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센 말로센 1
다니엘 페나크 지음, 진인혜 옮김 / 책세상 / 199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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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무맹랑한 잔혹극. 며칠 전, 나는 잔혹한 것이 싫다, 라고 선언한 바 있다. 단, 처음부터 허풍의 옷을 입힌다면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메튜 본이 연출한 영화 <킹스맨>에서 엘가의 위풍당당한 행진곡에 맞춰 사분의사박자로 머리통이 펑펑 터져 날아가는 거 같은 장면. 다니엘 페차크가 쓴 말로센 시리즈도 바로 이 단서조항의 전형이다. 한 번 그대로 옮겨볼까?
 “시트로앵 15의 열쇠구멍에 열쇠를 집어넣으려고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등졌을 때, 그는 차가운 칼날의 공격에 의해 척수가 바로 다섯 번째 경부추골 윗부분까지 절단되는 것을 느꼈다. 형사는 순식간에 팔과 다리를 사용할 수 없었고, 아무런 감각도 느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뒤이어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전혀 의식이 없었다. 그는 최후의 일격을 당하고 자기 자동차위 트렁크로 옮겨졌다. 그리고 그 자동차를, 그가 결코 빌려주겠다고 동의하지 않았을 낯선 사람이 다소 난폭하게 운전하고 있었다.” (623쪽)
 위 인용만 읽어보면 왜 이게 허풍의 옷을 입혔다는 것인지 짐작하지 못할 수 있다. 그게 말로센 시리즈의 매력이다.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충만한 농담으로 꽉 차 있어서, 저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더 독한 장면을 묘사를 해 독자로 하여금 잠깐 눈살을 찌푸리게는 하지만, 곧 다시 새로운 농담과 허풍과 어이없음과, 심지어 허탈할 정도의 눈에 빤히 보이는 거짓말까지 아무런 스스럼없이 해대는 바람에 저까짓 잔혹 따위가 어찌 심각하리오, 라고 그저 한 번 픽, 웃을 수 있다. 이런 시리즈는 순서에 크게 상관없이 읽어도 괜찮다. 어차피 킬링타임 용으로 읽히는 걸 막을 수 없으니까. 페나크가 <몸의 일기> 같은 의미 있는 작품을 썼다고 해서 코믹 잔혹극을 쓰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 작가는 무죄다. 이 <말로센 말로센>이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그러면 내가 읽은 순서는 2-1-4가 되고, 마지막이자 다섯 번째 <정열의 열매들>을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에 읽을 것 같으니 세 번째 <기병총 요정들>만 남겨놓았다. 물론 안 읽어도 상관이 없다. 순서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어디서고 읽기를 끝내도 괜찮다는 말과 같다는 말. 근데 <정열의 열매들>은 몇 번 얘기한 적 있던 작가 김운비가 번역을 해서 고르지 않기가 쉽지 않았다. 그것뿐이다. 세 번째 <기병총 요정들>을 읽을까, 말까 지금 궁리중인데, 시리즈에서 딱 하나 남은 거, 올해 안에 읽을 거 같긴 하다. 그러니 이 독후감을 읽으시는 분들께선, 부담 갖지 말고 한 권 정도 시간 죽일 용도로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듯하다. 세상이 언제나 진지하고 근엄한 건 아니니까.
