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낯섦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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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덟 번째 읽은 오르한 파묵의 장편소설. 표지부터 본문까지만 635쪽. 그런데 주목할 것은 민음사답지 않게 한 페이지 당 37자, 28행의 촘촘한, 즉 경제적인 편집을 단행해서 우리가 흔히 읽는 30자 전후, 23행의 책들과 비교해 진도가 무지하게 안 나가는 것처럼 느낀다. 난 이런 책 무지 좋아한다. 글씨가 빽빽하게 차 있는 거.
 1970년대 초반까지도 내가 살던 서울 성북구의 어느 골목에선 날씨가 쌀쌀한 긴 겨울밤이면 “메밀묵 사려어어어어, 찹쌀 떠억!”하는 호객소리가 자주 들리곤 했다. 이 외침은 사실 악보로 표시해놓아야 진짜 맛을 알 텐데, ‘메밀묵’은 4분 음표로 미솔솔, ‘사려어어어어’는 잇단음표로 4분 음표 솔솔(사려)로 시작해서 절묘한 카덴차가 잇단음표로 (높은 솔 너머까지) 한 마디쯤 이어지고 다시 낮게 ‘찹쌀’ 4분 음표 미파, ‘떡’ 낮은 솔 한 마디 정도로 짧지만 굉장한 코다로 마감했다. 고 기억한다. 어린 나는 당연히 단 찹쌀떡을 하나 먹었으면 했으나, 할머니는 노상 술을 좋아하시던 이주사를 위해 메밀묵만 한두 모 사서 김치 송송 썰어 넣고 맛있게 양념해 술상을 보셨던 건데,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생각만 했는데도 불구하고 옛 입맛이 떠올라 입에 침이 다 고인다. 당시 성북구라는 동네는, 물론 아닌 곳도 있었지만 주로 농촌붕괴로 인한 도시화 대열에 휩쓸린 사람들이 많이 살아 불법 주택이 판을 치는 가난한 동네로 치부되고는 했었다. 그럴 만한 것이 당시 ‘국민학교’ 한 학급에 약 80명을 때려 넣고도 오전, 오후반으로 나누어 가르쳤으니 전봇대마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표어가 나붙은 것도 이해는 간다. 둘째 아들 부부였던 이주사와 정여사는 긴 대가족 생활에서 60년대 말에 독립해 나오며 상대적으로 집값이 싼 성북구로 이사를 했다. 왜 이렇게 서론이 긴가 하면, 이 책의 주인공 메블루트가 중앙 아나톨리아 지역의 시골에서 열두 살 청운의 꿈을 안고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로 옮겨오는 시기가 1969년이라 시기도 비슷하고 도시화 현상도 비슷하기 때문이며, 메블루트의 평생에 걸쳐 자기 말에 의하면 운명의 날이 올 때까지 먹고 살기로 결정한 직업이 추운 시기의 밤에, 기장을 발효시켜 걸쭉하고 좋은 향기가 나며 짙은 노란색에 약간의 알코올기가 있는 전통 음료인 ‘보자’ 행상이었으며, 어둔 밤에 보자 장수가 지나간다는 걸 알리기 위해 “보오자아아”하고 청승스런 목소리로 외치고 다녔다고 하기 때문이다. 어째 좀 그럴듯하지?
 예전 터키엔 일반 백성들은 성姓이 없었다. 파묵의 책에 보면 자주 나온다. 케말 파샤가 등장한 다음에 가족들은 무조건 성을 정해야 한다고 법령을 내려서 이제 하나 만들어보려는 형제가 있었다. 형이 먼저, ‘악타쉬’ 즉 ‘흰돌’로 정했다. 그럼 아우도 당연히 악타쉬가 되어야 하는 것이었지만, 아우가 성격은 착한데 이상하게 고집을 부려 자기는 ‘카라타쉬’ 즉 ‘검은 돌’로 해야겠다고 우겨서 결국 형제가 다른 성을 갖게 된다. 이 형제들은 1963년에 아나톨리아에서 이스탄불로 옮겨와 요구르트 장수를 했는데, 형인 하산은 가솔들을 다 이끌고 이주했고, 동생 무스타파는 자신만 와서 번 돈의 일부를 고향에 보내다가 겨우 아들 메블루트 한 명만 이스탄불로 불렀다.
 또 한 가족이 있다. 남자 이름이 좀 길다. 보이누에으리 압두르라흐만 에펜디. 여기서 ‘에펜디’는 나이든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로 굳이 우리말로 하면 ‘어른’ 정도랄까. 압두르라흐만은 1933년 생. 아내 페브지예와의 사이에 딸 셋을 두고 살다가 드디어 마지막에 아들을 하나 낳았으나, 출산 중에 아내와 아들이 동시에 죽고 만다. 이이는 젊어서 이스탄불에 가 요구르트 행상을 하다가 행상지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어깨와 목뼈에 이상이 생기는 바람에 다시 시골로 내려간 인물로, 다행이 아내가 남긴 딸 셋이 전부 빼어난 인물을 가진지라 딸을 결혼시키면서 두둑하게 대가를 받아 남은 생을 좀 편하게 지내는 걸 목표로 하고 있었다. 딸의 이름이 순서대로 웨디하, 라이하, 사미하. 이 가운데 막내 사미하야말로 절세의 미인이라 압두르라흐만이 내심 기대하는 바가 컸다.
