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 폴리틱스
프란스 드 발 / 황상익 / 바다출판사 / 1982 / 302쪽
(2017. 9. 12.)




  침팬지를 보며 한편으로 매료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동물원을 찾는 사람들만이 아니다. 과학자들도 마찬가지다. 유인원에 대해 알면 알수록 "우리 인간의 정체는 대체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깊어진다. 인간과 침팬지 사이의 비슷한 점은 겉모습만이 아니다. 침팬지의 눈을 주의 깊게 똑바로 들여다보면, 지적이고 자신만만한 인격이 우리를 응시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만약 그들이 동물이라면 우리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P.17)


  인간과 동물 사이의 차이를 메울 수 있는 일련의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다. 고든 갤럽은 유인원이 거울 속의 자신을 인식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다른 동물들에게는 이런 형태의 자기인식이 결여되어 있어, 거울 속에 비친 대상을 그저 누군가 다른 개체라고 치부해버린다. 볼프강 쾰러는 독창적인 지능실험을 통해 침팬지가 원인과 결과를 어느 순간 갑자기 이해함으로써 새로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또한 제인 구달은 야생 침팬지가 자기 스스로 만든 도구를 사용하는 모습을 관찰했다. 야생 침팬지는 수렵을 해서 고기를 섭취하고, '전쟁'을 일으켜 자신들의 세력범위를 확장시키며 서로를 잡아먹기도 하였다. 게다가 수화 형태로 많은 기호들을 가리친 가드너 부부의 시도가 성공함으로써 침팬지들은 놀랍게도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는 것과 너무나도 비슷하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었다. 이 연구는 유인원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 많은 사실을 확실하게 밝혀냈다. 인간이 유인원의 마음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P.17)


  침팬지들 사이에서 놀라운 사회적 조작이 사례를 많이 목격한 나는 침팬지에게 단순히 '고도로 지능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침팬지가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것처럼 보이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목적성을 가지고 생각하는' 능력이다. 
(P.60)
​​

  우리는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과거의 경험을 새롭게 조합시키는 능력을 표현하는 데 '추리력' 혹은 '사고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달리 적합한 단어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시행착오를 통해 특별한 행동을 시험해보지 않고서도 침팬지들은 그들 머릿속에서 선택의 결과를 가름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신중하고 합리적인 행동을 보인다. 영장류들은 수많은 사회적 정보를 고려하며 상대방의 의도와 기분에 민감하게 잘 조율되어 있다. 그래서 그들이 가진 높은 지능이 복잡한 집단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진화되어 있다고 추측한다. '사회적 지능 가설'로 알려진 이 개념은 우리 자신의 계통에서 벌어진 막대한 뇌 용량의 팽창에도 적용될지 모른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기술적인 창의성은 부차적인 발전이다. 영장류 지능의 진화는 꾀로 상대방을 이기고, 속임수 전략을 감지하고, 상호 이익이 되는 타협을 이루며, 자신의 삶에 이득이 되는 사회적 연대를 증지시키기 위한 필요성에서 출발하였다. 침팬지들은 이런 영역에서 분명히 뛰어나다. 그들이 가진 기술적인 재주는 인간보다 떨어지는 것이 확실하지만, 그들의 사회적은 능력도 그렇다고는 쉽게 단정하지 못하겠다.
(P.61)
​​​

  동물들의 야망은 오랫동안 논쟁거리였다. 매슬로는 1936년에 '지배 충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대부분의 동물 행동학자들은 그 용어를 꺼려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마카크 원숭이와 침팬지를 연구해온 나는 이 용어에 대해서 아무런 꺼리낌이 없다. 내가 관찰해온 동물들은 분명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으려고 애썼다. 제인 구달의 말을 다시 한번 인용해보자. "아주 분명하게도, 다수의 수놈 침팬지들은 높은 사회적 지위를 추구하는데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하며, 심지어 중상을 입을 위험마저 무릅쓴다." 권력욕이 동물원의 동물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P.240)
​​

