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털리 부인의 연인 1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 이인규 / 민음사 / 366쪽
(2017. 12. 31.) 




  어렴풋이 그녀는 자신이 어던가 모르게 부서져 엉망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렴풋이 그녀는 자신이 단절되어 있다는 것, 즉 자신이 살아 있는 세상의 실체와의 접촉을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오직 클리퍼드와 그의 작품만이 있을 뿐이었다. 진정한 존재가 없 는, 즉 속에 아무것도 없는 것들만이 말이다! 공허에 이은 공허. 어렴풋이 그녀는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깨달음은 돌에다 머리를 들이받는 것과 같았다.
(P.41)


  마이클리스는 운전기사와 하인을 거느리고 아주 멋들어 진 차를 타고 예정된 시간에 도착했다. 그는 완전히 본드 가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 클리피드의 '지방 명문가 출신' 영혼은 어던가 반발하여 움츠러들었다. 그는 자신의 외모로 풍겨내고자 하는 것과 별로 정 확히-글쎄 별로 정확히-아니 사실 전혀 조금도-일 치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클리퍼드에게 있어 이것은 더 따져볼 것 없는 충분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사람을 아주 정중히 대했다. 그의 놀라운 성공에 대한 정중함이었 다. 이른바 세속적 성공이라는 암캐 여신이 겸손한 듯 오만 당돌한 마이클리스의 발꿈치 주변을 보호하듯 으르렁거 리며 맴돌고 있었는데, 이 암캐가 클리퍼드의 기를 완전히 꺾어버렸다. 왜냐하면 클리퍼드 자신 역시, 받아만 준다면 성공이라는 이 암캐 여신에게 기꺼이 몸을 팔아넘기고자 했기 때문이다.
(P.44)


  코니는 얼마나 자주 저녁마다 이 네 사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앉아 있었던가! 다른 사람이 한두 명 더 끼기도 하는 이들의 대화에 말이다! 그들이 어떤 결론에도 결코 이르지 못하는 것 같다는 사실에 대해 그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그들이 지껄이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았는데, 토미가 그 자리에 있을 때면 특히 그랬다. 그건 재미있는 일이었다. 보통 사내들처럼 키스를 하고 몸을 비비대는 것 대신에, 그들은 자신들의 정신을 그녀에게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그것은 정말이지 굉장히 재미있었다. 그러나 그 얼마나 차디찬 정신들이 있던가!  게다가 한편으로는 약간 짜증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그녀는 오히려 마이클리스가 그들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비록 그들 모두가 마이클리스에 대해, 잡종 강아지 같은 출세 주의자(affiviste)라느니 저질스럽기 짝이 없는 무식하고 방자한 상놈이라느니 하면서 아주 지독한 경멸을 퍼부어대었지만 말이다. 잡종개에다 방자한 상놈이든 아니든, 그는 자기 나름대로 결론에 도달해 있었다. 정신생활을 과시하면서 갖가지 말로 그저 결론 주위를 맴돌기만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P.75)


  이건 굉장히 중요한 점이야. 아, 하지만 오늘날 세상은 비판이 필요하지. 죽도록 가해지는 비판이 말이야. 정신생활을 하면서 우리의 악의를 자랑하고, 썩어빠진 낡은 허울을 벌거벗기자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지.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게 있는데, 그건 바로 이런 것이네. 즉 삶을 살아가는 동안 어느 정도 우리는 각각 온전한 생명을 지닌 하나의 유기적 총체라는 것이네. 그런데 우리가 정신생활이란 것을 시작하는 순간 그 생명의 사과 열매를 따버리는 것이 되는 거야. 사과와 나무 사이의 연결, 즉 유기적 연결을 끊어버리는 셈이지. 따라서 우리의 삶에 정신생활 말고 아무것도 없다면, 우리는 바로 따버린 사과와 같은 존재가 되는 거야. 나무에서 떨어져 나왔다는 말이지. 그리고 나아가, 마치 따버린 사과가 썩는 것이 자연적 필연인 것처럼, 우리가 악의에 가득 차게 되는 것은 논리적인 필연인 거야.
(P.80)


  “내가 보기에 볼셰비키주의란." 찰리가 말했다.
  “그저 소위 부르주아라는 것에 대한 지극한 증오에 불과한 것 같아. 그런데 부르주아가 무엇이냐 하는 것은 완전히 정의(定義)되어 있지 않은 상태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것은 자본주의 자체를 뜻하기까지 해. 또 사람의 뭇 감정과 정서란 것들 역시 아주 확고하게 부르주아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부르주아적이지 않은 감정이나 정서를 가진 사람은 새로 발명하지 않고는 찾아볼 수가 없을 거야. 그렇다면 각 개인들, 특히 개별 인격체로서의 각 사람은 부르주아가 되고 마는 셈이지. 따라서 개개인은 억압해야만 하는 존재인 거야. 보다 커다란 것, 즉 소비에트 사회와 같은 것에 개인은 함몰되어야 하는 거지. 하나의 유기체라는 것조차 부르주아야. 따라서 이상(理心)적인 것은 기계적인 것일 수밖에 없지. 하나의 단위로서 유기체가 아닌 것. 그리고 서로 다른 많은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각 부분들이 똑같이 필수적인 것은 바로 기계밖에 없으니까 말이야. 각각의 사람은 기계의 한 부품을 이루고 증오, 즉 부르주아에 대한 증오가 그 기계의 동력을 이루고 있는 것, 바로 그게, 내가 보기엔 볼셰비키주의야.”
  “그래, 정말 맞아" 토미가 말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또한 산업의 이상(理想) 전체에 대한 완벽한 설명이기도 해. 한마디로 그것은 바로 공장 소유자의 이상이야. 증오가 그 동력이라는 점을 그가 부인할 거라는 사실만 빼고 말이야. 하지만 역시 증오인 것은 마찬가지지. 생명 그 자체에 대한 증오를 동력으로 하고 있으니까."
(P.81)


