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4대 비극 세트 : 햄릿.오셀로.맥베스.리어 왕 - 전4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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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비극 맥베스

 

고전은 결코 오래된 지식으로 또는 과거의 유물로 남지 않고 현 시대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권력의 끝은 어디인가. 시대를 관통하는 이 질문은 지금 당장 우리  대한민국에게 묻고 있다. 우리가 꿈꾸는 민주주의의 권력은 무엇이었는지.  사회주의보다 더 좋은 권력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지.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은 맥베스보다도 더러웠으니까 이다.



 

맥베스는 우연히 자신이 영주를 넘어서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는다. 단순히  기분 좋게 넘길 수 있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 야망으로 품고 결국에는 왕을 살해한다. 살인이라는 큰 죄악을  저지른 그였지만 그 이후에는 야망을 위해서 자신의 왕위에 거슬리는 자들을 제거하며 왕위를 지키려 든다. 그에게도  양심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권력의 욕망 앞에 스스로 양심을 저버린 것이다. 하지만 양심을 저버리기 전에 그도 심한 내적갈등을 겪었다. 양심적으로 살고 싶은 마음과 권력에 대한 야망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을 때, 그를 완전히 야망의 화신으로  변하게 만든 것이 그의 아내이다. 맥베스가 왕을 살해하기 전에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자 비겁자, 겁쟁이라고 도발하며 그의 남아있는 양심을 저버리게 강요한다. 배우자의  영향력은 이 정도로 크다. 그에게 도덕적인 부인이 있었다면 맥베스는 그날 왕을 살해하지 않았을 것이고  용맹한 영주로 남았을 수도 있다. 운이 더 좋다면 왕위를 받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그보다도 더 포악한 사람으로 양심은 일찌감치 저버린 사람이었다. 왕을 죽이고 왕이 된 그는 살해한 왕의 아들을 죽이기 위해 사방팔방 노력하지만 결국 정의로운 사람들이 왕자를  중심으로 힘을 모아 왕위를 되찾으려 온다. 한때 양심이 있었던 맥베스는 이제는 그 누구도 자신을 죽이지 못할 것이라며 자만하고 끝까지 버티다가 결국 죽임을 당한다.


 

어렸을 때부터 청와대에서 자란 그녀는 언젠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야망을 품는다. 주변사람들도 그를 아끼고 나중에 크게 될 것이라 말하니 꼭 그렇게만 될 것 같다. 당의 주요 요직을 차지하고 정적들을 차례로 제거하며(정치적으로) 권력을 키워 나간다. 이때에도 우유부단했지만 그럴 때마다 한쪽 구석으로 찾아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여 도움을 얻는다. 결국 그녀는 권력의 최정점에 서게 되었고, 현재 각종 의혹과 수사를 받고 있는 부정부패한 일들에 연관되었다. 배우자가 없었던 그녀는 친구에게 의지하였고, 친구는 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자보다 더욱 권력적이었다. 최근에 언론에 나온 두 사람의 통화 내용을 들어보니 우유부단한 그녀는 대화할 때마다 말끝을 흐리며 자신 없는  모습을 보이는데 반해, 그녀의 친구는 강하게 윽박지르며 국정을 제 맘대로 이끌었다. 사태가 터지고 권력의 참된 주인인 시민들이 권력을 돌려 달라 외쳤지만 그 누구도 청와대에 들어올 수 없노라 생각하며 끝까지 버티고 있다.




양심을 저버린 야망의 끝은 셰익스피어가 이미 수백 년 전에 밝혔다. 그 끝에는 죽음뿐이다. 그것이 신체적 죽음이던 정신적 죽음이던 결국은 죽음을 맞이한다. 지금의 정치인들은 이 서슬퍼런 진리를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그동안  한국은 이 진리가 들어서지 못했다. 독립을 하고 양심을 저버린 야망의 가장 대표적인 예인 친일파들을 청산하지 못하고 그대로 안고 갔기 때문에 정치인들과 권력자들은 권력욕의 끝없은 추구를 거침없이 내보였다. 각종 부정부패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고 시민을 위한 정치는 실종된 상태로 민주주의는 시작되었다. 이런 양심을 저버린 양심에서 최악의 형태는 독재라고 생각이 되는데, 한국은 역시나 독재정치에 오랜 시간동안 정치적  암흑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다행히 이 최악의 형태는 무너졌으나 다음에 집권한 자들 역시 전두환, 노태우 등 한층 진보된 권력, 양심적인 권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국내 정치는 이것이 진리인 것 마냥 누리며 죽음을 맛보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양심적인 야망에 대해 제대로 된 기준을 세울 수 있고 양심 없는 야망의 끝은 무엇인가를 보여 줄 수 있는 역사적인 기회에 있다. 다행히도(?) 지금의 최고권력자는 자신의 양심을 망각한 채 전면적으로 사회의 양심과 대립하고 있다. 만약 일찍이 후회하고 반성하며 물러났다면 한국의 정치적 진보는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수 도 있었을 것이다. 치졸하게 버텼기 때문에 탄핵을 할 수 있었고, 피의자로 규정할 수 있었다. 시민들은 이 역사적인 기회에 역사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촛불시위와 함께 정치적인 관심은 치솟았고, 다음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정직, 도덕으로 뽑고 있다. 미국에서도 닉슨의 워터게이트 이후에 가장 도덕적인  후보였던, 무명에 가까웠던 지미 카터가 당선이 되었다. 우리도 이 흐름과 비슷하게 각 후보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동안 능력위주, 성과위주로 선거를 했던 것에 비해 진일보 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털어서 먼지 하나 안나오는 사람이 어딨냐 라고 말 할 수 있지만 양심 있는 권력을 추구한 사람이라면 먼지조차 나오지 않을 것이다. 먼지는 야망을 의미하고 작은 먼지는 큰 먼지와 엉겨 붙기 마련이다. 부디 이번 사태를 토대로 진일보한 민주주의가 재탄생했으면 한다.

 



사진출처

1.맥베스그림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Macbeth_and_the_Witches_(Barker,_1830).jpg

2.국회의사당사진 

http://mapio.net/pic/p-18974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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