  사람들은 종종 자기가 한 행동의 목적을 나중에야 발견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사춘기 시절에 우리는 부모에게 반항하고 도전한다. 한참 뒤에야 우리는 그러한 행동을 '독립하기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동기를 분명히 의식하고서 부모와 갈등을 벌인 것이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정체도 분명치 않은 무의식적 동기였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는 남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길 원하고 그걸 위한 전술도 개발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목표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그것에 대해 생각하거나 이야기하는 것조차 회피할지도 모른다. 네덜란드의 사회심리학자 마우크 멀더는 '인간은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만족을 얻으며 타인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을 일련의 실험을 통해 밝혔다. 그러나 동시에 '권력'이라는 단어의 주변에는 일종의 터부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지적한다. "우리가 권력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자신에 대해 말할 때는 '책임을 지고 있다.' '권위 있는 지위에 있다'거나 혹은 '힘겨운 결단을 통해 남을 돕고 있다'는 따위의 표현을 즐겨 쓴다.
(P.246)


  인간은 말하는 영장류이지만 행동은 침팬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말다툼도, 도발적인 언어폭력, 항의와 간섭, 화해의 언사 등 여러 형태로 언어를 활용하지만, 침팬지는 그것들을 언어가 아닌 형태로 표현하는 것뿐이다. 인간이 말 대신 행동으로 무언가를 표현할 경우에는 침팬지와 더욱더 유사해진다. 침팬지는 비명과 큰소리를 지르고, 문을 두드리고, 물건을 던지고, 도움을 청하고, 나중에는 우호적인 접촉이나 포옹으로 무마하려 한다. 우리 인간들도 보통 의식적인 결정 없이 그러한 형태의 행동을 모두 연출한다. 이러한 행동들의 동기를 볼 때 인간과 침팬지는 크게 다르지 않다.
​(P.247)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정치적 동물'이라고 칭하였을 때, 그는 자신의 말이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지 잘 몰랐을 것이다. 우리의 정치적 활동은 인간과 가까운 친척과 공유하는 진화적 유산의 일부처럼 여겨진다. 만일 내가 아넴에서 연구하기 전에 누군가 이와 동일한 이야기를 했다면 너무 교묘한 유추라며 그런 발상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넴에서의 연구가 내게 가르쳐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정치의 기원이 인류의 역사보다 더 오래됐다는 사실이다. 혹자는 내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인간의 행동 패턴을 침팬지에게 투영한 것이 아니냐고 비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옳지 않은 것이며, 오히려 그 반대가 진실에 가깝다. 침팬지들의 행동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인간을 또 다른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P.272)​


