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가이드북 - 삶을 여행하는 초심자를 위한
최준식 지음 / 서울셀렉션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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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최준식 교수는 이화여대 명예 교수로

한국죽음학회를 발족 시키고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종교, 죽음, 사후 세계 그리고 한국문화에 관한 책을 다수 펴냈다


이 책을 고르게 된 것은 신간 목록을 보다가 제목에 이끌려서였다

내용을 알고 모르고에 따라 제목을 자칫 오해할 수도 있겠다 싶다


글자 그대로 제목만 놓고 보면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죽음을 가이드 하는 책이라니

죽는 방법이라도 알려준다는 것인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제목을 설명하고 있는 말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삶을 여행하는 초심자를 위한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본문에서 저자는 삶이 여행이라면 죽음 역시 여행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 말은 곧 죽음이 끝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어떤 삶이 있다는 것이다


사후생을 믿고 안믿고는 개인의 문제니까 각자 알아서 하면 된다

그것과 상관없이 이런 책을 한번쯤 읽어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해 당신은 어느쪽인가?


영혼을 지닌 몸이냐,

몸을 가진 영혼이냐


무슨 말이냐 싶겠지만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래본다

이것에 관해선 뒤에 가서 이야기해 볼 것이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와보자면

죽음 가이드라고 하니까 뭔가 으스스할 것도 같지만

책 내용을 보자면 전혀 그렇지 않다


여기서 말하는 가이드라는 것은 피할수 없는 죽음에 대해

죽음을 맞기 전 준비해 두면 좋을 마음 가짐에 대한 안내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다음과 같은 차례를 살펴본다면 대략적으로나마 어떤 책인지는 짐작할 수 있을것 같다


1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_죽음의 성찰

2 세상을 떠나다_삶의 마지막 모습

3 죽음의 문을 열었던 사람들_근사체험

4 죽음 너머 삶_사후세계

5 또 다른 생의 삶_전생과 환생

6 다시 삶을 위한 죽음의 교훈_삶의 성찰



차례를 봤을 때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1, 2, 6장에서는 죽음 이전의 삶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고

3, 4, 5장은 죽음 이후에 관한 것이라 하겠다


죽음 이후는 아무것도 없다는 단멸론적 입장이라면 저자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본문에서 소개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 가운데 먼저 인상적이었던

건축가 정기용의 말을 옮겨와 보았다


"나이가 들고 늙을수록 조금은 철학 공부를 해야 되는것

같다. 오히려 철학적이어야 된다. 죽는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옛것을 돌아보고 회상하고 추억하고 눈물을 흘리고 그런 것이

아니라, 산다는 게 무엇인지, 왜 사는지,세상이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았는지, 가족은 무엇인지, 친구는 무엇인지,

건축은 무엇인지, 도시는 무엇인지 하는 근원적인 문제들을 다시

곱씹어 보고 생각하고 그러면서 좀 성숙한 다음에 죽는 게 좋겠다.

한마디로 위엄이 있어야 되겠다. 밝은 눈빛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죽음과 마주하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다."

_62p


정기용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2011년 타계하기 몇 달 전 촬영)에서



정기용의 말 가운데 밝은 눈빛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죽음과 마주하는 인간이 되고 싶다는 구절이 인상적이었는데

언제 어떤 죽음을 맞을지 우리는 선택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닥칠 그 죽음과 마주하려는 정신을 느낄수 있었다


여기에서 저자가 속한 한국죽음학회의 표어를 소개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라고 하는데

앞서 소개한 정기용의 말과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다


평소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 두었다면 죽음이 닥친다고 해도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대지 않을 것이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생각을 해보고 안해보고의 차이는 분명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타인의 임종을 겪어보게 마련인데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의 경우 슬픔이 큰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에 이 책에서는 임종 시 주의해야 할 일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당사자가 임종하면서 호흡을 모으면 절대로 목 놓아 울거나

그의 몸을 흔들거나 소리쳐 부르며 시끄럽게 해서는 안 되네.

그런 행동은 떠나는 사람의 정신을 어지럽게만 할 뿐 아무

이익도 없다네. 정 슬픔이 북받쳐 울음을 참지 못하겠거든

몇 시간 후 그 영혼이 완전히 떠난 다음에 울어야 하네.

