이에게, 혁명을 위해 에드레르를 자기 손으로 처단하겠다고 약속해 그의 비서로 들어간 거였다. 그래서? 죽였다. 아내 제시카의 속옷에 숨겨 몰래 지니고 들어간 권총이 에드레르의 머리통을 관통해 사망에 이르렀다. 이후 위고는 5년형을 받았고, 겨우 2년이 지난 다음에 사면이 되어 출감한 날, 곧바로 올가의 집으로 찾아온다. 그러나 이제 옛 하부 코뮌의 동지들에 의해 처단 대상이 된 위고를 죽이기 위해, 전에 자신이 암살한 에드레르의 경호원들이 에드레르를 죽이라고 지시한 루이의 명령을 받아 이제는 위고를 처단하려 올가의 집 문을 거칠게 두드린다.

  웬일로 미리 다 알려주느냐고? 흠. 이게 첫 장면이니까 그렇지. 극을 시작하기 전에 결말을 다 알려주고 내용을 확인해 나가는 플래시 백 형태의 작품이라서.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면 틀림없이 공산당 내 당파간 죽고 죽이는 더러운 권력투쟁에 대한 비판이다.

 그러나 이야기의 초점을 주인공 위고에게 맞추면 조금 달라진다. 부르주아 공산당원으로 출신성분에 관한 핸디캡을 지닌 인물. 다른 당원들은 철도 폭파나 요인 암살, 무기공장 사보타주 같은 화려한 전적이 있는 반면에 당의 사무실 직원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 그것을 뛰어 넘기 위하여 보스 루이에게 에드레르 암살을 지원하는 위고.

  아내와 함께 위험지역 깊숙이 진입하는 데는 성공하지만 암살 행위를 실천에 옮길 용기가 부족한 천생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 이를 옆에서 바라보기만 할 뿐인 아내 제시카가 오히려 실행을 요구하며 위험천만한 행동을 하려 한다. 그저 결심만 하고, 공상 속에서만 열심히 에드레르의 머리통에 총을 쏴댈 뿐인 남편을 보는 제시카는 한심하기가 짝이 없다. 권총을 꺼내는 것만 가지고도 위험을 느끼는 위고한테, 제시카는 권총을 위고의 남근으로 변형시키고, 발사하지 못하는 권총이 위고의 발기부전 증상이 두드러진 생식기로 전이한다. 즉 위고의 가장 기본적인 실존이 위태해지는 순간이다.

  사르트르는 당대 최고의 개인주의자였다. 이 작품 속에서 위고의 행위가 과연 공산당 내 정치적 결단이었는지, 아니면 스스로의 개인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사르트르는 내색하지 않는다. 읽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다양하겠지만 나는 위고 개인의 실존에 관한 측면이 더 두드러지지 않았는가, 하는 의견에 한 표. 그러나 당신이 생각하는 것, 그게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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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8-23 04: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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