  대략 5세기 전에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의 군주나 교황, 또는 메디치나 보르기아 같은 세도 가문의 정치적 술수를 묘사했다. 불행하게도 칭찬받아 마땅한 그의 실감나는 분석은 종종 그들의 정치적 음모를 도덕적으로 정당화한 것으로 오해받았다. 한 가지 이유는 그가 경쟁과 갈등을 부정적인 요소가 아니라 건설적인 것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권력을 둘러싼 동기를 부정하거나 은폐하려는 태도를 최초로 거부한 사람이었다. 기존의 집단적 허위에 대한 폭로는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도리어 인간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됐다.
  인간을 침팬지와 비교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모욕적이거나, 혹은 그 이상의 죄악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동기를 더욱 동물적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침팬지들 사이에서 권력 정치는 단지 '나쁘다'거나 '더럽다'는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넴 집단에 사는 침팬지들에게 논리적 정합성을 가져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민주적 구조도 안겨주었다. 모든 파벌들은 일시적인 권력 균형을 이를 때까지 영향력을 계속해서 찾는다. 그리고 이런 균형은 서열상의 지위를 새롭게 결정한다. 다소 유동적인 지위가 '고정'될 때까지 관계는 계속해서 변한다. 이 같은 서열의 공식화가 어떻게 화해 가운데 일어나는지를 보게 되면, 집단 내의 서열이 공식화가 어떻게 화해 가운데 일어나는지를 보게되면, 집단 내의 서열이 경쟁과 충돌을 제한하는 '응집적' 요소임을 이해할 수 있다. 육아, 놀이, 협력 등은 그로인해 찾아오는 안정 상태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수면 아래의 상황은 늘 유동적인 상태이다. 권력의 균형은 매일매일 시험되며, 만일 그것이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도전이 일어나고 새로운 균형이 찾아올 것이다. 결국 침팬지들의 정치도 건설적이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로 분류되는 것을 명예롭게 여겨야만 한다.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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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1기
김경록 / 더난출판사 / 272쪽​
​(2017.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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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우리는 퇴직 후 여명이 짧다 보니 별다른 생각 없이 지냈다 그러나 우리가 맞을 세상은 퇴직 후에 적어도 20년~30년은 일을 해야 하는 세상이다. 길게 보아야 한다. 전문성과 기술로 대변되는 자신의 인적자본을 키울 필요가 있다. 베이비부머는 앞 세대를 보지 말고 우리 세대의 미래를 그리면서 행동해야 한다. 과거에는 퇴직 후 인적자본에 3년을 투자해봐야 금방 세상을 떠나기 대문에 효율성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3년을 투자하면 20년 이상을 써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전문성과 기술로 무장된 1인 1기는 고령화를 헤쳐갈 안전벨트가 된다. 전문서과 기술이 뒷받침되어 있으면 우리는 노후를 다양한 방식으로 살 수 있다. 노후 삶의 자유도가 높아진다.
(P.12)


  누구든 자기 앞에 데려오면 원하는 대로 그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신행동주의 심리학자 스키너는 <스키너의 마지막 강의>라는 노후에 관한 책을 쓴 바 있다. 그는 노년이란 '낯선 타국'과 같다면서 무엇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노년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노년에 대해 공부하고 충분히 대비를 한다면 노년도 즐길 수 있음을 말해준다.
(P.29)



  은퇴 전과 은퇴 후 상황이 극적으로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은퇴 전에는 시간은 부족하고 돈은 많은 데 반해 은퇴 후에는 시간은 남아돌고 돈이 부족하다. 100세 시대는 노후가 길어지기 때문에 이 둘의 낙차를 줄이는 것이 좋다. 이를 위해선 후자의 'time Rich, Money Poor'를 바꿔 남는 시간은 인적자본에 투자하고 이를 통해 부족한 돈을 벌충해야 한다.
(P.39)


  은퇴 전후 5년은 아주 중요한 시기이다. 우선 은퇴 직적은 은퇴 후의 부존자원을 만들 수 있는 거의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시기다. 그리고 은퇴 후 초기는 자신의 부존자원을 가지고 노후생활을 위해 출발하는 때이므로 이 자원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면 노후룰 평안히 보낼 수 있다.
(P.56)
​​
​​​
  시간을 상대로 하는 싸움에서 기술은 우위에 있다. 시간이 내 편이다. 실제로 좋은 기술을 가진 사람들의 생존율은 거의 평생이다.
  기술창업은 고정자보이 들지 않고, 시간이 흐를수록 부가가치가 높아지고, 미래의 환경변화에 오히려 우호적이다. 반면에 소자본창업은 발 빠르게 업종을 전환해가지 않으면 안 되는데 업종을 예측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소자본창업으로 들어가는 문은 넓으나 문 뒤에 있는 길은 험난하다. 출구를 찾기 어렵다. 반면에 기술창업은 들어가는 문은 좁고 어려우나 문 뒤에 있는 길은 넓다. 기술창업이라는 좁은 문이 답이다. 한 사람이 하나의기술로 1인 1기, 한 사람이 하나의 기업(1인 1기)을 만들어 보자
(P.122)

​​
  조직의 가치와 나의 가치를 혼동하다 보니 자신을 과대평가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이 현직에 있을 때는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오고 강의를 잘한다고 인기가 많아서 퇴직 후 강사를 하면 충분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퇴직을 하고 나니 강의 요청이 싹 사라졌다고 한다. 회사의 네트워크와 브랜드를 자신의 것으로 혼동했기 때문이다.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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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수학 공부
전우성 / 오리진하우스 / 393쪽
(2017.9.4.) 



