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 여자 불편해
최영미 지음 / 이미출판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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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읽는 일은 그것을 쓴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작은 길일 수 있다 특히나 문인 가운데 소설가 보다 시인들이 에세이는 더 잘 쓴다는게 내 생각



최영미 시인의 시는 그간 몇 권의 시집을 통해 읽어왔지만 산문은 처음이다 시인의 '생활'을 조금 엿볼수 있어 좋았다

재판, 1인 출판사, 문학판, 스포츠와 운동 등이 주요 키워드가 되겠다
월드컵과 축구, 테니스, 야구와 같은 스포츠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수영을 비롯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며 시인이라고 하면 막연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와장창 깨졌다고나 할까
프로야구 시구까지 했다니 무슨 말을 더하랴

인간은 스포츠 없이 살 수 없다 는 2부의 제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저자가 수영장에 들어서는 순간 너무 기뻐 호흡이 가빠지곤 한다며 수영이 낙이라고 하듯 나 역시 낙이라면 자전거다

그 순간에 그것이 되는 것, 열정이었다.
_101p

이 말이 참 좋았고 와닿았다
운동이라는 취미를 통해 열정을 배웠다는 말, 나는 물이 무서워 감히 수영장 근처도 못간다 나는 자전거 안장 위에서 끝내 도달하지는 못하지만 소실점 같은 전방을 바라보며 끝없이 패달링할 때 그야말로 그 순간에 그것이 된다 뻥 좀 보태 무아지경 이랄까

이밖에도 스포츠나 운동에 관한 이야기들이 너무나 뜻밖이어서 재미 있었다

한편으로 1인출판사의 등록과 그에 따른 업무에 관한 이야기나 계약서 쓰는 요령 등 시인의 에세이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그걸 여기서 다 까발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고

시집을 통해 그려지는 시인은 좀 비현실적 존재 같다면 이런 에세이를 통한 시인은 옆집 이웃 사촌 같을만큼 가깝게 느껴진다 그게 에세이가 가진 매력이겠지만 말이다 덕분에 오랜만에 이야기에 빠져본 시간이었다
건강하소서...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야 예술이 나온다. 적당히 고독해라. 너무 고독하면, 주위에 아무도 없으면 또라이가 되거나 일찍 죽는다
_149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도다.
_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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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버드 - 버드스미스 짧은소설집
버드 스미스 지음, 안덕희 옮김 / 마요네즈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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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글자가 좀 작다
‘미친 사랑 이야기만 쓴다‘는 띠지 카피가 괜한 선입견을 가지게 해서 불필요한 평을 낳게 한다

24 풍경을 대해 -> 풍경에 대해
38 적자였습니다. -> ˝표 누락
50 몇 백 피트 -> 미터법으로
71 정말 사랑하니까. -> ˝표 누락
72 눈부셔서 눈을 들 수가 없었다 -> 뜰 수가
100 농담 밖에 -> 농담밖에
134 뛰어넘으며 점쟁와의 대화를 -> 점쟁이
196 어쩌다가 차를 잊어버리셨죠? -> ‘잃어‘가 아닐까
217 침을 맞았면서 -> 맞았으면서
239 그래야겠어요. 해볼게요. -> ˝표 누락
250 거인 앙드레는 -> 안드레

소설을 읽는 이유는 여러개 있겠지만 간접적 체험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경험도 있겠다
그런 면에서 고전 소설은 마치 시골의 풍경이라 한다면 버드 스미스의 짧은 소설은 번잡한 도심과 같다
언제 사이렌이 울릴지 어느 구역에서 총격전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미국의 어느 도심 말이다
그런 도심의 예측불허 상황이 재미삼을수 있겠다면 이 소설을 읽을수 있을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고전 소설이 주는 재미를 추구한다면 읽다가 집어던지지 않을까
한편 한편 읽어가면서 이번 소설은 또 어떤 상황을 상상해서 써놓았으려나 이 작가는 과연 독자를 어떤 상황에 던져놓고 싶어 소설을 써나갔을까를 생각해보면 큭 웃음이 나기도 한다
한국의 단편소설들은 빈틈 하나 없이 짜여진 하나의 조립품에서 느낄수 있는 구성미 같은게 재미랄수도 있는데 그것에 익숙해지면 뜬금없고 느닷없이 이어지는 소설을 보면 이게 무슨 소설이야랄 수도 있겠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 역시 느닷없고 뜬금없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매끈하게 가공시키는데 그 가공의 세계에서 어쩌다 만나는 거칠고 까끌한 소설에서 느끼는 또다른 현실감이 매력적일 수 있다 버드 스미스의 소설처럼
레너드 스키너드의 프리 버드에서 제목을 따온것 같은 마지막에 실린 프리 버드에서처럼 작가들에게 자신의 사후 순간에 대해 써보라는 테마로 책을 내본다면 싶다
찰스 부코스키가 자신의 묘비명을 애쓰지 마라 don‘t try라고 할거라고 어떤 책에서 읽은것 같은데 그처럼 묘비명 이야기도 섞어서 말이지
파리 리뷰에 실렸다는 단편은 어떠했을지 그리고 단편으로 미루어 장편 또한 예측불허의 이야기일텐데 긴 호흡으로 쓸 땐 어떻게 썼을까 궁금하다만 과연 뭔가 마이너스러운 작가의 작품을 위험 부담을 안고 출간할 용감한 출판사가 있을지 회의적이긴 하다
여하튼 인스타 알고리즘의 생각지도 못한 안내로 급히 읽게된 버드 스미스의 소설은 예상밖에 좋은 읽기였다


