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일반판) 문학동네 시인선 2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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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과 문장에서 묻어나는 건 여전히 허수경의 시지만 그 문장과 문장의
행간에서 들리는 이야기들은 오랜 시간 타국의 들판 유적지에서 바람처럼
살아온 지친 이의 목소리가 아닌가 싶다.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들판에서 발굴
캠프를 뒤로 하고 웅얼웅얼 바람 속에 흘려버리고 싶은 주술 같은 이야길
하고 있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아- 이제는 너무 오래 그리고 멀리 가버린
건 아닌가 싶은 느낌도 들고 보면 억측임을 알면서도 나는 그가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오지 못하고 스스로 유배시켜버린 것에 갇힌 건 아닌가,
뭐 그런 생각으로 책장을 넘겼다.
「카라쿨양의 에세이」를 읽어가면서는 서걱, 가슴 한켠이 베이는 것 같았고
책장 귀퉁이를 접어놓은 시편들에선 여전히 허수경이구나라고는 했지만 내리
자마자 녹아 없어지는 서글픈 봄날의 눈 같은 말들이 빼곡히 시집 안에 옹송그
리고 있어서 편치 않은 마음 가득하다.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은 뭔가 위안거리를 찾고 있던 내 기대가 빗나가면서 든
착각일 것이다.


이번 문학동네의 시인선 시집의 제본방식과 디자인 편집 하나부터 열까지
도무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다.
실로 꿰맨 방식 때문인지 책장을 넘기거나 움켜쥘 때마다 나는 찍찍- 소리는
귀에 거슬리고 표지 종이는 시집을 움켜쥐고 읽노라면 자꾸만 주름이 잡혀
또 신경 쓰이고 종이 재질 때문인지 원래 의도가 그런건지 인쇄된 활자들은
번진 것 같아 책이 참 싸구려 같다. 본문 종이도 마찬가지.
그럼에도 가격은 8천원이다.
제목을 이루는 서체는 비만한 돼지처럼 왜 그렇게 두껍고 뭉툭한지, 詩라는
것이 그렇게 살이 디룩디룩 찐 그런 글들이던가 오히려 그 극단의 반대에
서 있어도 모자랄 판에. 시 본문을 이루는 서체는 제목과는 극단적으로
다르게 얇고 작아 희미해서 매끄럽게 읽기에 부족하다
요즘 시는 행이 길기 때문에 행갈이를 하지 않고 시읽기를 해주겠다며
함께 특별판까지 냈는데 그따위 쓰잘대기 없는 짓거리 보다 기본에 충실한
편집과 디자인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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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숨 장편소설
김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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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밝고 건강하고 건전한 가족 안에는 별로 이야깃 거리들이 없다. 불온하고 기이하고 불행한

가족이라는 공동체만이 이야기를 생산해 낼 수 있는 저주스런 원동력이 있다. 그 구성원들의

동의 따위는 불필요하다.




어떻게보면 '가족'소설만큼 뻔한 소설도 없다, 라고 단정할 수도 있다, 라고 나는 단정한 사람이다.

개인과 개인이라는 타자가 만나 생물학적인 결합으로 또 하나의 생물을 생산해 내는 합의적인

2인의 공동체가 '가족'이라는 괴물의 다른 이름과 다르지 않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공동의 가면을

부여받아 뒤집어 쓰게되면 세상 그 어떠한 괴물과도 맞설수 있다. 마치 영화 '괴물'에서 괴물과

맞서는 그 가족들처럼.




여기에 기이하면서도 불가사이한 한 가족이 등장한다. 불과 물, 소금과 금 그리고 공기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정작 이들이 한 가족의 구성원이 맞나싶을만큼 가족이라는 조직에 구속되어 있다는

끈끈함 따위는 찾아보기 어렵다. 조금은 어거지스럽게 상생과 상극인 원소들의 배치를 가족이라는

집합체 안에 장치한 작가 의도의 적나라함이 쉽게 노출 된다.




7-80년대 가난에 얽힌 가족사에 관한 소설이나 한때 '엄마'에 관한 영화나 소설의 리얼리티를 생각했다면

즉시 이 소설에 관한 관심을 티끌 만큼도 남기지 말고 버리길 바란다.




아버지 어머니 언니 동생 이라는 호칭은 있으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신 그자리를 난데없이

불이라거나 물 아니면 공기나 금과 같은 물질들의 호칭이 난무한다. 다분히 의도한 바다. 어찌보면

이것은 위험한 의도일 수 있다. 물과 불을 여자와 남자 아내와 남편으로 배치했을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뻔할수 있다. 그 위험을 알면서도 써먹는 것은 그만큼 작가의 자신감일까?

