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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에 씌어진 ㅣ 시작시인선 131
최승자 지음 / 천년의시작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그는 지금쯤 얼마나 가 있을까 어차피 가야하는 길의 순리 가운데 자연스레 놓여있는것이라면
그냥 그대로 無와 虛 사이에 있는 시간을 좀 더 지켜볼 수 있기를 한 독자로써 바랄뿐
되도록 허름한 생각들을 걸치고 산다
허름한 생각들은 고독과 같다
고독을 빼앗기면
물을 빼앗긴 물고기처럼 된다
/.../
지극한 無로서의 虛를 위하여
虛無가 아니라 無虛를 위하여
허름한 생각들은 아주 훌륭한 옷이 된다 「하늘 도서관」가운데
그는 아직도 "나는 평범한 詩人인지라/아직도 풍덩풍덩 잘 빠집니다"라고 하지만
시인 진은영이 "매일 전철을 타고 가며 그녀를 상상했었다. 이 많은 사람들 사이, 만약 당신이 앉아 있다면
내가 찾아낼 수 있을까? 우리들의 시인, 최승자에게"라고 했듯 최소한 여기에서 말하는 우리에게 아직은
당신은 평범한 시인이 아니다. 그리고 계속 지금처럼 풍덩풍덩 꿈에 빠졌으면 좋겠다. 그것도 우리의 꿈이다.
세상이 펼쳐져 있는 한
삶은 늘 우울하다
인생은 병이라는 말도 이젠 그쳤고
인간은 언어라는 말도 이젠 그쳤고
서서히 말들이 없어진다
/.../
(사람이 사람을 초월하면
자연이 된다) 「서서히 말들이 없어진다」가운데
우는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 더이상 울지 않으면 아이가 아니고 시인이 언어라는 말을 그치면
시인이 아닐 것인데 말들이 없어진다고 하니 불길한 징조다. 말들이 자취를 감추고 멸종된 세상에서
시인은 생존할 수 없다. 자연은 삶과 죽음 모두를 품고 있고 우리가 자연이 되는 길은 이제 사람을
초월하여 죽음이 되는 것이다. 시집 곳곳에 징후가 만발해 있지만 이미 거기에서 되돌아온듯 시인은 초연하다.
(오늘 죽음의 영수증을 받으러 갔다/'당신의 죽음을 정히 영수합니다') 「저기 갑 을 병 정이」가운데
그러니 몸뚱아리라는게 얼마나 거추장스럽겠나
육체는 먹자 하고
육체는 눕자 하고
육체는 쉬기만 하자 하고
아아 너무도 무거운 이 육체 공화국 「육체 공화국」가운데
한 인간은 누구에게나 하나의 먼 풍경
이 식은 詩 한 사발 속에
나는 무엇을 쓰고 싶은 걸까 「가고 갑니다」가운데
시인에게 시가 더이상 뜨겁지 않다면 시인은 아무것도 쓸 수 없고 시인은 자신을 폐기해야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기에 있어도 없는 사람이다 우리에겐 불행한 일이지만 그것 역시 순리라면 속수무책이다.
사프란으로 떠난
그녀는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다시 돌아왔지만
사프란으로 떠난 그녀는
영영 돌아오지 않으려 한다 「나는 다시 돌아왔다」가운데
시집과 함께 분명 시인 최승자는 돌아와 있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땅길 산길 물길이 없어서 죽음의 보부상들도 닿지 못하는 땅"
인 사프란에서 돌아오지 않은 그녀가 어쩌면 그가 바라는 최승자가 아닐런지.
우리 모두 사프란에 한번이라도 간다면 돌아올 이 아무도 없지는 않을런지.
쓸쓸히 한 하늘이
떠나가고 있습니다
쓸쓸히 한 세계가
지고 있습니다
어디서 또 쓸쓸히
꽃잎들은 피어나겠지요
(전격적인 무궁한
해체를 위하여)
(오늘도 새 한 마리
허공을 쪼아 먹고 있군요) 「어디서 또 쓸쓸히」전문
꿈에 꿈에
떠날 일이 있더란다
갓신 고쳐 매고
떠날 일이 있더란다 「꿈에 꿈에」가운데
자꾸만 어디로 간다고 하는 것인지
한 시대가 지는 것처럼 우리들의 최승자를 봐야하는 일 쓸쓸하다
시가 씌어졌던 물길이 시집으로 흘러들어 물결무늬 활자를 띄워준다
그 활자들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길 없지만 고여있지 않고 쉼없이 물결 소리 내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듯 우리들의 최승자 역시 여전히 바다처럼 흐르고 있다
해설 황현산의 글에 오자가 무려 다섯 자나...
교정을 발로 봤다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