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라쉬 브런치 -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 동유럽 독서여행기
윤미나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말이면 어떤 의무감으로 자전거를 타지 않으면 드는 막연한 찜찜함과 정체불명의
불안에 우왕좌왕할게 뻔한 일이었는데 느즈막히 눈을 뜬 오늘은 나가지 않아도 될 것
같고 오히려 나가지 않고 처박혀 있어야만 하는 기분에 휩싸였다. 이런 주말 오전이
자전거를 탄 이래 과연 있었나 싶을 만큼.
오늘은 하루종일 이부자리도 그냥 둔채 그 속에서 책장이나 넘기고 싶은 그런 날이다.

여행기를 잘 보지도 않지만 본다고 해도 사진만 건성으로 넘기다가 마는데, 그것은
어딜가면 뭐가 맛있더라 어디는 뭐가 멋지더라와 같은 내가 살짝 경멸하거나 증오해
마지않는 것들에 대해 열광하는 모습들이 싫기 때문이다. TV에서도 저녁 시간만 되면
맛있다고 난리들을 치는 일명 '맛집'프로그램들 투성인데 도대체 그렇게 찍어대면
콩자루만한 남한에 맛없는 집이 남아나기나 할까? 도대체 혓바닥을 자극하는 맛이란게
얼마나 맛있을수가 있을까? 맛에 집착하는 모습들이 가히 좋아보이지도 않고 오버를
유도하는 카메라의 시각도 극히 혐오스럽다. 인간은 적당히 좀 처 먹고 살아도 된다.

이런 생각이 가득한 사람이 보기에 이 책은 꽤나 마음에 든다. 많은 여행기를 읽어본
건 아니지만 어쩌면 처음으로 저자의 동선을 따라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곳곳에서 들춰내는 이야깃거리들에 마음이 동하지 않을수 없다. 저자가 말하는 책들을
찾아보고 찜해놓는다. 어디가서는 어떤 영화를 이야기해 주고 어떤 곳에서 이야기해
주는 책들은 당장이라도 질러야할것 같은 조바심 마저 든다면 이 책은 내 꽈가 확실하다.

누군가 충실한 안내자가 있다면 꼭 한번 프라하에 가서 카프카의 집이나 그가 산책했다는
골목을 걸어보고 싶다는 바람이 생긴다. 이런 것도 뭘 알아야 보이는 것이라서 무턱대고
일단 가고보자는 식의 여행은 끔찍하게 싫기 때문에 그냥 쫄쫄쫄 따라다니면서 안내받는
그런 싱겁고 재미없는 여행이라야 가능할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까지 뭐가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에 떨며 이국의 골목을 배회하는 건 질색. 이러니 절대로 외국 여행을 갈 수가
없지.
즐기고 놀자판으로 가는 동남아나 중국은 질색이고 저어기 춥고 습한 이미지가 물씬 풍기
는 북유럽이나 동유럽이라면 다녀볼만하지 않을까 싶다. 왁자지껄하고 관광객 투성이인
파리나 런던도 그닥 마음에 들지 않지만 우산을 상비하고 다녀야 하는 변화무쌍한 런던의
날씨는 한번쯤 조우해 보고 싶기도 하다만 그래도 뭐 그냥 그닥.

생각해보면 산다는 게 허기를 채우는 것과 다를 게 뭐냐 싶다. 여행을 하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관계를 맺는 것도 결국은 서로 다른 종류의 허기를 채우는 일이 아니겠는가.


심히 공감이 가는 말이다. 끊임없이 뭔가를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바쁜 현대인들은 마음이
허해서 더더욱 먹거리에 열중하는 건 아닐까. 한 이틀 죽으로 끼니를 대신해서 그런지 오늘 하루
끊임 없이 이것저것을 먹어댔다. 일단 뭔가 채워졌다는 포만감이 허기를 지우고나서야 없던 여유
가 생기는 건 확실히 먹는다는 게 얼마나 기본적인 조건인지 확인시켜준다.