 언제나 사랑이 넘치는 엄마의 무릎 아래엔, 장남이자 시리즈의 주인공인 뱅자맹 말로센을 비롯해 모두 일곱 명의 형제, 자매가 산다. 사랑이 넘치는 엄마. 넘치고 넘쳐 넘실넘실 흘러 넘어 일곱 명의 형제자매들이 전부 다른 아빠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뱅자맹은 대가족의 장남으로 기꺼이 여섯 동생들을 먹여 살리고, 교육까지 시키며, 시집보내고(비록 곧바로 과부가 되긴 하지만), 심지어 자라서 과부가 될 동생 클라라가 태어날 때는 자기 손으로 받기까지 했다. 이 정도면 고금동서를 통틀어 이리 어진 장남을 찾는 것이 어찌 가당키나 할 손가. 여기까지도 아니고 간질 증세가 활발하게 나타나는 대형견 쥘리우스와 클라라의 아들 세퇴낭주에다 자기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여주인공 쥘리까지 모두 함께 산다. 이 구성원들은 시리즈가 진행하며 보태지기도 하고 죽어서 빠져나가기도 한다. 물론 일곱 형제자매와 쥘리우스는 변하지 않지만.
 엣다 모르겠다. 직구.
 이번에 읽은 <말로센 말로센>은 원래 작가가 의도한 시리즈 네 편 가운데 마지막 작품이었으며, 종결부분을 보면 충분히 그럴 자격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으로 시리즈가 마쳤으면 더 좋았지 않을까 생각하는 인종이다. 왜냐하면, 페낙 같은 유명 작가가 그럴 리는 없지만 혹시 힘이 떨어지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이번 책의 특히 앞부분은 시리즈의 다른 책과 비교해 ‘재미없었다’가 아니라 ‘덜 재미있었다’. 본문만 737쪽에 이르는 장편소설을, 비전문가인 내가 이렇게 얘기할 자격도 없고 주제 넘는 꼴이지만, 500쪽 안쪽으로 줄여놓았으면 더 긴박하고 재미있는 책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2권으로 넘어가 1권하고 비교할 수 없는 속도감으로 휙휙 넘쳐나는 노골적인 거짓말과 과장과 허풍과 장난기가 등장해야 비로소 이제야 말로센을 읽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이런 장난과 허풍을 삭제하고 책을 읽으면 이게 무슨 소설이며 산문인가, 비난할 수밖에 없다. 페낙은 소설가이면서도 소설보다 아동문학 작품이 훨씬 많은 작가다. 그래서 나는 이 시리즈를 페낙(혹은 페나크)이 어른들을 위해 철없는 이야기를 만들기로 작정을 한 결과물이라고 단정한다. 혹시 진짜 이 시리즈를 읽어보실 분을 위하여 말씀드리오니, 문학적 엄숙주의는 잠시 뒷간에 눠버리고 오심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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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의 불꽃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23
톰 울프 지음, 이은정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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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만 1,050 쪽이 넘는 장편소설. 뉴욕, 그것도 그냥 뉴욕이 아니고 센트럴 파크 전경이 발 아래로 굽이치는 파크 애비뉴 10층의 복층 아파트에 거주하는 채권 전문 엘리트 딜러 셔먼 매코이. 연 수입 백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 와스프. 키 크고 각진 넓은 턱을 갖고 있는 건장한 몸매, 예일 졸업에다가 전직 법률회사 사장을 부친으로 둔 뉴욕 시민 가운데 천분의 일에 드는 현대판 귀족. 현재 38세. 이이가 주인공이다.
