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
장강명 / 문학동네 / 188쪽
(2016.  8.  04.)


순서가 뒤섞인 순서 없는 이야기들 속에 자신만의 순서를 찾는 흥미로운 소설




  인간이란 건 결국 패턴이야. 남자가 설명했다. 앞에는 새장을, 뒤에는 새를 그린 부채를 상상해봐. 부채를 빠르게 돌리면 새장 속에 갇힌 새가 생겨. 신경회로 위에 의식이 떠오르는 과정도 그와 비슷해 전기신호들이 회로 속을 바르게 다니다가, 어느 순간에 갑자기 불쑥, 유령처럼, 밤거리의 네온사인들이 제각각 깜박이다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동시에 켜지고는, 그 다음부터 함께 점멸하는 광경을 상상해봐.
(P.8)



  우주에는 시작이 없어. 남자가 대답했다. 우주는 마치 볼펜과 같은 거야. 그냥 하나의 덩어리이야. 볼펜은 길쭉하게 생겼기 때문에 사람들은 볼펜에 양끝이 있다고 말하지. 하지만 사실은 볼펜이 공기와 닿는 모든 면이 다 볼펜의 끝이야. 그 모든 접점에서 볼펜이 시작하고 끝나는 거야. 우주도 비슷해. 시공간연속체가 무와 만나는 지점이 있지. 거기서 우주는 시작하고 끝나. 그 안쪽에는 우주 알이 있어. 그 바깥쪽에는 우주 알이 없고.
(P.10)



  학생들은 학교에 있을 때에는 인간이라기보다는 개미나 벌을 더 닮았다. 교사들은 지친 로봇 같았다. 운동장은 재래시장의 늙은 상인처럼 무덤덤한 얼굴로 대낮을 견디다 하교시간 즈음애서 제 혈색을 되찾았다. 운동장의 성별은 아마 남성인 것 같았다. 수업을 마친 남자아이들이 축구를 할 때 즐거워했으니까. 운동장은 신화적인 존재이기도 했다. 해 질 무렵부터 슬슬 마력을 뿜어내기 시작해 밤이 되면 귀기를 몸에 둘렀다. 그러다 아침이 되면 다시 사소하고 조잡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P.30)



  마지막에 아버지랑 딸이 꼭 만나야 하는 거야?
  만나야지. 그렇게 오래 기다렸는데, 이런 영화가 해피엔딩이 아니면 좀 곤란하잖아.
  하지만 생각해봐. 그 아버지와 따른 서로 못 본 채로 수십 년을 떨어져 살았어. 그러다가 마지막에 만나는 건 겨우 십 분 정도야. 그 십분으로 인생이 해피엔딩이 되고 안 되고가 결정되는 거야?
(P.86)


  전망대도 운동자과 비슷했다. 바깥 하늘이 붉어지자 조금씩 마력을 얻었다. 여자의 시간이 제 속도를 조금 잃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인간들의 현재와 미래는 기묘하고 쓸쓸했다. 인간이라기보다는 개미와 벌을 더 닮았다. 여자는 제대로 된 순서에 대해 생각했다. 도시는 점점 빛으로 된 암호가 되어 갔다.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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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의 <방법서설>

(『철학사상』별책 제2권 제3호)
2003년 / 윤선구 / 서울대학교 철학사상 연구소 / 90쪽



데카르트의 많은 저서 중에서도 <방법서설>은 가장 기본적인 저서에 속한다. 이 책은 철학만을 위한 방법이 아니라 학문 전체를 위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고, 무엇보다 절대적인 진리의 가능성을 확신하는 합리론자로서 데카르트의 신념과 이성을 신뢰하고 자신의 이성에만 의지하겠다는 근대적 정신이 명확히 표출된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을 포함한 일반 학문의 연구자 그리고 일반교양인들 까지도 반드시 한번쯤 읽어봐야 할 책이다. 