카프카의 글은 행간마다 슬픔이 비비적대는 문장들이 마음을 할퀴어서 좋다. 슬픔의 끈질긴
점성은 도리 없이 매혹적이다.


카프카를 읽은 건 달랑『변신』한 작품 정도인데 카프카를 제대로 읽어봐야하지 않나 하는 열망이 불끈!

"밥 같은 건 먹지 않고 공기로만 어떻게 살아갈 수 없을까."
-쥘 르나르 『홍당무』


내 마음을 이토록 적확하게 표현해 주다니!!!
이 얼마나 반가운 말이든지... 정말로 이렇다면 식량으로 인한 엄청난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신이 있다면)신은 어찌하여 인간으로 하여 먹어야 하도록 했을까?

내게 행복은 본디 여집합이다. 감당해야 할 것들을 감당하고 견뎌야 할 것들을 견디고
났을 때 그제야 존재감을 얻는 것, 그래서 황송하기 짝이 없는 것. 그런데 어떤 사람에
게는 그것이 그저 쉽기만하다. 이상하게도 그들의 행복 꽃가루는 내 몸속에 행복을 전
염 시키는 대신 이물질이 되어 나를 가렵게 한다.


하지만 나는 사람 많은 대로변보다 누가 각혈을 해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적적한 골목길이
더 좋았다. 때로는 막다른 골목도 무방하다. 골목은 세상으로부터의 이지메가 아니라 배려이
다. 너만의 시간을 도려내 호주머니에 넣어도 좋다는 배려.

삶에 감탄하기만 하는 사람은 아둔하고, 삶을 두려워하기만 하는 사람은 우울하다.


후자에 가까운 사람으로써 그렇다하더라도 어쩔수 없는 게 아닌가... 감탄 보다는 두려움이
더 가득한 게 현실의 냉혹함이라고 체득한 사람이라면. 감탄만 하더라도 그 사람의 삶이 행복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행복이라는 대전제를 향해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돌진하고 있다.
행복만 하다면야 뭐... 그런 생각들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다른 인간에 대하여 인간임을 트집 잡을 수는 없다.

살아 있음이 수모이고 잡식의 습관이 수치다. 버릇이 된 생존본능과 알량한 허무가
매일매일 육박전을 벌인다. 못할 짓이다.


아지랑이의 별, 화내는 별, 갉아먹히는 별, 호기심의 별, 운명이 갈리는 별, 지금부터의 별….
지금부터의 별은 모든 것이 '지금부터다'라고 믿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별이다. 어쩌면 가
능할 것이다. 몇몇 사람들의 끝없는 갱신 의지가 정말로 우리 삶의 터전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고백은 자신의 결벽적인 자아를 주체하지 못하고 타인을 고문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먹고 놀고 사진찍기 바쁜 여행서의 저자들은 놀기 바빠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한다.
단지 보여주기만으로 이야기 하기를 대체해버린다. 여행을 하면서 나올수 있는 자기 이야기는 없고
조그만 수고만 하면 다 아는 사실만 열거하기 바쁘다. 그런 여행서는 재미도 감동도 없다. 어쩌면
여행서를 통해 그 여행자의 인간적인 여행이야기가 더 궁금할지도 모르겠다. 실용적인 여행서 보다
딴 이야기를 하는 이런 여행서를 쓴다면 그런 여행이야말로 떠나봐야 하는 여행이 아닐까.
어찌보면 날것 그대로의 감정과 어투로 들려주는 이야기에 홀려 단숨에 읽어내려 간것 같기도 하다할
만큼 저자의 입담 또는 필력이 매력적이다. 번역가라는 생업이 한몫 하기도 했겠지만 그것만이라
하기엔 저자의 이야기에 묻어나는 진정성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일상의 생활인에서 벗어나 여행지를 떠다니는 여행자가 된다는 것은 질퍽한 현실에서 발을 빼
현실이라는 땅바닥에 발을 딛지 않고 사는 것과 거의 같은 것이다. 여행을 갈망한다는 것은 그런
것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행을 동경하지만 그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진흙발인 채로
날마다 같은 발자국을 찍으며 같은 거리를 왕복하고 있다. 쇼윈도의 마네킹과 온갖 공산품들을
보면서 TV화면에서나 보는 여행지를 동경하면서.
진흙 범벅이 된 발을 씻고 새하얀 발에 신발을 신기고 가는, 떠날 수 없는 여행을 책장이 한 장 한 장
넘어갈 때마다 해본다. 그런 설레임을 가지기에 이 책은 충분한 역할을 다하고 있다. 간만에 그런 설렘을
가져 봤다. 물론 나는 떠나지 못하겠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에 미친 바보 - 이덕무 산문집, 개정판
이덕무 지음, 권정원 옮김, 김영진 그림 / 미다스북스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외롭고 높고 쓸쓸한 - 시인 백석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이덕무


