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제안들 31
에두아르 르베 지음, 한국화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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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나를 엄습하고
젊음은 나를 떠나고
기억은 나에게 남는다

행복은 나를 선행하고
슬픔은 나를 뒤따르고
죽음은 나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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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읽은 르베의 소설 ˝자화상˝의 거울 같은게 이 소설인것 같다
자화상의 거의 모든 문장이 ‘나‘로 시작한다면 이 소설에선 ‘너‘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결국 좌우가 뒤집힌 것이다
거울 앞에 섰을 때 그 거리를 자기객관화의 거리라 한다면 거울 속의 뒤집힌 나는 곧 ‘너‘가 된다

자화상은 2005년 출간 되었고 2007년 소설 ˝자살˝의 원고를 출판사에 보낸다 자화상을 쓰며 또는 자살을 쓰며 두 원고를 동시에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이 소설을 읽게 되는 독자들 가운데 작가의 죽음과 소설의 관계를 모른채 작품을 펼쳐드는 경우는 희박하리라 본다
그렇게 이 소설을 읽자면 소설을 가장한 자기고백적 회고의 기록이겠지 한다

자살이라는 다소 자극적? 제목이 싫어 쳐다도 안볼 인간들도 있겠지 어쩌겠나

대부분의 또는 어떤 소설은 결국 작가 자신의 체험에 기반한 회상에 속한다
소설 속 ‘너‘를 가공의 존재로 설정한다 해도 작가는 자신 속에 들끓는 이야기를 저마다의 방식과 표현으로 쏟아내는것 말고 달리 쓸 게 없다
르베의 경우 우리는 모를수밖에 없지만 결과론적 정황과 이 작품을 놓고봤을 때 이미 작품의 구상 단계에서 어떤 결심을 했을 것이라는게 합리적 의심일 것이다

어쩌면 바로 이것이 네가 두려워 하는 것이었다. 여전히 숨 쉬고, 마시고, 먹는 육체 안에서 무력해지는 것. 천천히 자살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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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거울에 비친 자기를 자기로 인식한다 그러면서도 마치 타인을 대하듯 멀찍이 자기를 떼어낼 수도 있다
소설 ˝자살˝에서는 끊임없이 ‘너‘라는 대상을 소환하는데 거울 속에 내가 있기 위해선 거울 밖의 내가 있어야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너의 삶은 하나의 가설이다. 늙어서 죽는 사람들은 과거의 집합체다. 그들을 생각하면, 그들이 한 것들이 나타난다. 그러나 너를 생각할 때는, 네가 될 수 있었던 것들이 따라온다. 너는 가능성의 집합체였고 그렇게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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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가 원할 때 나에게 말하는 한 권의 책이다. 너의 죽음은 너의 삶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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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너는 죽음을 추월했지만, 진실로 원하지는 않았다. 어떻게 모르는 것을 원할 수 있단 말인가? 너는 삶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미지에 대한 확고한 취향이 있었고, 만약 다른 쪽에 무엇인가 존재한다면 여기보다 나으리라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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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행복하거나 걱정이 없을 때 거울을 보면 너는 누군가였다. 불행할 때의 너는 아무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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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네 삶의 모든 날짜가 죽는 날까지 적힌 완벽한 스케줄 수첩을 꿈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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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최후는 계획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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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국에는 죽음이라는 소강상태가 네 삶의 고통스러운 동요를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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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작정을 하고 죽음에 관한 소설을 쓴다면 어떤 소설이 되어 나타날까
길든 짧든 한 인생을 포괄하는 글쓰기가 가능하다할때 그렇게 쓰여지는 인생과 그렇지 못한 인생에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한 사람에 대한 지독한 회상(그게 자기 자신이라해도)을 읽는다
자신을 잘 아는건 누구보다 자신이기에 그에 대한 연민과 증오 역시 겉으로 보기엔 솔직하지 않을까
읽어갈수록 나는 이 소설이 결국 자신에 대한 회상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굳혀졌으므로
자신의 체험이나 주장을 알게 모르게 녹여 소설이라는 껍데기 안에 은근슬쩍 섞어버리는게 소설가들의 직업병 아니던가
그걸 읽는 독자들 역시 정독과 오독 사이를 오가며 입맛대로읽어치우는 족속들이니
읽고 싶은 방향대로 마음 내키는대로 읽었다

출간 되리라 기대도 않던 작품을 오랜 시간이 지나 만났다는 기쁨으로 읽었다


삶이 나에게 제안되었고
내 이름이 나에게 전해졌고
내 몸이 나에게 강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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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는 것은 나에게 일어난 일이고
사는 것은 나를 차지하는 일이고
죽는 것은 나를 끝내는 일이다
_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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