<방법서설>은 데카르트가 1636년에 쓴 <이성을 잘 인도하고, 학문에 있어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방법서설, 그리고 이 방법에 관한 에세이들인 굴절광학, 기상학 및 기하학>이라는 다소 긴 제목이 붙어 있는 책의 첫 번째 부분이다. 통상 첫 번째 부분만 독립적으로 떼어내어 <방법서설>이라 이름하여 출판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방법서설>의 원 제목은 <이성을 잘 인도하고, 학문에 있어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방법서설>인 셈이다. 책의 제목으로만 보면 이 책은 방법에 관한 논고이다. 그러나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단순히 방법에 관한 논고만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 까닭은 이 책이 6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철학의 방법, 즉 이성을 올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규칙에 관한 내용은 2부에서만 다루어질 뿐이기 때문이다.
(P.3)



  제1부에서는 기존학문과 관습에 대하여 비판하고, 참된 인식에 이르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져 있는 이성을 올바로 사용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2부에서는 참된 인식을 얻기 위해 이성을 인도하는데 적용되어야 할 규칙, 즉 이성의 올바른 사용을 위한 방법과 이 방법을 어떻게 고안하였는지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고, 3부에서는 이 방법을 적용하여 참된 지식을 얻기 전에라도 실천적인 행동은 해야 하므로 이때 필요한 임시방편적인 행동원칙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4부에서는 후에 <성찰> 에서 상세히 서술하게 될 철학의 제일원리, 정신으로서 자아의 존재, 그리고 신존재 등 형이상학적 주제에 대한 인식과정이 간략히 서술되고 있고, 5부에서는 <방법서설>저술 당시에는 출판되지 않았지만 이미 저술이 완료되어 있던 <세계와 빛에 관한 논고>에 대한 내용과 혈액순환 등 동물학 관한 내용 및 인간과 동물의 차이에 대한 내용이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고, 마지막으로 6부에서는 <세계와 빛에 관한 논고>는 출판하지 않았으면서, 마찬가지로 자연학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책인 <이성을 잘 인도하고, 학문에 있어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방법서설, 그리고 이 방법에 관한 에세이들인 굴절광학, 기상학 및 기하학>이라는 책은 왜 출판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해명이 담겨있다.
(P.3)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을 좁은 의미에서 철학에 대한 방법론이 아니라 자연학 나아가 학문 일반의 방법론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데카르트는 이성을 인도하는 규칙에 따라, 방법적 회의를 통하여 철학의 제일원리로 불리는 최초의 확실한 인식인 자아의 존재를 인식하는 과정과, 자아의 존재와 정신 안에 존재하는 신과 물체에 대한 관념으로부터 신의 존재와 본질에 관한 인식, 그리고 물질세계의 존재와 이 세계를 지배하는 자연법칙을 도출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확실한 인식으로서의 자연에 관한 인식을 획득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P.4)



  그가 생각하기에 인간이 확실한 인식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오류에 빠지는 것은 절대적으로 확실한 인식이 존재하지 않거나, 그것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이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이성을 올바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인간은 누구나 이성사용을 올바로 인도하기만 하면 확실한 진리의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고, 이성 사용을 인도하는 규칙을 마련하고 이를 진리를 인식하는 방법이라고 부르고 있다.
(P.20) 



데카르트의 학문탐구 방법은 그의 기존학문에 대한 비판을 토대로 개발되었다. 즉 그의 방법론은 기존학문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확실한 인식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론이다. 따라서 그의 기존 학문에 대한 비판을 살펴보면 방법에 대한 데카르트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다. 그의 기존 학문에 대한 비판은 대체로 세 가지의 기준에 따른다. 첫 번째 기준은 일상적 삶에의 유용성이고, 두 번째 기준은 이성을 통한 학습가능성, 그리고 세 번 째 기준은 확실성이다.
(P.23)



데카르트는 도덕을 중요시하였던 까닭에 보편적인 회의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도덕적 실천은 한시도 중단될 수 없는 것이라 하여 잠정적인 도덕규칙을 설정하기도 했다. 그가 세운 잠정적 도덕규칙은 네 가지인데, 첫 번째 규칙은 자기 나라의 법률과 관습, 그리고 종교를 존중하고 사려 깊은 사람들이 실 생활에서 취하는 온건한 입장을 따르자는 것이고, 두 번째 규칙은 아무리 의심스런 것이라도 일단 따르기로 결정했으면, 확고하고 결연한 태도를 취할 것, 세째 운명이나 세계의 질서보다는 나 자신과 내 욕망을 바꾸려고 노력할 것, 네 째는 세상 사람들이 종사하는 직업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자는 것 등이었다.
(P.27)



데카르트는 기존 학문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후에 혹시 실생활에 속하는 것에서 확실한 것을 발견할 수 있는지 검토해보고자 한다. 실생활에 속하는 것은 잘 못되면 즉시 손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잘 못된 추리에 대해서는 즉시 시정하려고 할 것이며, 따라서 학문에서 보다 실생활에 속한 것에서 더 확실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학교를 마친 후 세상을 여행하면서 여러 나라와 지방의 생활관습들을 경험하게 되는 데, 이를 통해 그가 얻은 결론은 나라나 지방마다 생활 관습이 다르다는 것이었고, 우리에게는 이상하게 보이는 것이라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아주 자연스럽게 보이며, 따라서 확실하게 보이는 관습이나 선례도 실은 확실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데카르트는 확실한 진리를 발견하려면 전통이나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이성에만 의존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P.30)



