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부드러워 2
F. 스콧 피츠제럴드 / 공진호 / 시공사 / 316쪽
(2018. 5. 22.)
작별 인사를 고하며 딕은 엘시 스피어스의 충만한 매력을 깨달았다. 마지못해 단념한 로즈메리의 마지막 조각보다는 그녀가 더 가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령 로즈메리는 만들어 낼 수 있을지 몰라도 스피어스 부인은 절대로 만들어낼 수 없었을 것 같았다. 로즈메리가 떠날 때 지니고 간 가면과 자극과 광휘를 그가 부여해주었다면, 이와는 대조적으로 그가 유발한
무엇이 아님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스피어스 부인의 우아함을 지켜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녀에게는 무언가 기다리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구석이 있었다. 전쟁이랄지 수술이랄지 남자가 그녀 자신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를 끝마치기를 기다리는 것 같은 느낌. 남자가 그런 일을 치르는 동안에는 보채거나 빙해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남자가 볼일을 다 마치기까지 그녀는 안달하거나 짜증 내지 않고, 어딘가 높은 의자 에 앉아 신문을 뒤적이며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P.11)
추크 호수에서의 지난 한 해 반마저 그녀에게는 헛되이지 나간 시간이었다. 계절의 변화는 도로 인부들의 작업복이 5월에는 분홍색, 7월에는 갈색. 9월에는 검은색, 봄에는 다시 흰 색으로 바뀌는 것으로만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처음 병에서 헤어나올 때 그녀는 새 희망으로 활기에 차 있었다. 정말 많은 것에 대한 기대감으로 충만했지만 딕을 제외하고 다른 생존 수단은 주어지지 않았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녀는 그들을 온화하게 사랑하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들은 그저 보살핌을 받는 고아들과 같았다.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개 반항아들이었는데, 그런 사람들은 그녀의 마음을 어지럽혀서 건강에 좋지 않았다. 그녀는 그들에게서 그들을 독립적으로 혹은 창조적으로 혹은 강인하게 만들어 주는 활력을 찾으려 했지만 헛된 일이었다. 그들의 비결은 그들이 잊은 어린 시절의 고투 깊숙이 묻혀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니콜이 앓고 있는 병의 다른 면인 외면의 조화와 매력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녀는 소유되기를 원치 않는 딕을 소유하는 외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P.40)
긴 지붕이 덮고 있는 기선 선착장은 더 이상 여기도 아니고 아직 저기도 아닌 어중간한 지점에 있다. 몽롱한 누런빛의 둥근 천장 아래는 메아리쳐 울리는 소리로 가득했다. 화물차가 우르릉거리는 소리, 트렁크를 쿵쿵 놓는 소리, 기중기가 귀에 거슬리게 달각거리는 소리, 처음 맡게 되는 바다의 짠 내음. 사람들이 시간이 있는데도 서두른다. 과거는. 대륙은 뒤에 있다. 미래는 배 옆의 빛나는 입구에 있다. 어스레하고 떠들썩한 뒷골목 같은 선창은 너무나도 헛갈리는 현재이다.
전차에 오르고 나면 눈에 비치는 세상의 모습이 자동으로 조정되어 좁아진다. 안도라보다 작은 공국의 공민이 되어 더 이상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한다. 사무장의 책상 앞에 앉은 남자들은 선실만큼이나 생긴 모양새가 이상하다. 여행자들과 그 친구들의 눈이 오만하다. 그다음으로 쓸쓸한 기적 소리가 크게 울리면 불길한 진동과 함께 배가, 인간의 고안물이...... 움직이는 것이다. 부두와 그곳의 여러 모습들이 미끄러져 가고 잠시 동안 배는 그 모습들 기운데서 잘못해서 떨어져 나은 조각 같다. 부두의 모습들이 벌어짐에 따라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P.86)
딕에게 있어서 매력은 항상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날 아침 병원에서 숨을 거둔 그 가엾은 여인의 무모한 용기이든, 길 잃은 이 젊은이가 따분한 과거의 이야기를 할 때 보인 용기 있는 기품이든. 딕은 그 매력이란 것을 보관해둘 수 있을 만치 작게 해부 했다 - 인생의 전체와 부분은 질적인 면에서 다르며. 또 40대를 지나는 동안의 인생은 부분을 통해서만 관찰이 가능한 것 같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니콜과 로즈메리에 대한 사랑, 에이브 노스와의 우정, 종전의 부서진 세상 속에서 사는 토 미 바르방과의 우정-그런 관계 속에서 인격들은 그가 인격 자체가 될 만치 가까이 그에게 미락한 것 같았다. 그리고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양자택일을 할 어떤 필요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마치 남은 인생을 사는 동안, 일찍이 만났고 일찍이 사랑한 어떤 사람들의 자아를 지니고 다니도록, 그리고 그들이 완전한 만큼만 완전하도록 운명 지어져 있는 것 같았다. 거기에는 어떤 외로움의 구성 요소가 결부되어 있었다-사랑받기는 그리도 쉽다는 것-사랑하기는 그리도 어렵다는 것.