어떻게 공부하면 수학을 잘 할 수 있을까? 답은 단순 명료하다. 개념과 문제, 이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면 된다. 즉 개념을 완벽히 공부하고, 문제를 철저히 풀면 수학을 잘 할 수 있다. 너무 당연한 말 아니나교? 당신 아이는 개념을 완벽히 공부하는가? 문제를 철저히 푸는가? 아마도 개념 공부는 일절 하지 않을 것 같고, 문제는 건성으로 풀고 있을 듯싶다. 필자의 추측이 맞다면 당신 아이가 우등생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P.289)


  나는 내가 만나온 수포자들을 일일이 분석했고, 그들에게서 두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첫째는 수학책에 나온 개념을 제대로 읽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수학 문제를 직접 풀어 보지 않고 포기한다는 것이었다.
  수포자들의 공통점에서 역발상을 찾아낸 우등 비법은 이것이다.
 
  비법 1. 개념을 완벽히 공부한다.
  비법 2.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푼다.
(P.302)


  우등 관문을 여는 공부, 즉 개념을 깊이 탐구하고 고난도 문제를 붙잡고 씨름하는 공부는 오직 자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우등생들 또한 "수학은 스스로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우등의 비결은 자습에 있다."
(P.​​​​​307)
​​​​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 줄 알고 모든 일에 긍정적인 제자들이 있는 반면, 왜 어떤 제자들은 매사에 불성실하고, 옹졸하고, 부정적인 것일까? 제자들은 나이도 같고, 성별도 같고, 아파트도 같고, 학교도 같고, 담임도 같고, 다니는 학원도 같다. 모든 조건이 같은데, 왜 전혀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일까? 모든 조건이 같은데 결과가 다르다? 뭔가 숨겨진 조건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 다른 게 한가지 있다. 뭐가 다르냐고? 가정이 다르다. 다시 말해 부모가 다르다. 모든 조건이 똑같은 학생들이 똑같은 상항에서 정반대의 반응을 보일 때면, 교사들은 그 원인을 부모라는 변인에서 찾지 않을 수 없다.
(P.377)


  자녀가 부모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대부분 스무 살 이전에 집중되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자녀가 부모와 만날 수 있는 날은 방학이나 명절 때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녀가 열 살이 되는 해는 경건한 마음으로 보낼 필요가 있다. 열한 살이 되면, 함께 보낸 시간보다 함께 보낼 시간이 더 적게 남았을 수도 있다. 좋은 부모로 기억되고 싶다면 자녀가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가급적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 특히 학업 부담이 비교적 덜한 초등학교 시절에 자녀와 많은 추억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P.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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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장 자크 루소 / 박호성 / 책세상 / 158쪽
(2017. 9. 1.)




   근대 이후 최근 몇 세기를 거치면서 과학과 기술은 과거에는 상상하기도 힘든 수준까지 발달했다. 그러나 문명의 발전과 더불어 그에 못지 않은 부조리와 폐해가 발생했다. 약30년 전에 발표된 로마클럽 제2차 보고서는, 당시의 인류에게 닥친 위기가 자연 재해에서 비롯된 위기가 아니라 인류가 스스로 만든 위기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오늘날 인류가 처한 위기는 인간 지식의 산물이 도리어 그 창조자인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게 되었다는 데 있다. 문명의 발전이 인간 해방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소외인간의 강력한 토대로 변질된 가능성마저 보인다. 문명과 인간의 부조화는 인류를 또 다른 공포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근대 문명의 위대한 성과는 인간의 삶을 향상시킨다는 낙관적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채 커다란 난관에 가로막혀 있다. 더욱이 문명의 발전에 따른 혜택은 선진국과 소수 특권층만 누리는 반면, 문명의 이면의 부조리와 폐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고스란히 받고 있다.
(P.7)