여하튼 시종일관 물질(또는 원소)의 이미지들이 곧 이야기가 된다. 잘 버무리는 것이 작가의 역량이라 한다면

지루하지 않게 요소요소 뒤섞어가며 이야기는 흘러 간다할 수 있겠다.

이 이상한 가족 이야기의 끝은 도대체 어떻게되는거냐 싶어 빨리 마지막 장을 확인하고 싶기도 했다.




작가가 고백한대로 바슐라르의 사유들이 소설의 일정 부분 동력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특별한 서사보다

물을 토대로 한 각 물질의 '이미지 전개'가 이 소설이다라고 한다면 작가의 노력에 너무 가혹한 말일까.




이 책을 처음 펼쳐보면서 스물한 가지의 원소들이 나열되는 프리모 레비의『주기율표』가 떠올랐지만

그런 생각은 곧바로 사그라들었다. 『주기율표』가 차가운 이성적 소설이라면 『물』은 뜨거운 감성적 소설이다.




물에 녹으면 사라지는 소금이라거나 물에서 나온 소금, 소금을 더욱 소금 답게하는 것은 불이라거나 또는

뉘앙스 적인 차원에서 그냥 '금'과 소'금'이라고 하는 두 물질의 극명한 차이점을 아주 적절하게 배치한 점 등

기발하면서도 재미있는 장치와 비현실적인 공간의 등장은 읽는 재미를 분명하게 주는 것은 틀림없다.

이것에서 만족하는 독자라면 후한 점수를 줄 것이요 그 이상을 원했던 독자라면 뭔가 아쉬움을 남기지 않을까 싶다.

궁극적으로 김숨이 이 소설을 쓴 목적(내지는 이유)은 무엇일까? 이런 물음 자체가 요즘 시대엔 촌스러운 걸까. =.=




여하튼 『물』이전의 작품은 어떨까 싶고, 그 이야기들 속에는 또 어떤 기발함을 동원했을지 궁금하고 앞으로

지어낼 그의 이야기에 기대를 해본다.







사족을 달자면, 본문 편집을 함에 있어 너무 벙벙한 행간과 들여 쓰기 그리고 필요이상의 행갈이로 인해

작품이 가지는 긴장감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이것은 출판사 측의 책의 볼륨감 키우기나 아니면 편집상

종이의 대수 맞추기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아쉬운 점이다. 종이도 좀 두꺼운 게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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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고 또 누가 이 밥그릇에 누웠을까
김선우 지음 / 새움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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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이거나 선입견일지도 모르겠지만 소설가들의 에세이 보다 시인들의 에세이가
더 읽는 맛이 난다. 총천연색 같은 우리말의 '결'을 시인들의 산문을 읽어가노라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미 김선우의 산문들을 읽어봤던터라 어떤 기대감을 가지고
읽어 나갔으나 이전 산문들과는 좀 다른 어조랄까, 적잖은 놀라움과 안타까움이 가
득했다. 카랑카랑한 외침과 같은 목소리에 놀랐고 그가 바라는 일들이 현실에서 그
저 꿈에 머물면 어쩌나 하는 데서 안타까웠다. 사실 그의 바람은 많은 우리의 바람이자
희망이기도 하다. 희망이란 것은 언제나 '거리'와 함께 찾아온다. 지금 당장 여기에
있다면 그것은 희망이 아닐것이고 완성됐다면 그것은 희망의 과거형일 것이다.
가망 없는 희망인지 지금 현재에선 모르지만 시인이여 계속 당신의 희망을 노래해 달라.

 
한편, 그의 말에서 엿보이는 그의 생활을 통해 오만하고 무관심한 우리들의 생활을
돌이켜 본다. 너무나 당연시 하는 모든 의식주의 문제 같은 것들. 도시생활에선 결코
체감하지 못하기에 너무 깊이 망각하는 문제들. 그것에서 오는 오만과 방종.
한번쯤 돌이켜 본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는 있을듯 싶다. 

 
그럴때마다 이 도시생활이란 것이, 전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인구가 수도권에 몰려
사는 대한민국의 도시생활이란 것이, 정말로 역겨워지지만 그 역겨움 조차 중독된
도시사람들 가운데 나도 섞여 살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이 문제에 대해...
이런 하루가 무섭도록 무심하게 지나가는데 속수무책이란 것. 과연 서울을 떠날수
없을것인가. 고민에 대한 대답은 뻔하게 나와 있지만 지금까지도 눌러 살고 있는 것.
훌쩍 서울을 떠나 강원도로 어디로 갈 수 있었던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에 더욱
자신이 멀어만 지는구나 싶다.
사람 사는 데 다 똑같다는데 왜 유독 서울인지. 다 늙어서 귀농이랍시고 어디 시골로 가면
뭐하나 싶기도 하다. 갈려면 이정도 나이에 가야 뭘 배워서 일구든가 하지.
책 한권 읽고 별소릴 다.

