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 9시반이라는 평소와 다르게 8시반 출근. 오늘은 우리 사업부 대표단 내부 회의가 하루종일 있다. 아침에 일찍가서 과자와 음료수를 사서 세팅한다. 왔다갔다 하느라고 아침부터 땀이 난다. 그래도 9시에 회의 시작하고 내 자리로 돌아오니 부장님도 없고, 차장님도 없고, 우리층 임원들도 다 없다. 뭔가 분위기가 루즈하다. 오전내내 일을 주는 사람도 없다. 그리스 긴축안 부결 뉴스를 분석하고 영단어를 외운다.
- 점심은 한시에 샌드위치 배달을 하고 뒤늦게 대리님3과 사원님과 국수나무에서 함박오므라이스를 먹는다. 먹고 공차를 마신다. 공차 쿠폰 10개를 모으면 뭔 텀블러 같은 것을 주는데, 대리님3이 예전부터 자기를 달라고해서 준다.
<오후>
- 역시 일이 없다. 그래서 시시콜콜한 뉴스 따위를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기사 중에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50개 조사항목 중에서 8개라고 한다.미국 16개, 일본 9개, 중국 6개와 비교해서 상당히 선전하고 있다고 본다. 조선의 대우조선해양, 스마트폰의 삼성전자, 디스플레이의 LG디스플레이, 리튬 이온 전지는 삼성SDS라고 한다. 어떤 뉴스에도 이 4개만 언급되고 나머지 4개는 안알려줘서 출처이 니케이 온라인 신문까지 들어가서 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알고 싶다 젠장....이런 시시콜콜한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문득 느끼는 축복>
- 밤에 운동을 한다.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도 충분히 건강한 몸을 더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고등학교에서 철봉 운동을 한 뒤 땀이 삐질삐질 날 무렵, 운동장 구석에 있는 수도꼭지(명칭이 생각이 안난다, 수도꼭지 여러개 있어서 세수하는 곳)에서 세수를 한다. 밤 10시가 넘었지만 물은 콸콸 나온다. 순간 이런 생각을 한다. 밤새 틀어서 물 받아가도 아무도 모를 거라고. 물이 시원하게도 잘 나온다.
세수하고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와 누나가 오이 마사지를 하고 있다. 음식이지만 미용을 위해 사용하는 오이.
나는 왜 이런 호사를 누리고 있을까. 물이 없어 죽는 사람들이 전세계적으로 부지기수인데, 왜 여기는 물이 이렇게 많고 나는 세수 따위에 물을 사용하고, 오이를 생명 유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반들반들한 피부를 위해 사용할 수 있을까. 이건 축복일까? 누구로부터의 축복일까?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다. 도대체 난 왜 이걸 누릴 자격이 있는지 궁금하다.난 물을 콸콸 틀어서 세수하는데 누군가의 하루치 생명물을 써도 되는 것인지 궁금하다.누군가의 1달치 밥값이 될 수 있는 2만원을 티셔츠를 사기 위해 지불해도 되는지 궁금하다. 당연하듯이 살아왔는데, 뭐가 당연하게 살아왔는지 궁금하다. 이런 꼬리의 꼬리를 무는 질문의 종점은 아마도 나는 왜 여기에 존재하는가가 될 것 같다.
답은 모르더라도 의문이라도 가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