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억”
“아휴, 과장님. 제발이요.”
김과장은 민망함을 애써 감추며 공기를 잔뜩 삼키고 ‘그~륵’ 소리를 또 한 번 낸다. 김과장은 몇 해 전부터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있다. 식전에는 쓰려서 고통, 식후엔 거북함과 트림 때문에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서른 중반에 얻은 딸아이를 위해서라도 건강은 챙겨야 하겠기에 두려움을 무릅쓰고 내시경 검사를 받았지만, 진단 결과는 증세 無. 습관적인 트림을 호소하자 의사는 음식물이 잘 삭지 않고 괴어서 생긴 가스가 복받쳐 오르거나, 공기가 위와 장에 차서 그런 것이니 공기를 삼키는 것을 자제하라고 한다. 특히 음식을 먹을 때 허겁지겁 먹지 말고 천천히, 물을 마실 때도 천천히, 숨을 쉴 때도 입을 벌리지 말고 코로 쉬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급적이면 담배와 커피, 탄산가스가 들어있는 음료는 피하고 기름기가 많은 음식은 멀리하는 생활을 해오던 김과장. 그래도 근무 중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꺼~억’소리는 계속되었다. 트림 소리를 낼 때마다 견딜 수 없다는 듯 머리를 쥐고 흔드는 여직원에게 궁색하게 스트레스를 원인으로 들며 동정표를 사보기도 하지만 김과장 자신도 원인 모를 트림 행진에 속만 탈 뿐이다.
김과장이 트림으로 고심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김과장의 생후 6개월 된 딸아이 ‘송이’ 때문이다. 송이는 수유 후에 트림을 못하고 자꾸 토해 아내의 육아일기를 우울함으로 도배하고 있었다. 신생아의 경우 트림을 못하고 구토로 이어지면 음식물이 폐로 들어가 폐렴을 유발하기도 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차라, 김과장 내외의 걱정은 태산만 같은데…
밖에서 아빠는 트림을 해서 고민이고, 안에서 아이는 트림을 못해서 걱정이다. 영화 스위치에서 남녀의 성이 바뀌는 것처럼 두 사람의 증세가 하루아침에 바뀌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황당한 기대를 갖는 김과장. 담배연기가 송이의 증세에 악영향을 미친다 하여 베란다에서 끽연을 하던 것도 아예 끊어버렸다.
돌 전까지는 식도 하단의 근육이 미숙하여 자주 게우게 되며 수유 후에 게우는 아기는 자세와 관련 있다는 말에 앉혀도 보고 뉘어도 본다. 이유식에 아직 적응이 안돼 그런가 싶어 이유식 종류도 줄이고, 아직 송이는 성에 안찼는데도 젖병을 빼서 양을 줄여보기도 했다. 이뿐인가, 엎드려 재우거나 오른쪽으로 눕히면 트림이 잘 나온다 하여, 두 부부가 나란히 송이 옆에 누워 트림을 해대는 밤이면 늑대 가족이 달밤에 목놓아 우는 광경과 같았으니. 그래도 아빠가 ‘꺼~억’, ‘그~륵’하는 소리에 송이도 따라 트림을 할 때면 두 부부의 눈가엔 기쁨의 눈물이 맺히는 것이었다.
김과장의 트림 연주(?)에 송이의 증세가 서서히 호전을 보이기 시작하였고, 김과장도 의식적으로 공기 삼킴을 주의한 덕에 트림 증세가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급한 아내의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흐른다.
“송이가 또 트림을 안해, 토하면 어쩌지 여보? 조금 먹였는데도 그래.”
아내는 모든 게 자기 탓인 양, 목소리가 잦아들고 있었다. 콩비지처럼 게워낸 음식물이 송이 얼굴에 덕지덕지 묻어있는 것을 상상하자, 김과장은 견딜 수가 없었다.
“송이 바꿔.”
“무슨 소리야, 송이가 무슨 말을 한다고…”
“아 글쎄 송이 귀에다 수화기 갖다 대.”
잠시 후 김과장은 전화기에 대고 연주를 시작한다.
커~억 그~륵 그~륵 그~륵 그~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