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서설
르네 데카르트 / 이현복 / 문예출판사 / 342쪽
(2016. 7. 21.)
데카르트의 저서 중에서 <방법서설>은 일반적으로 애독되는 책인 반면,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은 다소 덜 알려진 책이다. 그렇지만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은 데카르트의 철학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책임이 분명하다. 이 책이 비록 미완성으로 끝나고, 또 그 형식이 산만하게 구성되어 있지만, 그 내용은 <방법서설>과 <성찰>을 거쳐 <철학의 원리>에 이르기까지 두루 나타나 있기 때문에 데카르트의 자연학뿐만 아니라 형이상학에 대한 이해를 위해 반드시 독서되어야 할 책이다. <방법서설>에서 개진된 방법의 주요 규칙들이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에서 피력된 내용의 축소판임은 물론이고, <성찰>에서 논의되는 형이상학 원리가 그 열매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P.7)
사람들은 종종 두 사물에 어떤 유사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 심지어 그것들이 실제로 서로 다른 것일 경우에도, 그 둘 중 하나만에 대해 참이라고 인정햇던 것을 두 사물에 모두 적용하는 버릇이 있다. 이런 사정은 학문들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이들에 따르면, 학문들은 그 대상의 상이성에 따라 서로 분리될 수 있고, 그래서 다른 학문을 고찰함이 없이 오직 그 하나만을 고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학문은 인간의 지혜와 다름아니고, 지혜가 비록 여러 상이한 대상에 적용된다고 해도 그것은 언제나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태양의 빛이 여러 다양한 대상들을 비춘다고 해서 그 빛이 다른 것이 아니듯이, 학문들도 서로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신을 한게지원 제한시킬 필요가 전혀 없다. 어떤 한 진리의 인식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한 기예를 연마하는 경우처럼 다른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발견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P.15)
이 서설이 너무 길어 한 번에 읽을 수 없다면,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 읽어도 좋을 것이다.
제1부에서는 제반 학문들이 다양하게 고찰되고 있다.
제2부에서는 저자가 찾고 있는 방법의 주요 규칙들이 고찰되어 있다.
제3부에서는 저자가 이 방법에서 끌어낸 몇몇 도덕 규칙이 제시되고 있다.
제4부에서는 저자가 신 및 인간 정신의 현존을 증명하는 데 사용한 근거들, 즉 저자의 형이상학의 토대가 되는 근거들이 제시되고 있다.
제5부에서는 저자가 탐구한 자연학적 문제들의 순서, 특히 심장의 운동 및 몇 가지 의학적 난제들에 대한 설명이 제시되고 있으며, 나아가 우리 영혼과 짐승의 영혼 간의 차이에 대해서도 논의되고 있다.
제6부에서는 자연에 대한 탐구를 더욱 진척시키기 위해 요구되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 및 저자가 이 책을 쓰게된 동기가 서술되고 있다.
(P.145)
청년 시절에 나는어떤 길을 발견했는데, 이 길을 따라 몇몇 고찰들과 격률들에 이를 수 있었고, 또 이로부터 하나의 방법을 만들어 냈으며, 이 방법을 통해 내 인식의 폭은 점차 증대되어, 마침내 평범한 내 정신과 얼마 남지 않은 내 생애가 허락하는 최고의 정점까지 조금씩 내 인식이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P.148)
내 의도는 이성을 잘 인도하기 위해 각자가 따라야 할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내 이성을 인도하기 위해 내 자신이 어떻게 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남에게 교훈을 주려는 사람은 교훈을 받는 사람보다 자신이 더 유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야 하며, 그래서 그들이 하찮은 일에 실수를 저지른다면 그들은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글을 하나의 이야기로서 혹은 - 당신들이 원한다면 - 하나의 우화로서, 즉 이 안에서 본받을 만한 것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것도 많이 있을 수 있는 글로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이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몇몇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사용되길 원하고 있으며, 또 나의 이런 솔직함에 대해 모두들 고맙게 여겨 주길 기대하는 바이다.
(P.149)
나는 내 스승들로부터 해방되는 나이가 되자 학교 공부를 집어치워 버렸다. 남은 청년 시절을 어행하는 데 사용하면서 이곳저곳의 궁전과 군대를 관람하고, 온갖 기질과 신분을 지닌 사람들을 방문하면서 갖가지 경험을 거듭하며, 운명이 나에게 몰아치는 여러 사건들 속에서 내 스스로를 시험하려고 했고, 내 앞에 나타나는 온갖 일들로부터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을지 반성ㅎ애 보았다. 왜냐하면 학자가 서재에서 하는 추리보다는 자기에게 소중하고 판단을 잘못하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 일에 대한 추리 속에서 더 많은 진리를 찾아 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P.156)
우리를 설득하는 것은 확실한 인식이 아니라 관습이나 선례라는 것, 그리고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진리에 대해서는 그 발견자가 민족 전체라기보다는 단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더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여겨졌으므로, 그 진리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그 진리성이 만족스럽게 증명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이 사람의 견해를 따라야겠다고 생각할 만한 사람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제 나 스스로 나 자신을 이끌어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P.166)
이런 이유로 나는이 세 가지 것의 장점을 겸비하면서 그 결함을 가지 않는 어떤 다른 방법을 발굴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첫째, 명증적으로 참이라고 인식한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참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 것, 즉 속단과 편견을 신중히 피하고, 조금도 의심의 여자가 없을 정도로 명석 판명하게 내 정신에 나타나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판단을 내리지 말 것.
