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어린이. 어른
폴 아자르 / 햇살과 나무꾼 / 시공주니어 / 2001 / 235쪽
(2015. 03. 19.)
우리 아이들이 글자를 읽고 책을 좋아하게 되면서부터, 좋은 책을 골라주서 권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으로 어떤 책을 선택할까 하는 고민을 시작되었다. 그런데 웃긴 건 어떤 책이 아이들에게 좋은 책인지 나 자신의 기준이나 명확한 개념이 없이 단지, 남들이 유명하다고 권해주는 책, 인터넷에서 떠도는 몇 세 아이들 필독서 리스트들 위주로 골라서 아이들에게 읽혀주고 있었다는 거였다. 그래서 그림책을 소개하는 책들, 아동 독서 전문가들이 추천해주는 책들, 좋은 책을 골라주기 위한 책들을 골라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 중에 우연히 알게 된 책이 '폴 아자르'의 <책. 어린이. 어른>이란 책이다. 이 책은 나와 같이 아이들에게 어떤 책을 읽혀주면 좋을 까 고민하는 부모들이 꼭 읽어보면 좋은 책인것 같다.
아이들에게 책을 골라주면서 부모의 마음으로 고민하게 되는 것들이 또 있는데,
재미있는 책 뿐 아니라 공부가 되는 책을 같이 읽으면 아이들에게 더욱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계속 갖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큰아이가 가장 싫어 하는 과목은 "수학" 그래서 책 중에서 가끔은 수학과 연관된 책들 중에서 재미있고 유명한 책들을 골라 권해주곤 하는데, 여간 재미가 있지 않고서는 바로 표지부터 퇴짜를 맞기가 일쑤이다. 그럴수록 어떻게 하면 이런 책들을 읽힐 수 있을까하는 부모의 고민은 더욱 깊어져만 가는 것 같다.
그런데, <책.어린이.어른>이란 책을 읽으면서 아이를 위한 좋은 마음에서 시작된 그런 나의 고민은 부모로써 나의 아이들을 바라보고 생각했던 고민이 아닌 단순히 어른이 된 입장에서 어린이를 바라보며 생각했던 생각들이 었음을 알게 되었다. '폴 아자르'는 이 책에서 나와 같은 어리석은 어른들에게 이렇게 전해주고 있다.
어린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 책을 주세요. 날개를 주세요. 우리가 더 멀리까지 날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 마법의 정원 한가운데에 새파란 궁전을 지어 주세요. 달빛을 받으며 한가로이 거니는 요정들을 보여 주세요. 우리들에게 꿈을 남겨 주세요."
어른들은 이렇게 말한다. "어린이들은 이제 글도 읽을 수 있고 조금 자라기도 했다. 그리고 책을 달라고 졸라대니 그들의 호기심과 독서욕을 이용하자. 어린이들이 즐거워하니까 어쨌든 성을 만들어 주자. 하지만 그 성은 우리 방식대로 짓는 거다. 궁전에는 교묘하게 위장한 공부방을 만들어 주자. 정원에는 야채를 심어 두자. 그럼 어린이들은 그것을 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뒷골목 모투이에는 분별이라든가, 질서, 지혜, 온갖 지식, 물리나 화학 같은 것들이 나타나도록 계획해 두자. 겉으로는 줄독 유모가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척하면서 사실은 수준 높은 학문 이야기를 들려 주는 거다. 어린이들은 천진난만하니까 그런 사실은 꿈에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어린이 자신은 놀고 있는 줄 알지만, 사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부하는 셈이다."
