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운드 하우스
루이스 어드리크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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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스 어드리크를 처음 읽은 것이 2023년 7월. 오늘이 2024년 7월 19일. 일년 만에 어드리크 세 권 읽었다. 어찌 작년에야 이이를 알게 됐는지. 재미도 있고, 무엇보다 골격이 탄탄해서 좋다. 한 번 더 밝히자면 루이스 어드리크의 부계는 독일계, 모계의 반은 북아메리카 선주민 치페와 부족, 나머지 반은 프랑스계 혼혈. 그러니까 4분의 1이 아메리카 선주민이지만 노스다코타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자라면서 스스로 선주민의 정체성을 지니고 살았다. 그래서 <밤의 경비원>, <정육점 주인들의 노래 클럽>, 그리고 <라운드 하우스> 세 권 모두 치페와 부족이 주인공이거나 매우 중요한 등장인물로 나온다.

  루이스 어드리크를 통해서 내가 거의 새롭게 알게 된 걸 말하자면, 남아 있는, 학살을 피해 아직까지 살아남은 아메리카 선주민들이 보호구역으로 밀려나면서 미합중국 정부와 맺은 조약을, 그들은 정부와 한 커뮤니티 간의 협약이 아니라, 정부와 정부, 즉 아메리카 합중국과 선주민, 국가 대 국가가 맺은 합법적 조약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거였다. 그러니 합중국은 선주민을 자기들이 “통치”할 수 있는 국민으로 여기지 말라고 주장할 수 있고, 더 나아가 그리 주장해야 옳은 일이다. 이제 선주민들이 주장할 수 있는 권리란 보호구역 안에서의 (독립까지는 거창하고) 자치권이자 일종의 까방권으로, 그동안 합중국 헌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다음으로 하고, 지난 세기에 위대한 족장과 대통령이 함께 서명한 계약을 충실하게 지키라고 말한다. 즉, 현대 미국의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는 그나마 변방으로 쫓긴 선주민들의 보호구역 안에서도 자신들의 이익, 돈을 위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권리를 유린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내용의 작품이 <밤의 경비원>이었다면, <라운드 하우스>는 만일 선주민에 대한 범죄가 저질러졌을 경우 범죄를 행한 장소에 따라 기소할 수도 있고, 기소도 하지 못한 채 바로 그 범인이 백주 대낮의 거리를 활보할 수 있다. 단, 범죄를 저지른 자가 선주민이 아닐 경우에 그렇다. 즉 선주민이 아닌 백인이나 유색인종, 하여간 합중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부족의 보호구역과 주state의 토지와 개인 소유지의 경계가 애매한 곳에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이 범죄를 연방법, 주법, 부족법 가운데 어떤 법률로 기소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아, 선주민 법원은 자신들의 법으로 피의자를 기소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책에서는 강간치상이 해당하는데, 이런 강력범죄의 경우에도 그런 것 같다. 우리나라 양식良識으로는 생각도 못할 일이 아메리카 선주민 보호구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출판사가 제공하는 책 정보에 의하면 <라운드 하우스>는 2009년에 퓰리처 상을 탈 뻔했던, 그러나 결국엔 미역국을 먹고 말았던 작품 <비둘기 재앙>의 후속편 격이란다. <비둘기 재앙>에서 부족판사 안톤 바질 쿠츠와 부족민 등록 전문가, 쉬운 얘기로 호적계장 제럴딘 밀크가 다 늦은 나이에 결혼해서 아들 조를 생산하는데, 이 조가 <라운드 하우스>의 화자이자 열세 살 먹은 주인공이다. 사내 나이 열셋. 캬. 어려운 나이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다 아빠가 샌드위치 했다고 먹으라고 해서 일어나다가 바지 앞섶을 책상 귀퉁이에 부딪기만 해도, 괜히 헐렁한 트렁크 팬티를 입었다가 표면에 스치기만 해도, 진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마치 한석규가 이동통신 011 광고를 했던 것처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불뚝불뚝 치솟는 리비도의 난장판. 뭐가 치솟냐고? 에이, 왜 그러셔. 다 아시면서. 하여튼 그러니까 <라운드 하우스>가 <비둘기 재앙>의 후속편인 건 맞지? 그래서 팍 정했다. 도서관에 책이 있기만 하면 다음 번 어드리크는 <비둘기 재앙>이 될 것임을.