   우리는 어린 시절에 대해 전혀 모른다. 따라서 우리는 어린 시절에 대해 잘못된 관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올바른 방향에서 벗어나게 된다. 가장 현명한 사람들조차 인간이 알아야 할 중요한 것에만 전념할 뿐, 아이가 현재 배울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항상 아이에게서 인간을 찾으며, 아이가 인간이 되기 전에는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가장 중의를 기울이는 과제는 바로 이 문제에 대한 탐구이다. 설령 나의 방법이 전적으로 공상적이며 잘못되었을지라도 나의 관찰은 여전히 다른 사람들에게는 유익할 수 있다.
(P.16)


조물주는 모든 것을 선하게 창조했으나, 인가의 손길이 닿으면서 모든 것은 타락하게 된다. 인간은 어떤 땅에 다른 땅의 산물을 재배하거나 이 나무에 저 나무의 열매를 맺게 하려고 애쓴다. 인간은 기후와 구성 요소 및 계절을 뒤섞어버리고 자신이 소유한 개, 말, 노예를 불구로 만든다. 인간은 모든 것을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그 형태를 바궈놓으며, 기형적이고 괴상한 것을 좋아한다. 인간은 자연이 만들어놓은 것을 그대로 놓아두길 원하지 않는다. 인간은 심지어 같은 인간조차 자신에게 순종해야 하는 승마용 말이나 집주인의 취향에 따라 휘어질 수밖에 없는 정원운수와 같은 존재로 바꿔버린다.
그러나 이런 변형마저 없으면 모든 것은 더욱 악화될 것이며, 우리 인류는 자신들이 어중간한 상태로 형성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현재와 같은 상태에서,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사람들 가운데 홀로 방치되는 인간은 우리 중에서도 가장 기형적인 인간이 될 것이다. 편견, 권위, 필요, 모범 사례 등 우리가 빠져들게 되는 모든 사회 제도가 인간 속의 자연, 곧 인간의 본성을 질식시켜 상실되게 만들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우연히 큰길가의 한복판에 놓인 한 그루 묘목처럼, 사방에서 오가는 통행인들에게 치여서 사방으로 휘고 꺽이다가 머지않아 말라 죽게 될 것이다.
(P.23)


   우리는 감수성이 풍부한 존재로 태어난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주변 물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받는다. 말하자면 자신의 감각을 인식하게 되자마자 그런 감각을 느끼게 만드는 물체를 추구하거나 회피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물체가 유쾌하냐 불쾌하냐에 따라서, 다음에는 그 물체가 자신에게 적합하냐 부적ㅂ하냐에 따라서, 마지막에는 이성이 부여하는 행복과 완전함이라는 관념에 근거해서 내리는 판단에 따라서 물체를 추구하기도 하고 회피하기도 한다. 이런 성향은 우리의 감수성이 더 풍부해지고 지식이 늘어나면서 더욱 확대되고 강화된다. 그러나 이런 성향은 우리의 습관에 의해 구속받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의 편견으로 인해 다소 변화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런 변화가 일어나기 전의 성향, 그것이 바로 내가 우리 인간 속에 있는 자연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P.26)