다들 외롭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고 편리를 위해 저 낮은곳으로만 가기 바빠 줄달음
치는 세상에서 이 선비의 말과 글을 읽고 있노라면 지하철 문이 열리고 우르르 몰려
가는 대열을 무조건적으로 따라가 마치 공장 컨베이어벨트 위의 물건들처럼 에스컬
레이터로 운반되어지는 아침나절의 우울한 풍경은 과연 내가 성취코자 하는게 무엇
인가 그것이 어디에 있길래 이런 길을 가고 있나 그런 생각마저 든다
쓸쓸함 따위의 감정은 헌신짝 버리듯 갖추고 있어선 안되는 것인냥 하는데
자신을 돌아보고 다시 한번 자신을 다잡는 시간은 혼자일 때라야 가능하고 그런걸
쓸쓸하다라고 하면서 도피하거나 회피하려들지만 그래선 안된다. 자발적인 쓸쓸함에
익숙해져보면 사람들 속에 갇혀 있을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마련이다. 그렇듯
쓸쓸함에 익숙하게 길들여진 사람이 있다면 내가 그 사람을 알아보고 아마도 그 사람
도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싶지만 그런 기대는 하지 않는다.

나를 알아주는 벗

만약 나를 알아주는 한 사람의 벗을 얻는다면, 나는 망설임없이 10년 동안 뽕나무를 심고
1년 동안 누에를 길러 손수 오색실을 물들일 것이다. 10일에 한 가지 빛깔을 물들인다면
50일이면 다섯 가지 빛깔을 물들일 수 있으리라.
이것을 따뜻한 봄볕에 내놓고 말려서 여린 아내에게 부탁해 백 번 달군 금침바늘로 내 벗의
얼굴을 수놓게 하리라. 그런 다음, 고운 비단으로 장식하고 예스러운 옥으로 막대를 만들리라.
이것을 가지고 뾰족뾰족하고 험준한 높은 산과 세차게 흐르는 물이 있는 곳, 그 사이에 펼쳐놓고
말없이 서로 바라보다 뉘엿뉘엿 해가 저물 때면 품에 안고 돌아오리라.

마음에 맞는 시절에 마음에 맞는 벗과 만나 마음에 맞는 말을 나누며 마음에 맞는 시문을 읽는 것,
이것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다. 그러나 어째서 이런 지극한 즐거움이 드문 것인가.
이러한 즐거움은 일생에 단지 몇 번 찾아올 뿐이다.



... 내 웃음 속에 감춰둔 날카로운 칼과 마음속에 쌓아둔 만 개의 화살, 그리고 가슴속에 숨겨둔 서 말의
가시가 일시에 깨끗이 사라져 한 가닥도 남지 않는다.



『한서』와『논어』로 병풍과 이불을 삼아 한겨울 밤을 나는 장면이나 영양실조로 여동생을 일찍 보낸
그의 가슴속에 어떤 감정이 실려 있었는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간다. 서얼 출신이라는 태생적인 한계와
그로인한 빈한함에서 오는 장남으로써의 책임감을 다하지 못하는 자괴감이 그 자신 속에 숱한 응어리를
쌓게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일생은 굳고 정한 갈매나무처럼 당당하고 꿋꿋했다.

