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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서두르지 않는다, 가우디
김용대 지음 / 미진사 / 2012년 7월
평점 :
- 가우디의 스페인에 대하여
유럽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유럽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그냥 스페인이라는 나라에 가장 가보고 싶다. 여러 이유가 있었는데 가우디의 건축물을 보고 싶다는 이유도 그 중 하나였다. 왜 나는 가우디의 건축물을 보러 가고 싶은 것일까. 난 가우디가 어떤 생각으로 건물을 지었는지, 어떤 사람인지도 전혀 모른다. 하지만 동화 속에 나올 법한 건물들과 아직도 건설되고 있는 그 이름도 모르는 대성당을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그러다가 이 책을 읽으며 가우디의 스타일을 아주 약간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가우디의 대표적인 구엘 공원, 구엘 단지 지하성당에 나오는 구엘이라는 것이 지역명이 아니라 가우디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자 친구였던 사람의 이름이었다는 점과 작은 타일장식들을 화려하게 붙여놓아 건물이 알록달록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하는 뜨렌까디스 장식이 그의 대표적 건축 공법이라는 점,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인데, 곡선을 추구한 그의 정신이 동화책에 나올 법한 건축물을 만들었다는 점 등이 매력적이었다. 그런 건축물들 중에 인상적이었던 점은 까사 밧요나 까사 밀라 처럼 사람들이 여전히 그 건축물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 건물은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이 되어 있는데, 건축물의 사진을 보니, (불확실하지만)화분이나 전깃줄 등 사람들이 여전히 살고 있는 흔적이 보였다. 아름답기로는 정말 둘째가라면 서러울 건물에 살고 있다는 것은 어떤 기분인지 정말 궁금하다.
하지만 역시 가우디의 작품 중에 압권은 파밀리아 대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인 것 같다.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성가족 성당의 총감독으로 임명된 가우디는 이후 몇 번의 중단 사태를 이겨내고 결국 죽을 때까지 성당 작업에 모든 힘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성당의 완벽을 너무 추구했던 모양인지 완성하지 못하고 전차 사고를 당해 죽고 말았다. 그 이후 여전히 건설되고 있는 대성당. 정부의 힘으로 완성이 금방 될 법도 하지만 ‘신은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는 가우디의 말처럼 성당의 건축을 주관하는 사람들도 오로지 기부금만으로 성당을 건설하고 있다고 한다. 가우디의 서거 100주년이 되는 2026년에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 그 과정을 보고, 완성된 후의 작품을 보게 되면 어떤 느낌일지 사뭇 궁금하다. 일단은 올 11월에 마주할 성가족 성당의 모습에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 빈 공간으로써의 건축에 대하여
우리 학교에는 사당과 같은 오래된 건물이 있다. 옛 선조들이 공부를 했던 공간으로 10여 년 전까지는 사시나 행시를 공부하는 사람들을 그 사당에 서 주거하며 공부할 수 있도록 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건물을 보존하기 위해 더 이상 학생들을 들이지 않는데, 신기하게도 그 이후로 건물의 노후화가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이런 말씀을 전해주신 교양 수업의 교수님은 건축물은 결국 살기 위한 공간이기에 사람이 살아야 건물도 숨을 쉬며 자연스럽게 늙어갈 수 있는 것이라고 하셨다. 일견 타당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건축물은 아무리 아름답고 화려하게 지어도 결국은 누군가가 그곳에 머물게 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가우디가 그랬던 것처럼 건축가는 그 건물에 살 사람들을 치밀하게 고려하여 건축물을 만든다. 그럼 결국 건축의 완성은 사람이 공간에 살 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단순히 외관이 아름다운 것이 중요하다면 무조건 화려하거나 웅장하게 짓기만 하면 될 것인데, 아름다운 건축물이 정말로 아름답다고 칭송을 받는 이유는 그 주변 환경과 어울리고 주거하는 사람들의 특성을 고려했기 때문에라는 말이다. 때문에 아무리 거장이 지은 건물이다, 이건 건축가의 유작이다 하여도 그 용도에 맞게 계속 사람이 살게 해야 한다. 건축물이 훼손될 것이 두려워 건축물의 제1기능을 금지시켜 버리면 그것을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단순히 조각상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 와중에 우리나라 정부의 고궁 사용 방안은 기가 막히게 창조적이다. 문화재청이 창덕궁 낙선재에 있는 전각 두 개를 개조하여 외국인 관광객들이 머무를 수 있도록 하는데 1박에 300만원 정도로 값을 치겠다는 것이다. 왕실의 가족들이 살 던 공간인 석복헌과 수강재. 사람이 살던 공간인 것은 맞다. 이런 사람이 숙박하는 공간이라는 점만 이용하여 살던 사람들의 특성이나 성격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런 창조적인 정책 덕분에 정부는 또 다시 욕을 얻어 먹고 있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건물이 왜 지어졌는지, 어떤 생각으로 지어졌는지부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