어른들은 이처럼 인간이 생활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감미로운 년을, 단지 성장할 뿐 아니라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맛보는 이 풍요로운 시간을 무참히 짓밟아 버리려고 한다. 아이가 읽는 동안 즐거움과 행복감을 만끽할 수 있는 좋은 책을 골라 줄 수 있도록 더욱 고민해야 할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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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는 마치 어른과는 다른 인종인 것 같다. 지칠 줄 모르는 어린이들의 유별나고 풍부한 생명력은 그저 놀라운 따름이다. 어린이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소리지르고, 싸우고, 화해하고, 폴짝폴짝 뛰면서 돌아다닌다. 그들이 잠을 자는 것은 다음날 일어나 전날과 같은 일을 되풀이하기 위해서이다. 어린이들의 연약하고 미숙한 육체는 이미 미래를 향한 성숙을 갈구하고 있다. 또한 어린이들은 아직 소유하지 않은 온갖 것들을 소유할 수 있는 풍부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무한한 가능성이 잠재된 마법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상상은 어린이들에게 최고의 즐거움일 뿐만 아니라 자유의 상징이며 생명의 도약인 것이다.
(P.12)
상상력은 영혼과 마찬가지로 저절로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양식을 원한다. 인간은 빵만으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어린이들은 집과 옷과 사랑뿐 아니라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 주는 사람에게 무엇인가 이야기해 달라고 조른다. 이때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어린이들에겐 낯선 세계라고 할 수 있는 드라마나 만화 속에 등장하는 도깨비나 밤, 늑대로부터 그들을 지켜 주는 믿음직스런 보호자가 된다. 그러므로 어린이들은 안심하고 이야기를 듣는다.
어린이들은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면, 눈 밑에서 살아 움직이는 작고 검은 글자들을 쫓으며 '무엇이 튀어나올까?" 하는 기대감으로 가슴 부푼다. 예쁘고 흥미진진한 책을 본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또 어린이들의 세계는 얼마나 더 커질 것인가! 어린이들은 분명히 지금까지와 똑같이 놀 테지만, 그 놀이는 전보다 한층 의미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어머니가 어린 시절에 할머니를 졸라 즐겨듣던 이야기를, 그들도 똑같이 어머니의 기억에 매달려 들었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 어린이들은 스스로 책장을 넘기면서 아름답고 굉장한 이야기를 몇 편이고 만날 수 있다.
(P.12)
어른들은 오랫동안 어린이들의 소원을 들어 주지 않았다. 자기 자신에게 지극히 만족스러워하는 어른들을 어린이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쓴 책을 주어왔다. 어린이들이 싫증만 내고 지혜를 얻는 일을 괜히지겹게 만드 책, 쓸모없고 공허한 책, 현학적이고 음침한 책, 영혼의 자발적인 힘을 짓뭉개 버리는 책, 봄에 내리는 우박처럼 어린싹을 다치게 하는 어리석은 책, 어른들은 그런 책을 수십 권, 수백 권씩 주어왔다. 또한 어린이들의싱싱한 마음을 목졸라 죽이는 것도, 정신을 마멸시켜 자유로운 감각과 놀이의 즐거움을 빼앗는 것도, 한계나 규칙이나 구속 따위를 강요하는 것도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해 왔다. 그럴수록 어린이들이 어른들만틈 성숙해진다고 보고 흡족해한 것이다.
(P.13)
어린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 책을 주세요. 날개를 주세요. 우리가 더 멀리까지 날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 마법의 정원 한가운데에 새파란 궁전을 지어 주세요. 달빛을 받으며 한가로이 거니는 요정들을 보여 주세요. 우리들에게 꿈을 남겨 주세요."
어른들은 이렇게 말한다. "어린이들은 이제 글도 읽을 수 있고 조금 자라기도 했다. 그리고 책을 달라고 졸라대니 그들의 호기심과 독서욕을 이용하자. 어린이들이 즐거워하니까 어쨌든 성을 만들어 주자. 하지만 그 성은 우리 방식대로 짓는 거다. 궁전에는 교묘하게 위장한 공부방을 만들어 주자. 정원에는 야채를 심어 두자. 그럼 어린이들은 그것을 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뒷골목 모투이에는 분별이라든가, 질서, 지혜, 온갖 지식, 물리나 화학 같은 것들이 나타나도록 계획해 두자. 겉으로는 줄독 유모가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척하면서 사실은 수준 높은 학문 이야기를 들려 주는 거다. 어린이들은 천진난만하니까 그런 사실은 꿈에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어린이 자신은 놀고 있는 줄 알지만, 사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부하는 셈이다."
