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꼭 명이 긴 남자와 결혼해라."

"아니다. 남자는 자고로 다정해야지."

"아무것도 볼 거 없다. 남자는 성실하기만 하면 돼."

 

남편과 15년을 살다가 저 세상에 보내고, 15년째 홀로 자식들을 키우며 살고 있는 엄마는 존재하지도 않는 딸의 결혼 상대를 향해 요구사항이 많다. 딸과 쇼핑을 나선 길에서도 뭇 남자들을 가리키며, 키가 좀 작네, 얼굴은 동안인데 배가 나왔네, 손이 거친걸 보니 고상한 직종은 아닌 듯 하다느니, 모든 남자를 사윗감 심사에 올리곤 하는 것이다.

올해로 서른을 맞는 딸은 외로움을 벗삼아 15년을 살아온 엄마를 보고 자라서인지 결혼엔 전혀 관심이 없다. 바람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엄마가 재혼을 해서 자식들을 향한 집착을 거두는 것이다. 노후에 며느리 덕도 못 볼, 딸만 셋인 박복한 엄마를 거두어줄 누군가가 나타났으면 하는 대책 없는 기대만 가득한 나날...

 

엄마는 시계추처럼 사는 사람이다. 한 달에 한번 계모임, 일주일에 한 번 알 수 없는 친구와의 외식을 빼곤 새벽 6시 출근, 저녁 7시 퇴근이 뿌리 박힌 일상이다. 그렇게 15년을 살아오면서도 지겹다는 푸념 한 마디 없다. 우리네 어머니들이 그렇듯이 한 두 정거장은 걸어도 자식들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은 절대 아끼지 않는 사람이다. 큰 딸이 첫 월급을 타서 용돈을 드려도 큰 딸 이름으로 다시 적금을 드는 사람, 탈수밖에 안 되는 애물단지 세탁기를 치우려고 일년이 넘게 모은 돈으로 두말 없이 컴퓨터를 사는 사람, 주차 문제로 밤마다 거친 남자들과 싸우는 딸이 안쓰러워 융자를 터 주차장이 넓은 집으로 옮기는 사람, 엄마에겐 오로지 자식들 뿐이다. 딸 자식이 아무리 잘 돼도 친정엄마에겐 그다지 득이 될 일이 없다고 실소하면서도, 아빠 없이 홀로 잘 키웠다는 주변의 소리 한 마디에 어깨가 들썩인다.

 

"언니, 일어나봐. 엄마가 안 들어왔어."

시간은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엄마 주변의 연락처라고 해봐야 몇 친구들 뿐이었고, 늦은 시간에 전화를 하는 것도 실례가 된다 싶어 딸 셋이 동그랗게 앉아 형광등만 밝히고 있었다. 쓸데 없이 기본 요금만 나간다고 생일 선물로 하겠다는 핸드폰을 극구 거절하던 엄마에게 끝까지 우기지 못했던 것이 후회 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절망이 밀려왔다.

새벽녘에 울린 전화벨, 엄마의 잠긴 목소리가 들려온다. 친구와 드라이브 중에 사고가 생겨서 병원이라는 것, 엄마는 괜찮고 친구만 조금 다쳤다는 것, 응급처방하고 정신 차리고 보니 벌써 새벽이라는 등 밤새 엄마 걱정에 잠을 설친 딸들에게 미안한 엄마는 목소리가 잦아든다. 딸은 엄마의 안녕에 안심을 했지만, 그 친구라는 존재에 대해 알 수 없는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지금껏 남자라곤 돌아가신 아빠밖에 모르던 엄마에게 푼돈이나 노리는 졸부가 들러붙은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일었다.