   사람들은 자기 아이를 보호하는 것만 생각하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아이가 인간으로서 자신을 보존하고, 운명의 충격을 견뎌내며, 부유함과 빈곤함에도 의연하고, 필요하다면 아이슬란드의얼음더미 속에서나 몰타 섬의 타는 듯이 뜨거운 바위 위에서도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당신들은 아이가 죽지 않을까 해서 지나치게 조심한다. 그러나 아이는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 설령 당신이 잘못 보살펴서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닐지라도 잘못 보살폈다는 오해는 여전히 남는다. 아이가 죽지 않게 하는것보다 아이가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한 문제이다.
(P.35)


  인간의 운명은 전 생애에 걸쳐 고통을 참아내는 것이다. 자신을 보전하려는 노력도 고통과 결부되어 있다. 육체적인 아품밖에 모르는 어린 시절은 얼마나 행복한가! 육체적인 아픔은 다름 아픔에 비해서 훨씬 덜 가혹하고 덜 고통스러운 만큼, 그것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사람은 결코 사소한 고통 때문에 자살하지 않는다. 영혼의 고통이 아니면 사람을 절망시키는 것은 거의 없다. 우리는 어린이들의 처지를 가엾게 여긴다. 그러나 정말로 가엾게 여겨야 할 것은 바로 우리 어른들의 처지이다. 우리의 가장 큰 재난은 우리 자신에서 비롯된다.
(P.49)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운다. 아이는 유아기를 울면서 보내게 된다. 아이를 달래기 위해서 우리는 아이를 쓰다듬어 주거나 안고 흔들어준다. 또 때로는 울음을 멈추게 하려고 아이를 위협하거나 때리기도 한다. 우리는 아이의 기분에 맞추기도 하고, 아이가 우리 기분에 맞추도록 강요하기도 한다. 우리가 아이의 변덕을 다르거나 아이가 우리의변덕을 따르도록 마든다. 중간의선택은 전혀 없다. 아이는 명령을 내리거나 명령을 받거나 둘 중 하나이다. 따라서 아이가 최초로 갖는 관념은 지배 혹은 예속의 관념이다. 아이는 말하기 전부터 명령하고, 행동할 수 있기 전부터 복종한다. 사람들은 종종 아이가 자신의 잘못을 깨달을 능력을 갖추기도 전에 아이에게 벌을 준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은 일찍부터 어린 마음에 정념을 불어넣고 나서 그 책임을 자연의 탓으로 돌린다. 아이가 나쁘게 되도록 애를 쓴 다음에 아이가 나쁘게 되었다고 한탄하는 셈이다.
(P.49)

​​
  부자들이 겪는 불행들 가운데 하나는 모든 일에 속는다는 것이다. 그가 사람을 잘못 판단한다 해도 그게 그리 놀랄 일인가? 그를 타락시킨 것은 바로 부이다. 그 당연한 결과로서 부자는 자신이 알고 잇는 유일한 수단, 곧 부의 결점을 제일로서 부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유일한 수단, 곧 부의 결점을 제일 먼저 깨닫게 된다. 부자의 경우 자신이 직접 하는 일 외에는 모든 일이 잘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부자가 스스로 하는 일은 거의 없다.
(P.69)


  근대 정치 사상가 중 한 사람이었던 루소가 사망한 지도 이미 2세기가 지났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그의 저작을 읽으면서 그를 우리 시대의 문제와 쟁점들에 대단히 가까운 사람처럼 느끼곤 한다. 인간과 사회, 사적인 삶과 공적인 삶, 경제와 정부에 관한 루소의 견해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렇게 본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겪는 고민은 근대 초기에 이미 싹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근대인이 처음으로 직면했던 정치적, 도덕적 쟁점들을 현대인이 지금 대면하고 있다는 주장은 지나친 독단으로 보이기지는 않을 것이다.
(P.122)


  루소는 <사회계약론>의 첫머리에서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 그러나 도처에서 쇠사슬에 묶여 신음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루소가 여기서 말한 쇠사슬이 단지 특정 사회제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문명 전체를 가리킨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인류의 위대한 성취로 평가받는 현대 문명도 쇠사슬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더 나아가 루소가 말한 자유롭게 태어난 다는 명제조차 위협받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실정이다.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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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루소 사회계약론
손영운 / 팽현준 / 주니어김영사 / 240쪽
(2017. 8. 27.)


