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책들의 도시 1
발터 뫼어스 / 두행숙 / 들녘 / 350쪽
(2018. 5. 29.)
나는 독서 행위를 광기로까지 몰고 갈 수 있는 어느 장소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책들이 상처를 주고, 중독시키고, 심지어 생명까지 빼앗을 수도 있는 곳에 대해서 말이다. 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 그 같은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의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면서까지 내 이야기에 동참하겠다는 각오가 진정 되어 있는 사람만이 나를 따라 이 이야기의 다음 장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밖의 모든 사람들에게는, 비겁하지만 몸의 안전을 위해 뒤로 물러서 있기로 결정을 내린 데 대해 나는 축하를 보낸다. 잘 있어라, 겁쟁이들아! 나는 너희들이 오래오래 죽을 때까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인생을 살기 바라며 이 말을 끝으로 작별을 고한다!
(P.13)
나는 밖으로 나가서 린트부름 요새 안의 어느 성벽으로 올라가 앉아 그 원고를 하늘 아래 탁 트인 데서 읽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단첼로트 대부가 직접 만든 딸기잼을 빵에 발라 그것을 챙겨 길을 떠났다.
나는 바로 이 날을 내 생애에서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태양은 이미 오래전에 하늘 한가운데를 지났지만 여전히 햇살이 따사로웠다. 그래서 린트부름 요새의 대다수 주민들은 야외에 나와 있었다. 길가에는 탁자와 의자들이 놓여 있었고. 요새의 성벽 위에는 햇볕을 목말라하던 공룡들이 씩씩거리면서 카드놀이를 하거나 책을 읽기도 하고 근래의 심경들을 서로에게 토로하기도 했다. 웃음소리와 노랫소리가 곳곳에 퍼졌다. 그 요새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늦여름의 풍경이었다. 조용한 장소를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좁은 길들을 지나가다가 결국 걸으면서 그 원고를 훑어보기 시작쭸다.
내게 처음 떠오른 생각은 낱말 하나하나가 모두 적절한 위치에 쓰여 있다는 것이있다. 사실 그런 인상은 전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어떤 원고든 처음 훑어보면 그런 인상을 받기 마련이니까. 그러다 자세히 읽어가게 되면 비로소 여기저기 무언가 맞지 않고 구두점들이 잘못 찍혀 있고, 오자도 있으며. 적절하지 못한 비유들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낱말들이 너무 자주 중복되는가 하면, 글을 써가는 동안 저지를 수 있는 온갖 실수들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원고의 첫 장은 달랐다. 내용을 알지 않고도 흠잡을 데 없는 예술작품이라는 인상을 내게 주었다. 마치 첫눈에 바라보고도 그것이 천박한 작품인지 대가의 작품인지 평가를 내릴 수 있는 회화나 조각과도 같았다. 원고의 첫 장을 전혀 읽어보지도 않았는데 벌써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은 아직까지 한 번도 없었다. 원고는 마치 화가의 손으로 그리진 것 같았다. 글자 하나하나가 탁월한 예술품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기호들 은 종이 위에서 마치 발레를 하듯 매혹적인 윤무를 필지고 있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나는 비로소 마음을 휘어잡는 이 전체적인 인상으로부터 벗어나 마침내 읽어가기 시작했다.
(P.35)
우리를 진정시킬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연뿐이다. 거의 본능적으로 우리는 실외로, 바깥의 정원으로 발을 옮긴다. 나무들이 소슬거리는 데서 그리고 별들 아래서 우리는 더욱 자유롭게 호흡한다. 그곳에서 우리의 마음은 더욱 가벼워진다. 우리는 별에서 와서 별로 간다. 삶이란 그저 낯선 곳으로의 여행일 뿐이다.
(P.75)
“저희 같은 직업에서는 좋은 문학과 나쁜 문학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좋은 문학은 당대에 제대로 인정받기가 드물지요 최고의 작가들은 가난하게 살다 죽습니다. 조악한 작가들이 돈을 벌지요. 항상 그래왔습니다. 다음 시대에 가서야 비로소 인정받을 작가의 재능이 저 같은 에이전트에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때 쯤 가서는 저도 이미 죽어 없을 텐데요. 제게 필요한 것은 하찮더라도 성공을 거두는 작가들입니다.”
(P.117)
나는 음악이 되어 있었다.
나 자신이 해체되는 것으로부터 일은 시작되었다. 아마 수증기도 끓는 액체의 몸에서 빠져나와 차가운 공기 속으로 상승할 때 그런 느낌 일 것이다. 내 생애에서 처음으로 나는 자유로워졌다 정말로 모든 세속적인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졌고 내 몸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며 나 자신의 생각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러자 나는 음향이 되었다. 음향이 된 자는 파동이 된다. 음향의 파동이 된다는 것이 어떤 건지 누가 알겠는가마는. 그는 우주의 비밀에 이미 한 걸음 더 가까워진 거라고 나는 감히 주장하겠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것을, 음악의 비밀을 이해했다. 음악이 왜 다른 예술들보다 월등히 뛰어난지를 이해했다. 그것은 음악이 지닌 무형성 때문이다. 음악은 한 번 그 악기로부터 벗어나면 완전히 그 자체가 되고 독자적이고 자유로운 피조물인 음향이 된다. 무게도, 형체도 없고 완전히 순수하며 우주와 완전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나 자신이 그렇게 된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음악이 되어. 활활 타 오르는 원과 더불어 모는 것을 넘어서서 높이 춤추고 있었다. 저 아래 어딘가에 세상이 있고, 내 몸이 있고, 내 근심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이제 완전히 부차적으로 보였다. 그러자 그것은 불의 수레바퀴가 되었고. 오직 현존재만이 가치를 지녔다. 그것은 소용돌이를 이루면서 돌고 또 돌다가 마침내 여러 색의 빛은 다시 그 내부로 홀러 들어가기 시작했고, 그 안에서 세 개의 굽은 궤도가 중앙의 한 곳으로 모아졌다.