(P.158)
그녀는 그간 안전을 보장해준 오래된 발판과 임박한 도약 사이의 미묘한 위치에 놓여 그 문제를 의식의 진정한 최전선으로 불러낼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도약하면 피와 근육의 성분 자체가 변화해서 내려앉아야만 하니까. 딕과 그녀 지신의 모습은 돌연변이를 일으키면서 확정되지 않은 모양으로 환상의 무도회에 휩쓸린 유령처럼 보였다. 몇 달 동안 모든 말은 어떤 다른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 같이 생각되었고 곧 이것은 딕이 정하는 상황 속에서 해소될 것이었다. 이 심리상태는 전보다 한층 더 희망적일지 몰라도 (존재 자체를 위해 존재한 기나긴 세월은 그녀의 본성에서 일찍이 병으로 인해 죽은 부분들 중 딕의 손길이 닿지 않은 부분들에 생기를 불어넣는 결괴를 낳았다-그의 잘못이 아니라 하나의 본성이 다른 본성 안으로 빈틈없이 미치지 못하는 법이라서 그렇다) 그것은 여전히 걱정되는 일이었다. 그들의 관계에서 가장 불행한 측면은 딕이 점점 냉담해진다는 것이었으며, 이것은 현재 과음으로 구체화되고 있었다. 니콜은 자신이 꺾일지 아니면 살아날지 알 수 없었다. 불성실로 넘쳐나는 딕의 목소리는 쟁점을 흐렸다. 그녀는 고통스럽도록 느리게 카펫이 깔리고 난 다음 그가 어떤 행동을 할지도, 마지막에, 도약의 순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짐작할 수 없었다.
그후에 생길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그게 무엇이든 그녀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것은 짐을 벗는 것, 멀었던 눈을 뜨게 되는 것이리라는 어렴풋한 예감이 들었다. 니콜은 돈을 지느러미와 날개 삼아 변화하여 비상하도록 예정되었다. 새로운 형국은 경주용 차의 차대가 일반 자가용 차의 차체를 쓰고 오랜 세월 감취져 있다가 차체를 벗고 원래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같을 것이다. 니콜은 벌써 신선한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두려워하는 것은 이별의 쓰라림과 그렇게 되기까지의 암울한 과정이었다.
(P.220)
그녀는 탈의장에서 해변용 바지로 갈아입었다. 그녀의 얼굴 표정은 아직도 명판처럼 굳어 있었다. 하지만 소나무가 위로 둥글게 드리운 거리로 나오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나뭇가지에서 후다닥 달아나는 다람쥐, 나뭇잎을 톡톡 건드리는 바람, 멀리서 공기를 가르는 수탉의 울음소리가 있고 부동의 상태에 햇빛이 슬금슬금 비쳐 들어오더니 해변의 목소리들이 멀리 물러갔다. 그러자 니콜은 미음이 누그러지고 새롭고 행복한 기분이 되었다. 생각은 잘 만들어진 종이 울리는 소리처럼 명징했다-그녀는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도 새로운 방식으로 몇 년 동안 헤매던 미로를 따라 빨리 되돌아가며 그녀의 자아는 크고 화려한 장미처럼 개화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해변을 증오했다. 딕이라는 태양을 주심으로 도는 행성 노릇을 했던 장소들이 원망스러웠다
(P.237)
'와, 나는 거의 완전한 거야.' 그녀는 생각했다 나는 거의 홀로 서 있는 거나 다름없어, 그이가 없이.' 그리고 그 완전함이 최대한 빨리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덕이 그녀가 그렇게 되도록 계획했다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하는 가운데 그녀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행복한 아이처럼 침대에 엎드려 니스에 있는 토미 바르방에게 도발적인 편지를썼다.