  

루소의 글은 내용도 딱딱하고 비슷한 이야기를 여러 대목에서 반복하기도 하며 흐름이 산만하기도 해. 게다가 뜻이 애매모호한 부분도 적지 않아. 그렇지만 그가 알관되게 주장하는 메시지는 분명해. 사람은 본래 선한 존재이고 자유를 타고났다는 거야. 루소는 그 자유를 토대로 하는 이상적인 사회 질서와 정부 수립까지 선명하게 그리고 있지. 루소에 따르면, 자연 상태에서 자유롭고 평등하던 인간이 사회계약을 통해 국가를 형성한다는 거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이 계약을 맺고 사회 질서를 만드는 것이 속박당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점이지. 어디까지나 자신들이 이익을 위한 자발적 행동이란 거지. 물론 루소 말고도 사회계약을 얘기한 학자들이 있긴 했어. 홉스, 로크 등이 대표자지. 그러나 루소가 말한 사회계약론과는 의미가 180도 다르단다. 홉스와 그의 친구들이 말하는 사회계약은 상하 수직적인 계약이었어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또 그 윗사람에게 복종하는 즉 국민이 왕에게 철저히 복종하는 계약을 말했거든. 사실 루송 이전의 학자들과 지배층은 국민을 무시하고 얕잡아 봤어. 가난하고 무식한 국민들을 동정하는 체하면서 내심으로는 무지한 대중을 통제하고 지배할 묘안을 찾기에 골몰했짜. 그러나 루소는 달랐어. 그에겐 사람들의 선한 본성에 대한 믿음이 있었어 그리고 폭력에 의한 질서가 아닌 계약에 의한 질서를 꿈꾸었지. 그 질서는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일반 의지'라는 것으로 구체화되는 거야. 사회계약론의 핵심인 일반의지는 부자와 귀족뿐만이 아니라 농부와 노동자, 거지에게도 똑같이 있는 거거든.
(P.23)


  17세기 전후로 유럽의 문명은 큰 변화를 맞이했다. 그것은 뉴턴, 라부.'아지에, 린네 등과 같은 과학자들의활약으로 일어난 과학 혁명이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사람들은 맹목적인 신앙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갖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향은 철학자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영국의 베이컨은 사물에 대한 관찰과 실험을 강조하는 경험주의 철학을 강조했고, 프랑스의 데카르느느 합리적인 철학을 하기 위해 이성을 강조하여 계몽사상의 토대를 마련했다.
계몽이란 '민중의 어리석음을 이성에 의해 깨우친다.는 뜻을 가진 말이며, 계몽사상은 민중을 계몽하기 위한 사상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계몽사상은 1784년 칸트가 쓴 <계몽이란 무엇인가?>를 시발로 유럽의 주류 철학 사상으로 자리 매김했다. 계몽사상은 과학적 자연주의를 토대로 하여 종교적으로는 무신론에 가까우며, 역사 정신은 진보주의라 할 수 있다.
(P.30)


  독일 철학자 칸트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단다. 그는 루소와 달리 규칙을 잘 지키고 몸가짐이 단정한 '범생이' 타입의 학자였어. 그는 매일 정해진 일과를 정확하게 지키기로 유명해서 동네 사람들이 칸트가 산책하는 모습을 보고 시간을 알 수 있을 정도였대. 그런 칸트가 단 한 번 자신의 규칙적인 일과를 지키지 못한 적이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루소의 <에밀>을 읽는 데 너무 열중한 나머지 그날의 산책을 포기했다는 거야.
(P.49)