  코니는 어렴풋이 인간 영혼의 커다란 법칙 가운 데 하나를 깨달았다. 즉 감정적 성향을 지닌 영혼이 심한 충격을 받아 상처를 입을 때, 그 충격으로 육체가 완전히 죽지 않는 경우, 육체가 회복되면 그에 따라 영혼도 함께 회복되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이는 단지 겉모습일 뿐이다. 사실은 습관이 다시 되살아나 움직이는 것에 불과하다. 서서히, 서서히, 영혼에 박힌 상처는, 느리지만 그 끔찍한 고통이 점점 깊어가는 타박상처럼, 그 존재가 느껴지기 시작하고 마침내는 영혼 전체에 퍼져 가득 차게 된다. 그리하여 상처에서 완전히 회복되어 그것을 다 잊었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바로 그때, 그 끔찍한 후유증은 최악의 상태가 되어 우리 앞에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P.107)


  그는 현대에서도 가장 현대적인 목소리를 내는 작가로 여겨졌다. 비범하고 기괴한 인기 본능으로, 그는 사 오 년 만에 젊은 '지성인 계층' 가운데 가장 이름을 날리는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 지성이란 것이 어디에 쓸모가 있는지는, 고니로서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클리퍼드는 사람들과 그들의 행동 동기를 약간 해학적으로 분석해 내는 데 정말 뛰어난 솜씨를 보였는데, 결말에 가서 모든 것을 산산조각 난 상태로 끝내는 식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강아지가 소파의 쿠션을 갈가리 물어 찢는 행동과 다소 비슷한 점이 있었다. 다만, 그의 경우 어리고 장난기 넘치는 것이 아니라 묘하게도 나이 먹은 티가 나고 거의 외설스러울 정도로 기발하다는 점이 달랐다. 그것은 기괴했으며 또한 아무것도 아니기도 했다. 코니의 영혼 밑 바닥에서 메아리치며 계속 울리는 느낌은 바로 그것이었 다. 그 모든게 다 공허한 것, 즉 훌륭하게 꾸며 전시한 공허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하나의 전시 행위였다. 전시 행위! 전시 행위! 전시 행위!
(P.109)


  능욕당한 존재라! 육체적 접촉 없이도 인간은 얼마나 더럽게 능욕당할 수 있는가! 죽은 말과 표현들에 의해 능요 당하는 것이 바로 외설적인 것이며, 죽은 생각은 결국 강박 관념이 되고 만다.
(P.206)


  요컨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가장 사사로운 일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야 있겠지만, 그럴 경우 오로지 고통에 부대끼면서 노력하고 싸워나가는 각 인간의 영혼을 존경하는 마음으로만, 그리고 섬세하고 분별력 있는 공감의 마음으로만 그 이야기를 들어야한다. 왜냐하면 풍자조차도 공감의 한 형식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공감이 흘러나오거나 움츠러드는 방식이야말로 바로 우리의 인생을 진정으로 결정하는 요인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소설, 즉 제대로 창조된 소설이 갖는 엄청난 중요성이 존재한다. 그런 소설은 우리의 공감 의식을 자극하여 흐르도록 해주고 그 흐름을 새로운 곳으로 이끌 수 있으며, 또 우리의 공감을 죽은 것들을 피해 멀리 떨어지도록 이끌 수 있다. 그러므로 소설은 제대로 창조되었을 때 삶의 가장 내밀한 부분들을 드러내 보여줄 수 있다. 왜냐하면 예민한 각성의 물결이 밀물과 썰물로 가득 찼다가 빠져나가면서 깨끗이 씻어내고 새롭게 해줄 필요가 있는 곳은 무엇보다도 바로 삶의 내밀한 열정적 부분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소설 역시 소문과 마찬가지로, 기계적이고 인간 영혼에 무감각한 가짜 공감과 혐오를 자극해 조장할 수 있다. 소설은 사실상 가장 타락한 감정들조차 미화할 수 있 는데 그런 감정이 관습적인 측면에서 '깨끗한' 것일 때 그렇다. 그럴 경우 소설은 소문과 마찬가지로 결국 사악한 영향을 끼치게 되며 또 소문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그것이 표면상으로는 항상 천사들 편에 서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사악한 영향을 끼친다. 볼턴 부인이 이야기하는 소문은 항상 천사들 편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는 정말 나쁜 사람 이었고, 그녀는 정말 훌륭한 여자였답니.......”라는 식이었다. 그런데 볼턴 부인의 이야기로도 코니가 알 수 있었던 바이지만, 그 훌륭하다는 여자는 실은 그저 말만 얌전스레 하는 여우이고 반면 남자는 솔직하게 화를 내는 사람 일 뿐이었다. 그러나 볼턴 부인이 전하는 그 관습적이고 사악한 영향을 끼치는 공감의 통로를 통해, 그 남자는 솔직하게 화를 내는 것으로 인해 '나쁜 남자'가 되어버렸고, 그 여자는 말만 얌전하게 하는 것으로 '훌륭한 여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소문은 듣는사람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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