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NW
제이디 스미스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스미스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자메이카계 런던시민 가운데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지식계층이다. 물론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온 책에 국한하면 그렇다. 자메이카에는 세 인종이 산다. 소수의 스페인계 백인, 극소수의 원주민, 그리고 대다수의 아프리카계. 그것도 원래 키 크고 건장한 서아프리카 흑인들 가운데서도 노예선을 타고 대서양을 건너올 동안 생존할 수 있었던 우량한 DNA의 아름다운 육체를 지닌 인종들. 흑인들은 백인이 그 많던 원주민을 깡그리 노예 노동에 동원해 거의 다 학살을 한 다음 정신 차려 세 본 후 노동력이 없어져 버렸다는 것을 깨닫고 아프리카에서 수입한 노동자원이었다. 19세기에 노예해방이 있었고, 20세기 들어 점점 개화한 흑인들은 더 나은 돈벌이를 위해 북아메리카와 유럽으로 떠나 그곳에 자리를 잡았는데, 작가 제이디 스미스의 어머니 이본 베일리도 아프리카계 자메이카 사람 출신의 영국 이민 여성이다. 이이가 삼십 년 연상의 영국 남자 하비 스미스 씨와 결혼하여 제이디 스미스를 낳았으니 그가 주요 등장인물로 자메이카 이민자들을 선택한 것은 당연을 넘어선 필연일 것이다. 어차피 소설이 작가적 삶의 기록을 표백할 수는 없을 터이니.

  스미스가 런던의 북서쪽에 있는 동네 윌즈던Willsden 태생이다. 이 작품의 제목과 같이 런던의 북서쪽NW에 있는 지역 공립학교와 종합 중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리하여 책의 첫 장면에서 윌즈던을 설명하고 있으니, 유럽식 거리, 사람들은 맨발로 다니고 유행처럼 야외(집 밖)에서 식사하기 시작하고, 걸어놓은 해먹에 여자가 누워있고는 한단다. 장소만 런던이지, 애초에 ’영국 런던‘ 안의 도시일지언정 그것을 굳이 ’유럽식‘이라 칭하고, 맨발의 주민들, 야외 식사와 걸어놓은 해먹 등을 들먹여 작가의 정체성을 조금 알고 있는 독자는 혹시 중남미의 한 섬을 떠올리게 만든다. 물론 독자 역시 유럽인, 런던 사람이라면 애초에 런던의 북서쪽의 자메이카 사람들 집단촌을 생각하겠지만. 좋다, 어차피 번역문학을 읽으려면 이 정도 핸디캡이야  어쩔 수 없겠지. 이 윌즈던의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지역인 콜드웰 부근에도 공립 중등학교가 있어 스미스는 이를 ’브레이턴‘이라 작명을 했다. 그리고 이미 마흔 살을 내일모레 하는 브레이턴 출신 두 여자, 백인 리아 한월과 아프리카계 자메이카 이민 가족 출신 내털리 블레이크, 그리고 두 남자, 필릭스 로이드와 네이선 보글을 추적한다. 두 여자는 주연, 두 남자는 조연.

  리아와 내털리. 잠깐. 내털리는 Nathalie일 테고 흔히 우리말로 ’나탈리‘ 정도로 표기하지 않을까 싶다. 어쩐지 내털리, 라고 하니 버터 냄새가 좀 심한 것 같기도 하고, ’내 털이‘ 뭐 어쨌는데 싶기도 하다. 나중에 내털리가 낳은 딸 이름이 또 멋지다. ’네이오미‘다. Naomi, 흔히 ’나오미‘로 쓰는 걸 멋을 부려 네이오미라 하니 또 곡 ’네 어미‘라는 거 같아 좀 어색하다. 그냥 넘어가자. 유색인종들의 집단거주지에 있는 학교니까 당연히 동네 유색인들이 대부분이고, 백인에 비하면 가난한 런던의 유색인종들도 우리나라 입시생들과 마찬가지로 공부 잘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이중 두각을 나타낸 학생이 바로 내털리다. 바로 다음에 남자애 로드니 뱅크스가 있었으나 앞부분에 잠깐 나왔다가 내털리의 첫 경험 상대가 되고는 사라지고, 대학입학자격 시험에 간당간당한 수준으로 백인 여학생이자 내털리의 절친 리아가 있다. 내털리가 열여섯 살 생일을 맞아 익명의 친구로부터 맹랑한 선물을 받았는데 축하 카드에 반드시 혼자 있을 때 포장을 열어보라고 쓰여 있다. 그래 화장실에서 뜯어보니 형광색 바이브레이터였고, 분명 리아가 보낸 것이라 믿으며 두 주일 동안 진정한 오르가슴이 무엇인지 난생처음으로 깨달은 바 있으나, 엄마한테 들켜서 그날로 리아와 몇 년에 걸친 절교 상태로 접어들어야 했다.

  둘은 케임브리지에 입학한다. 우리나라였으면 동네에 현수막 붙였을지도 모른다. 내털리는 법학을 공부해서 변호사가 되고, 이탈리아 출신으로 경영학과에 다니는 법학 청강생 프랭크(프란체스코) 드 안젤리스와 눈이 맞아 결혼해 남매를 둔 성공한 유색인 법정 변호사라는 타이틀의 하이클래스 유색인으로 등극한다.

  또 한 명의 주인공 백인 리아 한월은 대학에 다니면서 조금씩 변모해 펑크나 히피 스타일로 마리화나와 코카인 맛을 알기도 했다가 점점 자기 자리를 찾아 대학 졸업 후에 비영리단체를 돕는 시청 기구에서 사무를 보고 있다. 사무실에서 유일한 대졸자로 애초부터 팀장 아디나 조지가 중요한 업무를 주지 않을 것임을 통보받은 적도 있다. 왜냐하면, 거창한 학력 때문에 한심한 직장에서 곧 이직할 것이 분명하니까. 그러나 6년이 지나자 이젠 유일한 대졸자라는 타이틀은 아무 소용이 없어지고, 업무를 위해 자신의 학력도 전혀 쓸모 없다는 걸 알고 이젠 웬만큼 터를 잡은 수준.