그러자 나는 그것을 보았다. 바로 삼원이었다.
삼원, 그 비밀스러운 기호는 바로 키비처와 이나제아 아나자지의 고 서점에 걸려 있던 것이었다. 그것은 내 내면의 눈앞에 이제 더 큰 소리로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트럼나팔 음악의 힘으로 불려나와 빛나고 있 었다. 이 활활 타오르는 원은 내가 지금껏 보아온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고 가장 흠 없고 가장 찬란한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위해 일하고 그것에 복종하고 싶었다. 오직 그것만이 내 유일한 소원이었다.
그때 갑자기 모든 것이 정지했다. 음악이 중단되었고, 기호도 사라졌고 나는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나는 아래로 깊이, 깊이 추락했다. 세상 속으로, 차모니아로, 내 몸속으로 다시-착! 하고-되돌아가 지금까지 그렇게 속박에서 벗어나 있던 영혼이 다시 가차 없이 내 몸속으 로 들어와 원자들 속으로 갇히고 말았다.
나는 눈을 번쩍 떴다. 네벨하임 악사들은 트럼나팔을 내려놓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청중은 일어섰다. 아무 갈채도 없었다. 당황해서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처럼 대단했던 콘서트가 어쩌면 이리도 이상 야릇하게 끝난단 말인가! 나는 옆자리에 앉은 난쟁이한테 몇 가지를 물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자 역시 이미 사라진 후였다. 키비처와 슈렉스가 군중들과 함께 자리에서 급히 도망치는 모습도 보였다. 청중은 그들이 앉아 있던 열에서 벗어나려다 부딪쳐 비틀거리곤 했다. 오직 나 혼자만이 마비된 듯이 부흐하임 시립공원의 의자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P.202)
“저는 책을 사들이지 않습니다. 제가 사들이는 것은 고서점 전체 입니다. 저는 엄청난 양의 책들을 밀매합니다. 시장을 덤핑 책들로 넘쳐나게 해서 주위의 경쟁자들을 몰락시킵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파산하면 그들의 서점을 헐값에 사들입니다. 저는 부흐하임 전역의 집세 동향을 결정합니다. 이 도시 대부분의 출판사들은 제 소유입니다, 거의 모든 종이공장들과 인쇄소들도 마찬가지고요. 부흐하임의 문학 낭송가들 모두가 저의 봉급 목록에 올라 있으며 독이 있는 골목에 거주 하는 자들도 거의 모두 그렇습니다. 저는 종이 가격을 결정합니다. 책의 출판부수도 결정합니다, 어떤 책이 성공을 거둬야 하고, 어떤 책이 그래서는 안 되는지를 결정합니다. 저는 성공적인 작가를 만들어냅니 다. 그리고 제 마음대로 그들을 파열시키기도 합니다. 저는 부호하임의 지배자입니다. 제가 바로 차모니아의 문학입니다”
(P.226)
“어떻게 오늘 제가 한 질문들의 대답이 이런 오래된 책 속에 들어 있다는 겁니까?"
“오늘날의 거의 모는 질문에 대한 대답들은 이미 오래된 책들 속 에 쓰여 있습니다.” 스마이크가 대꾸했다.
“만약 당신이 직접 체험하고 싶다면 책들에서 찾아보십시오. 만약 그러고 싶지 않다면 그냥 그대로 두시고요.”
(P.232)
내 손가락 끝에서 느껴지던 한기가 팔 위로 퍼져 올라가면서 온몸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현기증이 나면서 눈 앞이 흐려졌다. 그때 스마이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로 모든 대답들이 책 속에 쓰여 있다고 믿는 몽상가였군요. 안 그렇습니까? 그러나 책들이란 근본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고 좋지도 않습니다. 그것들은 심지어 아주 사악한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위험한 책들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그중에는 살짝 만져도 죽음을 불러오는 것들도 꽤 있습니다.” 그러자 내 눈앞이함깜해졌다.
(P.236)
수백 가지의 착상들이 내 머릿속에서 마구 소용돌이쳤다. 소설, 시, 에세이, 단편소설, 희곡작품들을 위한 착상들로 내 분노와 저항심에서 솟구쳐 나은 것들이었다. 그것은 전집 하나를 완성할 기초가 될 만했고, 글을 쓴다면 서가 하나를 온통 작가 미텐메츠의 책들로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것들이 지금 여기서, 하필이면 정말이지 그 무엇 하나도 메모할 수 없는 이 순간에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 착상들을 붙들어매 머릿속 기억의 방에 못박아 두려고 애썼지만 그것들은 마치 미끄러운 물고기들처럼 내게서 다시 빠져나갔다. 지금이야말로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창의적인 상태에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글을 쓸 도구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슬프고도 우스광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웃다가 이따금 욕도 퍼부었다. 게다가 내가 지금 토해내는 저주의 말들조차 숨이 막힐 듯이 독창적이었다!
(P.2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