둘째, 검토할 여러움들을 각각 잘 해결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작은 부분으로 나눌 것.
셋째, 내 생각들을 순서에 따라 이끌어 나아갈 것, 즉 가장 단순하고 가장 알기 쉬운 대상에서 출발하여 마치 계단을 올라가듯 조금씩 올라가 가장 복잡한 것의 인식에까지 이를 것, 그리고 본래 전후 순서가 없는 것에서도 순서를 상정하여 나아갈 것.
끝으로, 아무것도 빠트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 정도로 완벽한 열거와 전반적인 검사를 어디서나 행할 것.
(P.168)
나는 오히려 이런 학문의 원리는 모두 철학에서 비롯되고 있지만, 철학에 있어 나는 아직 아무런 토대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고는, 무엇보다도 우선 철학에 있어 확실한 원리를 설정하는 일에 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작업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고, 또 이때 나로서는 속단과 편견을 가장 경계해야 했기 때문에, 이 작업을 수행하기에 앞서, 나는 전에 받아들인 그릇된 의견을 모두 정신에서 뿌리째 뽀바 버리고, 훗날 추리의 재료로 삼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며, 규정된 방법을 더욱 확실히 사용할 수 있도록 그것을 계속 연습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투자했던 것이다.
(P.172)
나는 이제 오직 진리 탐구에 전념하려고 하므로, 앞에서 했던 것과는 반대로, 조금이라도 의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전적으로 거짓된 것으로 간주하여 던져 버리고, 이렇게 한 후에도 전혀 의심할 수 없는 것이 내 신념 속에 남아 있는지를 살펴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우리 감각은 종종 우리를 기만하므로, 감각이 우리 마음 속에 그리는 대로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가정했다.
(P.184)
나는 신체를 갖고 있지 않으며, 세계도 없으며, 내가 있는 장소도 없다고 가상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상할 수는 없고, 오히려 반대로 내가 다른 것의 진리성을 의심하려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서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 아주 명백하고 확실하게 귀결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P.186)
사람들이 보통 철학에서 다루고 있는 모든 주요 난제와 연관해서 나를 만족시킬 만한 수단을 짧은 시간에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몇몇 법칙들도 알게 되었다. 이 법칙들은 신이 자연 속에 확립시켜놓은 것이고, 또 그 개념을 우리 영혼 속에 각인시켜 놓았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충분히 반성만 한다면 세계에 있는, 또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서 그 법칙이 정확하게 지켜지고 있음은 의심할 수 없는 것이다. 나아가 이 법칙들로부터 어떤 것이 귀결되는지를 고찰하는 과정에서, 내가 이전에 배웠떤 혹은 배우기를 바랐던 것보다 훨씬 더 유용하고 중요한 다수의 진리들을 발견했던 것으로 보인다.
(P.196)
어떤 것을 남에게 배울 때에는자기 스스로 생각해서 하는 때만큼 잘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소화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은 지금 우리 주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아주 탁월한 지성의 소유자들에게 내 의견 몇 가지를 설명해 본 적이 있는데, 내 말을 듣고 있는 동안은 아주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들의 입으로 그것을 말할 때에는 거의 항상 다르게 변색이 되어 내 의견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되어 버린 적이 잇엇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 자리에서 당부하고 싶은 것은, 내가 직접 발표하지 않은 것은 결코 내 의견으로 간주하지 말라는 것이다.
(P.228)
<철학의 원리>의 불역판 서문용으로 데카르트가 피코 신부에게 보낸 편지 내용중에는 학문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준수해야 할 '순서'를 설명하는 내용이 있다. 그 첫째는, 아직 완전히 지식 혹은 참된 지식을 획득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의 품행을 지도할 수 있는 '잠정적' 도덕 규칙을 절정해야 한다는 것이도, 둘째는 강단 논리학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게 해 주는 '참된'논리학을 발굴해야 한다는 것이며, 셋째는 이 발견의 논리학을 통해 '참된'철학, 즉 지혜의 탐구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P.304)
철학함이 지헤의사랑과 다름아니라면, 참된 철학은 바로 이성의 올바른 지도에 달려 있다. 바로 여기에서 철학과 방법의 불가분성이 드러난다. 방법 없는 철학함은 맹목적이고, 지혜 없는 방법은 공허할 뿐이다. 맹목적인 철학함, 공허한 방법은 데카르트가 가장 신랄하게 비판하는 대목이고, 이 비판은 당대 철학자들을 겨냥하고 있다.
(P.306)
<방법서설>에서 데카르트는 "천천히 걷되 곧은 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뛰어 가되 곧은 길에서 벗어나는 사람보다 훨씬 더 먼저 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아무리 둔한 정신을 갖고 있더라도 방법에 의해 올바로 지도되기만 하면 확실한 지식을 획득할수 있는 반면에, 방법이 없이 그저 학문을 탐구하는 사람은 결코 진리를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이 데카르트의 입장이다.
(P.307)
<방법서설>에서는 앞의 네 가지 규칙이 아주 짧게 언급되고 있는 반면에, <규칙들>에서는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런 사정은 이 두 책의 특성을 살펴 보면 금방 드러난다. 후자가 오직 방법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반면에, 전자는 그 외에도 다른 많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법에 대한 데카르트는 논의는 <방법서설>보다는 <규칙들>에서 훨씬 자세하게 개진되어 있다. 규칙을 그저 제시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정신의 역량을 증대시키는 일, 나아가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 방식까지도 설명되어 있다. 따라서 데카르트적 방법의 정체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규칙들>의 내용에 대한 검토가 불가피하다.
(P.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