  리아는 수십 명의 애인을 거쳐 서른 살이 훨씬 넘어 서아프리카계다운 멋진 골격을 지닌 마르세유 출신의 프랑스 남자이자 헤어디자이너 미셸과 결혼해 아직 아이를 갖지 않았다. 일찍이 생명체의 자기복제에 관심이 별로 없어서 열아홉 살 때 첫 번째 중절 수술을 경험한 바 있다. 숨을 들이마시고, 열부터 거꾸로 세세요. 열, 아홉, 여덟…,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지난 두 시간 반. 이마에 와 닿은 남자의 입술. 이어서 스물세 살 때 또 한 번. 그리하여 어느 한 시절, 여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얻는 이점 중 하나가 둘 다 의무를 뛰어넘어 일을 벌일 수 있다는 걸 알기도 했다. 반면에 미셸은 적어도 세 명의 자녀를 갖기 ’간절히‘ 바라는 남자. 미셸은 욕실 찬장의 리아가 생리용품을 담아두는 상자 안에 피임약을 숨겨두고 하루에 한 정씩 복용하고 있는 것을 아직은 모르고 있다.

  이들은 중등학교 시절의 절교를 벗어나 다시 오랜 세월을 두고 우정을 쌓아가지만, 한편으로는 케케묵은 우정의 의무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하고, 상대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독자의 권리로 이런 내용과 관계없이, 나는 등장인물들의 삶의 방식의 차이로 책을 읽었다. 내털리와 조연으로 등장하는 필릭스, 그리고 리아의 남편 미셸과 엄마 폴린 한월여사는 인생의 뚜렷한 목표를 정하고, 모든 노력을 다 해 기어이 목표를 달성한 후, 다시 새로운 목표를 정하고 또 아등바등 안간힘을 써 기어이 달성하려는 자기개발형 인간들이다. 반면 리아와 내털리의 남편인 프랭크 드 안젤리스와 (조금 과격하지만)네이선 보글은 삶 자체를 즐기며 동시에 견뎌내는 것처럼 보인다. 제이디 스미스는 두 그룹 어느 쪽의 삶이 더 올바른 길이라 결코 결론을 내지 않아 결국 선택은 독자의 몫으로 넘어간다. 단, 이 책을 나와 같은 방식으로 읽는다는 전제에서 말하자면 그렇다. 그리하여 <런던, NW>는 전작 <하얀 이빨>이나 <온 뷰티>처럼 문화, 계급, 빈부, 젠더의 충돌이라기보다 의식의 충돌일 수도, 그렇게 읽을 수도 있다. 물론 아마추어의 억측이겠지만.

  목표달성을 통한 삶의 여유를 택할 것인지, 안분의 삶을 살며 작은 행복과 많은 자잘한 고통을 견딜 것인지, 아쉽게 이게 마음대로, 선택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다 팔자소관이긴 하다. 아, 그러나 나는 애초에 경쟁을 싫어하고 목표와 달성을 혐오하지만, 두 가지 경우 다 당신에게, 그리고 나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행복. 그건 언제나 과거에만 있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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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2-24 1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팔스타프님에 리뷰 항상 눈팅만 @ㅅ@만 하며 소심하게 추천 리뷰만 눌렀어요 ㅋㅋ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팔스타프님 서재에 트리 하그루 놓고 가여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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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erry ☆ Christma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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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메리 크리스마스 ^.~

Falstaff 2020-12-24 10:33   좋아요 1 | URL
하하하... 고맙습니다.
스콧 님도 오붓하게 매우 즐거운 성탄 만드세요!
 