 처음에 셔먼이 저지르는 짓을 보면 싱클레어 루이스가 쓴 히트작 <배빗>의 주인공 배빗 비슷한 종자가 벌이는 나약하고, 소심하고, 비겁하고, 우쭐거리는 속물의 1980년대 귀족 버전 아닌가 싶다가, 드디어 사건이 벌어지면 도처에서 쏟아지는 80년대 형型 배빗들은 물론이고, 톱클래스 와스프들의 숨 쉴 틈 없는 과시전쟁과, 불쌍한 주인공 셔먼의 몰락과정, 현대 저널리즘의 선정성, 사기꾼에 근접한 성직자, 차기 선거에 당선하기 위해 애먼 사람 하나 정도는 기꺼이 골로 보낼 수 있는 검찰 수뇌 등등, 온갖 잡놈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톰 울프가 미국인이라서 양심상, 거의 한 명 등장하는 정의의 파수꾼은 사법부 소속인 코비츠키 판사이지만 이이의 노력도 다중의 농성 앞에서 쫓기듯 도망하게 된다. 곳곳에서 이런 온갖 잡것들의 아우성으로 인해 독자는 씩, 엷은 웃음을 짓게 되지만, 전체적으로 조망하면 뉴욕,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속물성에 진저리를 칠지도 모른다.
 딸 캠벨 하나를 두고 1980년대 현재 시가 320만 달러짜리 최고급 아파트에서, 직업이 인테리어 전문가인 아내와 (아울러 하녀 두 명과) 함께 사느라 인테리어 전문가가 사들인 초호화 가구와 골동품에 둘려 살면서도 수컷의 공허를 인내하지 못하는 셔먼. 기어이 사고를 치고 만다. 상대는 남부 사투리를 쓰는 20대 후반의 미녀이자 일흔한 살의 남편과 결혼해 지금은 남편이 얼른 죽어주기만을 학수고대하는 껌벅 넘어가는 몸매의 마리아 러스킨. 이 여자의 치명적 결함이자 숙명은 남자 없이는 살 수가 없다는 거. 근데 합법적 남편 러스킨 씨가 일흔한 살의 노령으로 도무지 자신의 갈급을 해소하는데 역불급이라, 간식거리에 신경을 쓸 수밖에. 그녀의 안테나에 걸린 백인, 앵글로 색슨 출신, 장로교인, 부르주아, 여기에다가 건장하고 수려한 외모를 겸비한 셔먼이 등장했으니 어찌 이를 놓칠 수 있나. 마리아는 시내 모처에 월 332 달러를 지불하는 방을 하나 얻어 수시로 셔먼을 초대해 스스로의 목마름을 해소하고 있던 것. 물론 셔먼 한 명이라고는 믿지는 않으시겠지?
 그래, 소설에서 제일 재미있는 건 역시 불륜이다. 소설이 어떻게 시작하느냐 하면, 진짜 오랜만에 일찍 귀가한 셔먼이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한다는 핑계로, 차마 집에서는 할 수 없는 전화통화를 하기 위해 아파트를 나서다 때마침 외출에서 귀가하던 아내 주디와 마주치고 만다. 하필이면 비까지 주룩주룩 내리는 저녁과 밤 사이에 평소 즐겨가던 산책길이 아니라서 구태여 갈 필요를 느끼지 못해 네 발로 버티고 있는 개를 질질 끌며 드디어 공중전화 박스에 들어선 셔먼. 기계적으로 다이얼을 돌리자 익숙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와 셔먼은 서둘러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마리아, 나야.” 상대가 대꾸하기를, “셔먼, 거기서 뭐해.” 아이고 저런, 마리아와 접선장소인 원룸이 아니라 엉겁결에 자기 집 번호로 다이얼을 돌렸던 것. 이쯤이면 이 책 속에서 독자는 무수하게 잦은 희극적 장면을 읽게 되리라 기대해도 좋을 듯. 그래 집에 돌아와 아내 주디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빌고 또 빌어, 딸 캠벨 때문에, 사실은 연간 백만 달러의 수입을 가져오는 셔먼 같은 남자를 또 찾기 힘들 거 같아, 그냥 살아주기로 마음먹게 만들지만, 셔먼 입장에서도 이것을 기회로 마리아와 결별을 하기엔 마리아가 너무 어여쁘고 그 살이 그립던 거다.
 그리하여 어느 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마리아를 마중 나가 4만 불짜리 메르세데스에 태우고 밀회 장소로 향하던 중, 아차 하는 실수로 뉴욕의 빈민가, 흑인과 푸에르토리코 출신들만 득시글거리는 우범지대로 들어서게 된다. 길을 찾지 못해 식은땀을 흘리며 배회하던 중 장애물 때문에 정차하게 되고, 셔먼은 내려서 차를 막고 있던 타이어를 치우고 있는데 흑인 청년 둘이 “뭐 도와줄 거 있나요?” 다가온다. 범죄가 만연한 우범지역에서 고가의 메르세데스를 타고 있는 백인 남녀. 나라도 섬뜩한 기분이 들 거 같다. 