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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백 - 제1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 2020년에 가장 인상 깊었던 책 열 권을 추렸었다. 해당 글에 2021년에는 장강명의 <표백> 독후감을 읽고 싶다고 하신 분이 계셔서 내내 기억하고 있다가 이제야 독후감을 쓴다. 사람 마음이 참. 워낙 잘 나가는 작가라서 오히려 선뜻 집어 들게 되지 않았던 거 같다. 2011년에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아 데뷔를 하고, 이후 굵직한 문학상을 수집하는 데 게으르지 않았으며, 을지로 인쇄골목의 종이 값을 올리는데 기여한 작가다. 내는 책마다 대박이라, 억대 연봉으로 유명한 동아일보사를 때려치우고 지금은 전업 작가로 활약 중이다.
<표백>. 발표했던 십년 전은 물론이고 지금 읽어도 젊은이들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는 센세이셔널한 주제를 다루었다. 표백이라. 백 년 전까진 힘이 좋아 무쇠 칼을 휘두르며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저편에 있는 적들을 쳐부수기만 하면 영웅의 관을 쓸 수 있었고, 일제강점기엔 독립투쟁을 하느라 목숨을 버리기도 했고, 전쟁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후에 독재에 저항하기 위해, 민주화를 이룩하기 위해 기꺼이 보도블록을 깨 같은 젊은 세대인 전투경찰을 향해 던지기도 했다. 이런 덜 성숙했던 시절을 지내며 이미 몇몇 선배들은 거대 담론을 독차지 할 수 있었으며, 큰 영광을 차지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다른 꾀바른 몇몇은 어수룩한 시운을 타서 하다못해 아파트 투기 몇 번을 통해 탄탄한 중산 계급장을 깔고 앉을 수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사회 전반은 틀이 꽉 잡혀 어디 한 군데 허술한 곳을 발견하기 힘들 지경이 되고,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 경제의 확립은 오히려 젊은 세대들에게 옴짝달싹 못 할 규격화 “만”을 강요하기에 이르렀다.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고 쌓아올린 스펙, 좋은 대학 졸업해 판검사 또는 5급 공무원이 되거나 의사가 되거나 반도체, 이동통신, 금융 같은 일류 대기업에 입사해야 하거나, 아니면 중견기업, 그것도 아니면 중소기업,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7급이나 9급 공무원, 하다못해 이것도 아니면 그저 루저가 되어 월 88만 원짜리 아르바이트생으로 빌빌거려야 하는 규격.
위대한, 또는 영웅적인, 역사에 기록될 만한 이슈는 모두 완결이 된 이후의 사회 속에서 사는 젊은이들의 허무. 이들 가운데 상위 천 분의 일에 해당하는 두뇌와 천부의 미모를 갖춘 정세연이란 젊은이가 현대의 사도로 등장해 소크라테스, 재프루더, 루비, 하비, 제리, 메리, 여섯 명의 제자를 두기에 이른다. 이들은 기성세대를 향하여 거대한 복수의 장을 마련하고자 하니, 어떻게 읽으면 이제 이들에게 유일하게 남아 있는 영웅적, 또는 위대한 반항, 항의의 뜻으로, 자살을 선언하고 실제로 죽어버리는 일이다.
어차피 세상살이는 선택으로 이러진다. 젊은이들이 현실에 고뇌하고, 탐색하다가 절망하고, 출구를 모색하고, 타협하고, 분노도 하는 건 언제나 같다. 이들이 기성에 항의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자살선언과 실행. 백 년 전에도 있었다. 다만 살해의 대상이 내가 아니라 부모였을 뿐. 그래서 생긴 것이 살부계殺父契, 아버지 죽이는 집단. 이들의 아버지들도 살부계 자식들을 용인했다. 왜냐하면 자신들 역시 젊은 시절 살부계를 만들어보았기 때문. 물론 극히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말 생명의 결단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도 제일 싫어하는 말이 “부모님을 제일 존경한다.”는 거다. 부모는 극복과 타도의 대상이지 존경의 대상이 아니다. 내가 키운 두 아이는 어려서부터 절대로 이런 얘기는 입도 벙긋하지 말라고 교육받아서, 어디 가서 “저는 부모님을 존경하지 않아요.”라고 말한다는데, 미친다, 어감이 꼭 “우리 집구석이, 콩가루 집안이에요.” 라는 뜻 같기도 해서. 그것도 참.
