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타인에게 말걸기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수 년 전 신촌 헌책방 '숨책'에 갔을 때 단지 상태가 깨끗해서 들고 온 것을 이제야 읽는다.
출간 순서와 상관없이『새의 선물』,「아내의 상자」이후 세 번째 읽는 은희경의 소설이다.
그의 소설이나 문체에 대해 특별히 간직하고 있는 것은 없고, 단지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아내의 상자」를 읽던 당시 내게 불편하게 치솟던 감정의 느낌은 희미하지만 그것의 있고
없음에 대해서는 똑똑히 기억한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그것이 은희경 스러운 문투인 것인가
하는 시선으로 읽게 된다. 하지만 요즘의 은희경을 읽어보지 않았기때문에 그것이 유지되고
있는지 아니면 달라졌을지 궁금하다. 이것은 가장 최근작인『소년을 위로해 줘』를 읽어봐야
알겠지만.
동네 커피 '숍'에 가 인도네시아 만델링 원두를 갈아 왔다. 맛이 있고 없고는 상관없이 단지
커피라는 그것이 필요했다.
1판 1쇄가 96년 12월, 9쇄가 97년 6월이다. 지금은 2011년 12월. 꽤나 오래 된 소설이다.
'요즘'이라는 시간의 범위를 어디까지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요즘 소설에 비해 뭔가
'촌'스러운 문장과 '삐삐'라는 한물간 기기의 이름이 더욱 그런 느낌이다. 그래서겠지만
지금이 마치 내가 소설 나부랭이들을 읽기 시작하던 그 무렵인것 같은 느낌이다.
「그녀의 세 번째 남자」때문에 영추사라는 절이 정말로 있는지 검색해 봐야겠고 실재한다면
천 미터 위에 있는 그 절집에 한번 가보고 싶고 댐 때문에 피어나는 안개 속을 걸어봐야 할 것
같고 그렇다.
라고 쓰고 검색해보니 영추사는 북한산 자락에 있는 그리 높지 않은 곳에 있다는... 소설은 소설일 뿐.
「특별하고도 위대한 연인」변사가 이야기 해주는 듯 시종일관 썰을 풀고 있지만 남자와 여자를 번갈아가는
대목에서 꽤나 그럴싸한 입담과 심리설명은 '소설가 은희경'이구나 하는 걸 미리 볼 수 있는 면이 아닐까 했다.
「연미와 유미」여성 특유의 감정을 표현하는 부분에서 여성작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점은 이해하겠지만
중간 부분 '노트'의 내용은 좀 지루했다.
이런 말 저런 말 다 생략하고 그의 등단작 「이중주」는 꽤나 많이 다듬었구나 싶게 여타 작품 보다 견고했다.
그 말은 곧 등단 후 써낸 작품들이 좀 싱겁거나 투박하고 맥이 풀려버린 것 같다는 말과 같다는 거다. 그렇다해서
태작이란 건 아니고.
-지금보다 훨씬 나쁘더라도 지금보다는 나은 거야.
「그녀의 세 번째 남자」가운데.
과연 그런 것인가. 그럴지도 안 그럴지도. 멈추지 않는 시간 앞에서 그런 고민은 허무한 것이다.
시간이 팽팽하다 못해 끊어져버리는 고무줄과 같을수 있다면 모를까 정직하게만 가는 시간을 따라
가지 못하며 하는 고민이란 정말 부질없는 것인데, 그럼에도 째깍째깍 정량화 되는 시간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수시로 시각을 확인하느라 곁눈질 하는 이것, 그런 것인가 아닌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