펭씨네 가족
케빈 윌슨 지음, 오세원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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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9세기까지 저 폴란드 혹은 벨라루스의 깊고 깊은 숲 속에 베오울프 족이 있었다. 베오울프 족들은 그곳에서 눈이 그치고 보름달이 뜨면 송곳니를 드러내며 밤의 숲 속을 배회하다가 외딴 인가를 급습해 사람들을 죽여 피를 마셨다. 깊은 계곡 속에 은거하며 밤의 제왕으로 몇 세기를 잘 살았지만 인간이 총기를 발명해 널리 사용하기 시작했고 과학의 19세기에 접어들어 이들을 멸종시키려는 집단적 활동이 거세짐에 따라 소수의 베오울프 족은 이주를 결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극소수는 북아메리카를 향하는 수송선에 올라 미국 땅에 도착했고, 여전히 북유럽의 숲 속을 배회하던 대부분의 베오울프들은 가차 없이 학살을 당해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미국에 도착한 이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이름을 팽Fang, 즉 ‘송곳니’라고 지었으나 미국 땅에서도 사람을 죽여 피를 빠는 관습으로 인해 사막의 모래알처럼 종족을 번식시키지는 못했다. 사막의 모래알? 모래알은커녕 겨우 대만 끊지 않고 가냘프게 생존해왔을 뿐인데 1970년대 중후반께는 비참한 교통사고로 유일한 베오울프의 후손 부부가 동시에 절명하는 바람에 그들의 오직 한 명의 아들, 케일럽 펭만이 남았다. 케일럽 펭은 1954년 유명한 피아노 퍼포먼스 <4분 33초>를 만든 존 케이지와 필적할 만한 위대한 행위예술가 호바트 왁스만의 수제자로 스승을 능가하는 예술적 재능을 보유한 젊은이(였)다. 1977년 호바트 교수의 조교를 하다가 회화를 공부하던 열 살 아래의 캐밀 양에게 행위예술의 마력을 전파하여, 무려 서른여섯 번의 결혼 퍼포먼스 끝에 임신하게 된 캐밀과 서른일곱 번째 결혼식을 통해 정식 부부를 이루게 된다. 그리하여 세상에 빛을 보게 된 또 다른 베오울프의 후손을 소개하자면 누나 애니 펭과 동생 버스터 펭. 부모는 이들을 아이 A, 아이 B라고 부른다.
  이들이 어떤 행위예술을 했는지 한 번 보자. 이 에피소드가 등장하는 장chapter의 제목을 윌슨은 (윌리엄 포크너의)“소리와 분노”라고 지었거니와, 이거 말고도 다른 장의 제목으로 (도스토옙스키의)‘죄와 벌’, (헨리 제임스의)‘여인의 초상’, (너새니얼 웨스트의)‘메뚜기의 날’, (찰스 디킨스의)‘크리스마스 캐럴’ 등으로 짓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하는데 어쨌거나 “소리와 분노”의 시대적 배경은 1985년, 애니가 여덟 살, 버스터가 여섯 살 때다.
  동생은 드럼채를 거꾸로 들고 베이스 드럼을 두드리고 있고 애니는 전기 기타를 뚱땅거린다. 길거리 버스킹. 이들이 하는 노래는 케일럽 펭씨가 작곡한 헤비메탈로 엉망진창의 반주를 뒤따르는 후렴이 독특하다.
  “슬픈 세상이에요. 아주 혹독한 곳이죠. 계속 살아가려면 부모들을 모두 죽여야 해요.”
  애니의 열어놓은 기타 케이스 속에는 일 달러짜리 지폐 한 장과 동전 몇 개가 들어 있고, 포장박스에서 떼어낸 마분지에는 “우리 강아지 코르넬리우스의 수술비가 필요해요. 도와주세요. 우리 강아지를 살려주세요.”라고 비뚤비뚤하지만 맞춤법에 꼭 맞게 쓰여 있다.
  어느 새 행인들이 여럿 모여 이들을 둘러싸고 있을 딱 그 시점에 맞추어 군중들 한 가운데 서 있던 펭씨가 아이들에게 소리친다.
  “얘들아, 얘들아. 우리는 네 치료비를 댈 수 없어. 연주가 엉망이잖아. 안 그래요, 여러분. 해도 해도 이건 너무 한 거 아녜요?”
  이에 맞추어 펭 여사가 거들기를,
  “저 양반 말이 맞네요. 쟤들 연주는 최악이에요. 쯧쯧. 가서 제대로 연주하는 법을 다시 배워 오려무나.”
  이미 퍼포먼스에 익숙한 애니는 이 시점에 맞춰 가장 불쌍한 목소리로 울음을 터뜨리고, 버스터는 오만상을 찌푸린 채 자기 아버지를 째려본다. 이때, 군중 속에서 누군가가 펭씨를 향해, 입 닥치지 못해!, 라는 호통이 들리기 시작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아이들에게 큰 소리로 “얘들아 계속 연주하렴.”하고 격려의 목소리를 보탬과 동시에 잔돈이 우수수, 애니의 기타 케이스 속으로 떨어진다. 군중들은 다수의 지지파와 소수의 야유꾼으로 양분되어 점점 달아오르다가 분위기가 심각해지고, 시끄러운 목소리가 퍼져나갈 때 쯤, 애니는 기타의 목을 잡고 크게 원을 그리며 땅바닥에 기타 몸통을 패대기쳐대 버린다. 버스터 역시 작은 북을 베이스 드럼에다가 거칠게 내리꽂고 동시에 남매는 미리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로 달음박질 하며, 이왕 도망할 거 같으면 기타 케이스 속에 든 돈이라도 몽땅 가져올 것을, 하고 조금 후회한다.
  몇 분이 지나 카메라가 장착된 안경이 부러지고 얼굴에 시퍼런 멍이 들고 거의 눈이 감긴 펭씨와 머리를 산발한 펭여사가 도착하는데, 군중들의 대응방식이 다 예견했던 결과였을 뿐이란 결론과 함께이다.
  “개차반인 인간들도 처음 얼마 동안은 예의를 차릴 수 있지.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그런 오만들은 이내 본성을 드러내 비열한 짓거리를 하게 마련이란다.”
  그러니까 펭씨 부부의 삶의 목적은 오직 하나. 예술. 그것도 한 물 간 행위예술이다. 이제는 더 이상 행위예술에 관한 찬사와 관심, 심지어 눈길조차 주지 않는 2010년 즈음해서도 이들은 오직 하나, 행위예술에 천착을 하지만, 어려서부터 진짜 딸과 아들인 애니와 버스터조차 예술행위를 위한 존재로만 여겨왔던 것을 머리가 굵어짐에 따라 저절로 알게 된 이들은 당연히 법적으로 가능한 나이가 되자마자 부모를 떠나버린다. 그들에게서 물려받은 예술적 재능을 가지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각오와 함께.
  애니는 LA로 가서 배우가 되고, 버스터는 플로리다로 날아가 소설을 쓴다.
  애니는 몇 편에 조연으로 출연하다가 루시 웨인 감독과 호흡을 맞춘 <데이트 듀>라는 작품으로 오스카 상 후보에까지 오른 전력이 있고, 버스터도 장편 <백조들의 집>을 써서 주목받는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가, 요즘, 그러니까 2009년 앞뒤로 해서 완전 죽을 맛이다.
  애니는 가장 최근의 영화 <자매들, 연인들>을 찍다가 어느 날 난데없이 감독 프리먼이 상반신 탈의를 요구했다. 애니는 계약에 없던 일이라 적극적으로 반대를 하다가 엄마한테 전화를 해서 도대체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하소연을 했더니 엄마 하시는 말씀이 상반신 말고 전면 누드로 하면 더 멋있겠다고 하는 거다. 그리하여 열을 받아 위스키를 벌컥벌컥 마시고 자신의 분장실로 쓰고 있던 트레일러에서 상반신을 벗고 거울을 보니, 술 마신 김에 좋은 건 더 좋아 보이는 법이라 자신을 얻어, 그냥 토플리스 상태로 약 50미터 떨어진 촬영장소까지 고개를 발딱 들고 뚜벅뚜벅 걸어간다. 이를 본 프리먼 감독, “자, 이 빌어먹을 장면을 빨리 해치워버리자고. 바로 그 정신이야, 그 분노를 연기에 쏟아 부으라고.” 그러나 숱하게 깔린 스태프들이 얼른 휴대전화를 꺼내 상반신을 벗어제낀 애니를 촬영하고 있었다는 거, 불과 몇 시간 후 미국의 SNS를 통해 애니의 젖꼭지 사진이 만방으로 전송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애니는 모르고 있었다. 게다가 영화마저 쪽박을 찼으며 오스카 후보에 올랐던 작품에서 공동 주연을 했던 여자 주인공 민다와의 동성애 기사가 언론에 도배되어 카운터펀치를 맞았던 거다.
  버스터는 소설이 마음 같지 않아 프리랜서로 인터뷰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라크 파병 제대 군인들 네 명, 케니, 데이비드, 조셉, 에이든과 이들이 심심해서, 그저 지루하기만 한 일상을 메우기 위한 취미생활인 감자 총 제작과 발사 장면을 취재하기 위해 네브래스카의 황량한 벌판에 도착한다. 여러 정의 사제 총으로 감자와 콜라병, 무 같은 것을 쏘는 장면을 보고, 직접 쏘아보기도 한 끝에, 총신 속에 강선鋼線을 넣어 보다 정확성을 높인 총의 시범을 보게 된다. 저 멀리 머리통 위에 따지 않은 맥주 캔을 올려놓고 쏘면 감자가 무서운 속도로 비행해 정확하게 맥주 캔에 맞아 퍽, 터지면서 공중에서 맥주 비가 내리는 모습에 반해버린다. 그래 자신이 직접 윌리엄 텔의 아들이 되어 맥주 세례를 받고, 이미 어둑해진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 더 머리통에 맥주 캔을 세웠다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아온 생감자에 오른편 얼굴을 맞아 가문의 증거인 송곳니 하나를 잃어버리고 입술에 별 모양의 열상, 귀가 너덜너덜, 눈을 비롯한 오른편 얼굴이 호박만큼 부어오르고 까무러쳐 열반하기 일보직전에 응급실에 도착해 질긴 생을 이어가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돈이 없어 프리랜서로 뛰는 젊은이에게 병원은 무려 만오천 달러를 청구하니 이것이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꼴이다.