 

딸은 엄마의 일분 일초를 간섭하기 시작했다. 수요일마다 저녁을 먹는 친구, 평생 첫 외박이 되었던 교통 사고 당일 함께 있던 사람이 누구인지, 그 존재를 알아내기 위해 딸은 흥신소 직원이 되기도 하고 전화 도청자가 되기도 했다. 엄마는 딸의 의심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좋은 남자 만나서 시집가라는 씨도 안 먹히는 얘기가 부쩍 늘었을 뿐이다. 이렇다 할 증거도 없이 마음만 졸이던 나날들, 뒷조사에 지친 딸은 어느날 술에 만취해 들어와 엄마에게 퍼부어 댔다. 다 늙어서 웬 바람이냐, 딸 자식들 시집 보낸다는 사람이 행실이 그래서 시집 잘도 보내겠다, 시집 같은 거 아예 포기했으니 엄마나 실컷 즐기고 다니라고...

 

쓰린 속보다 더 헤집어진 마음을 다 잡으며 딸은 보따리를 쌌다. 딸을 데리고 혼자 살고 있는 친구에게 잠시 얹혀 살아도 되겠느냐는 전화를 넣고 막 일어나는 참, 전화벨이 울린다.

"엄만데, 오후에 신촌으로 나와."

엄마의 목소리는 술 주정한 딸을 책망하는 것도, 엄마의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것도 아니었다. 김치 맛있게 담가 놨으니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는 예의 사랑이 묻어나오는 목소리였다. 갑자기 눈물이 솟구쳐 나왔다. 뭔가 잘못되어가는 일을 제 힘으로는 어쩌지 못해 베개에 얼굴을 묻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답답함을 울음으로 삭이는 것이었다.

 

"엄마 친구야."

맘 좋게 생긴 남자는 풍채도 커서 해를 등지고 서면 엄마에게 큰 그늘이 드리웠다. 엄마보다 5, 6년 연상은 될 듯한 까까머리에 개구리 군복을 입은 남자, 작은 엄마의 소개로 만나 가족들 몰래 10년을 사귀어(?) 온 엄마의 연인이었다. 딸들 다 시집 보내고 같이 살기로 약속한지 10년. 서른이 되어도 시집갈 생각을 안 하는 큰 딸, 대학원 마치고 유학 간다는 둘째 딸, 이제 갓 스물이 된 늦둥이 막내 딸까지, 두 사람의 결합은 멀고 먼 바람에 지나친 것이었다. 처연한 엄마와 엄마의 남자를 보며 딸은 지난 세월이 너무나 아쉽고 미안했다. 세월만으로도 대죄를 지은 것인데, 엄마를 형편없는 여자로 취급했으니 죽어도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10년 가까이 그래왔듯이 연신 엄마의 그릇 위로 고깃점을 올려주었다. 말썽 많은 큰딸의 눈치가 보였는지 많이 먹으라고 한 마디 건넨다. 그 동안 속여서 미안하다며 그을은 손으로 까까 머리를 쓸어 넘기는 수줍은 남자를 보며, 딸은 밥알과 함께 짭짤한 콧물을 넘겨야 했다. 어쩌면 엄마가 딸에게 늘 얘기한 명이 긴 남자, 자상한 남자, 성실한 남자는 바로 이 사람일지도 모른다. 딸의 입에선 울음과 웃음이 섞인 한 마디가 튀어 나왔다.

 

"엄마 먼저 시집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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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4-01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뭐라 말해야 할 지.......
한 편의 훈훈한 드라마를 본 듯한 느낌입니다. 어머님과 어머님의 연인의 사랑, 님의 마음...다 아름답습니다.

별점에의미안둠 2004-04-17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니눈물이조금씩나오네요...

panggui 2004-04-17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세이 한 편을 써야 하는데 글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였지요. 제 어머니 얘기를 쓰면서 참 송구스럽고 괴로웠습니다. 이렇게까지 해서 먹고 살아야 하나? 하면서 말이죠.
엄마를 포함해 모든 분들이 좋았노라 용기를 주셔서, 이렇게 뻔뻔하게 살고 있습니다.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