그래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의 곱상하게 생긴 흑인 청년 하나와, 몸 좋은 건달 체형의 또 다른 흑인 청년 한 명이 접근하는 것을 강도행위를 저지르기 위해서라고 단정한 셔먼은, 공포에 질려 자기 앞으로 걸어오는 건장한 청년을 향해 타이어를 던져 먼저 기선을 제압하고 잠깐 혼돈의 시간이 지나갔는데, 마리아가 문을 열더니, “슈먼(남부지역에선 셔먼을 슈먼이라 발음한단다), 빨리 타,” 하고 소리치는지라 얼른 차를 타고 지상 고속도로로 접어든다. 조수석에 앉은 셔먼이 잠깐 사이 차에 뭔가가 부딪힌 듯한 소리, 약하게 퉁, 하는 느낌이 들어 영 개운하지가 않다. 그래 마리아에게 묻는다. 자기가 뭔가를 친 거 같은데, 혹시 키 큰 아이 아니었을까? 지금 경찰서에 가서 신고를 해야 하지 않을까? 마리아가 생각하기를, 셔먼이 완전 바보다. 공개적으로 자기들이 지금 불륜관계라고 떠들고 다니라고? 걱정하지 마, 운전은 내가 했고, 사고를 쳐도 내가 쳤어. 우린 막 정글에서 강도 둘을 떨치고 도망가는 길인데 왜 그걸 신고해야 해.
 책은 초장에 벌어진 사소하다면 사소한 사건 하나로 인해 발칵 뒤집어지는 뉴욕 전체를 다루고 있다. 북경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을 하면 뉴욕에 폭풍이 일어나는 것과 비슷하다. 등장인물만 간단하게 소개하자. 성공회 흑인 목사 베이컨이 사건에 개입한다. 목사라기보다 선동가이자 사기꾼 비슷한 캐릭터. 흑인 집단 거주지에서 번호판이 R로 시작하는 고급 메르세데스가 착실한 청년이자 대학진학을 계획하고 있던 램 군을 치어 코마 상태로 만든 사건을 대대적인 인종차별 행위로 확장시켜버린다. 이게 가능했던 건 정치검사로 현재 브롱스 검찰의 수장을 맡고 있는 에이브 와이스가 다음 선거에서 흑인들의 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영국인 알코올중독자이자 전형적인 옐로페이퍼인 ‘시티라이트’의 기자 피터 팰로가, 마치 검찰이 피해자가 흑인이기 때문에 사건을 묻어두려고 한다는 취지로 이 사건을 취재해 특종을 터뜨려버려, 에이브 와이스는 맹목적으로 우리의 와스프 부르주아인 셔먼 매코이를 기소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게 된다. 맥코이는 능력은 있지만 돈을 밝히는 형사법 전문 변호사 킬리언에게 사건을 위임하며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려 상대방 검사이자 에이브 와이스의 부하인 크레이머 검사와 진검승부를 벌이게 되는데, 이 난장판이 어떻게 끝날지는 절대 안 알려줌.
 굳이 말하자면 블랙 코미디. 처음엔 <배빗> 같다가, 중간에는 길게, 그냥 대중소설 같다가, 나중엔 시대를 잘 비틀어 쓴 풍자소설로 규정해야 하는 재미있는 책. 시간 하나는 참 잘 가더라. 작가 자신이 저널리스트 출신이라 그런지 현장감이 생생하다. 민주주의는 절대로 가장 선한 정치제도가 아니다. 아직 철학자, 정치가들이 이보다 더 나은 정치제도를 찾아내지 못해 쓰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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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 시선 - 초판본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천상병 지음, 박승희 엮음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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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문학을 전공했던 후배가 천상병과 박재삼을 매우 좋아했었다. 후배는 내가 졸업을 하고 직장생활을 막 시작할 무렵 한강물에 몸을 던져 짧은 생을 마감했는데 마지막 즈음엔 ‘퇴행’이란 정신질환에 시달려 만날 동네 꼬마 아이들하고 같이 뛰놀며 놀았다고 들었다. 자신의 기질에 퇴행 비슷한 것이 들어 있어서 천상병과 박재삼을 좋아했는지, 아니면 거꾸로 천상병과 박재삼을 너무 좋아해 퇴행으로 발전했는지 구분이 가지 않아서, 살며 이때까지 한 편의 천상병과 박재삼도 읽지 않았다. 그러다 이제 읽는다.
 첫 번째 시, <편지>.