데카르트가 의미하는 양식이란 참된 것을 거짓된 것에서 구별하는 능력, 다시 말하면, 참된 것, 즉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이다. 데카르트는 인간은 누구나 이 인식능력을 동등하게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가 강조하는 것은 인간은 누
구나 진리를 인식하기에 충분한 인식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많은 학자들이 지금까지 진리를 발견하지 못한 것은 그들이 양식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적게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양식을 적절하게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이성이란 소유하고 있는가 소유하지 않는가를 구별할 수 있을 뿐 더 많이 소유하는가 더 적게 소유하는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는 능력이다. 따라서 이성은 지능과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P.32)



데카르트에 의하면 인간은 인식능력도 가지고 있고 인식대상도 존재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진리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성을 올바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그로 하여금 이성을 올바로 사용하도록 인도할 규칙 또는 방법을 개발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P.36)



데카르트는 인간은 누구나 진리를 인식하기에 적합한 인식능력인 이성을 가지고 있고, 흔하지 않기는 하지만 이 이성을 통하여 인식할 수 있는 대상도 존재한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가 종종 진리의 인식에 도달하지 못하고 오류에 빠지는 거나 우리가 진리라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확실한 진리가 아니라 의심스러운 이유는 이성을 올바로 사용하지 못하였기때문이다. 따라서 진리 인식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인식의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는 진리 인식의 충분 조건은 아니며, 진리를 인식하기위해서는 이성을 올바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이러한 입장은 합리론의 특징적인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P.37)



데카르트는 <방법서설>보다 8년이나 앞서 집필했던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에서는 21개의 규칙을 제시하고 있는데, 원래 이 책은 3장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각 장은 12개씩의 규칙을 포함하여 총 36개의 규칙을 제시하려고 했었는데, 저술이 미완성으로 끝나, 21개의 규칙만을 제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는 단지 4개의 규칙만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데카르트가 이성의 올바른 사용을 위해서 그렇게 많은 규칙이 필요하지 않고 단지 4개의 규칙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P.39)



데카르트의 학문체계에 있어서 형이상학은 가장 근본적인 토대에 해당한다. ꡔ철학의 원리ꡕ 불어 판 서문에서 언급한 나무의 비유에 의하면 형이상학은 나무의 뿌리에 해당한다. 데카르트 형이상학의 내용은 관점에 따라 두 가지 측면에서 고찰될 수 있다. 첫 번째 측면은 인식의 측면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인식의 확실성을 확보하는 문제이다. 여
기서 데카르트는 자아와, 신, 세계의 존재에 대한 확실한 인식에 도달하고자 한다. 그는 이 세 가지 대상에 대한 관념이 정신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관념에 대응하는 외적 대상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에는 확실한 근거가 없다고 생각했다. 두번 째 측면은 존재론적 측면으로 무엇이 실체인가 하는 문제이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과 <성찰>에서 실체의 개념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은 채 사용하고 있는데, <철학의 원리>에서 비로소 “존재하기 위해서 다른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방법서설>, 1부 51절)이라고 규정되며, 이러한
실체는 정신과 물체 두 가지라고 보는 실체 이원론을 주장하였다.
(P.46)



방법적 회의란 데카르트가 의심스럽고 불확실한 인식을 제거하고 확실한 인식만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의 인식에 대해 의도적으로 제기하는 의심을 말한다. 이것은 철학적인 근거를 추구하여 그 결론으로서 모든 인식의 가능성에 대해 회의하는 결론적 회의와 구별된다. 방법적 회의는 오히려 결과로서 아무리 의심하려고 해도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인식을 추구하려는 의심이기 때문이다.
(P.49)



방법적 회의란 확실한 인식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불확실해 보이는 모든 것을 의심해 봄으로서 절대적으로 확실한 토대를 마련하고 그 위에 확실한 인식을 쌓아가려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는데, <방법서설>에서 데카르트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차원의 방법적 회의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 중에 하나는 불확실한 기존 학문 전체를 허물고 확실한 철학, 즉 형이상학의 토대 위에 확실한 인식체계로서의 보편학문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기존 학문 및 선례와 관습 모두를 의심하는 것이고, 또 다른 차원의 방법적 회의는 좁은 의미의 철학, 즉 형이상학을 확고한 토대 위에 구축하기 위해 불확실한 모든 것을 의심하는 회의이다.
(P.49)



