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나비 시인생각 한국대표 명시선 100
김기림 지음 / 시인생각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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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8년 함경북도 성진 생. 본명은 인손仁孫, 아명은 범의 손자 인손寅孫, 필명이 기림起林이니 필명 ‘기림’은 양반 계급이자 지역 부르주아에다가 한학자였던 큰아버지께서 어느 한시의 구절을 따 친히 지어준 이름이란다. 심지어 아호까지 멋있게 편석촌片石村이라 지어주었다 하니 그 양반 퍽이나 낭만적이다.

  김기림의 경우엔 나중에 월북이 아니라 납북이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이이 역시 학창시절 국어 시간에 그저 김O림, 또는 김X림, 이렇게 배운 시인이어서 이이의 평가에 ‘베일에 가려진 시인’으로 약간의 프리미엄이 보태진 것 같다. 물론 내 경우에 그렇다는 말씀. 나중에야 김기림이 우리나라 주지주의 문학을 주창한 모더니스트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한국전쟁 당시 자의나 타의에 의해 북으로 가서 1988년에야 정식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된 시인들의 경우에 유독 전집全集이 아니면 작품 구경을 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 아쉽다.

  이 시집 《바다와 나비》는 모두 다섯 부part로 나누어져 있는 바, 2부 “추억”과 3부 “아스팔트”에 그를 특징 지워주는 주지주의나 모더니즘 시가 스물다섯 편 실려 있고, 1, 4, 5부엔 어린 시절의 기억과 제물포와 관북지역 기행의 시가 포진해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김기림하면 떠오르는 주지주의 시, 이성, 도시성, 회화성의 시들은 뭐 별로 다가오지 않으니 이를 어이할꼬. 오히려 주정주의적인 시들이 더 좋았던 아이러니. 예를 들어 첫 번째로 실린 <길>이란 시의 전문을 먼저 읽어보자.




  길



  나의 소년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빛에 호져 때 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줏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갔다. 까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동구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애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  (전문)



  이 시를 읽을 때 곤란한 건 셋째 연에 나오는 ‘호지다’라는 뜻을 모르겠다는 것 하나.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호되다’ ‘오달지다’의 경기도, 충청도 방언이라고만 나와 있는데 시의 행간을 감안해 ‘취醉하다’, '홀리다' 또는 ‘넋을 잃다’ 로 해석하는 게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하늘빛, 노을에 함북 젖을 수 있을 테니. 실제로 김기림의 모친은 딸만 여섯 내리 낳고 마지막에 낳은 맏아들이 만 여섯 살이 된 1914년에 운명해버리고 만다. 그래 김기림은 어머니의 상여가 나갔고, 더 세월이 지나 이젠 처음으로 사랑을 느꼈던 소녀도 죽었거나 시집을 가버린 강가 길, 버드나무 고목 아래 해가 지도록 섰다가 기어이 감기를 얻어 돌아오고는 했나 보다. 뭐 인생이 그렇지. 양반집 도련님에 큰 과수원집 외아들로 일본에서 중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은 무려 두 번이나 (일본대학 문화예술과, 동북제대 영문과) 졸업한 유복한 자제라고 뭐든지 다 가질 수는 없는 거니까.

  반면에 모더니즘 시들에 관해 솔직한 의견을 말하자면,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 여기서 ‘별로’라는 부사를 빼고 그냥 “매력적이지 않다.”라고 해도 괜찮을 듯하다. 예를 들어보자.



  아스팔트



  아스팔트 우에는

  사월의 석양이 졸리고


  잎사귀를 붙이지 아니한 가로수 밑에서는

  오후가 손질한다.


  소리 없는 고무바퀴를 신은 자동차의 아기들이

  분주히 지나간 뒤


  너의 마음은

  우울한 해저


  너의 가슴은

  구름들의 피곤한 그림자들이 때때로 쉬려오는 회색의 잔디밭


  바다를 꿈꾸는 바람의 탄식을 들으려 나오는 침묵한 행인들을

  위하여

  작은 아스팔트의 거리는

  지평선의 숭내를 낸다.  (전문)



  아직 잎이 붙지 않은 가로수 아스팔트 길을 그렸다. 당연히 당시 시각으로 도시적인 작품일 터이지만 솔직히 너무 구태 아닌가. 그래서 뭐 어땠는데? ‘햇살이 지붕에서 굴러내리고’, 뭐 이런 시들하고 경계를 그을 수 없는 것처럼 읽힌다. 아, 여기서 분명하게 한마디 하자. 나는 시를 즐길 뿐이지 무슨 일가견이 있지도 않고 심지어 공부해본 적도 없다. 충실한 아마추어일 뿐. 그러니 이 비평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시기를.

  나는 청소년기부터 지평선에 대한 로망을 가져왔다. 저 벌판. 아득하게 멀고 먼, 멀고 먼 저 땅의 끝까지 가더라도 또다시 멀고 먼 지평선이 보이는 곳. 그리하여 몽골, 고비사막을 거쳐 타지키스탄, 사마르칸트, 투르크메니스탄에 이르는 꿈을 꾸고는 했는데,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곳이 바로 국경이었다. 그래 내게는 국경에 대한 아득한 동경이 있었다. 사정없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북쪽 나라의 국경. 그런 시가 이 시집에 한 편 실려 있다. 어찌 소개하지 않을 수 있으랴.



  국경



  1

  저렇게 털모자를 쓰고 나서면

  단포쯤 옆구리에 차고 싶을 걸

  저렇게 다리 굵은 아기네가 목도리를 감아주면

  이만쯤 눈포래엔 황마찬들 못 달리랴


  2

  차에서 나리자마나

  어느새 한대寒帶가 코를 깨문다


  3

  살찐 화교가 나무상에 기대서 라디오를 틀어놓고

  조국의 소란을 걱정스레 엿듣는 거리―


  4

  지도를 펴자

  꿈의 거리距離가 갑자기 멀어지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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