 편지



1

 아버지 어머니, 어려서 간 내 다정한 조카 영준이도, 하늘나무 아래서 평안하시겠지요. 그새 詩人 세 분이 그 동네로 갔읍니다. 수소문해 주십시오. 이름은 趙芝薰, 金洙暎, 崔啓洛입니다. 만나서 못난 아들의 뜨거운 인사를 대신해 주십시오. 살아서 더없는 덕과 뜻을 저에게 주었읍니다. 그리고 자주 사귀세요. 그 세 분만은 저를 욕하진 않을 겝니다. 내내 안녕하십시오.


2

 아침 햇빛보다
 더 맑았고


 全 世界보다
 더 복잡했고


 어둠보다
 더 괴로왔던 사나이들,


 그들은
 이미 가고 없다.

  《현대문학》 1971. 8 (3쪽. 전문)



 왜 이 시를 읽으며 울컥, 했을까. 나도 모르겠다. 나는 이미 죽은 부모를 회상하며 감성팔이 하는 걸 무척 싫어한다. 그러니 돌아가 하늘나무 아래 이미 터를 잡은 부모에게 쓴 편지라서 그런 건 아닐 거다. 조지훈, 김수영, 최계락. 이 세 명의 시인, 살면서 천상병에게 덕과 뜻, 즉 격려와 기회를 주고 자신을 알아봐준 사람들을 보낸 아쉬움을, 자신을 욕하지 않을 세 시인을 동시에 잃은 상실을 이리 노래한 것 아니었을까 싶어서였을 것이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 시인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자신을 욕하고, 멸시하고, 폭행하려고 할 것 같은 세상을 향한 두려움이 가득 배어 있는 시라서 나로 하여금 울컥하게 만든 것 같다.
 사람은 다 혼자다. 시집 전편에 걸쳐 나오듯 천상병은 1967년 동백림사건 이후 늘 가난과 병마와 실업에 시달려왔다. 시 <광화문 근처의 행복>에서 보듯 다정한 나의 친구 소설가 오상원(들)에게 돈을 얻거나 술을 얻지만, 만성적인 이런 행동도 시인 스스로에겐 즐겁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괜히 시인이라 명왕성 근방에서 방금 지구별에 떨어진 외계인이라 생각하지 말 것. 시인이라서 오히려 더 자존감에 심한 상처를 냈을 수도 있으니. 이 와중에 그래도 자신을 귀찮게 여기거나 욕하지 않을 딱 세 명의 시인들을 보내는 마음이었다면, 오죽이나 황망했을까.
 이 시선집엔 작고한 인물에 대한 추모가 많은 편이다. <편지>에서 조지훈, 김수영, 최계락을 추모했고, 이외에도 <金冠植의 入棺>, <哭 申東曄>, <金宗三 씨 가시다>, <哭 鄭龍海>에서 각 시인, 문화인을 추모한다. 그러나 역시 시집을 관통해서 흐르는 정서는 가난이다. 가난은 천상병의 트레이드 마크이고, 본인 말대로 그의 직업이자, 밥벌이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난을 노래할지언정 징징거리지 않는다. 나는 징징거리지 않는 가난이 좋다. 징징거리지 않는 병과 고통의 노래가 훨씬 더 아름답다. 내가 <호마이카 상>을 쓴 김태정을 애정하는 이유다.



 나의 가난은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 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 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왔음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시인》, 1970. 7  (8쪽. 전문)


 가난이 직업이다. 독자가 시인을 이해하기론, 가난한 상태를 시로 만들어 잡지 《시인》에 기고해 원고료를 버는 직업에 종사한다. 그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 그저 커피 한 잔에 담배 한 갑도 아니고 갑에 두둑이 든 상태면 좋고, 거기다가 해장을 했는데도 집에 갈 버스 삯이 남았으니, 함포고복이면 그만이란 태평가를 노래하다가, 이리 한 평생 지내 돌아보니 세상 별 거 있나, 괴롭지 않으면 그게 인생인가, 하여, 평생 예금통장을 만들 필요 없는 햇빛만 잔뜩 받았어도 그런대로 산 인생, 이젠 여기에 잠들었노라, 새겨주기 바란단다.
 천상병의 시를 읽다보면 나이 50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노인 행세를 하기 시작한다. 1930년 생. 쉰 살이면 1980년. 노년에 들면서 이제 주위의 잔잔한 일상들이 시가 되는 시기를 맞는다. 많은 노 시인들 역시 시의 주제가 일상 또는 회상으로 바뀌는 걸 쉽게 발견할 수 있듯이. 천상병은 50년대부터 첫 시 <편지>의 세 번째 등장하는 시인 최계락과 함께 당시의 신성rising star으로 거론되었다고 하는데, 최계락은 시와 더불어 동시, 동화작가로 이름을 낸 이다. 천상병 역시 친 자식 없이 나이가 들며 점점 아이들과 유대가 깊어지고 있는 걸 볼 수 있기도 하다. 물론 이런 건 천상병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가 알고 있는 기초상식이지만 이 시선집을 이야기하면서 빼놓고 가면 안 되겠기에 하는 말이다.
 하지만 천상병, 하면 제일 앞에 놓아야 할 작품은 역시 <귀천>이다. 독후감을 쓰면서 <귀천>을 인용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단연코 <천상병 시선>에서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지만, 그런 이유에서 이 시를 옮겨놓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으려 했다. 시집에도 스포일러가 있다면, 해당 시집의 가장 대표적인 시를 옮겨놓는 행위가 스포일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나, 이제 <귀천>은 너무 널리 알려져 굳이 숨길 이유가 되지 않는다. 라고 쓴 후에 나도 대표작 <귀천>을 배껴 놓으려 했다가, 아무래도 양심상 그렇게는 못하겠다. 대신 대한민국 국가대표 애주가로 명성을 높인 천상병의 다른 시 하나를 소개하는 것으로 독후감을 마감하자.