나의 존재에 관한 인식은 최초의 확실한 인식이며, 악마의 존재 가정 하에서도 의심할 수 없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인식이다. 만일 이러한 인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데카르트의 확실한 인식만으로 이루어진 체계로서의 형이상학은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명제를 “철학의 제일원리”라고 부른다.
(P.57)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신 관념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 그는 신을 “무한하고 영원하며 불변하고 전지전능한 존재”란 전통적인 신 개념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이러한 존재를 “완전한 존재”라고 이해하고 있다. 완전한 존재란 표현은 이의성을 담고 있다. 그것은 한편에서는 모든 종류의 완전성을 다 가지고 있는 존재란 의미에서 완전한 존재라는 것과, 또 다른 한편에서는 각각의 종류의 완전성을 최고의 정도로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완전한 존재라 불리는 것이다. 따라서 신의 본성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완전성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안 된다.
(P.59)



데카르트가 신 존재 증명을 위해 확실하게 전제하고 있는 것은 정신으로서의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정신 안에 완전한 존재로서의 신에 대한 관념이 있다는 사실이다.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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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
존 코팅엄 / 정대훈 / 궁리 / 106쪽
(2016.  7.  22.)





  근대는 르네 데카르트라는 이름과 함께 시작되었다. 17세기 사람들은 데카르트와 그의 계승자들을 '새로운' 철학자들이라 불러다. 이들은 과학의 사고 방식을 근본적으로 전환시켰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는 그 전환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데카르트는 오늘날 우리가 '과학적 사고'라고 말할 때 떠올리는 바로 그 관념을 만들어낸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과학적 설명이 계량적인 수학의 정밀한 언어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P.9)



  1637년에 익명으로 출판된 <방법서설>의 4부의 초두를 바로 잇는 문단에서 그 유명한 구절은 "즈 빵스 동 즈 쒸 je pense donc je suis" -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또는 (아마도 데카르트의 의도에 보다 가깝게 말한다면) "나는 생각하고 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가 나온다. 이는 모든 철학적 금언들 중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유명한 구절이다. <방법서설>은 7년 후에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그리고 그 번역서에서 이 금언은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이라는 아마도 가장 잘 알려진 형태로 등장한다.
(P.35)



  <방법서설>은 온전한 제목은 '자신의 이성을 올바르게 인도하고 학문에서 진리를 찾기 위한 방법에 대한 논고'이다. 여기서 문제되는 '방법'의 한 핵심은 데카르트가 철학적 외양을 띠지 않는 회의주의의 기법을 의도적으로 사용하여 회의를 극단에까지 밀고 나아간다는 데 있다. 이 방법의 목적은 회의를 견디고 살아남는 것이 도대체 있는가를 알아내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데카르트가 건설하려고 애쓰는 새로운 학문이라는 믿을 만한 건축물의 주춧돌로 쓰일 것이다. 데카르트는 의심을 거듭한 끝에 최초의 진리를 발견한다. 이 진리는 물론 저 유명한 코기토 - 내가 생각하고 있기만 한다면 나는 틀림없이 존재한다 - 이다. 주석가들은 데카르트가 자신이 건설하려는 체계의 나머지 부분을 가동하기 위해 기대하려고 하는 '아르키메데스의 점' (코기토 에르고 숨)이 가지는 정확한 의의를 끝없이 붆석하고 논쟁해왔따. 그러나 우리의 목적에 비추어 좀 더 흥미로운 것은 코기토에 바로 이어 데카르트가 그토록 그 존재를 확신하는 "생각하는 존재의 본성"을 계속하여 논의한다는 점이다.
(P.36)



  데카르트의 실수는 인신론적인 참으로부터 존재론적인 참을 읽어내려고 한 점인 것 같다. 좀 쉽게 말한다면, 어떤 것에 대해서 확신할 수 있거나 확신하지 못하겠다는 사실로부터, 또는 의심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의심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로부터 정신이나 생각하는 자아의 실체 본성에 대한 결론을 끌어내려고 한 것에 그의 실수가 있는 것 같다.
(P.46)


  이 책은 미국에서 데카르트와 근대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 중 두드러지는 몇 명에 속하는 존 코팅엄이 철학의 초심자를 겨냥하여 쓴 데카르트 소개서이다. 이 책은 얼마 안 되는 분량에 데카르트의 전체 사상을 담는 동시에 단순한 개괄의 수준을 뛰어넘어 일관된 흐름과 논지를 유지하면서, 한 위대한 인물의 전기를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극적인 전개 과정까지 갖추고 있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극적인 삶의 여정을 거친 데카르트의 살밍 그의 철학적 여정과의 연관 안에서 소개되고 있다. 데카르트에 관해 쓰여진 책 중에 이토록 짧은 분량에 이토록 많은 내용이 담긴 책은 몇 권 되지 않을 것이다.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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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서설

르네 데카르트 / 이현복 / 문예출판사 / 342쪽
(2016. 7. 21.)