요즘 세상에도 이덕무 처럼 인생을 건너는 사람이 있다면 모두가 다 바보라고 손가락질하겠지.
그렇다하더라도 이백여 년 전에 살다간 이덕무 같은 발자취를 흉내도 내지 못하고 있는 자신에 우왕좌왕
하는 건 왜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 위에 씌어진 시작시인선 131
최승자 지음 / 천년의시작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그는 지금쯤 얼마나 가 있을까 어차피 가야하는 길의 순리 가운데 자연스레 놓여있는것이라면
그냥 그대로 無와 虛 사이에 있는 시간을 좀 더 지켜볼 수 있기를 한 독자로써 바랄뿐 

되도록 허름한 생각들을 걸치고 산다
허름한 생각들은 고독과 같다
고독을 빼앗기면
물을 빼앗긴 물고기처럼 된다

/.../

지극한 無로서의 虛를 위하여
虛無가 아니라 無虛를 위하여
허름한 생각들은 아주 훌륭한 옷이 된다
 「하늘 도서관」가운데


그는 아직도 "나는 평범한 詩人인지라/아직도 풍덩풍덩 잘 빠집니다"라고 하지만
시인 진은영이 "매일 전철을 타고 가며 그녀를 상상했었다. 이 많은 사람들 사이, 만약 당신이 앉아 있다면
내가 찾아낼 수 있을까? 우리들의 시인, 최승자에게"라고 했듯 최소한 여기에서 말하는 우리에게 아직은
당신은 평범한 시인이 아니다. 그리고 계속 지금처럼 풍덩풍덩 꿈에 빠졌으면 좋겠다. 그것도 우리의 꿈이다.

세상이 펼쳐져 있는 한
삶은 늘 우울하다

인생은 병이라는 말도 이젠 그쳤고
인간은 언어라는 말도 이젠 그쳤고

서서히 말들이 없어진다

/.../

(사람이 사람을 초월하면
자연이 된다) 「서서히 말들이 없어진다」가운데

우는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 더이상 울지 않으면 아이가 아니고 시인이 언어라는 말을 그치면
시인이 아닐 것인데 말들이 없어진다고 하니 불길한 징조다. 말들이 자취를 감추고 멸종된 세상에서
시인은 생존할 수 없다. 자연은 삶과 죽음 모두를 품고 있고 우리가 자연이 되는 길은 이제 사람을
초월하여 죽음이 되는 것이다. 시집 곳곳에 징후가 만발해 있지만 이미 거기에서 되돌아온듯 시인은 초연하다.

(오늘 죽음의 영수증을 받으러 갔다/'당신의 죽음을 정히 영수합니다')  「저기 갑 을 병 정이」가운데

그러니 몸뚱아리라는게 얼마나 거추장스럽겠나

육체는 먹자 하고
육체는 눕자 하고
육체는 쉬기만 하자 하고
아아 너무도 무거운 이 육체 공화국
「육체 공화국」가운데


한 인간은 누구에게나 하나의 먼 풍경

이 식은 詩 한 사발 속에
나는 무엇을 쓰고 싶은 걸까
「가고 갑니다」가운데

시인에게 시가 더이상 뜨겁지 않다면 시인은 아무것도 쓸 수 없고 시인은 자신을 폐기해야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기에 있어도 없는 사람이다 우리에겐 불행한 일이지만 그것 역시 순리라면 속수무책이다.

사프란으로 떠난
그녀는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다시 돌아왔지만
사프란으로 떠난 그녀는
영영 돌아오지 않으려 한다
「나는 다시 돌아왔다」가운데

시집과 함께 분명 시인 최승자는 돌아와 있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땅길 산길 물길이 없어서 죽음의 보부상들도 닿지 못하는 땅"
인 사프란에서 돌아오지 않은 그녀가 어쩌면 그가 바라는 최승자가 아닐런지.
우리 모두 사프란에 한번이라도 간다면 돌아올 이 아무도 없지는 않을런지.