  이제 겨우 책은 시작했다. 다른 말로 하면, 이런 사건을 통해 네 식구가 무려 십 몇 년 만에 다시 모였다는 말씀. 이해되시지? 이 천하에 둘도 없는 예술지상, 골통, 콩가루 집안의 구성원들이 이제 최후의 퍼포먼스를 준비하는데, 아이고, 우리 정서에는 맞지 않지만 재미있기는 하다. 얼마나 재미있는지 니콜 키드먼을 캐스팅해서 영화로도 만들었단다. 기발한 책. 그러나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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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0-12-18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제목은 <부모님과 이혼하는 방법>이네요. ㅎㅎ

Falstaff 2020-12-18 19:50   좋아요 1 | URL
옙. 근데 제목이 엄청 후지죠? 부모하고 이혼이라니 말입죠. ㅋㅋㅋ 언제 엄마 아빠하고 내가/동생이 혼인한 적 있는 것처럼. 아오, 징그러워라. ㅋㅋㅋ
 
어떤 소송 민음사 모던 클래식 65
율리 체 지음, 장수미 옮김 / 민음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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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로 번역해 출간한 율리 체의 소설 네 권을 이제 다 읽게 된다. 2018년에 <형사 실프와 평행우주 인생들>을 우연히, 별 기대 없이 헌책을 사 읽고 눈이 번쩍 띄었다가 <잠수 한계 시간>을 기점으로 이젠 ‘율리 체’라는 이름 하나만 가지고 주저 없이 책을 선택할 수 있는 작가가 되었다. 이어 <새해>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인상 깊었는데 이번에 읽은 <어떤 소송>, 흠, 디스토피아 과학소설로 분류할 수 있는 작품까지 감상하게 되었으니 74년생 법학박사 범띠 여사가 품고 있는 상상력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궁금한 바가 작지 않다.
  책은 1장chapter, ‘서문’으로 시작한다. 첫 문장을 인용한다.

  “건강은 완전한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재 상태이며 단순히 질병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어서 건강에 대한 확장적 설명이 뒤따른다. 


  “건강한 유기체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잘 상호작용한다. 자기 방어력에 관한 낙관적인 신뢰와 정신적인 힘 그리고 안정적인 영혼의 삶이 있다.” 