  데카르트의 저서 중에서 <방법서설>은 일반적으로 애독되는 책인 반면,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은 다소 덜 알려진 책이다. 그렇지만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은 데카르트의 철학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책임이 분명하다. 이 책이 비록 미완성으로 끝나고, 또 그 형식이 산만하게 구성되어 있지만, 그 내용은 <방법서설>과 <성찰>을 거쳐 <철학의 원리>에 이르기까지 두루 나타나 있기 때문에 데카르트의 자연학뿐만 아니라 형이상학에 대한 이해를 위해 반드시 독서되어야 할 책이다. <방법서설>에서 개진된 방법의 주요 규칙들이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에서 피력된 내용의 축소판임은 물론이고, <성찰>에서 논의되는 형이상학 원리가 그 열매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P.7) 



  사람들은 종종 두 사물에 어떤 유사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 심지어 그것들이 실제로 서로 다른 것일 경우에도, 그 둘 중 하나만에 대해 참이라고 인정햇던 것을 두 사물에 모두 적용하는 버릇이 있다. 이런 사정은 학문들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이들에 따르면, 학문들은 그 대상의 상이성에 따라 서로 분리될 수 있고, 그래서 다른 학문을 고찰함이 없이 오직 그 하나만을 고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학문은 인간의 지혜와 다름아니고, 지혜가 비록 여러 상이한 대상에 적용된다고 해도 그것은 언제나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태양의 빛이 여러 다양한 대상들을 비춘다고 해서 그 빛이 다른 것이 아니듯이, 학문들도 서로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신을 한게지원 제한시킬 필요가 전혀 없다. 어떤 한 진리의 인식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한 기예를 연마하는 경우처럼 다른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발견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P.15)



이 서설이 너무 길어 한 번에 읽을 수 없다면,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 읽어도 좋을 것이다.
제1부에서는 제반 학문들이 다양하게 고찰되고 있다.
제2부에서는 저자가 찾고 있는 방법의 주요 규칙들이 고찰되어 있다.
제3부에서는 저자가 이 방법에서 끌어낸 몇몇 도덕 규칙이 제시되고 있다.
제4부에서는 저자가 신 및 인간 정신의 현존을 증명하는 데 사용한 근거들, 즉 저자의 형이상학의 토대가 되는 근거들이 제시되고 있다.
제5부에서는 저자가 탐구한 자연학적 문제들의 순서, 특히 심장의 운동 및 몇 가지 의학적 난제들에 대한 설명이 제시되고 있으며, 나아가 우리 영혼과 짐승의 영혼 간의 차이에 대해서도 논의되고 있다.
제6부에서는 자연에 대한 탐구를 더욱 진척시키기 위해 요구되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 및 저자가 이 책을 쓰게된 동기가 서술되고 있다.
(P.145)



  청년 시절에 나는어떤 길을 발견했는데, 이 길을 따라 몇몇 고찰들과 격률들에 이를 수 있었고, 또 이로부터 하나의 방법을 만들어 냈으며, 이 방법을 통해 내 인식의 폭은 점차 증대되어, 마침내 평범한 내 정신과 얼마 남지 않은 내 생애가 허락하는 최고의 정점까지 조금씩 내 인식이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P.148)



  내 의도는 이성을 잘 인도하기 위해 각자가 따라야 할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내 이성을 인도하기 위해 내 자신이 어떻게 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남에게 교훈을 주려는 사람은 교훈을 받는 사람보다 자신이 더 유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야 하며, 그래서 그들이 하찮은 일에 실수를 저지른다면 그들은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글을 하나의 이야기로서 혹은 - 당신들이 원한다면 - 하나의 우화로서, 즉 이 안에서 본받을 만한 것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것도 많이 있을 수 있는 글로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이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몇몇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사용되길 원하고 있으며, 또 나의 이런 솔직함에 대해 모두들 고맙게 여겨 주길 기대하는 바이다.
(P.149)



