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하는 냉장고 - 가전제품회사가 알려주지 않는 냉장고의 진실
KBS <과학카페> 냉장고 제작팀 지음 / 애플북스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 점점 커지는 냉장고에 대하여


   갈수록 더 작게, 더 얇게, 더 심플하게, 요즘 기술 시대 최고의 모토이다. 핸드폰은 날이 갈수록 얇아지고, TV도 얇아지고, 정수기는 한 뼘으로 작아지고, 기능을 최소화한 제품들이 살아남는 시대이다. 하지만 책의 저자는 냉장고의 방향이 다른 발전을 포착한다. 냉장고만이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커지고, 기능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굴지의 전자업체들은 저마다 세계최초로 00리터의 대형냉장고를 출시했다고 광고하고 이제 냉장고에서는 얼음도 모자라 탄산수까지 나온다. 이런 기현상에 대해 파헤친 제작진은 제목처럼 인간의 ‘욕망’과 연결시킨다. 큰 냉장고 가지고 있다는 것은 결국 그 안을 다 채울 수 있다는 재력을 의미하기에 과시적인 욕망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냉장고가 커지는 것은 욕망이라기 보다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인간의 본성에 따른 것이 아닌가 싶다. 수렵을 주 식량 공급으로 하던 시대를 지나 정주형 생활을 시작한 이래, 인류는 잉여생산물을 보존하기 위해 끝없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빗살무늬토기에서부터 동굴저장, 염장 등등 수많은 방법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목숨을 부지해줄 식량을 지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에서도 인류사에서 총, 균, 쇠가 영향을 발휘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식량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초반의 많은 부분을 식량 발달 과정에 할애했다. 즉 문명이 발달하고 기술이 발전해도 그 근간은 결국 식량의 보존에서부터 시작했다는 말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냉장고 거대화는 당연하다. 성능이 좋은, 재료들을 오래도록 보존해 줄 것만 같은 큰 냉장고를 사서 그 안에 갖가지 식량들을 채워놓으면 인간으로서의 기본 생존 조건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을 테니까 말이다. 작은 냉장고를 이용하여 단기간에 먹을 것만 구비해 놓는 것은 말 그대로 언제 나의 ‘밥줄’이 끊어지지 모를 상황에서는 불안한 방법으로 느껴진다.  그에 따라 전자회사들이 기가 막히게 이런 인간의 본성을 파악해서인지, 거대 냉장고로 소비자들을 현혹하고 소비자들은 그 안을 다 채울 자신이 없으면서도, 냉장고에 들어있는 것이 무엇인지 다 기억하지도 못할 거면서도 커다란 냉장고를 구입한다.


    이런 세태를 단번에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유명한 연예인 두 명이 각각의 냉장고를 통째로 스튜디오로 들고 와서 그 안에 있는 재료들을 요리사들이 15분 동안 요리해 내어 대결하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어서인지 여기에 나오는 연예인들도 인기가 대부분 있고 그에 따라 냉장고도 상당히 크다. MC들이 우왕좌왕할 정도로 2중, 3중식으로 되어 있는 냉장고도 있고, 어떤 연예인은 냉장고가 하나가 아닌 4개를 들고 나왔다. 물론 국내 대기업의 협찬으로 출연하는 신제품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럼에도 한 주 한 주 지날수록 일반 시청자에게 압도적인 냉장고들을 들고 나온다. 하지만 대부분 자신의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재료가 뭔지 모르고 유통기한이 지난 재료들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책에서 지적한 대로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요리사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냉장고 안의 얼마 없는 신선한 재료들로 훌륭한 요리들을 15분 안에 탄생시킨다. 출연자들이 자신의 냉장고에서 그런 요리가 가능하다는 것에 놀라는 것은 당연지사다. 시간에 쫓겨, 혹은 재료가 부족한 것 같아 하지 못했던 요리들을 요리사들이 뚝딱 해내는 것을 보고 나는 책에서 제시한 로컬 푸드와는 다른 해결책을 생각해 본다.



- 요리의 부흥에 대하여


    나는 요리 프로그램을 정말 좋아한다. 비록 요리는 잘 못하지만 TV를 볼 때면 거의 올리브 채널만을 보며, 요리과정을 보면서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런 생각이 나를 변화시켜 요즘은 집에서 혼자 파스타도 해먹고 요리를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래서 냉장고도 더 들여다 보고 우리집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그리고 나도 요리사처럼 요리하기 위해 소위 말하는 ‘제품’은 쓰지 않고 신선한 야채나 원재료를 가지고 요리하려고 한다. 그에 따라 원재료 소비도 늘어나고 좋은 제품을 고르기 위해 노력한다. 여기서 단순 로컬 푸드 운동보다 더욱 큰 가능성을 본다. 로컬 푸드는 단순히 지역 재료를 소비하자는 운동이다. 하지만 이는 이미 원재료를 사용해 요리해온 사람들이 타겟인 운동으로 시간이 없어, 혹은 몰라서 ‘제품’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파급력이 작다. 하지만 만약 많은 사람들이 요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원재료의 원산지를 따지게 되고, 더욱더 신선한 재료를 찾게 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방송에서 요리를 장려하거나 요리하는 과정에서의 행복을 일반인들에게 전달할 수만 있다면 냉장고의 변화 역시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요즘 한참 방송의 핫이슈인 요리사들의 방송진출이 한편으로는 반갑다. 일반인들에게 요리의 즐거움을 전수하여 스스로 해먹고 행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원재료의 소비도 증가시키고 냉장고의 크기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아직까지 요리사들이 너무 엔터테이너 같은 모습이라는 것이다 .영국의 제이미 올리버 같이 요리를 통해 사회적으로 변화하려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지금 명성을 얻고 방송에 나오는 요리사들의 깨어 있는 행동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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