  즉 건강이라고 하는 건 자신과 자신이 속한 유기체로의 사회가 상호작용을 통해 모든 면에서 건재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작중 무대인 21세기 중반 독일 지역에서는 모든 일상사가 공익과 사익이라는 측면에서의 건강을 위해 방법Die Methode이라는 통제 체제가 지배한다. 이것이 기본 배경. 모든 사람은 이두박근 아래에 칩을 삽입해야 한다. 책에서는 이 칩의 구체적인 용처를 밝히지 않았지만, 독자는 이와 비슷한 여러 콘텐츠를 통해 칩이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라고 작가가 생각한 것 같다.
  그런데, 위에 인용한 문장들이, 하인리히 크라머가 쓰고 베를린, 뮌헨, 슈투트가르트에서 출판된 『국가 공인 원칙으로서의 건강』 29판의 서문에서 가지고 왔다고 해서, 독자는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기가 십상일 터. 하지만 아니다. 하인리히 크라머는 현 독일의 정치체제인 ‘방법’에 상당히 우호적인 언론인으로 등장한다. 서문 역시 율리 체가 직접 쓴 것.
  이어지는 2장의 제목은 ‘판결’. 방법의 이름으로! 방법적대적 책동을 자행한 독일 국적자이자 생물학 전공자 미아 홀에 대한 형사 사건 판결. 이라고 쓰여 있다. ‘방법적대적’이란 단어가 처음 읽을 때 매우 혼란스럽고 어색하다. 그러면 ‘방법’ 자리에 박정희 정권 당시의 ‘유신’을 대신해보자. ‘유신적대적’. 유신에 적대하는, 정도의 뜻으로 읽힌다. 그러니 책에서 말하는 방법은 책이 끝나는 순간까지 오직 하나, 하나의 권력체라는 의미의 고유명사로 이해해야 하리라.
  이젠 단박에 이해가 간다. 생물학을 공부하는 미아 홀이라는 독일 여성이 반체제 책동을 하여 형사 사건으로 기소되어 판결을 받았다는 의미. 어떤 판결인가 하면,
  “Ⅰ. 피고는 테러 전쟁 준비를 포함한 방법적대적인 책동으로 유죄다. 국가 평화를 위태롭게 하고 독성 물질을 취급하였으며 보편적 복리에 부담을 안기며 필수적 조사를 의도적으로 거부한 사실이 있다. Ⅱ. 고로 피고를 무기 동결형에 처한다. Ⅲ. 피고는 소송 비용과 기타 필수 경비를 부담한다.”
  테러 전쟁 준비와 이에 따른 평화를 위태롭게 한 행위는 나중으로 하고, 바로 다음에 나오는 ‘독성 물질을 취급’했다는 게 무엇인가 하면, 담배를 피웠다는 것. 의도적으로 거부했다는 ‘필수적 조사’는 개인의 건강을 위해 집안에 설치한 운동기구(미아 홀의 경우 고정 자전거)의 요구 거리까지 주행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며, 이게 ‘보편적 복리에 부담을 안기’는 일이라는 건, 필수 주행을 하지 않아 나중에 질병에 걸리게 될 경우, 진료비 등에 세금 같은 공공 지원이 사용될 거란 뜻이다. 이 현재의 권력인 방법은 오직 하나, 건강을 위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다. 모든 집, 건물에는 태양광 판넬이 설치되어 판넬이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장관을 이루는 도시. 아무리 많은 자동차가 도로를 횡행해도 태양광 에너지에서 나오는 초저음 배터리로 운행을 해서 소음과 분진 및 공해요인이 거의 없는 꿈의 유토피아.
  물론 구강 키스도 금지다. 볼 키스도 당연히 금지다. 나의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는 모든 행위는 허용하지 않는다. 어디서 본 것 같다고? 근육질의 사나이 실베스터 스탤론과 산드라 블록이 주연한 할리우드 B급 영화 <데몰리션 맨>에서는 사랑을 나누는 행위는 보조기구를 사용해 뇌파의 교류를 통해서만 허용한다. 모든 인류는 정상적인 남녀관계를 ‘액체교환법’이라고 혐오하는 지경까지 가는데, 이 책에선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이런 정권에게 꼭 필요한 건 경계다. 자신의 주장을 모든 땅에 다 요구할 수 없을 터이니. 그리하여 B급 영화에선 안전과 평화의 땅은 거대한 성벽 안에서만 적용되며, 이 책에서는 비록 뚜렷한 장벽은 없지만 분명한 선이 그어져 있어서 선 밖으로 나가는 건 보건법에 저촉이 된다.

  주인공 미아 홀에겐 어려서부터 우애가 각별한 남동생 크라머가 있었는데, 시를 쓰는 크라머는 통제를 견디기 힘들어했으며, 여러 여성과 여러 자세로 액체교환법을 시행하고, 방법이 지정한 선,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는 개울에서 낚시한 생선을, 절대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워 먹는 일을 ‘자행한다.’ 줄담배를 피우면서. 어느 날, 크라머는 쥐트 다리 아래서 지뷜레라는 아가씨와 소개팅을 하기로 해서 갔는데, 도착해보니 어여쁜 지뷜레는 강간 살인을 당한 상태였다. 경찰에 신고하고 돌아와 누나와 늘 산책하던 개울가에 앉아 있다가 지뷜레의 몸 안에서 나온 정액의 DNA가 크라머와 일치한다고 하여 체포, 영구 냉동 처분을 받는다. 크라머는 누이에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유치장 안에서 목을 매 자살해버리고 만다.

