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로버트 뉴튼 펙 / 김옥수 / 사계절 / 182쪽
(2015. 01. 07.)
큰아이 책을 골라주려고 여기저기 추천 도서들을 찾아보고
도서관에 있는지 검색하다보면 가끔 아동실이 아닌 일반실에 있는 도서들이 있다.
그래서 큰 아이와 함께 읽은 책이다.
한겨레 금요일판 책과 생각의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란
코너를 참 좋아해서 한미화님이 추천해주시는 책들은 별도로 추려놨다가
큰아이에게 권해주는 데 이 책도 그 중 하나이다.
자신이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것들과의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작가 자신의 어린시절 경험을 토대로 쓰여있다
며칠 전 둘째에게 읽어 주었던 "내가 함께 있을께"라는 관한 동화책도
소중한 것들과의 이별인 죽음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아이들에게 죽음이란 어떤 의미로 느껴지는 걸까?
큰 아이가 책을 다 읽으면 한 번 물어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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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부자 아니에요. 아빠, 우리는......"
아니야, 우리는 부자야, 우리에겐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가족이 있고, 농사지을 땅이 있어, 그리고 언젠가는 이 땅이 완전히 우리 것이 될 거야. 여기 이렇게 체인을 감으며 우리의 짐을 덜어 주는 솔로몬도 있고. 저기를 봐라, 벌써 곳간을 거의 다 끌어 냈잖니? 그리고 날마다 따뜻한 우유를 주는 데이지도 있고. 세수도 하고 더러운 때도 벗기게 하는 비도 있어. 우리는 해가 지는 것을 볼 수 있어. 황혼은 눈가를 촉촉이 적시며 마음을 바쁘게 만들지. 바람에 실려 오는 음악을 듣노라면 나도 모르게 발장단을 맞추게 된단다. 바이올린처럼."
(P.49)
"그래. 내 생각이 틀릴지도 모르지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난 이제 얼마 못 살 것 같다. 동물은 자기가 죽을 때를 아는 법이야. 그런 점에서 나 역시 예민한 동물적 감각을 가지고 있어."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아빠가 나를 껴안고 쓰다듬어 주기만 기다렸다. 하지만 아빠는 의자에서 일어나 난로에 있는 뜨거운 돌멩이를 보자기에 주워 담고 침실로 갔다. 엄마와 이모도 부엌에서 나와 침실로 들어갔다. 집 안에 정적과 어둠이 깔렸다.
나는 빨간 불씨가 사그라지는 것을 지켜보며 앉아 있었다. 불씨가 더 꺼질 때까지 마냥 그리고 있었다. 결국 모든 건 죽게 되나 보다.
(P.150)
나는 참지 못하고 아빠 손을 잡아 입을 맞췄다. 돼지 피가 잔뜩 묻어 있는 그 손에 말이다. 죽은 돼지의 기름과 피가 묻어 있었지만 나는 계속 아빠 손에 입을 맞추었다. 설사 나를 죽이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아빠를 용서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아빠가 허리를 펴며 잿빛 겨울 하늘을 등지고 우뚝 일어섰을 때도 나는 아빠 손을 잡고 있었다. 아빠가 나를 내려다보더니, 눈길을 다른 데로 돌렸다. 아빠는 다른 한 손을 들어 소매로 두 눈을 훔쳤다. 나는 아빠가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P.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