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죽는가 - 셔윈 B. 누랜드

본문 중에서

현대 의술의 진보에 힘입어 우리는 죽음의 힘을 부인할 뿐만 아니라,
죽음의 속성 자체까지도 거부하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주음의 면전에서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는 짓일 뿐이다. 인간은 어쩔 수 없는 호기심 때문
에 손가락 사이로 죽음이란 것을 훔쳐보고 있는 것이다.

죽음에 이르는 상세한 과정을 알고 나면 죽음이라는 존재
앞에서 나름대로 공포와 두려움을 벗어던질 수 있을 것이고, 그런 뒤에
야 비로소 죽음을 제대로 준비할 수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 자지지만과
환면 속으로 우리를 끌고가는 회백색 죽음의 공포로 부터 빠져나올 수 있
을 것이다.
죽는 것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비슷하면서도 차이가 있는 말이다.
무너지는 육체와 달리 심적상태를 아름답게 유지해서 훌륭한 죽음을 맞
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악마가 가져오는 두려움과 공포를 줄이기 위해서는 그 악마에게 이름
을 붙여 정체를 드러나게 하고 거기에 촛점을 맞추어야 한다. .........
일단 어떤 대상에 꼬리표를 붙이면 그것과의 대결은 한층 쉬워진다.
이러한 대결 과정을 통해 잔인하게 다가드는 괴물을 잡아 앉혀 얌전하게
길들일 수도 있고 공포감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질환이든 우선
정체를 밝혀 이름을 붙이고 나서야 그것을 정복할 수 있다. 그래야만 우
리식대로 그 질환과 게임을 벌일 수가 있는 것이다.
질병에 이름을 붙이는 작업은 그 질병을 물리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략 단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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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깃들어 있는 또다른 나의 하나인 내 육체가 허물어지는 과정에서 그것이
내 영혼으로 하여금 치루어내게하는 끔찍한 고통과 인간 존엄성 상실을 볼 때 과연
진정한 나는 어느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품어 본다.

많은 불치의 병들이 환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짓밟아 댈때 인간 이하의 나락으로
떨어져 결국에 맞게 되는 죽음. 그가 살아 구축해 놓았던 자신의 모습들 또한 여지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그래도, 그래도 '희망'을 놓지못하는 의사나 환자의 가족들에게
있어 환자는 이미 그 환자 자체로써의 존재는 없어져 버렸을 지도 모른다. 의사는 병에 대
한 수수께끼 를 그 환자를 통해 풀고 싶을지도 모르며 가족들 역시 환자의 부재를 받아들
이고 싶지 않은것 뿐일지도 모른다.
'희망' 이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절망적인 환자가 가질 수 있는 희망
이란것이 뼈를 깍아내는 고통을 감내하며 얼마간 '유예'되는 삶, 죽음의 연기일지 아니면
나름의 시간을 충만하게 보내는 것인지.

죽음과 사투를 벌인다고 하는 치료과정의 끝에 무엇이 있나 생각해 본다.
영원한 삶이 있나? 죽음의 얼마간의 유예와 약물들에 의한 엄청난 고통이 그 댓가일 뿐.

의학은 결코 죽음의 '정복'에 있지 않으며 또한 그럴수도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의학의
발달이 죽음으로 부터 구원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다만, 질병과 그에 따르는 고통으
로부터의 '유예'를 연구할 수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생물은 죽어야만 마땅하다. 세대와 세대를 거듭한다는 것은 결국 전세대의 죽음을 담보
로 하는 것이므로.

지은이가 보아 온 숱한 죽음들에 대한 객관적 진술들은 죽음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촉구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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