모든 사람은 스스로에게도 낯선 완전히 새로운 개별 사건이다
87p

너무 고통스러웠다.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기억한다는 건.
97p

이 소설에 반전은 없어요. 인생이 그렇듯이요.
130p

추억도 예술도 의심도 없는 게 차라리 낫겠습니다.
133p

만일 인생이 당신에게 준 것이 레몬이면, 그냥 레몬과 섹스를 해라.
189p

내 권력은 온라인 리뷰에서 시작하고 거기서 끝났다.
190p

우리는 모두 잠들었다가 다른 사람이 되어 일어난다.
221p

인생의 사다리에서 행복이라는 발판이 빠지는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22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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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8-22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궁금해 하던 책이었는데
리뷰 감사합니다 :>

아마 미국 책이어서 피트 마일
을 미터법으로 바꾸진 않을 듯
합니다. 사실 저희는 미터법이
편하긴 하죠.

레너드 스키너드의 <프리버드>
호기심이 확 땡깁니다.

얄븐독자 2022-08-22 13:42   좋아요 1 | URL
어떤 곡인가 싶어 저도 찾아들어봤습니다 ㅋ 일러두기에 미터법으로 바꾼다했는데 미처 수정안된 부분이 있었습니다 :)
 
자유죽음 - 살아가면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에 대하여
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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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자유죽음'이라 지칭한 자살을 방조하거나 옹호하는 글이 아니다.

'죽음'보다 죽음의 '자유''의지'에 대한 저자의 끈질긴 고백이자 증언이다.

하루하루 떠밀리듯 살아지는 삶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기도 하다.

 

죽음 이후를 알 수 없으므로 죽음이 자유를 안겨줄지는 미지수이다. 다만 그것에 대한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으로 그만이다. 더이상 무엇이 있겠나. 현재로써는 다만 라는 언어밖에 없다. 죽음이 자유와 평안을 준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프리모 레비, 엘리 위젤과 더불어 아우슈비츠 생존 3대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자유죽음"을 쓰고 2년 후 자살했다고 한다. 뒤이어 프리모 레비 역시 자살 한다. 어쩌면 저자는 이 글을 쓰면서 이미 '자유죽음'을 결심했던게 아닐까 싶은 심정들이 곳곳에서 읽혀진다. 내가 보기엔 그렇다. 그렇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글이다.

 

저자의 말대로 '자살'이란 말 대신 '자유죽음'이라는 말이 적합하다. 자유죽음으로 대치 하자고 하면 종교적, 사회적 반대에 부딪힐게 불보듯 뻔하다. 수많은 자유 가운데 자신의 죽음에 대한 자유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지. 죽음은 곧 삶이니까. 조 로만의 저작 "知的 자살"의 주장과 상통하겠다.

 

저자의 표현대로 '손을 놓아버리는 것'을 아무리 이야기한들 '그래도 살아야지'편인 대다수 사람들은 이해 못한다. 인간이란 그렇게 생겨 먹은 존재다. 자기 인생 앞에 닥쳐야만 뼛속 깊이 알게 된다.

 

끈질긴 저자의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과연 '자유죽음'을 이해해보려는 인간이 얼마나 있을까. 저자 사후 40여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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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8-20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산책자에서 나온
장 아메리의 이 책을 사려고
중고서점을 누비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데 정작 새로 단장해서
나왔는데 주저하게 되네요.

역시나 죽음이라는 주제 때
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고하신 지 40년이나 되었
군요.

얄븐독자 2022-08-20 23:00   좋아요 1 | URL
이쪽? 분야에 관심 있는 분들에겐 나름 필독서, 필소장 각인 책이었는데 이렇게 재출간되어 반갑기도 합니다. 죽음에 대해 특히나 자살에 대해 이야기하는걸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럼에도 그것만큼 강렬한 관심을 끄는것도 없을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인... :)
 
친구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공경희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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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표지가 이 소설을 다 망쳤다,까진 아니지만 작품이 가진 의미를 상당부분 감추고 축소해버렸다

제목과 표지의 개 그림이 주는 이미지는 아 친구 같은 개에 관한 소설이구나,로 짐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살펴보지도 않고 무관심 영역으로 던져버렸고

그런데 이 책의 한 페이지를 찍어올린 사진에 꽂혀 급히 찾게 되었다
아니, 개에 관한 소설에 이런 문구가 인용될 일이냐고

다시 말해 이 소설은 그레이트데인 이라는 대형견 아폴로가 등장하지만 아폴로를 맡게된 화자가 회상하는 그 그리고 글쓰기에 관한 것이 주가 아닌가 하는게 내 생각이다 그런 책으로 보였다면 일전에 누네즈의 #어떻게지내요 를 읽고 곧바로 읽었을지도라는 핑계를 ㅋ

