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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평점 :
김애란의 장편을 읽는다. 첫번째 두번째 소설집을 읽으며 달뜨고 흥분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오랜만에 들고나온
그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을수 없다. 김애란 이기에 가능했던 재치와 발랄함 김애란이 아니면 할 수 없었던 말짓
들을 미리 짐작하면서.
80년 생이니까 이제 그도 30줄에 들어섰구나, '신예'란 수식어는 더이상 적절한 말이 아니구나라는 현실이 지나온
세월과 함께 근 4년여 만에 선보이는 이번 작품에 대한 호기심과 염려를 불러일으키게도 한다. 물론 그간 보여준
그의 작품 속에서 '어린' 나이 보다 훨씬 조숙한 솜씨로 독자들을 즐거운 당황으로 몰아넣었다는 건 분명하다.
이것은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다.-7p
딱 그렇다. 단순명료하게 잘라 말한다면.
그런데 이상하다. 문장을 읽었다면 이미 눈치 챘겠지만. 부모와 자식을 수식하는 말이 바뀐것 같지만 이상해서
소설이 된다. 김애란 표 부모와 자식에 관한 이야기 가족에 관한 이야기? 그의 첫 소설집이 제목이 『달려라 아비』
인건 세상이 다 아는 바. 남녀 사이와 함께 '가족'만큼 유구한 역사 동안 이야깃거리를 제공한 것도 드물긴 하다.
영화 <괴물> 역시 결국 가족이야기 아니던가. 들춰보자면 한두 가지가 아니므로 패쓰.
몇 년 전부터 쏟아져나오기 시작한 좀 '황당'한 이야기의 문학소설들을 보면서 드는 의구심이랄까 뭔가 석연치
못한 찜찜한 구석이 뭐냐면 소설의 '지평 확장'운운하는 비평가들의 평가들이 과연 합당한가 하는 나만의 불만
이다. 아 이건 뭐 이딴 허무맹랑하기까지한 이야기를 ...
최소한 '그럴 듯'하기는 해야하지 않냐 그말.
지금 김애란이 들고나온 이야기는 언젠가 TV화면에서 본 듯 하기도 하고 실재로 있(을 것이다 내가 모르고 있거나
우리가 몰랐을 뿐)을 이야기라서 소설로써 더욱 견고하게 읽힌다. 그 안에 김애란 특유의 맛깔나는 말솜씨까지
버무려 놓고있다. 거기다가 한번씩 눈시울을 달궈주시고 콧등을 때려주시기 까지 하니 서른줄에 접어든 이 작가
그간 세월을 헛으로 건너온 건 아님을 알았다. 다큐일 것 같지만 다큐를 영화로 만들어버리는 능력을 첫 장편을
통해 보란듯이 뽐내고 있다.(그래 난 김애란 '빠' 다)
(이젠 기억도 잘 안나지만)은희경의『새의 선물』과는 또다른 아니 완전 색다른 아역 화자의 등장이랄까 뭐 그런.
부모보다 딱 절반만큼 어리지만 부모보다 두 배는 더 늙어버리고 앞집 장씨 할아버지와 이야기가 통하는 그런
늙은 아이의 능청과 그래도 소년일수밖에 없는 비애가 가을 빛에 빛나는 잠자리 날개의 무늬처럼 수놓여 있다.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슬퍼할 수 있다는 건,”
“네.”
“흔치 않은 일이니까……”
“………”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 나는.”
“………”
“그러니까 너는,”
“네, 아빠.”
“자라서 꼭 누군가의 슬픔이 되렴.” -50p
누군가에게 슬픔이 돼란다.
그렇게 또박또박 말하는 게 김애란이다. 하-
조금만 생각의 속도를 느리게 해보면 틀리지도 이상한 말도 아님을 알겠다면 한 권의 책을 다 읽은 것과 다름없다.
내 가슴에 슬픔으로 남아 있는 누군가가 있나...
당신에게는 꼭 한 사람이라도 그런 사람이 있길 바란다.
나는 그런 사람이 없어서인지 누군가의 슬픔으로도 그 무엇으로도 남고 싶지는 않다.
나는 더 큰 기적은 항상 보통 속에 존재한다고 믿는 편이다. 보통의 삶을 살다 보통의 나이에 죽는 것, 나는 언제나
그런 것이 기적이라 믿어왔다. 내가 보기에 기적은 내 눈앞의 두 분, 어머니와 아버지였다. 외삼촌과 외숙모엿다.