쓸쓸히 한 하늘이
떠나가고 있습니다

쓸쓸히 한 세계가
지고 있습니다

어디서 또 쓸쓸히
꽃잎들은 피어나겠지요

(전격적인 무궁한
해체를 위하여)

(오늘도 새 한 마리
허공을 쪼아 먹고 있군요) 어디서 또 쓸쓸히」전문


꿈에 꿈에
떠날 일이 있더란다
갓신 고쳐 매고
떠날 일이 있더란다
「꿈에 꿈에」가운데


자꾸만 어디로 간다고 하는 것인지
한 시대가 지는 것처럼 우리들의 최승자를 봐야하는 일 쓸쓸하다
시가 씌어졌던 물길이 시집으로 흘러들어 물결무늬 활자를 띄워준다
그 활자들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길 없지만 고여있지 않고 쉼없이 물결 소리 내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듯 우리들의 최승자 역시 여전히 바다처럼 흐르고 있다


해설 황현산의 글에 오자가 무려 다섯 자나...
교정을 발로 봤다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애란의 장편을 읽는다. 첫번째 두번째 소설집을 읽으며 달뜨고 흥분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오랜만에 들고나온
그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을수 없다. 김애란 이기에 가능했던 재치와 발랄함 김애란이 아니면 할 수 없었던 말짓
들을 미리 짐작하면서.

80년 생이니까 이제 그도 30줄에 들어섰구나, '신예'란 수식어는 더이상 적절한 말이 아니구나라는 현실이 지나온
세월과 함께 근 4년여 만에 선보이는 이번 작품에 대한 호기심과 염려를 불러일으키게도 한다. 물론 그간 보여준
그의 작품 속에서 '어린' 나이 보다 훨씬 조숙한 솜씨로 독자들을 즐거운 당황으로 몰아넣었다는 건 분명하다.


이것은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다.-7p

딱 그렇다. 단순명료하게 잘라 말한다면.
그런데 이상하다. 문장을 읽었다면 이미 눈치 챘겠지만. 부모와 자식을 수식하는 말이 바뀐것 같지만 이상해서
소설이 된다. 김애란 표 부모와 자식에 관한 이야기 가족에 관한 이야기? 그의 첫 소설집이 제목이 『달려라 아비』
인건 세상이 다 아는 바. 남녀 사이와 함께 '가족'만큼 유구한 역사 동안 이야깃거리를 제공한 것도 드물긴 하다.
영화 <괴물> 역시 결국 가족이야기 아니던가. 들춰보자면 한두 가지가 아니므로 패쓰.

몇 년 전부터 쏟아져나오기 시작한 좀 '황당'한 이야기의 문학소설들을 보면서 드는 의구심이랄까 뭔가 석연치
못한 찜찜한 구석이 뭐냐면 소설의 '지평 확장'운운하는 비평가들의 평가들이 과연 합당한가 하는 나만의 불만
이다. 아 이건 뭐 이딴 허무맹랑하기까지한 이야기를 ...
최소한 '그럴 듯'하기는 해야하지 않냐 그말.

지금 김애란이 들고나온 이야기는 언젠가 TV화면에서 본 듯 하기도 하고 실재로 있(을 것이다 내가 모르고 있거나
우리가 몰랐을 뿐)을 이야기라서 소설로써 더욱 견고하게 읽힌다. 그 안에 김애란 특유의 맛깔나는 말솜씨까지
버무려 놓고있다. 거기다가 한번씩 눈시울을 달궈주시고 콧등을 때려주시기 까지 하니 서른줄에 접어든 이 작가
그간 세월을 헛으로 건너온 건 아님을 알았다. 다큐일 것 같지만 다큐를 영화로 만들어버리는 능력을 첫 장편을
통해 보란듯이 뽐내고 있다.(그래 난 김애란 '빠' 다)