여성 편력이 심한 소설가이자 교수가 자살하고 그의 연인이자 ‘여자사람친구‘인 나 역시 작가이자 교수다
그렇다보니 글쓰기와 강의에 관한 것들 그리고 이름만 들어도 아는 자살한 작가들과 작품 속 문장들이 곳곳에 산재한다 찾아 읽어보고 싶은 작품들이 또 꼬리를 문다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라거나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그리고 르귄의 단편 이름의 법칙 등등

릴케가 정의한 사랑은
고독한 두 사람이 서로 지키고 가까이 있고 반기는 것
161p

나보코프의 롤리타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은 아마 누네즈의 교수 경험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 소설 속 학생들의 생각이 요즘 작가 지망생들의 생각과는 어떨까 궁금키도 했다
이런 류의 이야기들이 아폴로 이야기보다 많다(고 본다)보니 과연 이 소설이 반려견이 중심이 되는것일까에 상당한 거부감을 가질수밖에

마찬가지로 소설의 막바지에 논하고 있는 타자의 비극을 소설화 하는 것에 대한 비판과 의견은 읽어봄직한데 표지를 생각하자면 또 울화통이 터진달까 ㅋ

아폴로의 귀 한쪽 끝이 잘려나가 짝짝이 귀라고 본문에도 설명 되어 있는데 아폴로를 이미지화 했을 표지의 귀는 좀... 그런 디테일도 좀 아쉽다면 아쉽
해외 표지는 어떤가 싶어 찾아보니 거기도 개를 이미지화 하긴했지만 국내와 많이 다르긴 한데 그 역시 좀 생뚱 맞긴하다

소설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분명 ‘친구‘는 아폴로가 맞을듯하지만 화자가 회상하는 자살한 그와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연인이었지만 연인이 되지 못하고 결국 친구로 남았다는데서 제목은 중의적으로 볼 수 있는데 또 표지가 참 아쉽다
표지 갈이는 이런 작품을 해야하는게 아니냐 그 말

이 책의 5p, 본문이 시작되는 앞 페이지에 인용된 문구 사진을 보면 표지가 완전 사기 아니냐 싶을 정도 아닌가?

한줄 요약
글쓰기나 작가지망생에 관심 있다면 흥미로울? 소설

교정 누락
43p 술집에서 만취해 감상적인 된 당신은
139p 특정 독자를 염두에 쓰고 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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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소년의 정신 - 하루키 읽는 법 세계문학공부
양자오 지음, 김택규 옮김 / 유유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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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읽긴 다 읽었다, 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읽기 전 썼던 호들갑스런 수다에서의 기대와 달랐다는 것

일단 책의 물리적 분량으로 봤을때 차지하는 오이디푸스를 비롯 신화 이야기가 지루했다 굳이 시시콜콜 다 써야했나

말미에 실린 옮긴이의 말에서 옮긴이 역시 하루키는 안읽어도 되는 작가로 분류한 입장이었으나 번역을 위해 읽어본 해변의 카프카 등 하루키의 문학 속에 내포된 의미에 새삼 놀랐다고 한다

비중 있게 오이디푸스 신화와 하루키 문학의 관계에 대해 다루었지만 딱히 유니크하게 읽히진 않는다 왜냐면 영미문학이든 한국문학이든 신화를 끌어와 문학 비평을 한 경우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모르긴해도 가장 흔한 소재가 오이디푸스 아닐까?

저자의 주장이 뭔가 희미한 안개 같았던건 언급된 해변의 카프카를 비롯 세계의 끝과... 등등의 작품을 손에 쥐었던게 너무 오래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뭔가 쩜쩜쩜
무엇보다 인문학자인 저자와는 비교불가한 얄팍한 식견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일반적인 이미지로 보면 하루키의 작품은 매우 가볍다. ... 하지만 하루키는 복잡한 작가이며 그의 심각함은 표면적인 경쾌함 속에 숨겨져 있다
_248p

저자는 하루키가 숨겨놓은 심각함을 알아차리려면 하루키의 상호텍스트적 단서를 다루는 데 달려 있다고 한다
이 말은 소설을 읽는 태도가 ‘깊이 읽기‘여야 한다는 것으로 보이는데 하루키의 소설을 읽을 때 깊이 읽기로 작정하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이 말은 하루키 독자들에 대해 오해의 소지가 있겠는데, 그렇다면 다른 ‘심각한‘ 소설이나 그런 작가들은 굳이 깊이 읽지 않아도 심각함을 잘 알겠던데 심각함을 감추는건 하루키의 작가적 재능 또는 전략인 것인지 아니면 저자만의 주장인 것인지

어쨌든 하루키 문학에 대해 가볍게 여기지 않는 이런 글을 만나볼 수 있었다는 것에 의의가 있었다 그럼에도 다시 하루키를 읽을것 같지는 않다 아직 만나보지 못한 작가나 작품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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