하지만 그것은 낮 동안의 일이었다. 밤이 가까워오자 필연적으로 신경성 활력이 감소하고 기분이 처졌으며 생각의 화살은 얼마간 황혼을 향하여 날아갔다. 그녀는 딕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두려웠다. 최근에 보이는 그의 행동의 근저에 어떤 계획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녀는 그의 계획이 두려웠다-그가 세운 계획들은 잘되었으며, 거기에는 포괄적인 논리가 있었지만 니콜에게는 그런 논리가 없었다. 그녀는 어쩌다 보니 생각하는 부분을 그에게 일임해왔으며, 그가 없을 때 자동적으로 그녀의 모든 행동을 주관한 기준은딕이 그것을 승인할 것인지의 여부였던 듯했다. 그래서 결국 그녀는 자기의 의향을 그의 의향과 대립시키기에 스스로 미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생각해야만 했다. 그녀는 마침내 환상이라는 무서운 문, 탈출이 아닌 탈출의 입구에 붙은 번호를 알았다. 그녀는 그 순간, 그리고 앞으로도 자기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죄악은 자기기만이라는 것을 알았다. 시간이 오래 걸린 학습이었지만, 어쨌든 그것을 알게 되었다.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대신해서 생각 해야만 하는데, 그러면 그들은 우리에게서 힘을 앗아가고, 우리의 타고난 취향을 통제하고, 우리를 교화하고 불모의 존재로 만들기 마련이다.
(P.238)
"나는 더 이상 당신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나는 나 자신을 구하려고 애쓰고 있어."
"나한테서 오염돼서요?"
"나는 직업상 때로는 질이 의심스러운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을 수 없지."
그녀는 그의 독설에 분하여 눈물을 흘렸다.
"당신은 겁쟁이에요! 당신은 인생에 실패하고 그 탓을 내게 돌리고 싶은 거야."
그가 대답하지 않아도 그녀는 그의 지능에서 나오는 예의 그 암시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그게 아무런 효력도 없었지만, 거기에는 항상 그녀가 깨기는커녕 금가게 하지도 못하는, 진리 아래 진리의 단층들이 있었다. 다시 그녀는 그것과 싸웠다, 그녀의 작고 예쁜 눈으로, 우세한 쪽의 호사스러운 오만으로, 다른 남자를 향한 초기의 전이로, 오랜 세월에 걸쳐 쌓인 분노로 그녀는 싸웠다. 그녀는 돈으로 그리고 언니가 그를 싫어하며 이제 자신을 지지한다는 믿음으로 그와 싸웠다. 그가 신랄한 혀로 새로운 적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으로, 와인과 만찬으로 둔해진 그에 맞선 자신의 눈치 따른 간계로, 그의 육체적 퇴화에 맞선 자신의 건강과 아름다움으로, 그의 도덕 체계에 맞선 그녀의 부도덕으로 그녀는 그와 싸웠다-이 내면의 싸움에 심지어 그녀는 자신의 약점마저 동원했다-속 죄 받은 죄와 모욕과 실수의 오랜 양철통과 토기와 병, 빈 용기들을 가지고 용감하고 씩씩하게 싸웠다. 그리고 그녀는 2분 만에 승리를 거두고 거짓말이나 구실을 만들지 않고 자신에게 자신을 정당화하고 영구히 줄을 끊었다. 그러고 나서 다리에 기운이 빠진 그녀는 침착하게 흐느끼며 마침내 그녀의 것이 된 집을 항해 걸어갔다.
딕은 그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고 나서 머리를 앞으로 수그려 흉장에 갖다 댔다. 이 케이스는 완료되었다. 의사 다이버는 이제 자유로워졌다.
(P.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