이웃 아주머니와 아저씨였다. 한여름과 한겨울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47p
나도 예전에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날마다 뜨는 아침엔 9시 전까지 모든 아저씨들이 출근을 하고 출근한 모든
사람들이 한 달이 지나면 월급을 받고 모든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고 그런 사람들이 맞는 저녁이
이 세계 어디에나 있을 줄 알았다. 물론 그런 생각은 퍽이나 어렸을 때 보기좋게 아무도 모르게 작살이 나긴 했지만.
'보통'사람들이 가는 길을 (아마)영영 좇아가지 못하게 되고보니 아름이가 생각하는
'기적'이 정말로 보통이 아니라 기적이고 사람들은 그 기적을 너무도 모른 채 하찮은 것에 정신 팔고들 있구나.
이런 넋두리 한두 번 안하면서 늙는 사람이 어딨을까 마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내가 나를 안찾더라고. 장롱 안에서 나는 설레어하다, 이상해하다, 초조해하다, 우울해하다,
나중엔 지금 나가면 얼마나 민망할까 싶어 그냥 거기 그대로 있게 됐고.-86p
'잘 쓰는'소설가들은 이런 것들을 잘 우려먹어야 한다. 읽는 사람에게 동질감이나 연대감을 던지는 것 말이다.
장롱 안에 들어가 숨바꼭질 하거나 그 어두컴컴함이 주는 요상한 매력이나 안락함 같은걸로 마음 한 구석을 슬며
시 폭폭 찌른다면 안넘어갈 사람이 어딨겠나. 김애란만 쓴 것도 아닌데 김애란이 쓰면 더욱 감칠맛이 난다.
깜깜한 장롱 안에 웅크리고 있으면 뭐랄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어둠이 무서움이 아닌 편안함이 되기도 했는데.
그래서 다시 저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뭉글뭉글 솟기도 해서 까무룩 잠들기도 하고. 그렇게 자기를
그냥 거기에 내버려두고 싶은 것.
완전한 존재가 어떻게 불완전한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지...... 그건 정말 어려운 일 같거든요.-170p
불완전한 존재인 우리이기에 완전한 존재의 불완전한 창조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일까. 불안에 절망하고
불안한 희망에 기대다 쓰러지는 존재에게 완전한 존재가 이미 써놓은 각본은 절대로 이해될 수 없다. 참으로 가혹한
일이 아닐수 없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요...... 사라질 것 같은 사람이래요.-177
두근거리는 인생을 살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일테고 그를 지켜보는 일도 두근거리는 일이다.
이쯤에서 당신들의 인생은 지금 '두근두근'하고 있는지 어떤점이 그런지 궁금하다, 라고 할려다가 물어볼 것도 없지만
'나는?'으로 방향을 바꿔보려다가 그냥 만다. 자꾸만 무서운 사람 생각이 난다. 작살이 나버린 생각의 파편들에 골몰할
때 무서운 사람의 그림자가 친절하게 동행해 주었다. 무서운 이야기를 자상하게 들려주는 그 사람은 더이상 무서운 사
람이 아니었고 다만 사라지는 출구를 찾지못해 신경질적이고 괴팍할 뿐. 뭐든지 일상이 돼버리면 그 본질은 희석되기
마련이다. 연애가 일상이 되는 결혼이나 공포 조차 일상이 되면 그럭저럭이 되는 이치와 같다.
이 아이는 어쩌다 이런 조숙한 시선을 갖게 된 걸까? ... 아팠으니까. 어느 작가의 말대로, 아픈 사람은 다 늙은 사람이니까.-187p
그러게. 딱 그렇다. 너무 일찍 아파한 아이는 조숙을 넘어 조로를 거쳐 이젠 희미한 유령이 되었을까.
불행한 '애 어른들과' '애 늙은이들' 그리고 그들 곁의 '어른이'들. 두근거림 보다 철렁임에 익숙한 가슴들이다.
그래도 인생은 두근거림일까?
신체나이 80이 다된 17살의 자식과 17살에 출산한 미숙한 부모의 이야기라는, 작가의 한 줄 요약도 있었다.
누군가는 뻔한 이야기 아니겠어 라고 하겠지만 그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풀어서 다시 이야기하는 것이 작가들
특유의 능력이고 그 가운데 김애란 표 '썰'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