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정글만리 1~3 세트 - 전3권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꽌시. 있는 자는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없는 자는 어떻게든 얻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바로 그 관계. 중국에서의 꽌시를 바라보고 있자니 우리나라 내에서의 학연, 지연, 혈연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그러한 ‘-들을 타파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학연을 이용해 자신의 자식을 취직시켜 주려던 국회의원은 명예를 실추했고, 고위 공무원을 뽑을 때 혹시라도 대통령과 같은 지역 출신인 사람이 지명되면 온 나라가 들끓는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오히려 꽌시를 대놓고 옹호하는 분위기이다. 그것이 혈연이 되었든, 학연이 되었든, 돈이라도 바쳤든지 간에 꽌시가 맺어지면 그것을 이용해 한몫 단단히 챙기고, 더 넓은 꽌시를 맺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한다.

꽌시와 혈연, 지연, 학연의 차이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한나라에서는 하나의 관례로 인정받고 다른 나라에서는 지탄의 대상이다. 이런 차이는 사회의 발전에 따른 차이인 것 같다. 역사적으로 꽌시나 혈연, 지연은 권력 집중을 위한 당연한 방법이었다. 부족 사회에서도 족장은 자신의 아들에게 지위를 물려주고, 제국주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친인척들 역시 배신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권력을 나누어 주기도 했다. 장사를 하더라도 자식들에게 가업을 물려주었다. 자신의 근처에서 일을 배웠기 때문에 가장 일을 잘하는 것이 당연 했기에 모두가 그의 실력을 인정해 주었다. 그러다가 자본주의가 등장하고, 모든 것이 효율성으로 결정되기 시작하자 그런 권력 승계의 양상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아는 사람보다 일을 더 잘하는 사람을 등용시키는 것이 더 높은 효율성을 보이자 사회는 혈연, 지연, 학연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전문경영인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고, 투표를 통해 뽑는 국회의원들도 가장 일을 잘하는 사람이 당선되기 시작하였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정착이 될수록 꽌시나 ‘-이 없어지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모습은 아직도 과도기적이다. 자본주의의 시각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후진적 사회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자본주의에 열광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그 속을 조금만 뜯어보면 얼마나 자본주의에 반하는 행태들이 팽배 한지 혀를 끌끌 찰 정도이다. 10대 재벌의 실력도 없는 아들, 딸들은 회사에서 요직을 맡고 있다. 자녀에 대한 재산 상속 비율은 세계 최고의 수준이다. 대부분의 국내 재벌기업들은 일제시대에 가업을 시작했다. 일제시대에 우리나라는 강제적으로 자본주의를 주입 받았고, 광복 후에도 자본주의를 선택하여 눈부신 성장을 이룩하였다. 이렇게 자본주의의 시작을 함께한 기업들이 제국주의적 모습을 고수하고 있는 나라를 정말 온전한 자본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

2.

생사를 넘나드는 극적인 드라마는 아니다. 전대광 부장이 중심이 되어 철강 판매를 두고 벌이는 영업 전쟁, 그의 조카와 그 여자친구를 통해 바라본 중국 대학생들의 인식과 중국과 한국의 관계, 전 부장이 중국으로 영입해온 서대원 의사의 기러기 아빠 생활, 또 그의 역할로 본 중국에서의 성형 열풍, 전대광의 꽌시인 샹신원이라는 관리의 부정 축재와 도피, 그리고 영업 부장으로서의 직장을 버리고 공장 운영이라는 업을 찾는 전대광 부장 그 자신의 이야기는 극적이지 않아서 더욱 현실감이 넘친다. 정말로 일어날 것만 같은 일들의 연속으로 기승전결의 이야기 형식이라기보다는 각각의 다른 이야기들이 한데 맞물리는 이야기 같았다.

각각의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전체를 같이 보면 중국이라는 나라가 전세계에서 어떻게 거대하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급격히 상승하는 생활수준과 더 이상 아류 국가가 아니라 당당한 G2의 나라라는 그들의 인식. 몇몇 대도시를 제외하면 잠옷을 입고 거리를 돌아다닌다 던가, 상의를 탈의하는 등 여전히 국민의식이 낮음을 보여주지만 그만큼 대도시에서의 많은 인구는 이제 선진국들의 문화를 누리며 지구촌 시대에 합류한지 오래이다.

그에 반해 우리는 아직도 중국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중국은 아직 우리나라에 비해 조금은 미개하다 라는 생각. 해외로 여행을 가면 예의 없게 와글와글 떠드는 그들의 모습에, 중국에서 가짜 계란이 유통되었다는 충격적 소식에 중국은 아직 멀었구나 라고 안도한다. 샤오미가 의외로 잘 만든 상품에 대해 대륙의 실수라고 부르는 것에 이 모든 인식이 담겨 있다. ‘너희는 원래 잘 만드는 것이 없는데, 이번에 실수로 우연히 잘 만들었구나라고. 신문을 조금이라도 읽고, 중국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중국의 하루가 다르게 달라져 가는 모습에 긴장을 느끼겠지만, 대다수 국민들에게 중국은 아직 중앙정부의 계획경제로 허덕이는 나라로 보인다. ‘대륙의 실수라며 사들인 보조 배터리부터 시작해서, 공기청정기, 핸드폰, 이어폰 등등 우리는 대륙의 실수들을 사고 있다. 실수가 여러 번이면 실력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우리의 소원이 담겨있는 것은 아닐까. 샤오미에 더해 드론, 전자결제, 유통 등 이미 최신산업에서는 중국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데, 앞으로는 최신 산업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 우리를 더 긴장하게 만든다. 영화, 예술, 음식, 옷 등등 세계 최대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의 문화는 세계로 뻗어나갈 것이고 바로 옆에 붙어있는 우리나라는 정면으로 그 바람을 맞이할 것이다.

전세계에서 일본을 무서워하지 않고, 중국을 무시하는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말이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자만심에 가까운 자신감을 통해 이 두 최강대국 사이에서도 꼿꼿하게 세계적 위치를 유지해 왔을 것이다. 우리는 일본을 철저하게 따라하는 방법을 통해 그들을 넘었다. 일제 시대를 통해 어쩔 수 없이 그들과 너무 닮아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가능했었다. 그렇다면 과연 중국의 성장을 우리가 따라할 수 있을까? 중국이라는 새로운 정글을 헤쳐나가야 한다. 그러기위해서는 중국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중국은 이미 거인이 되어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