  미아 홀은 동생의 죽음과 결백 여부에 큰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그토록 우애가 깊은 남매였으니. 그래 한두 달 정도 운동도 하지 않고 동생처럼 담배를 한 대 피워본 것뿐인데 연기 냄새를 맡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여성이 불이 난 줄 알고 화재 경보를 하는 바람에 처음으로 재판을 받고, 이를 항소하는 과정에서 사익대변자(국선변호사) 로젠트레터가 미아의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 크라머의 무죄를 밝히면서 일이 커진다. 커져도 너무 커진다. 이제 미아 홀은 결과적으로 모든 신문 1면을 통해 ‘방법’에 대한 불신을 선언하고, 독일 내의 모든 병들권자들, 즉 병들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동조를 얻는 것도 모자라 그들의 대변자의 위치로 오르게 된다.
  소설은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디스토피아 적 SF다. 그러니 스토리의 소개는 여기서 그만두어야 한다. 시대는 종교와 이데올로기와 핵무기가 사라진 21세기 중반. 비록 모든 신과 이데올로기는 없어졌으나 이 머리 좋은 미래 사람들은, 지금의 우리처럼 역사를 알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자에게 그가 증오하는 체제의 권력과 명망을 주면 그는 즉시 조용해지고 아주 충성스럽게 나름 뭔가 만든답시고 뚝딱”거려서 “진보에 대한 열망은 한 사회의 자기 과대평가와 개인적인 권세욕의 혼합물"(182쪽)인 것임을 증명하는 한편, 미래의 거대 권력의 우두머리 집단은 놀라운 방법으로 자기들 말고 새로운 신화가 창조되는 것을 막아버린다. 어떻게? 안 알려줌.

  사실은 지금 당신도 보고 듣고 있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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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나비 시인생각 한국대표 명시선 100
김기림 지음 / 시인생각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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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8년 함경북도 성진 생. 본명은 인손仁孫, 아명은 범의 손자 인손寅孫, 필명이 기림起林이니 필명 ‘기림’은 양반 계급이자 지역 부르주아에다가 한학자였던 큰아버지께서 어느 한시의 구절을 따 친히 지어준 이름이란다. 심지어 아호까지 멋있게 편석촌片石村이라 지어주었다 하니 그 양반 퍽이나 낭만적이다.

  김기림의 경우엔 나중에 월북이 아니라 납북이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이이 역시 학창시절 국어 시간에 그저 김O림, 또는 김X림, 이렇게 배운 시인이어서 이이의 평가에 ‘베일에 가려진 시인’으로 약간의 프리미엄이 보태진 것 같다. 물론 내 경우에 그렇다는 말씀. 나중에야 김기림이 우리나라 주지주의 문학을 주창한 모더니스트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한국전쟁 당시 자의나 타의에 의해 북으로 가서 1988년에야 정식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된 시인들의 경우에 유독 전집全集이 아니면 작품 구경을 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 아쉽다.

  이 시집 《바다와 나비》는 모두 다섯 부part로 나누어져 있는 바, 2부 “추억”과 3부 “아스팔트”에 그를 특징 지워주는 주지주의나 모더니즘 시가 스물다섯 편 실려 있고, 1, 4, 5부엔 어린 시절의 기억과 제물포와 관북지역 기행의 시가 포진해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김기림하면 떠오르는 주지주의 시, 이성, 도시성, 회화성의 시들은 뭐 별로 다가오지 않으니 이를 어이할꼬. 오히려 주정주의적인 시들이 더 좋았던 아이러니. 예를 들어 첫 번째로 실린 <길>이란 시의 전문을 먼저 읽어보자.




  길



  나의 소년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빛에 호져 때 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줏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갔다. 까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동구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애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  (전문)



  이 시를 읽을 때 곤란한 건 셋째 연에 나오는 ‘호지다’라는 뜻을 모르겠다는 것 하나.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호되다’ ‘오달지다’의 경기도, 충청도 방언이라고만 나와 있는데 시의 행간을 감안해 ‘취醉하다’, '홀리다' 또는 ‘넋을 잃다’ 로 해석하는 게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하늘빛, 노을에 함북 젖을 수 있을 테니. 실제로 김기림의 모친은 딸만 여섯 내리 낳고 마지막에 낳은 맏아들이 만 여섯 살이 된 1914년에 운명해버리고 만다. 그래 김기림은 어머니의 상여가 나갔고, 더 세월이 지나 이젠 처음으로 사랑을 느꼈던 소녀도 죽었거나 시집을 가버린 강가 길, 버드나무 고목 아래 해가 지도록 섰다가 기어이 감기를 얻어 돌아오고는 했나 보다. 뭐 인생이 그렇지. 양반집 도련님에 큰 과수원집 외아들로 일본에서 중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은 무려 두 번이나 (일본대학 문화예술과, 동북제대 영문과) 졸업한 유복한 자제라고 뭐든지 다 가질 수는 없는 거니까.

  반면에 모더니즘 시들에 관해 솔직한 의견을 말하자면,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 여기서 ‘별로’라는 부사를 빼고 그냥 “매력적이지 않다.”라고 해도 괜찮을 듯하다. 예를 들어보자.



  아스팔트



  아스팔트 우에는

  사월의 석양이 졸리고


  잎사귀를 붙이지 아니한 가로수 밑에서는

  오후가 손질한다.


  소리 없는 고무바퀴를 신은 자동차의 아기들이

  분주히 지나간 뒤


  너의 마음은

  우울한 해저


  너의 가슴은

  구름들의 피곤한 그림자들이 때때로 쉬려오는 회색의 잔디밭


  바다를 꿈꾸는 바람의 탄식을 들으려 나오는 침묵한 행인들을

  위하여

  작은 아스팔트의 거리는

  지평선의 숭내를 낸다.  (전문)



  아직 잎이 붙지 않은 가로수 아스팔트 길을 그렸다. 당연히 당시 시각으로 도시적인 작품일 터이지만 솔직히 너무 구태 아닌가. 그래서 뭐 어땠는데? ‘햇살이 지붕에서 굴러내리고’, 뭐 이런 시들하고 경계를 그을 수 없는 것처럼 읽힌다. 아, 여기서 분명하게 한마디 하자. 나는 시를 즐길 뿐이지 무슨 일가견이 있지도 않고 심지어 공부해본 적도 없다. 충실한 아마추어일 뿐. 그러니 이 비평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시기를.