  나는 내 스승들로부터 해방되는 나이가 되자 학교 공부를 집어치워 버렸다. 남은 청년 시절을 어행하는 데 사용하면서 이곳저곳의 궁전과 군대를 관람하고, 온갖 기질과 신분을 지닌 사람들을 방문하면서 갖가지 경험을 거듭하며, 운명이 나에게 몰아치는 여러 사건들 속에서 내 스스로를 시험하려고 했고, 내 앞에 나타나는 온갖 일들로부터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을지 반성ㅎ애 보았다. 왜냐하면 학자가 서재에서 하는 추리보다는 자기에게 소중하고 판단을 잘못하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 일에 대한 추리 속에서 더 많은 진리를 찾아 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P.156)



  우리를 설득하는 것은 확실한 인식이 아니라 관습이나 선례라는 것, 그리고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진리에 대해서는 그 발견자가 민족 전체라기보다는 단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더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여겨졌으므로, 그 진리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그 진리성이 만족스럽게 증명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이 사람의 견해를 따라야겠다고 생각할 만한 사람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제 나 스스로 나 자신을 이끌어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P.166)



  이런 이유로 나는이 세 가지 것의 장점을 겸비하면서 그 결함을 가지 않는 어떤 다른 방법을 발굴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첫째, 명증적으로 참이라고 인식한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참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 것, 즉 속단과 편견을 신중히 피하고, 조금도 의심의 여자가 없을 정도로 명석 판명하게 내 정신에 나타나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판단을 내리지 말 것.
  둘째, 검토할 여러움들을 각각 잘 해결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작은 부분으로 나눌 것.
  셋째, 내 생각들을 순서에 따라 이끌어 나아갈 것, 즉 가장 단순하고 가장 알기 쉬운 대상에서 출발하여 마치 계단을 올라가듯 조금씩 올라가 가장 복잡한 것의 인식에까지 이를 것, 그리고 본래 전후 순서가 없는 것에서도 순서를 상정하여 나아갈 것.
  끝으로, 아무것도 빠트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 정도로 완벽한 열거와 전반적인 검사를 어디서나 행할 것.
(P.168)



  나는 오히려 이런 학문의 원리는 모두 철학에서 비롯되고 있지만, 철학에 있어 나는 아직 아무런 토대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고는, 무엇보다도 우선 철학에 있어 확실한 원리를 설정하는 일에 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작업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고, 또 이때 나로서는 속단과 편견을 가장 경계해야 했기 때문에, 이 작업을 수행하기에 앞서, 나는 전에 받아들인 그릇된 의견을 모두 정신에서 뿌리째 뽀바 버리고, 훗날 추리의 재료로 삼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며, 규정된 방법을 더욱 확실히 사용할 수 있도록 그것을 계속 연습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투자했던 것이다.
(P.172)



  나는 이제 오직 진리 탐구에 전념하려고 하므로, 앞에서 했던 것과는 반대로, 조금이라도 의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전적으로 거짓된 것으로 간주하여 던져 버리고, 이렇게 한 후에도 전혀 의심할 수 없는 것이 내 신념 속에 남아 있는지를 살펴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우리 감각은 종종 우리를 기만하므로, 감각이 우리 마음 속에 그리는 대로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가정했다.
(P.184)



  나는 신체를 갖고 있지 않으며, 세계도 없으며, 내가 있는 장소도 없다고 가상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상할 수는 없고, 오히려 반대로 내가 다른 것의 진리성을 의심하려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서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 아주 명백하고 확실하게 귀결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P.186)



  사람들이 보통 철학에서 다루고 있는 모든 주요 난제와 연관해서 나를 만족시킬 만한 수단을 짧은 시간에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몇몇 법칙들도 알게 되었다. 이 법칙들은 신이 자연 속에 확립시켜놓은 것이고, 또 그 개념을 우리 영혼 속에 각인시켜 놓았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충분히 반성만 한다면 세계에 있는, 또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서 그 법칙이 정확하게 지켜지고 있음은 의심할 수 없는 것이다. 나아가 이 법칙들로부터 어떤 것이 귀결되는지를 고찰하는 과정에서, 내가 이전에 배웠떤 혹은 배우기를 바랐던 것보다 훨씬 더 유용하고 중요한 다수의 진리들을 발견했던 것으로 보인다.
(P.196)