 술


 술 없이는 나의 생을 생각 못한다.
 이제 막걸리 왕대포집에서
 한잔하는 걸 영광으로 생각한다.


 젊은 날에는 취하게 마셨지만,
 오십이 된 지금에는
 마시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아내는 이 한잔씩에도 불만이지만
 마시는 것이 이렇게 좋은 줄을
 어떻게 설명하란 말인가?  (46쪽.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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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7-17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야 천상병 시를 읽으신다는 그 사연에 울컥합니다...

Falstaff 2019-07-17 10:59   좋아요 0 | URL
다 인생이지요.
 
스포츠 라이터
리처드 포드 지음, 박영원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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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가 쓴 <독립기념일>을 재미있게 읽고 당장 검색해 찾아 읽은 작품. 만일 <독립기념일>을 읽지 않은 상태였다면 이 책에 깊이 빠질 수 있었을 것이지만, <독립기념일>의 여운이 아직도 잔뜩 남아있는 나는 아쉽게도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이제 다음 주에 서른아홉 살이 되는 ‘나’ 프랭크. 결혼해서 삼남매를 키우다가 첫째 랠프를 잃는 불행을 당한다. 프랭크는 랠프가 결국 숨을 거두자 그길로 할리데이비슨을 사서 무작정 서쪽으로 달리다가 대륙의 중간에도 못 간 상태에서 내가 지금 무슨 지랄인가 싶어 횡단을 포기하고 돌아온 적이 있는 그냥 평범한 중산층 남자. 미시간 대학을 졸업하고 소설을 써 약간의 인기를 누리기도 했지만 이제 더 이상은 소설을 쓰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스포츠 잡지사의 기자로 직업을 바꾸었다. 랠프가 죽고, 모터사이클을 타고 방랑을 할 뻔하다가 말고, 스포츠 기자가 되고, 잠깐 휴직을 한 상태에서 한 학기 동안 이웃도시에 가 대학 강사로 있으며 몇 번의 연애사건을 겪고, 그러다가 우연히 자기와 아무 연애 사실이 없는 여자의 두툼한 편지를, 암만해도 자신의 여성편력을 눈치 채고 있던 것 같은 아내가 발견하게 되면서 이혼을 당해, 아들 폴, 딸 클래리사의 양육권도 아내 앤에게 빼앗겼지만, 아직도 아내, 아니지, 이젠 ‘전처’라고 해야 하지, 전처와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 사실 부부가 결혼하기보다 더 힘든 게 이혼하는 거고, 이혼보다 더 힘든 게 이혼한 다음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거라고 들었다. 다행스럽게 난 이혼의 경험이 없어 그냥 그런가보다 하지만, 주위에 이혼한 친구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래봤자 딱 한 명이다. 내 주위엔 이상할 정도로 이혼한 커플이 없다.) 사실인 모양이다. ‘나’ 프랭크 베스컴은 그 어렵다고 하는 걸 해내고 있다. 뭐라? 그게 자랑이라고? 하긴, 그리 말하신다면 할 말 없긴 하다.
 근데, 이혼한 다음이라도 전처 또는 전남편이 재혼하는 꼴을 눈 뜨고 못 보는 모양이다. 이혼에 관한 한 복잡하고 오랜 전통을 가진 미국사람들도. 우리나라 사람은 확실하게 그렇단다. 소설 속에서도 ‘나’와 전처가 가장 궁금해 하는 건, 상대가 혹시 재혼하려하지 않을까, 하는 것. ‘나’가 지금 비록 어여쁘고 몸매 좋은 젊은 이혼녀 비키와 결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면서도 비키가 요구만 한다면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결혼할 용의가 있는 상태이긴 하지만, 돈 많은 내과의사가 내 ‘전처’와 아이들을 부양하며 데리고 사는 꼴은 생각하기도 싫다. 특히 남성들의 경우가 더 심한 모양인데, 비슷한 이유 때문에, 또는 그렇기 때문에 이혼 후유증을 여성보다 훨씬 심하게 앓는 것 같다. 작품 속에도 프랭크 베스컴 역시, 겉으로 보기엔 그래도 혼자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이혼 후의 고독과 상실감을 견디기 위해 다섯 명의 이혼남들로 구성된 모임에 참가하고 있다.