  나는 청소년기부터 지평선에 대한 로망을 가져왔다. 저 벌판. 아득하게 멀고 먼, 멀고 먼 저 땅의 끝까지 가더라도 또다시 멀고 먼 지평선이 보이는 곳. 그리하여 몽골, 고비사막을 거쳐 타지키스탄, 사마르칸트, 투르크메니스탄에 이르는 꿈을 꾸고는 했는데,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곳이 바로 국경이었다. 그래 내게는 국경에 대한 아득한 동경이 있었다. 사정없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북쪽 나라의 국경. 그런 시가 이 시집에 한 편 실려 있다. 어찌 소개하지 않을 수 있으랴.



  국경



  1

  저렇게 털모자를 쓰고 나서면

  단포쯤 옆구리에 차고 싶을 걸

  저렇게 다리 굵은 아기네가 목도리를 감아주면

  이만쯤 눈포래엔 황마찬들 못 달리랴


  2

  차에서 나리자마나

  어느새 한대寒帶가 코를 깨문다


  3

  살찐 화교가 나무상에 기대서 라디오를 틀어놓고

  조국의 소란을 걱정스레 엿듣는 거리―


  4

  지도를 펴자

  꿈의 거리距離가 갑자기 멀어지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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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대산세계문학총서 160
블라디미르 세묘노비치 마카닌 지음, 안지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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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디미르 마카닌이라는 이름은 몇 번 들어 보았다. 책의 앞날개에 쓰여 있는 작가 약력, 위키피디아 내용, 책 뒤편에 달린 연표 등으로 이이의 한 살이를 유추해보면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작가들의 전형적인 생을 보는 듯하다. 소비에트 연방의 남서쪽에 위치한 오렌부르크의 작은 도시 오르스크에서 1937년에 태어나, 모스크바에서 수학과 기계공학을 공부한 후 군사학교 등의 고등교육기관에서 수학을 가르치다가 1960년대 중후반부터 출판사에 다니며 창작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에 소비에트가 조종을 울린 것을 목도한 후 이른바 포스트 소비에티즘 문학의 기수로 이름을 높일 작품들을 여럿 쓰고, 고향에서 약간 서쪽에 위치한 로스토프의 크라스니에서 노년 대부분을 지내다, 2017년 그곳에 묻힌 작가. 이렇게 간단하게 평생을 요약하는 건 사실 고인 입장에선 좀 섭섭하리라. 노년에는 매년 올해의 노벨 문학상이 내게 떨어지지 않을까, 약간의 기대를 품고 있다가 번번이 미역국을 마셨으나, <아산>을 읽어보시면 단박에 아시겠지만, 아후, 내공이 보통 아니다. 앞으로도 이 사람의 작품이 번역되어 나온다면 읽어보기 위해 서슴지 않고 지갑을 열 의향이 있다.
  먼저 ‘아산’에 대하여.
  무대는 21세기 2차 체첸분쟁이 아직 덜 끝난 시점이다. 아직도 완전히 끝난 상태라고 보기 힘든 분쟁지역이긴 하지만. 물론 주인공 알렉산드르 세르게이치 질린 소령이 캅카스 지역으로 파견을 온 것은 1994년 12월에 시작한 1차 체첸분쟁 중이었으며, 주인공의 회상에 의하여 독자는 1996년에 휴대전화 위치정보 서비스를 통해 존재가 발각이 난 초대 체첸공화국 대통령 조하르 두다예프가 미사일의 정밀타격에 당해 아예 존재도 없이 사라지기 전, 두다예프와 만난 기억까지 호출하니 체첸분쟁 전반을 거의 아우른다고 봐도 무방하다. 캅카스의 수도 그로즈니에는 러시아 연방국의 사령부가 위치해 있었고, 그곳에 일찍이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엔 용맹을 떨쳤으나 이후 급격하게 전투력을 상실해 이제 사령부 내부에서 ‘아무 것도 아닌 장군’이란 호칭으로 근사한 집무실에 아무 방문객도 없이 노상 책만 읽는 바자노프 장군이라고 있었다. 그래도 장군의 봉급을 받으려면 타이틀이 하나 있어야 하는 법, 이이는 ‘현지인과의 교류 담당관’이란 모호한 직책을 부여받은 바, 이게 딱 장군의 기호와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이가 이젠 거의 잊혀버린 체첸 역사와 민속에 관해 누구보다 깊게 공부를 했고, 구전으로 전해온 민족의 우상 가운데 최고의 우상인 ‘아산Asan'을 발견했다. 아쉽게도 장군은 작품 후반에 잘못 계산된 다량의 폭탄테러를 당해 형체도 없이 사라지지만.
  그리스를 무너뜨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파죽지세로 동진을 할 당시 흑해 북쪽 역시 대왕의 검정 말 부케팔로스의 발굽을 피할 수 없었는데 이 속에 체첸의 선조들도 갖은 곤욕을 당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마케도니아 또는 그리스 군대를 피하여 체첸 사람들은 산 속으로 도망해 현재까지 삶을 이어왔으며, 알렉산드로스의 이름은 이들에게 이름만 들어도 공포에 휩싸이게 하는 주문과도 같았다. 이런 공포는 세대를 거치면서 막강한 힘, 패배를 모르고 오직 파괴만을 위한 절대적 힘의 상징으로 뇌성벽력과 천둥을 다스리는 신 비슷한 우상을 창조하게 되었다. 이 ‘알렉산드로스’가 수 십 대를 거친 체첸 사람들의 발성기관을 통해 ‘아산’으로 된 것이라고 바자노프 장군은 추론한다. 