  그럼 “라운드 하우스”가 무엇인가를 설명해야 할 터. 독후감을 올리는 짧은 공간에 자세하게 설명할 도리가 없다. 간략하게 해보자. 아메리카에서 가장 흔했던 포유류 가운데 하나가 버팔로였다. 백인들이 도착하고 서쪽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자 곧바로 선주민과 갈등을 시작했고, 선주민들을 몰아내기 위해 생각해낸 것 가운데 하나가 그들의 주 식량원인 버팔로의 씨를 말리는 거였다. (이하 죽 써내려갔다가 아무래도 너무 길어져 다 지워버렸다.) 당시의 희생과 생명의 연속을 기념하기 위하여 지은 건축물에 라운드 하우스라는 이름을 짓고, 주로 치료주술을 행하던 신성한 행사장으로 기능하게 된다.

  이곳에서 사건이 터진다. 위에서 말한 강간치상. 그리고 틀림없이 그렇게 되었겠지만 어떤 단서도 발견할 수 없는 살인과 시신 유기.

  화자 ‘나’의 가족, 쿠츠 집안의 남자들은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읽는 독자들 입장에서 보자면 잘난 척 오지게 한다고 여길 수도 있는 바, 예를 들면, 얌전히 술을 마시고, 이따금 여송연을 피우고, 점잖게 차를 몰고, 더 똑똑한 여성과 결혼하는 패기를 드러내며, 책임감 있고, 고지식하고, 심지어 무모하게 영웅적인 면모가 있다. 그러면서도 평범한 기쁨을 소중하게 여기는 가족이라고 주장하니 좀 재수가 없긴 하다. 독자의 의무로 이 주장을 믿기로 해서 평화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는 가족들. 그러나 이들 앞에 아름다운 외모의 어머니가 차를 몰고 나타났을 때, 얻어맞아 전체적으로 퉁퉁 붓고 일그러진 얼굴이었으며 터진 입술에서는 계속 피가 흘렀는데, 출혈은 입술보다 치마에 묻은 것이 더 심했다. 곧바로 신고를 했다. 도착한 경찰은 주 경찰관, 후프 댄스 타운의 지역 경찰관, 그리고 보호구역 내 부족 경찰관 빈스 매드웨신, 이렇게 세 명. 조는 조금 후에 알게 되지만, 어머니가 성폭행을 당한 곳이 라운드 하우스 근방인데, 그곳이 매우 복잡한 소유관계로 얽힌 곳이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그곳이 선주민 보호구역이 아니라면 피의자가 누구인지 알더라도 당장 기소하거나 구속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범행을 당한 장소를 규명하는 것은 폭행 및 강간치상을 당한 어머니 쪽이 밝혀야 한다. 당장은 그걸 밝히는 것보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서 응급 수술을 받는 일이었다.

  한 종족, 부족, 가족 구성원 가운데 남성이 밖에 나가서 얻어 터지고 오는 것에 비하면, 여성이 폭행을 당하고 올 때 구성원의 분노 게이지는 한 백 배 정도 더 치솟는다고 한다. 오빠 장가드는 거에 비하면 누나 시집갈 때 훨씬 더 서운한 이치하고 비슷하단다. 아들 결혼식 때 눈물 짜는 엄마 못봤다. 딸 결혼식 때는 여럿 봤다. 그래서 이 가족의 남자 구성원 아빠 안톤 바질 쿠츠와 아들 안톤 바질 쿠츠 주니어, 스스로 ‘조’라고 이름을 짓고 그렇게 불리기 바라는 아들은 반드시 범인을 찾아내 보복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직업이 부족 판사. 아무리 가족 구성원이 폭행을 당했다고 해도 양심과 법을 이탈하는 방식으로 범인을 찾아내거나 보복할 수는 없는 형편. 아들은? 아버지에 비해 자유스럽기는 하다. 하지만 그건 나중 일이고 수술을 받고 며칠만에 퇴원해 집에 돌아온 엄마는 극도의 공포 속에서 고치 속의 번데기처럼 침상을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엄마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시내 저쪽에서 주유소를 하고 있는 화이티 삼촌의 아름다운 아내, ‘나’ 조의 숙모이자 세파에 찌든 금발의 전직 스트립 댄서 소냐가 키우고 있는 사나운 개 네 마리 가운데 나이들고 사나운 암컷 불테리어, 도베르만, 셰퍼드 잡종인 펄을 데리고 온다.

