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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평점 :
이제는 꽤나 유명해진 작가, 박민규의 작품을 읽기는 처음이 아닐까 싶다
뭔가 마뜩찮은 느낌에 읽기를 주저해 왔었다
왜 사람들은 소설을 써서 소설가가 되고, 나 같은 사람은 왜 굳이 소설을 바득바득 읽는지 모르면서
소설책을 사들여 일부러 시간과 노력을 들여 소설이라는 걸 읽는다 소설을 읽음으로써 나는 무엇을
얻고 싶은걸까 위안인가 아니면 그저 킬링타임인가
20대 청춘에서 50대 노년까지 멀고도 가까운 인생사를 아주 그럴듯하게 그려내는 작가의 솜씨에 홈
빡 반할만했다 때론 너무 그럴듯하고 동감이 가는 대목에서 정말 '잘 쓰는'작가구나 하는 생각까지.
현재와 미래 까마득한 과거를 오가며 잡아오는 소재 선택이나 진짜같은 감정이입이 되는 사소한 몇
마디의 문장들까지.
머리로 어거지로 만들어 세워놓는 뻣뻣한 캐릭터들이 아니라 흔하게 보이는 주위의 사람들 같더라는
말이다. 마치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매끄러워서 미끄러지듯 따라가게 만드는 흡입력. 물론 엉
뚱한 이야기를 펼치는 작품도 있으나 소설집 전체를 말하자면 훌륭하다는 것이다.
소재와 어조가 참으로 다양하다는 느낌인데 그러면서도 어거지스럽거나 투박스럽지 않다.
먼 미래나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지구 인간들의 다소 쌩뚱맞은 작품에 대해선 아직은 판단 보류다.
side A「근처」「누런 강 배 한 척」「굿바이, 제플린」,side B「낮잠」「별」
같은 작품을 보면 이 작가가 인생에 대해서 또는 산다는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고민과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이 갈만하다랄까... '프로'작가라면 당연할 것 같지만 곳곳에서 보이는 디테일을 보자면 꽁
짜나 날로 소설가가된 건 아니구나란 생각이 든다.
누구나 맞게 마련인 인생 후반기의 화자들의 눈길과 생각 처지를 읽어가자면 난 절대로 늙을 때까지 살
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고 만다. 그만큼 생생하다는 것이겠지. 뭔가를 보고 써 옮긴다해도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수많은 소설가들이 써내는 이러한 소설들, 그러니까 삶의 불편한 진실이랄까 들춰내기 싫은 일들
을 쓰고 읽는 건 왜일까. '재미'도 없고 유쾌하지도 않는 소설들을 왜 써내고 그런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려
는지 모르겠지만 안다고 해도 탐탁지 않기만 하다. 소설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현실에서 패퇴하는 인생들이
얼마나 많은가. 굳이 다시 한번 그런 인생을 들춰낸다고 무엇이 바뀌는가 바뀌어 왔던가? '소설 무용론'이
이런 맥락에서 하는 말인지 모르겠으나 순문학 진영에서 추구하는 것이 어떻게보면 참 부질없다는 느낌도
없지않다. 문학개론 같은 수업시간에 배웠겠지만 지금 다시 개론책을 들춰보기도 싫고. 세계적 거장들이
쏟아낸 불후의 명작들이 과연 인류의 역사의 방향을 얼마나 돌려놓았을까? 아니면 그것은 그저 기념비적인
위치만을 차지한 장식에 불과한 걸까. 뭐 이런 잡생각이 들기도 했다는 거다. 젠장.
닥치고 일이나해서 잘 먹고 잘 사는 게 장땡이다. 책은 무슨 얼어죽을 독서냐. 낄낄낄.
감각적으로 딱딱 끊어놓은 행갈이와 맛깔나게 써먹는 쉼표로 호흡 건너뛰기 같은 것도 저자의 감각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잔잔하게 후벼파는 그의 솜씨가 대단하다 매끄럽게 이어지는 문장 안에 작가가 완전히
화자에 동화되어야만 가능할 것 같은 작품들이다. 너무 '빠'같은 말들인건가 ㅎㅎㅎ
「비치보이스」에서는 딱 20대 초반의 목소리와 감성을 건조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누구나
한번쯤 건너왔을 법한 일들 말이지. 뻔한 걸 그럴듯하게 이야기했다는거지.
「龍龍龍龍」龍 네 자가 모인 한자는 '말 많은 절' 자라고 하는데 무협지 느낌 물씬나는 분위기지만 무협이라는
무늬를 지우고 읽어보면 무슨 이야긴지 작가의 능청스러움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박민규처럼 다작을 하는 젊은 작가도 드물다고 본다. 그가 써낸 장-단편 작품들을 거꾸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생각만. 68년생인 작가가 좀 더 노년에 가까워지면 어떤 작품을 우리 앞에 내놓을지 그것도 흥미롭다.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하듯 책상에 앉아 소설을 쓴다고 어느곳에서 읽은바 있는 데 그런 그의 의지가 그에게
걸맞는 보답을 안겨주기를 조용히 응원하련다. 아울러 그렇게 '글'을 쓰고 있는 모든 글쟁이들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