하여튼 자살선언서 작성, 자살 종교의 사도 재키 정세연과 여섯 제자, 그리고 주인공이자 2년 공부 끝에 7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과천 종합청사의 농림부에서 근무하는 ‘나’ 적그리스도. ‘나’가 적그리스도? 그렇다. 그럼 그리스도는, 당연히 사도, 재키, 정세연이다. 정세연. “정의 세우기 연대”가 아니고, 작가 장강명이 졸업한 학교 연세대학의 ‘연세’를 뒤집어 놓은 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 자살교의 교주이자 사도. 그럼 적그리스도는 비록 처음엔 그리스도와 한 편이었을지 모르지만 지혜와 판단을 장착해 나중엔 악착같이 그리스도, 라기보다 자살교 교주에 바락바락 기어올라 방해만 일삼을 거 아냐? 맞다.
‘나’ 적그리스도와 비슷한 성격의 등장인물이 하나 더 있는데, 나중에 주간지 기자가 되는 소크라테스 휘영. 아, 스포일러일 수 있는데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재키 정세연이 겨우 50 센티미터 깊이의 연못에서 고개를 들지 않아 자살에 성공하고 (말도 안 된다. 편의점에서 산 복분자술 한 병 마시고 숨이 끊어질 때까지 물속에서 고개를 들지 않았다고? 왜, 숟가락 놓을 때까지 숨을 안 쉬어보지 그랬어. 하여튼 그랬다고 치자. 이 정도는 돼야 현대의 ‘사도’라 이거지?) 5년 후에 재키와 약속한 대로 죽지 않은 이유가 그때까지 화려한 성공을 한 번도 못해봤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세연이 제자들에게 성공적인 자살을 위하여 인생의 절정을 맞았을 때 죽으라 했다. 그리하여 루비는 미국 동부의 모 대학에서 거의 모든 과목에 A학점을 받아 유수의 대학원 입학이 확정된 순간 호숫가에 자기 차 캠리를 세워두고 견인줄을 허리에 묶은 다음 호수로 걸어 들어가, 폐에 가득 물이 찰 때까지(가히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죽을 때까지) 견인줄을 잡아당기지 않아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는데 성공한다. 하비는 아이비리그의 MBA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이제 재계서열 6위의 대기업 진호그룹 회장의 장남 자격으로 기획실 과장 자리에 앉기 바로 전, 필라델피아 자신의 집에서 변사체로 발견되는데 결국 자살로 판명이 난다. 재프루더는 마포대교에서 죽겠다고 선언을 하고, 예정된 시간에 목에 끈을 묶은 상태로 약 10미터 아래로 자유낙하, 목뼈가 똑, 부러져 죽어버린다. 이때 재프루더는 바로 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상태였다. 소크라테스도 조중동 같은 유명 일간지나 KBS, MBC, SBS 같은 방송국 기자로 취직했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었겠지. 하여튼 이래서 루저들만 살아남는다는 책.
근데 이게 다냐고? 아니지. 장강명이 만일 재키 정세연의 편을 들어 이 땅의 젊은이들한테, 죽어, 죽어, 죽으라고, 이제 자살하는 게 바람직한 시대정신이야, 라고 말했다 하면, 그의 인기가 이토록 하늘을 찌를 리도 없고, 한겨레문학상을 받지도 못해 아직 데뷔도 못한 상태일지도 모른다. 장강명도 이 책을 내고 쫄았을 거다. 나 같아도 쫄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만일 한 명의 젊은이가 책을 읽고 재키 정세연의 말에 감동을 받아 열심히, 열심히, 열씨미 공부해 행정고시 패스한 다음 날 자살선언서 한 장 쓰고 죽어버리면 조금 곤란했을 터이니까. 두 명이 죽었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사회문제가 되고, 세 명, 네 명, 다섯 명, 한 다스가 그러했다면 장강명은 이민을 갈 수밖에 없었을 거라서, 서문을 이렇게 써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디에서도 자살선언문을 보게 되지 않길 바라며.”
이제 이 책이 나오고 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직은 그렇지 않더라도 당시 20대 중후반이었던 등장인물은 30대 중후반이 되어 인생의 황금기를 우울하게 보내고 있을 터이고, 새로이 등장한 젊은 세대들은 또다시 십 년 전의 이들처럼 반란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흘러간다. 웃긴다면 웃기고, 드럽다면 드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