  이 사건 말고 화자 ‘나’ 조의 성장기도 작품 속 한 부분을 담당한다. 열세 살 소년 앞에 풍만하고 섬세하고 단호하게 둥근 젖가슴을 지닌 대단히 매력적이며 뇌쇄적이고 사람을 애태우는 백인 숙모 소냐를 향한 동경도 재미있거니와, 조의 친구들 잭 피스, 앵거스 캐시포, 그리고 절친 ‘캐피’라고 부르는 버질 라푸르네의 귀여운 일탈도 작품의 감초로 등장한다. 물론 단지 감초 역할만 하면 내가 독후감에 소개도 안 하겠지만. 이 가운데 여름방학을 맞아 선주민 보호구역에 가톨릭 선교 겸 지원활동을 온 백인 여학생이 캐피한테 홀딱 반해버린 일도 백미다. 한 살이 많아 열네 살인 캐피는 선교활동의 마지막 날을 기념하는 파티 도중에 드디어 백인 여학생을 눕히는 데 성공했고, 한 번 가지고 만족할 수 없어 성당의 지하 교리 교육장 카펫 위에서 일을 몇 번 더 치룬다. 그러나 여학생은 떠나가고, 둘의 사랑을 더욱 순결하게 간직하고자 하는 캐피는 중동 파병과 부상 경험이 있는 젊고 강건한 신부에게 고해하기로 결정을 해 진짜 그렇게 한다. 그건 좋은데, 하필이면 밝히지 않아도 괜찮을 거 같은 밀회 장소, 성당 지하의 교리 교육장을 실토하는 바람에 크게 열을 받은 젊은 신부가 알통이 불긋불긋한 팔뚝을 드러낸 채 캐피를 패 죽이려 고해실에서 뛰쳐나온다. 신부보다 한 발 더 빨리 도망나온 캐피, 이렇게 둘이 만들어내는 백주의 도주극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이건 읽어보셔야 알 듯.


  그래서 범인은 어떻게 되느냐고? 맞다. 당신 생각처럼 된다. 스토리가 이어지면서 선주민 가족과 이 가족을 둘러싼 사람들, 심지어 부족 경찰까지 범인이 누구인지 알게 되지만, 자신이 폭행당한 장소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는, 그곳을 거짓으로 증언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리하여 가족은 피의자이며 범인이 거의 확실한 백인 남자를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하는데, 결말은 당신 생각대로 흘러가기는 해도 단지 그렇다는 것뿐이다. 어떤 의미인지는 알고자 한다면 책을 읽어보셔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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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4-08-27 0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둘기 재앙>을 먼저 읽고 읽으면 더 좋을 거 같아요. 아메리카 선주민들이 처한 현실을 주제로 하지만 팔팔한 소년들, 육체파 백인 숙모 이야기가 웃길 거 같아요. ㅎㅎ

Falstaff 2024-08-27 18:34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저도 비둘기 먼저 읽었으면 더 좋았겠다, 생각했습니다.
소년들의 리비도 이야기는 사실 많이 소개가 되어 별 거 없지만, 그래도 읽을 때마다 재미있습니다. ㅋㅋㅋㅋㅋ

그레이스 2024-08-27 1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둘기재앙을 먼저 읽는것으로!

Falstaff 2024-08-27 19:24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저도 미리 알았으면 그렇게 했을 거 같습니다. 즐독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