  어떤 것을 남에게 배울 때에는자기 스스로 생각해서 하는 때만큼 잘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소화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은 지금 우리 주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아주 탁월한 지성의 소유자들에게 내 의견 몇 가지를 설명해 본 적이 있는데, 내 말을 듣고 있는 동안은 아주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들의 입으로 그것을 말할 때에는 거의 항상 다르게 변색이 되어 내 의견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되어 버린 적이 잇엇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 자리에서 당부하고 싶은 것은, 내가 직접 발표하지 않은 것은 결코 내 의견으로 간주하지 말라는 것이다.
(P.228)



  <철학의 원리>의 불역판 서문용으로 데카르트가 피코 신부에게 보낸 편지 내용중에는 학문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준수해야 할 '순서'를 설명하는 내용이 있다. 그 첫째는, 아직 완전히 지식 혹은 참된 지식을 획득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의 품행을 지도할 수 있는 '잠정적' 도덕 규칙을 절정해야 한다는 것이도, 둘째는 강단 논리학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게 해 주는 '참된'논리학을 발굴해야 한다는 것이며, 셋째는 이 발견의 논리학을 통해 '참된'철학, 즉 지혜의 탐구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P.304)



철학함이 지헤의사랑과 다름아니라면, 참된 철학은 바로 이성의 올바른 지도에 달려 있다. 바로 여기에서 철학과 방법의 불가분성이 드러난다. 방법 없는 철학함은 맹목적이고, 지혜 없는 방법은 공허할 뿐이다. 맹목적인 철학함, 공허한 방법은 데카르트가 가장 신랄하게 비판하는 대목이고, 이 비판은 당대 철학자들을 겨냥하고 있다.
(P.306)



  <방법서설>에서 데카르트는 "천천히 걷되 곧은 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뛰어 가되 곧은 길에서 벗어나는 사람보다 훨씬 더 먼저 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아무리 둔한 정신을 갖고 있더라도 방법에 의해 올바로 지도되기만 하면 확실한 지식을 획득할수 있는 반면에, 방법이 없이 그저 학문을 탐구하는 사람은 결코 진리를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이 데카르트의 입장이다.
(P.307)


  <방법서설>에서는 앞의 네 가지 규칙이 아주 짧게 언급되고 있는 반면에, <규칙들>에서는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런 사정은 이 두 책의 특성을 살펴 보면 금방 드러난다. 후자가 오직 방법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반면에, 전자는 그 외에도 다른 많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법에 대한 데카르트는 논의는 <방법서설>보다는 <규칙들>에서 훨씬 자세하게 개진되어 있다. 규칙을 그저 제시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정신의 역량을 증대시키는 일, 나아가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 방식까지도 설명되어 있다. 따라서 데카르트적 방법의 정체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규칙들>의 내용에 대한 검토가 불가피하다.
(P.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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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데카르트 방법서설
박철호(지은이) / 이대종(그림) / 주니어김영사 / 237쪽




  <방법서설>은 진리를 찾아내는 방법에 관한 책이야. 그리고 진리를 찾아내는 방법뿐만 아니라, 그 방법을 사용하는 진리를 찾아내고, 그 진리를 바탕으로 해서 또 다른 진리를 찾는 것에 관해서 이야기해 주는 책이야. <방법서설>은 그런 방법을 보여주는 쉬운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 이 채에는 방법은 물론이고, 그의 철학 거의 모두 압축되어 담겨 있기 때문이지. 그래서 데카르트의 철학을 가볍게 배우려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의 철학을 폭넓게 연구하려는 사람에게도 이 책은 반드시 필요해.
(P.15)



  데카르트는 '근대 철학의 아버지', '합리론의 창시자'라는 찬사를 받고 있어. 그는 어떻게 해서 이런 이름을 얻게 되었을까? 데카르트가 세계를 구성하는 두 가지 실재는 정신과 물질이라고 했다는 건 앞에서 말한 적이 있지? 그럼 정신과 물질 중에서 어떤 것이 더 근본적인 실재일까? 물질의 실재는 의심할 수 있어도 정신의 실재는 의심할 수 없거든. 데카르트는 인간의 본질을 정신, 즉 이성이라고 생각해. 그러면 이 이성은 어디서 왔을까? 인간은 어떻게 진리를 알게 될까? 데카르트는 경험이 아니라 이성으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해. 이성을 통해 신이나 영혼에 대한 진리를 물론이고, 세계나 물질에 대한 진리로 모두 다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데카르트가 가진 이런 생각들이 합리론이라고 부르는 철학의 밑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그를 합리론의 창시자라고 부르는 거야.
(P.48)



