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트루니에 - 마왕
본문 중에서
가장 고전적이고 가장 살인마적인 악의적 전위들 중의 하나가 <순수성>의 개념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순수성은 천진성의 악의적 전위이다. 천진성은 삶에 대한 사랑이고 천상적이자 동시에 지상적인 양식에 대한 미소 띤 수락이며, 순수성-비(非)순수성이라는 처절한 교차 개념에 대한 무지(無知)이다. 그 자발적이고 거의 선천적인 신성(神聖)을 사탄은 역으로 바꾸어 자신을 닮은 모사품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순수성>이다. 순수성은 생(生)에 대한 공포이고 인간에 대한 증오이며 허무에 대한 병적인 열정이다. 화학적으로 <순수한> 육체란 철저하게 반자연적인 그 상태에 이르기 위해 야만적인 치료를 받았던 것이다. 순수성의 악마와 교합한 인간은 자신의 주위에 파괴와 죽음을 씨뿌리고 다닌다. 종교적인 정화작용, 정치적 숙청, 종족의 순수성 보호 등 그 잔혹한 개념의 변화 형태들은 다양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한결같이 종국에는 범죄에 즐겨 등장하는 도구는 불(火)-순수성의 상징이자 지옥의 상징이다.
사슴 사냥에 있어서 말의 원초적인 역할로 말할것 같으면 그 의미는 더욱 명확해 진다. 즉 항문 천사가 남근을 이고 있는 천사를 학대하는 것. 즉 오메가에 의한 알파의 추격 내지는 사형이다. 그 암살놀이에서 겁장이에 엉덩이만 큰 짐승에게는 공격과 몰살시키는 주도권이 주어지고, 숲 속의 왕이자 머리에 이고 있는 뿔에 당당한 남성을 짊어진 짐승은 헛되이 공격하는 짐승에게 눈물로 자비를 애걸하면서 쫓기는 먹이가 된다. 그 놀라운 자연의 전위(轉位)작업에 티포쥬는 다시 한 번 경탄을 금치 못했다.
내가 칼덴보른의 닫힌 어항 속에 가두어 놓은 이 아이들을 가지고 무얼 해야할까? 이제야 나는 왜 폭군의 절대적인 힘이 항상 폭군을 미치게 만드는지 알겠다. 왜냐하면 그가 그 힘으로 무얼 해야 좋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무한히 행할 수 있는 <힘>과 유한히 행할 줄 아는 <앎>사이의 그 불균형보다 더 잔혹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운명'이 빈약한 상상력의 한계를 깨뜨리지 않는 한, 또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는 의지를 강간하지 않는 한, 그럴 수밖에 없다.
과잉 적응자는 마치 <물 속에 있을 때의 고기처럼> 자신의 환경 안에서는 행복하다. 물론 물고기란 전형적으로 물에의 과잉 적응 어류이다. 그것은 물고기의 행복이란 완벽한 만큼 더욱 불안정한 것이라는 풀이가 된다. 왜냐 하면 만약에 물이 너무 뜨겁거나, 너무 짜거나, 혹은 수위가 너무 내려가면...... 어찌될까?
그러니 차라리 단순히, 가능하면 적당히 물에 <적응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마치 수륙 양서 동물들이 그러하듯이.
그들은 눅눅한 곳에서나 건조한 곳에소나 완전히 행복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 두 환경에 대충은 적응할 수 있다. ........................반면에 수륙 양서동물인 우리들은 항상 사물들과 일치가 빗나가고, 일상적인 삶에서도 늘 당하거나 깨진다. 그래서 우리들은 태어날 때부터 환경에서 오는 모든 배신들에 대충 대항할 줄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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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풍부함, 잘 짜여진 날실과 씨실의 옷감이 주는 탄탄함 같은 구조
작가의 박식함
맛있는 책. 입맛을 한참 다시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