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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짓의 행복 -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낸 사람들
크리스 길아보 지음, 고유라 옮김 / 더퀘스트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1.
2016년 5월에 열린 멍때리기 대회.
가치 없는 멍 때리기 자체에 목적을 둔 이 대회는 인기 스타 크러쉬가 우승하면서 큰 이슈가 됐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눈에 초점 없는 사람들이 서로 경쟁한다는 것 자체가 웃기지만 모두 멍 때리기에 한가닥 하는 사람들이어서 나름 치열했다고 한다. 이런 대회가 있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피식 할지도 모르고 ‘정말 쓸데없는 짓들 한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로 이런 대회가 우리 사회에 잠시 쉼표를 찍어줄 수 있다. 너무나 바쁘게 달리는 우리들에게 잠시 웃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쓸데 없는 것이 간절히 필요한 사회다. 모든 것이 효율을 기준으로 움직인다. 시간을 아껴서 더 더 많은 것을 성취하려고 하고, 쉬는 시간에도 생산적으로 쉬어야 한다. 여유시간에 멍 때리고 있다고 하면 갸우뚱하고 운동이나 독서를 한다고 해야 제대로 잘 쉬고 있다고 인정받는다. 잠자는 시간 빼고는 누가 누가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냐는 시합의 연속이다. 남들이 열심히 하고 있기에, 밤 늦게까지 공부하기에 나도 해야한다. 나 역시도 신문도 열심히, 책도 열심히 읽으며 잠시라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가만히 있으면 지는 것 같다. 멍 때리지 못하고 온갖 잡생각이 들락날락한다. 쓸데 없는 것에 낯설어 한다. 지금까지는 모두 효율성을 기준으로 살아왔고 최적으로 적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멍때리기 대회와 같이 우리의 최적화 생활에 펀치를 날리는 활동들이 많이 나와주어야 한다. ‘쓸데 없는 박람회’같은 것을 열어 쓸데 없는 것의 판을 벌려 주면 숨어있던 사람들이 나와 축제를 즐기고 그 쓸데 없음이 널리 퍼지지 않을까 싶다. 창의성이 각광받는 시대에 이보다 창의력 증진하는 박람회도 없는데, 정부에서 주도적으로 열기엔 좀 그러니 톡톡 튀는 기업에서 열어주었음 좋겠다.
2.
개인적으로 기대가 큰 책이었다. 최근에 읽은 책들이 과잉의 시대를 말하며 작은 일, 쓸데없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해서 찾아 읽은 책이었다. 제목처럼 얼마나 많은 쓸데없는 일이 나올까 궁금하였다. 하지만 여기 나오는 대부분의 일은 쓸데없다고 하기에는 갸우뚱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전 세계 모든 나라를 방문한다는 저자 자신의 계획이나 알래스카 주민들을 위한 진짜 신문을 만드는 것, 4년짜리 MIT 컴퓨터 공학 수업을 1년 만에 마치기. 이게 어떻게 쓸데없는 일이라는 것인가! 누구나 해외여행을 꿈꾸고 MIT 컴퓨터 공학 수업을 듣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도전이요, 자신의 역량을 높여주는 행동인데? 아리송했다.
이런, 원제를 다시 찾아보니 The happiness of pursuit 다. ‘추구하는 것의 행복’ 정도로 해석이 되는데, 쓸모 없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옮긴이가 원문을 읽어보고 거기에 나온 많은 사람들의 계획을 쓸모 없다고 느꼈던 것인가? 아니면 출판사가 과잉의 시대에 반대되는 개념인 ‘쓸모 없는’이라는 단어를 붙인 것인가? 배신감을 느낀다. 어쩐지 처음부터 끝까지 책의 어조는 쓸모 없음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고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의 고난, 성취했을 때의 행복을 강조하는 전형적인 자기계발서 였다. 읽을 때는 ‘오 좋아 나도 한번 해보자! 바로 시작해보자!’라는 역대급 자신감이 생기지만 책을 덮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순간 기가 막히게 까먹고 헉헉댄다. 더군다나 이 책에는 쓸모 있는 성공을 이룬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내가 기대했던 사람 쓸모 없는 짓에 가까운 사람은 ‘100일 동안 무조건 거절당하기’ 실험을 하고 유튜브로 결과를 공유한 사람 정도다. 번역이 이처럼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쓸모 없는 짓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생각일 것이다. ‘자전거로 세계를 여행한 청년’,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심포니를 제작한 음악가’, ‘38피트 범선을 타고 사상 최연소로 전 세계를 항해한 소녀’ 오늘 저녁에는 가만히 혼자서 멍이나 때려야겠다.
출처
멍때리기대회
http://www.huffingtonpost.kr/2014/10/27/story_n_6052238.html
에펠탑에서의 여유
http://zzz6366.tistory.com/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