(이젠 기억도 잘 안나지만)은희경의『새의 선물』과는 또다른 아니 완전 색다른 아역 화자의 등장이랄까 뭐 그런.
부모보다 딱 절반만큼 어리지만 부모보다 두 배는 더 늙어버리고 앞집 장씨 할아버지와 이야기가 통하는 그런
늙은 아이의 능청과 그래도 소년일수밖에 없는 비애가 가을 빛에 빛나는 잠자리 날개의 무늬처럼 수놓여 있다.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슬퍼할 수 있다는 건,” 
 “네.”
 “흔치 않은 일이니까……”
 “………”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 나는.” 
 “………”
 “그러니까 너는,”  
 “네, 아빠.”
 “자라서 꼭 누군가의 슬픔이 되렴.”  -50p

누군가에게 슬픔이 돼란다.
그렇게 또박또박 말하는 게 김애란이다. 하-
조금만 생각의 속도를 느리게 해보면 틀리지도 이상한 말도 아님을 알겠다면 한 권의 책을 다 읽은 것과 다름없다.
내 가슴에 슬픔으로 남아 있는 누군가가 있나...
당신에게는 꼭 한 사람이라도 그런 사람이 있길 바란다.
나는 그런 사람이 없어서인지 누군가의 슬픔으로도 그 무엇으로도 남고 싶지는 않다.

 

나는 더 큰 기적은 항상 보통 속에 존재한다고 믿는 편이다. 보통의 삶을 살다 보통의 나이에 죽는 것, 나는 언제나
그런 것이 기적이라 믿어왔다. 내가 보기에 기적은 내 눈앞의 두 분, 어머니와 아버지였다. 외삼촌과 외숙모엿다.
이웃 아주머니와 아저씨였다. 한여름과 한겨울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47p

나도 예전에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날마다 뜨는 아침엔 9시 전까지 모든 아저씨들이 출근을 하고 출근한 모든
사람들이 한 달이 지나면 월급을 받고 모든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고 그런 사람들이 맞는 저녁이
이 세계 어디에나 있을 줄 알았다. 물론 그런 생각은 퍽이나 어렸을 때 보기좋게 아무도 모르게 작살이 나긴 했지만.
'보통'사람들이 가는 길을 (아마)영영 좇아가지 못하게 되고보니 아름이가 생각하는
'기적'이 정말로 보통이 아니라 기적이고 사람들은 그 기적을 너무도 모른 채 하찮은 것에 정신 팔고들 있구나.
이런 넋두리 한두 번 안하면서 늙는 사람이 어딨을까 마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내가 나를 안찾더라고. 장롱 안에서 나는 설레어하다, 이상해하다, 초조해하다, 우울해하다,
나중엔 지금 나가면 얼마나 민망할까 싶어 그냥 거기 그대로 있게 됐고.-86p

'잘 쓰는'소설가들은 이런 것들을 잘 우려먹어야 한다. 읽는 사람에게 동질감이나 연대감을 던지는 것 말이다.
장롱 안에 들어가 숨바꼭질 하거나 그 어두컴컴함이 주는 요상한 매력이나 안락함 같은걸로 마음 한 구석을 슬며
시 폭폭 찌른다면 안넘어갈 사람이 어딨겠나. 김애란만 쓴 것도 아닌데 김애란이 쓰면 더욱 감칠맛이 난다.
깜깜한 장롱 안에 웅크리고 있으면 뭐랄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어둠이 무서움이 아닌 편안함이 되기도 했는데. 
그래서 다시 저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뭉글뭉글 솟기도 해서 까무룩 잠들기도 하고. 그렇게 자기를
그냥 거기에 내버려두고 싶은 것.


완전한 존재가 어떻게 불완전한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지...... 그건 정말 어려운 일 같거든요.-170p

불완전한 존재인 우리이기에 완전한 존재의 불완전한 창조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일까. 불안에 절망하고
불안한 희망에 기대다 쓰러지는 존재에게 완전한 존재가 이미 써놓은 각본은 절대로 이해될 수 없다. 참으로 가혹한
일이 아닐수 없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요...... 사라질 것 같은 사람이래요.-177

