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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모험 - 빌 게이츠가 극찬한 금세기 최고의 경영서
존 브룩스 지음, 이충호 옮김, 이동기 감수 / 쌤앤파커스 / 2015년 3월
평점 :
- 경영과 모험에 대하여
모험은 어린 시절에 많이 써왔던 단어다. 누구누구의 모험, 보물을 찾아 떠나는 모험. 모험은 단어 자체로 사람을 들뜨게 하고, 바로 보물을 찾아 떠나야 할 것만 같은 인상을 준다. 모험 중간중간 어려움을 맞이하지만 그런 어려움이 있어야 모험의 맛이 나고, 그것을 이겨내기에 모험이 우리를 끌어당기는 느낌을 주었다.
어렸을 적에는 그렇게 많이 썼던 단어를 이제 어른이 되고 나니 더 이상 쓰지 않는다. 어디론가 떠다는 것은 여행이 되어 버렸다. 여행에는 어려움이 포함되지 않는다. 모든 정보가 인터넷에 있으니 인터넷을 통해 바가지 가격의 어려움을 피하고, 길찾기의 어려움을 피한다.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순간 어디론가 떠나는 여행에 있어 어려움은 감소하고 편안함, 만족감은 늘어난다. 그래서 우리는 모험심을 잃어간다. 고난이나 장애물은 예고없이 튀어나오는 법인데, 모든 것이 연결될수록 예측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고 피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진다. 나 역시도 모험심이라는 것을 잊어버린지 오래였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저자와 같이 모험을 한 것 같았다. 기자라는 직업답게 사건을 파고드는 능력, 인터뷰하는 능력, 자료를 끄집어 내는 능력이 탁월하여 마치 내가 해당 기업의 주요 임원인 것마냥 같이 사건의 흐름을 하나하나 훑어나갈 수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만나기 힘든 기업의 거물들을 만나서 그들의 의중과 그로부터 나온 결과들을 같이 볼 수 있었고, 기업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가는지 잘 알 수 있었다. 포드 자동차의 야심작 에드셀의 망조, 소득세의 역사, 주식 시장에서의 거대한 움직임, 내부자 거래, 기업 기밀 보호법, 주주총회, 파운드화의 평가 절하 과정 등등 기자여도 찾기 힘든 것들을 탁월하게 잘 찾아냈다. 그래서 사실 경영에 대한 모험심 보다는 기자가 가지는 모험심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출간된지 몇십념이 지난 책이 유명해진 이유는 빌 게이츠가 추천했기 때문인데, 그는 제록스의 사회적 역할을 담은 이야기가 가히 최고의 이야기였다고 말하였다. 나 역시그 이야기도 재미있게 읽었으나 나에게 있어 최고의 이야기는 영국 파운드화의 평가절하에 관한 일련의 과정을 담은 이야기였다. 세계를 호령하는 통화 중 하나였던 영국의 파운드화가 어떻게 위기를 맞이했는지(수입이 수출보다 월등히 많은 상황으로 국제 수지가 크게 악화), 그에 따른 파운드화 공매도가 증가하자 미국과 유럽의 주요국들이 어떻게 힘을 모아 파운드화의 환율 유지에 도움을 주었는지(프랑스는 빼고, 스와프 통화 정책과 긴급 단기 차관의 힘으로), 위기를 넘겼지만 일련의 부정적인 사건의 연속으로(중동 전쟁으로 유가의 급상승, 항만 노동자들의 파업, 통화정책에 보수적인 노동당의 득세) 어떻게 파운드화가 다시금 투기자들의 공격을 받았는지, 몇년의 걸친 공격으로 결국은 파운드화의 평가 절하로 끝이 나는지 그 거대한 세계 환율의 전쟁 과정을 정말 긴박하게 볼 수 있었다. 저자는 연방준비은행의 부총재와 실무자와 자주 접촉할 수 있었는데 그에 따라 환율시장이 개장하기 몇시간 전 그들이 얼마나 전화를 절박하게 돌렸는지, 유럽시간에 맞추어 전화를 돌리기 위해 새벽 3시반에 일어나는지, 때마침 필요한 벨기에의 재무장관이 이동중이어서 그를 기다리는 시간동안 얼마나 발을 동동 굴렀는지,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엇던 것처럼 생생하게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영국의 파운드화를 무너트린 주범이 스위스의 비밀계좌에 똬리를 튼 투기꾼들이 아니라 미국기업들이 주인 기업들의 헷징이었음이 밝혀지는 아이러니까지. 정말 통화 모험이 따로 없었다. 나에게 있어 잃어버린 모험심이 되살아난 기분이었다. 역시 어른이 되었어도 모험을 좋아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나보다.
이 책을 읽었으니 빌 게이츠와 적어도 한 가지는 겹친다는 작은 기쁨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