어른들은 이처럼 인간이 생활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감미로운 몇 년을, 단지 성장할 뿐 아니라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맛보는 이 풍요로운 시간을 무참히 짓밟아 버리려고 한다.
(P.14)
나는 예술의 본질에 충실한 책을 사랑한다. 그것이 어떤 책인가 하면 직관에 호소하고 사물을 직접 느낄 수 있는 힘을 어린이들에게 주는 책, 어린이들도 읽자마자 이해할 수 있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책, 어린이들의 영혼에 깊은 감동을 주어 평생 가슴 속에 추억으로 간직되는 책, 그런 책 말이다.
(P.59)
잔재주를 부려 이야기를 솜씨 있게 만들어 내어 어린이들이 소화하기 힘든 가짜 읽을거리를 던져 줌으로써 어린 영혼을 짓누르거나, 의젓한 도덕가 같은 태도로 교훈이나 지식을 선심 쓰듯이 내놓거나, 한술 더 떠서 단점이나 결점을 장점 내지 미점이라고 믿게 하여 어린이들을 그르치는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용서할 수 없다. 내가 어른이 어린이를 억압했다고 말한 의미는 바로 이런 것이다.
(P.63)
어린이를 대등하게 다루지 않고 '친애하는 어린 독자 여러분' 따위로 부르는 책, 어린이들의 천성에 어울리지 않는 책, 아름다운 그림으로 눈을 즐겁게 해주지 못하는 책, 생기 넘치는 강렬한 표현으로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책,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밖에 가르치지 못하는 책, 졸음은 자아내도 꿈은 이끌어내지 못하는 책, 어린이들은 그런 책을 단호히 거부한다. 그렇지만 반대로 어린이들이 특별히 어떤 작품을 골라 손에 넣으려고 결심한다면 지렛대를 가지고서도 그들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저기 있는 저 책이지, 그 옆에 있는 책이 아니다. 어린이들은 모두 그 책을 원하고 있다. 그들은 그것을 꽉 붙잡고, 거기에 제 이름을 써넣고, 자기 것으로 만든다. 설령 그 책이 어린이들을 위해 쓰여진 이야기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문제는 그 책이 어린이를 매혹시키는 책인가 아닌가이다.
(P.71)
인간의 본성을 가려내려고 몰두하는 동화작가, 인생의 고통을 몸소 체험하고 생명이 없는 물건에게까지 살아갈 용기를 주려고 한 안데르센, 안데르센은 추위에 떨면서도 세상은 언제나 따뜻한 곳이라고 떠벌이는 위선자는 아니다. 그는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악의 문제, 생존의 문제 들을 대담하게 내놓는다. 그러나 진실을 알았다고 해서 살아갈 용기를 잃지는 않는다. 그는 나아가 진실을 더 깊이 알고자 하며 정면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사람이 괴로워하는 것은 오히려 진실을 반만 알고 있을 때이다.
(P.136)
과연 어떤 책이 좋은 어린이책인가?
아마도 어린이책을 연구하거나 출판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고민하는 질문이자,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일 것이다. 이런 질문에 부딪칠 때마다 우리는 <책. 어린이. 어른>을 떠올리게 된다. 이 책에는 어린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과연 좋은 어린이책이란 무엇인가를 비롯하여 어린이 문학의 역사, 세계 여러 나라 어린이 문학에 이르기까지 폴 아자르 특유의 예리한 통찰력으로 제시된 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에게 스승이자 친구와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P.224)
폴 아자르는 명쾌하게 말한다. "어린이란 자유로운 상상력을 지닌 창조적인 존재이며, 좋은 어린이책이란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를 펼쳐 놓은 책이다."
(P.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