 그러니까 ‘나’ 프랭크 베스컴의 인간관계는, 전처와 아이들, 애인 비키와 비키의 가족, 스포츠 잡지사와 직원과 인터뷰이들, 이혼남성 모임 회원들, 뉴저지 조용한 마을로 몇 년 후 <독립기념일>에서 부동산 중개인으로 변신한 프랭크가 눈부시게 활약할 중산층 도시 ‘하담’ 마을의 이웃 정도다. 책은 ‘나’가 위에 열거한 사람들과 목요일부터 부활절인 일요일까지 나흘간 벌어지는 일을 순차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물론 순차적이라 해도 특정 사건, 행위마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그리고 당연하게 현재의 인물이 있기 위해 과거사가 존재할 터이라 몇 명 되지 않는 등장인물, 얼마 되지 않는 시간적 무대라 해도 너끈하게 500쪽을 넘기는 분량이 만들어진다. 이런 경우 독자는 흔히 작가를 향해, 거 참 말 많다, 라고 하곤 하는데, 나도 이 책을 읽으며 몇 번이나, 거 참 말 많다, 하면서 투덜거렸다. 왜냐하면 이 책의 후속편이라고도 할 수 있을 <독립기념일>을 읽고 불과 넉 달 반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넉 달 전엔 4XL 사이즈의 콘돔을 훔치다가 발각이 나 베트남 출신 여성 경비원과 몸싸움을 벌이다 경비원의 얼굴을 걷어차는 바람에 가볍지 않은 죄로 법정에 출두할 예정이었던 폴이 이 책에선 먼저 죽어버린 형 랠프의 영혼에게 안부를 물어달라고 비둘기를 날려 보내는 열 살도 되지 않은 꼬맹이로 등장하니, 같은 역자가 번역해 비슷한 한국어 문장을 읽으며 솔직히 뭐 새로운 것이 있었겠어? 이미 결론을 다 알고 있는 터에 말이지. 그래서, 리처드 포드의 경우에 국한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이런 연작 비슷한 순문학 작품은 시간적 순서대로 읽어야 더 좋을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책마다 새로운 사건이 펑펑 터지는 추리소설이라면 전적으로 스토리 위주로 읽어야 하니 순서에 의미를 둘 필요가 없지만(요새 맛들인 다니엘 페나크의 말로센 시리즈나, 전에 읽었던 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의 세 연작 같은 것들),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철저하게 심리소설인 <스포츠 라이터>의 경우는 거꾸로 읽을 경우, 아니, 역순으로 읽었기 때문에 재미가 반감된 거 아닌가 싶다. 나는 이미 주인공 프랭크 베스컴이 어떤 심리를 가지고 사는 인간인줄 알며 아직까지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새로운 능력,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부동산을 구입하게 만드는 화술을 갖고 있다는 것도 알고, ‘전처’라고만 나오는 여자의 이름이 ‘앤’이란 것도, 결코 키만 큰 유부남 내과의사와 결혼하지도 않을 거란 것도 아는데, 뭐가 더 궁금한 게 있었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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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야의 아파트.질주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26
미하일 불가코프 지음, 김혜란 옮김 / 책세상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1928년, 소비에트 연방에서 아흐마토바, 마야코프스키, 만델시탐, 불가코프 등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 작가 동맹을 결성해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포함하지 않은 작품들을 배격하기로 결정을 한다. 시절은 바야흐로 1918년 혁명 이후 긴 내전을 겪고 이제 전 국토에서 본격적으로 공산주의 정신에 입각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이루기 시작할 때였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에이모 토울스가 쓴 <모스크바의 신사>에서 상세하게 나와 있듯이 아흐마토바는 극소량의 작품만 생산하게 되고, 불가코프의 모든 작품은 공연 및 출판 금지의 금줄에 묶이게 되며, 마야코프스키는 자신의 심장에 총알을 관통시키는데 성공한다. 1922년에 벌써 소비에트 서기장의 자리에 올라선 스탈린은 정치, 경제, 문화, 사회는 물론이고 예술적 가치도 자기 마음대로 재단해버리기 시작하고, 자신의 뜻에 조금이라도 반대하는 인물, 집단에 대하여는 가차 없는 고문과 처형으로 답례한다. 카자크 백군의 저항을 주제로 대하소설 <고요한 돈강>을 쓴 미하일 숄로호프에겐 영광을 주면서도, 비슷한 불가코프의 희곡 <질주>는 백군과 부르주아 출신들의 비겁하고 매국적인 행위를 비꼰 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가코프 생전에 공연을 금지해버린다. 소비에트 연방이란 거대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는 그토록 넓은 대지를 자기 마음대로 통치했었다.