_048p

원불교 교전축약 발췌


물론 이런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지만 막상 닥친 슬픔에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말이 안되는 점도 있다

다만 이런 점도 있으니 한번쯤 생각해 두자는 것일 뿐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임사 체험과 사후 생에 대해 여러 예를 들어

현재의 삶을 잘 살아야 사후 생이나 다음 생을 잘 살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의 의견은 존중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입장도 많을 것이다 나 역시 현생은 현생으로 끝날 뿐이라는

입장이다보니 크게 와닿지 않는 내용이어서 따로 소개하지는 않는다


이 책을 펼쳤을 때 처음 다짜고짜 시 한 편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시가 참 인상적이어서 함께 나눠보고자 읽어본다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마세요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마세요.

나는 거기에 없습니다.

거기에 잠들어 있지 않답니다.

나는 천 갈래의 바람이 되어

저 넓은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가을에는 햇살이 되어 밭을 비추고

겨울에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눈이 되겠습니다.

아침에는 새가 되어 당신을 깨워드리고

밤에는 별이 되어 당신을 지켜보겠습니다.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마세요.

나는 죽은 것이 아니랍니다.

나는 천 갈래의 바람이 되어

저 커다란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 저자 미상


고인이 묻혀있는 무덤이든 납골당이든 살아남은 우리는 거기로 가보곤 하는데

그런 장면을 떠올려보면 씁쓸한 웃음이 나오는 시라서 한참을 생각에 잠기게 했다


단멸론적 입장이더라도 언젠가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음 생이 있거나 없거나 그것에 대해선 우리가 손 쓸 수 없는 영역이니까

일단 제쳐둔다 치더라도 반드시 다가올 자신의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그런 준비가 되어 있다면 막상 자신의 죽음이 닥치고 있을 때 제대로

죽음과 대면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던진 질문


영혼을 지닌 몸이냐,

몸을 가진 영혼이냐 라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몸을 영원히 떠나는 행위일 뿐이다.

여기에 동의한다면 나는 영혼을 지닌 몸이 아니라 몸을 가진 영혼임을

받아들일 수 있다. 사람은 죽지 않는다. 단지 몸만 죽을 뿐이다.

128p


몸이 죽을 때 영혼도 함께 죽으면서 그것으로 끝난다고 생각하든

몸만 죽을 뿐 영혼은 죽지 않는다고 생각하든 각자의 생각이 있을 것이다

하루하루 살기에도 바쁜데 언제 올지 모를 죽음이라는 것에 이렇게

신경쓰는 건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도 있다


죽음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오로지 한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절대적으로 개인의 몫인 일이다 그러니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

각자 알아서들 하길 바란다는 말을 전하며

리뷰 같지도 않은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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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데라 옹 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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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무질의 특성없는 남자 출간 러쉬(같다)
북인더갭에서 1,2권 출간 후 8년 만에 3권과 합본이 나온게 2021년인 것을 생각해보면 22년과 23년 1년 간격을 두고 나름 큰 출판사라할 수 있는 나남과 문동에서 특성없는 남자를 출간했으니 과히 러쉬라 하지 아니할 수가 없겠다 과연 몇 권이나 팔릴까 싶은 이 책을

하지만 두 출판사 모두 한가지 함정을 판것은 공히 ‘완역‘이 아니면서 완역이라고 구라를 치고 있다는 것
눈밝은 어느 독자에 따르면 독문판 전자책 분량 기준으로 봐도 이 두 출판사가 펴낸 것은 대략 1/3 가량이 번역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인더갭 판본은 더더욱 분량이 적다는 점

정리하자면
북인더갭 1,2부
나남, 문동 1, 2, 3부

소설 특성없는 남자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이번 출간된 판본에 3부가 포함 되어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할 것이고 아직도 번역되어야할 부분이 남아 있다는 것도 기억하자 그런데 과연 지금 ‘완역‘이라고 뻥치고 있는데 추후 추가로 출간할까 싶다 레알 완역본이 나온다면 다른 출판사가 되지 않을까 싶지만 쉽지 않은 번역과 분량을 생각하면 요원한 일 이겠지

북인더갭 1, 2권 샀다가 합본이 나와 팔고 합본 구입
그런데 이렇게 내용이 추가된 판본이 나왔으니 또 사야하긴 하겠는데 다른 곳에서 진짜 완역해 내는거 아닌가 하면 보류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설마 싶기도 하고


참고 삼아 각 출판사의 차례 제목과 첫문장을 따와 봤다

북인더갭 (합본 21년0930)
1부 서문의 한 방식
1. 주목할 만한 방식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19. 훈계의 편지, 그리고 특성을 얻을 기회. 두 왕위 계승자의 싸움