 
흥미진진하게 읽어갔던
제일 마지막 꼭지와 관련 기사를 링크한다

http://www.cauon.net/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16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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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아프리카 창비시선 321
이제니 지음 / 창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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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쏘옥 꽂히는 시집을 읽는 밤
말이 말처럼 살아 뜀박질하는 풍경에 나도 덩달아 쿨렁쿨렁
표지의 저 말은 아주 적절하다. 말言을 그림으로 멋들어지게 그려야 한다면
말馬만큼 아름다운 것도 없지 않을까 싶다 거기에 꽃나무가 수놓인것은 그 말들이
슬픔으로 수놓아진 아름다운 말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아아 맛있다 말들이 멋있다.

자주자주 등장하는 말떼들, 그러니까 동어반복과 같은. 참 적절하게 반복의 효과를 살려
읽는 맛을 배가 시키고 있다. 수많은 말떼를 거느린 그를 부러워하지 아니할 수가 없는 추운 밤.
나는 그저 달큰하게 더워진 딱 한잔의 정종만 생각날 뿐이고. 그리고 거기다 나도 내 말들을 타고
끝없는 말판을 누비고 싶다면 그건 지나친 욕심인지. 내 말을 갖고 싶다.

실용/경제 서적이 판을 치는 마당에 쓰잘데기 없는 시집을 읽는것은 정말로
'먼지 같은 시간 속에서 먼지 같은 말을 주고받고 먼지같이 지워지다 먼지같이 죽어가겠지.
나는 이 불모의 나날이 마음에 든다'-43p 는 시인과 다를바가 없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마음이 끕끕한 소금밭 같거나 온종일 슴슴한 눈시울로 버티다버티다 겨우 맞이한 저녁나절
읽어가는 한 편 시 안의 한 문장들이 주는 허무한 위로와 위안의 맹탕함.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시집 한 권 읽는 게 무슨 대수로울수도 없듯이. 내리는 눈송이 만큼 헤아려도 헤아려지지 않는 게
마음이다.

표제작인「아마도 아프리카」와 「고아의 말」 이 두 편을 읽어본다면 이 시집 전체를 아울러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코끼리 사자 기린 얼룩말 호랑이
멀리 있는 것들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부를 때
나는 슬픈가 나는 위안이 필요한가
아마도 아프리카 아마도 아주 조금  -p104「아마도 아프리카」 부분

결국 어미 없이 혼자 서 있는 말
고아의 해변에서 고아의 말을 내뱉으며
혼자 울면서, 울면서 혼자 달려가는 말 -p131 「고아의 말」 부분

드넓은 들판을 누비던 각양각색의 야생마떼 처럼 수많은 말言들을 떼지어 놓았지만 야생마를 떠올릴법한
자유나 야생의 힘은 어디에도 없다. 멀리 있어 어떻게 보면 모호하게 보일법한 것들이 가져다주는 슬픔이
들판 가득하다. 그 들판을 헤매는 자는 고아다. 고아가 들판을 헤매면서 하는 말들이 이번 시집인 것 같다.
당신도 들판에 혼자 서 있는 상상을 해봤다면 어쩌면 이제니의 말들이 당신의 들판을 달리는 소리에 마음이
습지가 될지도 모르겠다.

김경주의 첫 시집에서 어떤 '스타일'이 있다는 것에 대해 느꼈던 걸 이제니의 첫 시집에서도 발견한다.
다분히 많은 말을 해버린 김경주가 되지 말고 지금처럼만 이제니의 말들을 키워내주기를 조심스럽게 바라면서 다음 시집을 기대해 본다. 

아마도 아프리카, 아프리카는 참 멀다. 멀리 있다. 죽기 전에 가 볼일이 없는.
누구처럼 너무 멀리 있는 것들의 이름을 불러볼까, 하다 그만둔다. 그것들도 듣지 못하고 나도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보다 말이 싫기 때문에. 