이는 기독교와 이슬람이 들어오기 전까지 가장 강력했던 우상으로 두 팔이 달린 거대하고 웅장한 새의 모습을 지녔으며, 이슬람과 달리 혈연에 근거한 복수, 즉 죽은 아비에 대한 복수를 아들에게 하는 것도 용인하던 우상, 신으로, 아직도 체첸 산山 사람의 영혼에 모태에서부터 간직된 불분명하고 희미한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체첸 산 사람들이 우리의 주인공 알렉산드르 세르게이치 질린 소령을 ‘아산 질린 소령’이라고 부르는데, 이름이 알렉산드르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비록 소령이 전투부대 지휘관이 아니라 유류품, 그러니까 휘발유, 경유, 등유, 항공유, 윤활유 등, 하여간 병참 3종을 다루는 부대장이 자신들에게 강력한 힘을 쓸 수 있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책의 중간 이후에 전투만 했다하면 후퇴할 줄 모르는 막강한 전투력의 알렉산드르 흐보로스티닌 소령이란 작자도 등장해 체첸 사람들이 ‘아산 흐보리 소령’이라 부르는 것도 질린 소령의 경우와 같다.
  그럼 한갓 3종 병참부대장 질린 소령의 파워를 소개한다.
  이이는 정식으로 체첸 반군이건 체첸 농민군이건 간에 전투를 해본 적이 없다. 수송용 장갑 수송차와 일반 트럭, 그리고 몇 대의 지프를 가지고 연료를 수송하는 일을 한다. 휘발유는 전쟁의 피와 같다. 현대전에서 휘발유는 저 옛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애마 부케팔로스가 먹던 건초와 같다. 그것보다 더 중요하다. 이 시대의 탈것은 왕이나 장군뿐만 아니라 사병들까지 모든 병력을 실어 나르니까. 화기, 불기와 유난히 친한 유류품을 체첸 반군이 득실거리는 산악지역과 관목지역을 통과해 정확하게 배달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한편 체첸 반군 입장에서도 휘발유가 전쟁의 피인 것은 마찬가지라서 비록 습격을 할지언정 휘발유, 경유, 등유 등을 실은 차는 결코 폭파하지 않는다. 자신이 탈취해 쓰기 위하여. 과거 체첸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기 전 두다예프와의 담백한 논전을 통해 질린 소령은 이 문제를 타개할 방법을 스스로 찾았으니, 체첸 반군과 거래를 하는 거였다. 그들의 약탈을 막으려면 죽는다. 반면에 총을 겨누고 휘발유를 내놓으라는 반군한테 2백 달러, 한 통에, 라고 조건을 제시하면 적어도 돈은 받을 수 있다. 물론 죽지도 않고. 게다가 이슬람을 믿는 용감한 민족 체첸 사람들은 신용이 확실하다. 한 번 빚진 건 반드시 갚는다. 그걸 명예로 아는 사람들이라서.
  그래 질린 소령이 만일 무한대로 군대 기름을 팔아먹는다면 당연히 군법회의에 회부되어야 할 것. 소령에겐 변하지 않는 선이 있다. 내 몫은 십분의 일. 일단 이렇게 정해지자 소령은 캅카스의 어떤 병참부대보다 정확하게 보급에 성공하는 능력 있는 지휘관이 되었으며, 러시아 연방군은 물론이고 체첸 반군에게도 막강한 힘과 거래술을 지닌 유명인사로 등극한다. 물론 이런 소령의 모습을 눈꼴시게 바라보는 몇 안 되는 인간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번 돈으로 뭐 하냐고? 분명히 얘기할 것은, 처음엔 자신의 목숨을 도모하고자 유류품을 판매했던 거라는 점. 그러다보니까 저절로 돈이 생긴 것이지 처음부터 축재를 하고자 했던 건 아니라는 것. 하여튼 부정한 돈이 모이고 또 모이자 그는 러시아의 큰 강이기는 하지만 이름이 나지 않은 강가에 적당한 크기의 땅을 사고, 적당한 크기의 집을 짓고 있는 중이다. 그곳에서 사랑하는, 누구보다 사랑하는 정숙한 아내와 딸과 함께 여유 있는 만년을 보내고 싶은 꿈을 이루고 있는 중이다. 맞다. 냉철한 거래와 단칼에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리고 공적 비품의 불법 판매를 통한 사익을 취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소령은 한 편으로 센티멘탈리스트이기도 하다. 그는 달이 뜨는 저녁이 되면 자기만의 장소인 앞이 탁 트인 벤치에 앉아 아내에게 휴대전화를 해 딸 이야기, 집 짓는 이야기 등 사소한 일상을 시시콜콜 짚어가며 소소한 행복을 누릴 줄도 안다.
  작가 마카닌은 체첸 분쟁을 심할 정도로 비틀어 버린다. 부정과 뒷거래와 의사소통의 부재와 알력과 미치광이들의 싸움과 인질 등, 사실 알고 보면 역사 이래 모든 전쟁에서 거의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부정, 즉 정의가 아닌 일들을, 매우 매우 매우 시니컬하게 보여준다. 그래 러시아에서는 특히 참전 용사들이 마카닌에게 크게 반발하기도 했다 하는데, 세상의 어느 전쟁이 정의로웠던 적이 있었나. 애초에 정의란 없다. 전쟁에서는.
  불과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이 책은 소위 ‘남성용’이라는 딱지가 붙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이젠 역자마저 안지영, 여자다. 여자가 번역한 군인, 전쟁터 장면, 특히 욕설의 경우엔 남자 역자보다 아직은 맛이 찰지지 못하다. 하지만 상당히 고급한 욕설까지 자연스럽게 구사하긴 한다. 그래 특히 1장의 경우엔 자주 과도하게 욕설의 원 뜻을 노출시켜 오히려 독자를 좀 불편하게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고비만 넘기면 누구든지 아주 재미있게 6백 쪽이 넘는 장편소설을 읽을 수 있으리라고 확신하다. 독후감을 읽는 당신, 한 번 도전해보심이 어떠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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