2부 그렇고 그런 일이 벌어지다
20. 현실의 느낌. 특성의 결여 대신
123. 방향 전환

나남출판 (22년 0305)
제1부 일종의 도입부
1. 주목할 만하게도, 여기서는 아무 일도 더 일어나지 않는다
19. 경고 편지와 특성을 얻을 기회. 경쟁하는 두 제국

제2부 늘 똑같은 일만 일어난다
20. 현실과의 접촉. 특성의 결핍에도 불구하고 울리히는 추진력 있고 열성적으로 처신하다
123. 전환

제3부 천년왕국으로(범죄자들)
1. 잊고 있던 누이
38. 위대한 사건이 일어나는 중이다.하지만 아무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다

문학동네 (23년0320)
제1부 일종의 머리말
1. 여기서는 어떤 일도 주목할 만한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19. 편지 훈계, 특성을 얻을 기회. 두 왕가의 즉위 기념식 경쟁

제2부 비슷비슷한 일이 일어나다
20. 현실과의 접촉. 특성의 결핍에도 울리히는 과단성 있고 열정적으로 행동하다
123. 반전

제3부 천년제국으로(범죄자들)
1. 잊고 있던 여동생
38. 한 위대한 사건이 태동중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첫문장들
대서양 상공 위로 저기압이 걸쳐 있었다.(북인더갭)
대서양 위에는 저기압이 자리 잡았다.(나남)
대서양 상공에 기압계상 최저기압이 자리하고 있었다.(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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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제안들 31
에두아르 르베 지음, 한국화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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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나를 엄습하고
젊음은 나를 떠나고
기억은 나에게 남는다

행복은 나를 선행하고
슬픔은 나를 뒤따르고
죽음은 나를 기다린다

_113

2016년 3월 읽은 르베의 소설 ˝자화상˝의 거울 같은게 이 소설인것 같다
자화상의 거의 모든 문장이 ‘나‘로 시작한다면 이 소설에선 ‘너‘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결국 좌우가 뒤집힌 것이다
거울 앞에 섰을 때 그 거리를 자기객관화의 거리라 한다면 거울 속의 뒤집힌 나는 곧 ‘너‘가 된다

자화상은 2005년 출간 되었고 2007년 소설 ˝자살˝의 원고를 출판사에 보낸다 자화상을 쓰며 또는 자살을 쓰며 두 원고를 동시에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이 소설을 읽게 되는 독자들 가운데 작가의 죽음과 소설의 관계를 모른채 작품을 펼쳐드는 경우는 희박하리라 본다
그렇게 이 소설을 읽자면 소설을 가장한 자기고백적 회고의 기록이겠지 한다

자살이라는 다소 자극적? 제목이 싫어 쳐다도 안볼 인간들도 있겠지 어쩌겠나

대부분의 또는 어떤 소설은 결국 작가 자신의 체험에 기반한 회상에 속한다
소설 속 ‘너‘를 가공의 존재로 설정한다 해도 작가는 자신 속에 들끓는 이야기를 저마다의 방식과 표현으로 쏟아내는것 말고 달리 쓸 게 없다
르베의 경우 우리는 모를수밖에 없지만 결과론적 정황과 이 작품을 놓고봤을 때 이미 작품의 구상 단계에서 어떤 결심을 했을 것이라는게 합리적 의심일 것이다

어쩌면 바로 이것이 네가 두려워 하는 것이었다. 여전히 숨 쉬고, 마시고, 먹는 육체 안에서 무력해지는 것. 천천히 자살하는 것.
_73

인간은 거울에 비친 자기를 자기로 인식한다 그러면서도 마치 타인을 대하듯 멀찍이 자기를 떼어낼 수도 있다
소설 ˝자살˝에서는 끊임없이 ‘너‘라는 대상을 소환하는데 거울 속에 내가 있기 위해선 거울 밖의 내가 있어야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너의 삶은 하나의 가설이다. 늙어서 죽는 사람들은 과거의 집합체다. 그들을 생각하면, 그들이 한 것들이 나타난다. 그러나 너를 생각할 때는, 네가 될 수 있었던 것들이 따라온다. 너는 가능성의 집합체였고 그렇게 남을 것이다.
_16