  사회계약이 실제로 맺어진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는데 첫째, 모두가 똑같이 자신의 모든 권리를 내놓는 것을 의미해. 전부 같은 조건, 같은 위치에 놓이는 것이니 모두가 평등해지는 거지. 둘째, 그렇기 때문에 권력가라는 것이 아예 없어. 셋째, 모두가 똑같이 자신을 내놓았으니 어떻게 보면 누구도 자신을 내놓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가 되는 거야. 잃는 것은 없고 오히려 남는 장사인 셈. 왜냐하면 공동의 힘으로 자신을 더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P.80)


  자연인은 자연이 베푸는 혜택 속에서 남 생각 안하고 그저 자기 하나만 잘 먹고 잘살면 그만이었어. 그러다가 계약 후에 인간은 사회인이자 문명인이 되지. 행동을 할 때도 일정한 기준에 따르게 돼. 본능에만 충실한 게 아니라 정의니 의무니 권리 같은 고찾원적인 것들을 따지게 되지. 주변과 타인의 상황을 고려할 줄도 알게 되면서 도덕성이라는 것일 발달하게 돼. 물론 계약전에 누렸던 자연의 이득 중 일부를 포기했지만 새로 얻은 것도 많아. 또한 사회 속에서 분업을 함으로써 개인들의 능력은 눈부시게 빨리 개발되었지. 루소에 따르면 지성이 고개를 들면 감정이 고상해지고 영혼이 고양되어 절로 행복감을 느끼게 된대.
(P.84)


  일반 의지는 책에 따라 '전체 의사'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학계에선 일반 의지로 통일해서 쓰고 있어. 의미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공동의 의지야. 그렇지만 단순히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을 모아 놓은 게 아니야. 모든 사람이 동의했더라도 공익을 위한 게 아니라면 일반 의지라 볼 수 없어. 루소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를 위한 의지가 일반 의지라고 했는데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게 과연 세상에 있을까? 어떤 조직이든 구성원들은 서로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이해관계도 다르니까. 그렇지만 공동의 이익은 분명히 존재해 사회적 유대라는 것은 이 공통 부분에서 생겨나는 거지. 일반 의지라는 개념이 워낙 추상적이다 보니 가슴에 팍 와 닿지는 않겠지만 자유나 평등, 평화 같은 것처럼 우리 모두에게소중한 가치라는 것쯤은 알 수 있을 거야.
(P.94)


국가는 국민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권력을 갖고 있어. 마치 사람이 자기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듯이 말이야. 물론 국가의 권력은 사회계약의 범위 안에서 행사되는 거지. 주권은 국가의 의사를 최정적으로 결정하는 최고의 권력이야. 우리나라의 헌법 제1장 제1조의 2항에 보면 이런 내용이 었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즉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인 주권은 대통령에게 있는 게 아니라 국민에게 있다는 거지.
(P.103)
 

  우리가 하는 행동은 두 가지 원인으로 이루어져. 하나는 행위를 결정하는 의지이고 다른 하나는 행동을 실천으로 옮기는 힘이야. 정치도 마찬가지여서 의지와 행동(힘)이라는 두 가지 원동력이 필요해. 정치에서의 의지는 입법권으로 나타나고 행동(힘)으 집행권으로 나타나. 이 둘이 따로 놀면 절대 안 되겠지. 이 힘을 일반 의지가 지시하는 방향에 따라 발휘하려면 정부라는 대리인이 필요해. 정부는 실제 나라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조직이야. 정부는 주권자의 대리인 역할을 수행하고 정부는 주권자와 국가의 중간에 위치해서 주권자이 명령을 국민에게 전달하는 한편 법률을 집행하고 시민의 자유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지. 마치 개인에게 육체와 정신을 결합하는 것 같은 구실을 하는 거야. 우리가 대통령이나 장관, 공무원들을 '심부름꾼'이라고 부르는 것이나 그들이 스스로 국민의 '심부름꾼'을 자처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야. 좋은 정부란 이 대리인 역하을 잘하는 정부야.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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