두근거리는 인생을 살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일테고 그를 지켜보는 일도 두근거리는 일이다.
이쯤에서 당신들의 인생은 지금 '두근두근'하고 있는지 어떤점이 그런지 궁금하다, 라고 할려다가 물어볼 것도 없지만
'나는?'으로 방향을 바꿔보려다가 그냥 만다. 자꾸만 무서운 사람 생각이 난다. 작살이 나버린 생각의 파편들에 골몰할
때 무서운 사람의 그림자가 친절하게 동행해 주었다. 무서운 이야기를 자상하게 들려주는 그 사람은 더이상 무서운 사
람이 아니었고 다만 사라지는 출구를 찾지못해 신경질적이고 괴팍할 뿐. 뭐든지 일상이 돼버리면 그 본질은 희석되기
마련이다. 연애가 일상이 되는 결혼이나 공포 조차 일상이 되면 그럭저럭이 되는 이치와 같다.


이 아이는 어쩌다 이런 조숙한 시선을 갖게 된 걸까? ... 아팠으니까. 어느 작가의 말대로, 아픈 사람은 다 늙은 사람이니까.-187p

그러게. 딱 그렇다. 너무 일찍 아파한 아이는 조숙을 넘어 조로를 거쳐 이젠 희미한 유령이 되었을까.
불행한 '애 어른들과' '애 늙은이들' 그리고 그들 곁의 '어른이'들. 두근거림 보다 철렁임에 익숙한 가슴들이다.
그래도 인생은 두근거림일까?

 

신체나이 80이 다된 17살의 자식과 17살에 출산한 미숙한 부모의 이야기라는, 작가의 한 줄 요약도 있었다.
누군가는 뻔한 이야기 아니겠어 라고 하겠지만 그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풀어서 다시 이야기하는 것이 작가들
특유의 능력이고 그 가운데 김애란 표 '썰'이 여기에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골 때리는 스물다섯 - 조장은의 그림일기
조장은 지음 / 에디션더블유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몇 년 전 카페에서 전시 중인 코믹한 그림을 봤는데 출판사가 그 작가의 능력을 알아보고 낚아채
책을 만들어 내놨다. 출간된지 벌써 1년도 더 전이니 언제나 그렇듯 지나간 세월은 폭풍질주.

누군가의 일기를 몰래 보는 것처럼 '조 작가'의 이 책은 그의 그림일기를 떳떳하게 보는 것이다.
솔.까.말하는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겨 가면서 쿡쿡 웃기도 하고 짜안하기도 하다가
작가의 깜찍발랄함에 스물다섯이라는 나이에 대해 잠깐씩 생각해 본다.

무엇보다 이 책의 매력은 그의 그림을 볼 수 있다는 것이고 이 책을 소장한다는 것은 그의 작품들
또한 소장하는것과 같다는 것이다. 재치발랄한 그림들과 그림을 더욱 빛나게하는 그림 속의 문구들.
나는 그의 이런 작품들을 열렬히 지지하는바이다. 스물 다섯 그림쟁이라고 아무나 그릴수는 없는 그림,
서른다섯 마흔다섯엔 못그릴 그림, 오히려 그때 그리면 찌질해 보일지도 모를 그림.


나의 마음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 나의 그림은
나의 거울이며 기쁨의 표현이자 외로움과 상처의 치유 방법이다.
또 다른 나이고 친구이며 위로자이다

나의 벌거벗은 감정표현이,
나와의 소통에서 나아가 다른 이들과 소통하며
서로의 외로움을 안아주기를 원한다.
                                                        프롤로그 일부

사람이 할 수 있는 자가치유 방법 가운데 가장 기초적인 것이 '글쓰기(또는 그리기)'가 아닐까 싶다
누군가에게 보이기를 전제로 하는 것과 상관없이 단 한 줄이라도 뭔가를 써보거나 써보고싶은 마음이
든다면 치유의 시작은 된게 아닐까 싶다. 물론 그런 기록을 타인과 나눌수 있다면 더 나은 뭔가가 자기도
모르게 어느날 찾아올지도 모를 일.

골 때리는 스물 다섯을 지나온지도 까마득한데
여전히 일상과 인생은 참 골 때리는 지경이다. 요지경인생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