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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방의 빛 : 시인이 말하는 호퍼
마크 스트랜드 지음, 박상미 옮김 / 한길사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도서관에서 때로는 빌릴 생각이 없던, 아예 존재조차 모르던 책에서 큰 감명을 받는다. 바로 이 책이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7/1017/pimg_7073211761757813.png)
호퍼의 그림을 보면 묘하게 무미건조함을 느낀다. 따뜻함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마치 모든 것에 무관심하다는 듯하고, 여러명이 등장해도 서로에 대한 관심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책에서 말하길 ‘실제로 호퍼가 표현하는 빛의 특징 중 하나는, 인상주의 회화의 빛처럼 대기를 채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에서 예의 나타나는 그 따스한,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줄 것 같은 빛이 호퍼의 그림에서는 철저히 배척된다.
그런데 그 무미건조한 그림에 묘하게 안정감을 느낀다. 마치 나만 이렇게 사는게 아니구나 라고 안도하게 된다. 사람들과 같이 사회를 이루며 살고는 있는데 어쩌다 보면 하루에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는 날이 있을 정도로 무관심한 하루들. 핸드폰에 수백개의 연락처는 있지만 나도 찾지 않고 그들도 찾지 않는다. 다들 바쁘게 살기 때문이다. 호퍼의 그림을 보면 그런 무관심이 덤덤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 같아 왠지 모르게 동질감을 느낀다.
이 책은 마크 스트랜드는 시인이 산문 형식으로 호퍼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감각적인 단어들과 시적인 표현 덕분에 더 감상적으로 읽을 수 있었다. 번역가인 박상미 님 또한 스트랜드와 호퍼 둘 모두에 지대한 관심이 있던 사람으로 책이 출판되기 위해 고군분투하셨던데 너무도 훌륭한 책이기에 감사함을 느낀다. 이런 조합의 책은 언제나 옳다.
호퍼가 활동했을 시대는 현대 추상주의가 맹위를 떨치던 때라서 처음에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인들이 미국의 실상, 미국인의 일상을 담백하게 그려낸 호퍼의 그림에 관심을 드러내고 인기를 얻게 되었다. 대부분이 흐름에 따라 추상으로 넘어갈 때 끝까지 구상의 영역에 남아 자신만의 색깔을 표현한 그의 감각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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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신세계의 쓱 광고. 모두에게 익숙한 이 광고는 호퍼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광고라고 한다. 무언가 모순적인 공간에 서로에게 무관심에 보이는 남녀가 짧고 굵은 대화를 나누는 광고에 많은 이들이 열광했다. 광고에서는 색채감을 좀 더 살리고 톱스타를 살린 점도 있겠지만, 호퍼 특유의 고독을 표현한 화풍이 국내 소비자들에게 어필이 된 점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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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가장 좋은 그림은 바로 이 그림, ‘뉴욕의 방’이다.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의 공간은 전체적으로 보면 아늑하기 이를 데 없다. 말쑥한 정장에 신문을 읽고 있는 남자와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피아노를 치는 여자. 하지만 분위기를 보면 적막하다 못해 마치 각각의 공간 속에 갇혀 있는 것 같다. 스트랜드는 이 그림에 대해 ‘이 그림은 소원함의 습관에 대해 무언가를 말해주는 듯한데, 그것은 이들 간에 소원함이 존재할 뿐 아니라, 조용히, 심지어 아름답게 무성해지고 있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처량할 정도로 안정된 생활 속에 갇혀 있다. 우리의 시선은 그 둘 중 어느 한 명에게 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둘 사이에 있는 문으로 바로 향하고, 문은 두 사람 모두에게 닫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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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7/1017/pimg_7073211761757821.jpg)
책을 읽고 호퍼에 대해 더 찾아보니 그의 그림에서 영향을 받아 탄생한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과 단편 소설 모음집 ‘빛 혹은 그림자’가 눈에 띈다. 특히 책은 SF소설의 대가 스티븐 킹 외에 쟁쟁한 작가들이 각각 호퍼의 그림을 보고 떠오르는 이야기를 담은 것으로 꼭 읽어봐야겠다. 영화와 책을 끝내면 호퍼의 고독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출처>
-호퍼의 첫번째 그림
http://news.joins.com/article/18704325
-쓱 광고 포스터
http://m.mt.co.kr/renew/view.html?no=2016081811374428790
-호퍼의 두번째 그림
http://news.joins.com/article/18704325
-셜리에 대하여 포스터
http://magazine.notefolio.net/features/ssg_ad
-빛 혹은 그림자 포스터
http://ch.yes24.com/Article/View/344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