 같은 이슬람을 믿어도, 같은 페르시아 권임에도, 전에 독후감을 쓴 파리누쉬 사니이, <나의 몫>을 보면 이란에서는 주로 사촌 간에 혼인을 했던 반면 터키에서는 한 집안의 형제와 다른 한 집안 자매들이 얽히고설킨 혼인관계를 갖기도 하나보다. 저 위에 흑돌 백돌 집안에 사촌 형제가 나이 순서대로 코르쿠트, 쉴레이만, (주인공)메블루트가 있었다. 코르쿠트가 일단 딸만 셋 있는 압두르라흐만 씨의 장녀 웨디하한테 홀딱 반해 적지 않은 보상을 주고 결혼을 한 다음에, 둘째 쉴레이만은 막내 사미하한테 눈독을 들이고, 사촌동생 메블루트는 둘째 라이하를 잊지 못해 무려 삼 년 동안 줄기차게 수백 통의 연애편지를 보낸 끝에, 어느 날 밤, 쉴레이만의 도움을 받아 드디어 시골에서 라이하와 야반도주하는데 성공해 이스탄불에 도착한다. 이스탄불에서 있었던 두 집안의 장남, 장녀인 코르쿠트와 웨디하의 결혼식 때 반짝반짝 빛나는 눈길로 (당시 기준으론 아주 맹랑하게도 여자가 감히 남자인) 메블루트를 바라보던 아름다운 아가씨의 눈에 홀딱 반해, 실제로 본 건 그때 딱 한 번, 그중에서도 눈 한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피가 끓는 청년시대와 군인시절 통틀어 수백 통의 연애편지를, 편지 교본이나 문장 작법 등을 감안해 애간장을 녹이는 표현으로 라이하에게 보낸 바 있으니, 편지를 받은 라이하 역시 사랑을 꼭 말로 해야 해, 라며 메블루트를 향한 무한정의 사랑을 키워왔던 것. 여기에 이미 흰돌 집안의 며느리가 된 장녀 웨디하가 가운데서 바람을 잡아 어느 달 없는 비 오는 밤, 쉴레이만의 닷지 트럭을 효과적으로 사용해 기어이 라이하를 데려오는 데 성공한 것. 이것도 약탈혼의 한 방법이지만 등장인물들이 비교적 순한 회교도들이라 결국 장인과 사위는 금방 화해를 하는데, 문제는, 그것도 아주 큰 문제는, 애초 웨디하의 결혼식 때 자기가 반한 아가씨가 라이하가 아닌 사미하였던 것. 사미하의 이름을 라이하라고 잘못 알아 죽자사자 라이하에게만 달달한 연애편지를 썼던 건데, 그건 애초 쉴레이만이 사미아한테 눈독을 들여 메블루트에게 라이하라고 틀린 이름을 일러주어서 였던 거디었던 거디었다.
 그래 이 책에선 크게 두 가지를 다루고 있다. (중요도 순서가 아닌) 첫 번째가 세 아들과 세 딸 사이의 얽히고설킨 연애관계이며 두 번째가 개발도상 국가 특유의 도시 집중화에 따라 이스탄불에 유입된 도시빈민들이 몇 십 년에 걸쳐 도시에 적응을 하면서도 옛 기억을 잊지 않는 모습. 오르한 파묵의 소설(그래봐야 이번이 여덟 번째 책이니 그리 신빙성이 있는 얘기는 아니지만) 가운데 시골에서 유입된 도시빈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첫 또는 유일한 이야기 아닌가 싶다. 파묵 스스로가 이스탄불 부르주아 대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나 이 책을 쓰는 것이 그리 쉬운 작업은 아니었을 터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도시빈민의 가난과 이에 따르는 어려움의 묘사가 별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일을 하다 곤경에 처하면 손쉽게 사촌이나 친구의 도움을 받아 다음의 곤경이 닥칠 때까지 그냥저냥 살 수 있게 하는 장치가 과하게 낙관적이다. 책의 뒷날개와 뒤표지에는 무수한 찬사가 씌어 있지만 두 가족의 형제 자매간 사랑 이야기에 비하여 험난하고 때론 잔혹했을 도시빈민의 정착 기록은 실감이 안 난다. 왜 갑자기, 혹은 난데없이 시선을 자기 체험의 경험이 없는 도시빈민으로 돌렸을까. 오히려 작가의 부르주아 성향 때문에 무수하게 실패를 하면서도 여기저기 도움을 받아 순탄하게 이스탄불의 중산층으로 상승하는 마음씨 착하고, 모진 말 못하고, 동안을 가진 우리의 주인공 메블루트를 결국 빈민층에서 구제해주지 않을 수 없었던 거 아니었을까. 파묵 스스로가 도시빈민들에 대한 직접적 이해가 부족한 건 사실일 터이니.
 이상하다. 파묵의 소설을 읽으면 참 잘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드물지 않게 만족하지 못하고 뭔가 께름칙한 뒷맛이 남는 작품들이 있다. 그러면서도 쇼핑 중에 이이의 이름을 단 책이 눈에 띄면 또 선택해서 읽은 다음에 가끔 만족하고 자주 후회하는 거. 정말 이상하지? 나하고 궁합이 좀 덜 맞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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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9-24 1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파묵의 작품은 사람으로 치면 그렇더라고요. 착하고 반듯하고 똑똑한 거 같고, 잘생기고(또는 예쁜데) 전혀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그런 사람. ㅋㅋㅋㅋㅋㅋ 근데 그런 이유 때문에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아예 안 들을 수는 없는..... 그래서 듣긴 듣지만 왠지 그 말이 오래 기억에 남지는 않는 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책도 전 읽을 때는 흥미진진하게 잘 읽었는데 벌써 기억 희미///// 책도 바로 팔았더라고요. 하하하.

Falstaff 2019-09-24 10:10   좋아요 0 | URL
잠자냥 님 표현이 아주 딱입니다.
책 고르다가 이이의 작품이 눈에 띄면, 안 고르면 안 될 거 같은 느낌이 매번 들어요. ㅎㅎㅎㅎ

2019-09-24 1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24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