  우리는 어떻게 무언가를 알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지식을 얻을 수 있을까? 너희들 생각은 어떠니? 지식은 선생님이 가르쳐 주기 때문에 아는 거라고? 그러면 너희들 스스로 무엇을 알 때도 있는데 그건 어떻게 된 거지? 아마도 내 안에 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합리론자야. 우리가 무언가를 알 수 있는 것은 그것을 경험했기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경험론자지 합리론은 이성으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입장, 경험론은 지식은 오직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입장이야. 데카르트가 오직 이성의 등불만으로 진리를 찾겠다고 말한 것은 그가 합리론자라는 것을 잘 보여줘. 물론 진리를 찾는 수단으로 이성을 중요하게 여긴 것은 데카르트가 처음은 아니야.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내려온 서양철학의 기나긴 전통이지.
(P.50)



  합리론에 의하면 경험이 없이도 지식을 얻을 수 있어. 참된 지식을 얻으려고 할 때는 오히려 경험이 방해가 되지 '완전한 신', '물질의 본질은 크기', '정신의 본질은 사유'와 같은 관념들은 경험과 관계없이 이성의 힘만으로 알아낸 지식들이야. 이성은 경험하지도 않고 어떻게 저런 지식을 알 수 있을까? 합리론자는 저런 관념들이 본래부터 우리의 정신안에 들어 있었기 땜눈이라고 말해. 본래부터 정신 안에 들어 있는 그런 관념을 '본유관념'이라고 해. 본래부터 정신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이성을 잘 사용하기만 하면 충분하지. 이성은 합리적 추론을 통해 지식을 점점 늘려나가. 데카르트를 보면 그것이 어떤 방법인지 알 수 있을 거야.
(P.51)



  경험론에 의하면 모든 지식은 경험으로부터 비롯돼. 경험론을 주장한 대표적인 철학자는 영국의 로크야. 경험론자는 본유관념이 있다는 것을 부정해. 로크에 따르면 마음(정신)은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흰 종이와 같아. 처음에는 마음속에 아무런 관념도 들어 있지 않은데, 백지에 연필로 글씨를 쓰듯이 마음에 경험으로 관념이 써진다는 거지. 경험에는 두 종류가 있어. 눈, 귀, 코와 같은 감각기관을 통해 경험한 것과 믿고, 생각하고, 의심하고, 추론하는 것과 같은 마음의 작용을 통해 경험한 것이 바로 그거야. 첫번째 경험을 감각이라고 하고 두 번째 경험을 반성이라고 해. 관념은 모두 이 두 가지 경험으로부터 비롯돼. 그러면 경험론에서는 어떻게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할까? 관념들 간의 연결과 일치, 또는 불일치와 모순을 의식함으로써 지식을 얻을 수 있어. 예를 들면, '희다'는 관념과 '검다'는 관념이일치하지 않는다는 데서 '흰 것은 검은 것이 아니다'라는 지식을 얻게 되지.
(P.52)



  나는 여러 학문을 공부했고 오랜 여행을 통해 많은 지식을 갖고 있었어. 이제는 내가 가진 모든 지식과 의견을 검사해 명백한 점을 찾아낼 차례야. 하지만 어떤 것이 명백한 참인지 어떻게 판단하지? 정신 속에 다른 모든 것들과 구별되어 분명하게 나타나 아무런 의심도 할 수 없는 것이지. 그러면 의심할 수 있는 것은 명백한 참이 아니겠구나! 그래서 난 조금이라도 의심 하는 것은 몯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버리기로 했어. 그렇게 의심스러운 것들을 모두 제거한 뒤에도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면 이 방법을 '방법적 회의'라고 한단다. 여기서 '회의'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토의한다는 그런 '회의'가 아니야. 그냥 '의심을 품는다.'라는 말을 어렵게 쓴 거지.
(P.120)



  물질의 본질은 뭘까? 바로 연장(延長)이야. 공간을 차지한다는 뜻이지. 물질은 반드시 공간 속에 존재하지. 그런데 정신은 크기를 갖지 않지. 따라서 정신은 물질이 아니야. 이렇게 정신과 물체는 서로 완전히 달라. 사람들은 이런 이유로 내 형이상학을 이원론이라고 불러. 다시 말해. 정신과 물질이라는 두 개의 전혀 다른 살체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라는 거지.
(P.141)


  전혀 다른 본질을 가진 정신과 육체가 어떻게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의 문제는 데카르트의 철학이 가진 아픈 약점이야. 아무리 대단한 철학자라도 너무 자신의 이론에만 몰입하면 가끔씩 실수한다는 걸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지.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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