 
나는 지금 죽지 않기 위해 말을 하는 것이다. 죽지 않기 위해 /.../
... 네이키드 하이패션 소년은 불을 끈 뒤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하면 기체나
액체처럼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사라질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실행에 옮기겠다는 결연한 의지 같은 것도 없으면서, 그저 무심코 손톱 끝을 바라보길 좋아하는
무의미한 습관처럼. -p25

  

밤의 공벌레

온 힘을 다해 살아내지 않기로 했다. 꽃이 지는 것을 보고
알았다. 기절하지지 않으려고 눈동자를 깜빡였다. 한 번으로
부족해 두 번 깜빡였다. 너는 긴 인생을 틀린 맞춤법으로
살았고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었다. 이 삶이 시계라면 나는
바늘을 부러뜨릴 테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하염없
이 얼음을 지칠 테다. 지칠 때까지 지치고 밥을 먹을 테다.
한 그릇이 부족하면 두 그릇을 먹는다. 해가 떠오른다. 꽃이
핀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 울고 싶은 기분이 든다. 누
구에게도 말 못하고 주기도문을 외우는 음독의 시간. 지금
이 몇 시일까. 왕만두 찐빵이 먹고 싶다. 나발을 불며 지나가
는 밤의 공벌레야. 여전히 너도 그늘이구나. 온힘을 다해
살아내지 않기로 했다. 죽었던 나무가 살아나는 것을 보고
알았다. 틀린 맞춤법을 호주머니에서 꺼냈다. 부끄러움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림자 정원사는 내게 말했지
너는 한번 결혼하고 또 한번 결혼하게 될 거야
한번은 너 자신과 또 한번은 네 그림자와 -p71

 

어쩌다 우리는 소멸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증명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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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혼자 올 수 있니
이석주 사진, 강성은 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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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낮 점심을 먹을 때 하얗게 눈이 제법 내리는 걸 묵묵히 지켜봤다. 그저께 밤에는 k군으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고 도서 한 권을 검색해 보기도 했다. 뒤늦게, 너무나 뒤늦게 알고보니 사진작가 이석주의 전시가 몇 번 방문하기도 했던 홍대 카페 에서도 열렸다. 지나고 나서야 선명해지는 기억이나 사실들이 있게 마련이고 그런 일들은 대개 기쁘지 않거나 슬프거나 안타까운 일들이게 마련이다. 

어제 내린 눈으로 배송이 늦어진 책을 오늘 아침에 받을수 있었다. 눈 때문에 눈 사진들이 가득해서 무거운 책을 늦게 받게 되다니... 미리 알게 된 사진작가 이석주에 관한 사연이 나풀거리면서도 무겁게 떨어지는 눈송이 마냥 마음 한켠을 무겁게 했다. 무겁다기 보다 짜안하고 헛헛했다.

이석주 그가 직접 자신의 말들을 남겼으면 좋았겠지만 거기까지는 힘이 닿지 못했는지 아쉽게도 그의 사진들 옆에 글작가의 글들이 나란히 했지만 우선 사진들을 먼저 본다. 홋카이도의 하얀 눈을 눈에 먼저 담고 싶었다.
사진은 빛을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빛을 비워내는 것이라고 남긴 메모처럼 그의 사진엔 사람들의 자취도 거의 없다. 사람을 담으면 너무나 그리울것 같아서라고 한다. 

자신이 밀고 갈 수 있는 시간의 경계선이 또렸한 사람의 시선을 따라 가보는 것은 아직 살아있는 사람으로써는 애잔한 일임에 틀림없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가 홀로 떠나 담아온 홋카이도의 눈에 대한 추억은 아무와도 나눌수가 없다는 것이다. 영영.

자신은 홋카이도로 혼자 떠났고 다시 혼자 너무 멀리 갔으면서도 혼자 올 수 있냐고, 염려하는 책을 바라보자니 눈 없는 곳 없을 홋카이도 어느 거리를 위태롭게 거닐었을 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헤아려지지도 않아 나까지 심란하다.  
 

사람들이 내게 말했다.

어쩌다 슬픈 이야기를 하려 하면
괜찮아 다들 슬픔은 있어

어쩌다 아픈 이야기를 하면
괜찮아 다 나을 수 있어

어쩌다 외로운 이야기를 하면
괜찮아 누구나 혼자야, 라고 말했지

그럼 난 그냥 웃었지

어쩌다 너에게 슬픔이 올 때
어쩌다 너에게 아픔이 올 때
어쩌다 너에게 외로움이 올 때

그때 넌 정말 괜찮았니?

 
이석주 블로그 글(http://blog.naver.com/soar0108)

이 겨울 눈이 와 눈 생각이 나거나, 눈이 오지 않아 눈이 그리워서 눈이 보고 싶을 때 이 책을 들춰볼지도 모르겠다. 나는 없고 그는 가 있는 곳, 거기엔 눈이 소리없이 오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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