 불행한 시대를 산 많은 작가들 가운데 불가코프가 있다고 해도 맞는 말일 것이다. 1928년 러시아 프롤레타리아 작가 동맹을 결성한 바로 다음 해인 1929년 봄부터 그의 작품은 절대로 무대에서 공연할 수 없었고, 출판할 수 없었다. 작가에게 자신의 결과물을 남들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건 가수의 성대를 절단하는 것과 유사하다. 불가코프는 자신이 얼마나 절망하고 있는지 밝히면서 스탈린에게 망명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호소했지만 그런 청탁을 받아줄 스탈린이 아니었다. 그래 그는 절대로 출판되어 책으로 만들어질 수 없는 작품을 고독 속에서 끊임없이 써가며 조금씩 죽어갔다.
 <조야의 아파트>는 혁명과 내전의 과정에서 국토가 황폐해져 많은 수의 유민들이 대도시로 흘러들어와 도시마다 극도의 주택난이 벌어진 상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원래부터 불가코프는 희극 작품을 청탁받아 자신의 데뷔작 비슷한 <백위군>에서 내용을 떼 내 희곡 <조야의 아파트>를 썼다고 한다. 직접 읽어보시면 즉각 알겠지만 혁명 후 모스크바의 한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거짓과 부패와 향락과 새로운 계급의 발생에 관해 신랄한 풍자를 던지고 있다. 초연 당시에 반혁명, 반 프롤레타리아 적인 작품이라 비난을 받았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스탈린 치하의 공인公人이었던 비평가들 또한 이것과 달리 어떻게 자신의 진짜 생각을 표현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인민들은 다르다. 통치자와 통치권에 든 자들과 비평가들과는 달리 인민들은 직접 공연을 보고 그것이 자신들이 처한 상황의 신랄한 풍자라는 걸 확인하고 재미있어 하고, 즐거워하다가 입소문을 만들어내 장안의 인기 작품으로 격상시킨다. 이 현상에 불안을 느낀, 또는 불만을 가진 통치자들은 곧바로 모든 불가코프를 금지하기로 결정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찾아낸다.
 <조야의 아파트>나 <질주>나 지금 읽어보면 그리 재미있지도 않고, 더구나 새롭지도 않고, 충격적이지도 않고, 특별한 메시지를 전하지도 않고, 몰랐던 것을 가르쳐주지도 않는다. 나는 불가코프가 쓴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진짜 재미있게 읽었다. <거장과 마르가리타> 다음부터 불가코프의 작품이 눈에 띄면 빠짐없이 읽어치우는데, 아쉽게도 읽을 때마다 기대가 너무 컸나, 하는 심정을 숨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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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denSlumber 2019-07-16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임팩트가 너무 커서인지 다른 작품들은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그래도 <젊은 의사의 수기>는 볼만 하더군요.

Falstaff 2019-07-16 08:49   좋아요 0 | URL
으.... 그 작품은 너무 끔찍하지 않나요? 전 읽으면서 고민 많이 했습니다. 돈주고 산 책 아니었으면 끝까지 안 읽었을 거 같았어요. SF 엽기 잔혹 호러 쇼.
완전히 개인 취향입니다. ㅎㅎㅎ 제가 새가슴이라서요. ^^;;;

GoldenSlumber 2019-07-16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가코프가 의사였다보니 그런 광경도 무덤덤했겠지만 일반인은 보기 힘들죠^^;; 그래도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환자가 x될 것 같은 상황에서 처음 든 생각이 ‘방에 가서 총으로 자살해야겠다’였다든지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