너는 내가 원할 때 나에게 말하는 한 권의 책이다. 너의 죽음은 너의 삶을 썼다.
_17

너는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너는 죽음을 추월했지만, 진실로 원하지는 않았다. 어떻게 모르는 것을 원할 수 있단 말인가? 너는 삶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미지에 대한 확고한 취향이 있었고, 만약 다른 쪽에 무엇인가 존재한다면 여기보다 나으리라고 확신했다.
_24

네가 행복하거나 걱정이 없을 때 거울을 보면 너는 누군가였다. 불행할 때의 너는 아무도 아니었다.
_43

너는 네 삶의 모든 날짜가 죽는 날까지 적힌 완벽한 스케줄 수첩을 꿈꿨다.
_67

너의 최후는 계획적이었다.
_84

하지만 결국에는 죽음이라는 소강상태가 네 삶의 고통스러운 동요를 이겼다.
_99

죽을 작정을 하고 죽음에 관한 소설을 쓴다면 어떤 소설이 되어 나타날까
길든 짧든 한 인생을 포괄하는 글쓰기가 가능하다할때 그렇게 쓰여지는 인생과 그렇지 못한 인생에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한 사람에 대한 지독한 회상(그게 자기 자신이라해도)을 읽는다
자신을 잘 아는건 누구보다 자신이기에 그에 대한 연민과 증오 역시 겉으로 보기엔 솔직하지 않을까
읽어갈수록 나는 이 소설이 결국 자신에 대한 회상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굳혀졌으므로
자신의 체험이나 주장을 알게 모르게 녹여 소설이라는 껍데기 안에 은근슬쩍 섞어버리는게 소설가들의 직업병 아니던가
그걸 읽는 독자들 역시 정독과 오독 사이를 오가며 입맛대로읽어치우는 족속들이니
읽고 싶은 방향대로 마음 내키는대로 읽었다

출간 되리라 기대도 않던 작품을 오랜 시간이 지나 만났다는 기쁨으로 읽었다


삶이 나에게 제안되었고
내 이름이 나에게 전해졌고
내 몸이 나에게 강요되었다
_102

태어나는 것은 나에게 일어난 일이고
사는 것은 나를 차지하는 일이고
죽는 것은 나를 끝내는 일이다
_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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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 일기 세라 망구소 에세이 2부작
세라 망구소 지음, 양미래 옮김 / 필로우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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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써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쓰기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쓰지
않고는 시간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 방법을 단 한가지도
떠올릴 수 없었다.
8

고등학생 시절에 쓴 일기장은 이미 갈가리 찢어버렸다.
다른 사람이 못 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보지
못하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싶지는 않은 것 같다.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일만 기억하고, 그 일이 전부였다는
확신을 품고 싶다.
25

과거의 교훈을 기억하라. 미래의 가능성을 상상하라.
그리고 현재에, 기억을 동원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시간인 현재에 몰두하라.
32

시간이 흐른다는 것의 가장 좋은 점은 시간을 다
써버리는 특권, 필멸의 파도가 나 그리고 내가 아는 모든
사람 위로 부서지는 광경을 지켜보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는 데 있다. 더 이상의 시간도, 더 이상의 잠재력도
없다. 모든 것을 배제하는 특권. 끝내는 특권. 내가
끝났음을 아는 특권. 그리고 나 없이도 시간은 계속
이어질 것임을 아는 특권.
88

...5년 동안 내가 ‘안‘았던...
내가 ‘알‘았던
27


잊지 않기 위해 쓰기도 하고 씀으로써 잊기도 하고
독자를 배제한 글쓰기, 그걸 일기라고 할때
과연 그것을 상업적 출판물로 재생산 하는 것이 필요한 걸까
그런 생각과 별개로 꼭 ‘필요‘에 의해서만 돌아가는게 세상은
아니라서 필요보다 불필요 그 자체가 내 삶은 아닌가 하니
필요를 갖고 왈가왈부할건 없겠다

초중반부를 넘어가며 이어지는 출산과 육아에 관한 일기들이 읽기에 대한 기대치를 완전히 식혀버렸다
뒷쪽의 세계 각처 추천의 말은 주례사 추천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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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5-01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 저랑 비슷한 경험이...

저는 고등학교 때 쓴 일기
장 모두 불태워 버렸답니다.

어쩌면 우린 모두 비슷한
시기를 통과하는 게 아닌가
싶네요.

얄븐독자 2023-05-01 20:34   좋아요 1 | URL
책장 어딘가에 태워버려야할 일기장이 있긴합니다 태우긴해야하는데 란 생각만 한 세월이... 동시대를 겪다보면 반응도 비슷한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