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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이 아름답다 - 인간 중심의 경제를 위하여
E.F. 슈마허 지음, 이상호 옮김 / 문예출판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 모두가 알고 있는 해답에 대하여
저자가 책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은 정말 구구절절 옳다. 교육이 중요하고, 적정기술이 중요하며, 우리가 이 잘못된 길을 바꾸지 않으면 향후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는 말들.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이 책의 핵심 내용들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모두들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책의 내용대로만 된다면 살기 좋고 지속가능한 사회가 될 것이라는 것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해답이다. 정답이다. 하지만 지켜지지 않는다. 분명 이 답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고, 성과를 보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해답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기에 이 사회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작은 것이 아름다운 것을 알면서도 도대체 왜 우리는 큰 것을 향해서 가는 것일까? 혹시 개개인의 힘은 너무 약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큰 것을 원해서일까? 하지만 저자인 슈마허는 그의 이 이론을 인정받아 버마 정부에게 경제 고문으로의 역할도 수행했지만 버마가 적정기술, 중간기술로 성공했다는 뉴스는 아직 보지 못했다. 이렇다는 말은 결국 이성을 뛰어넘는 본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의 제레미 리프킨이 주장한 바에 따르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은 결국 이기적일 수 밖에 없고, 이기적인 종족만이 살아 남는다. 적정기술을 통해 전체의 이득을 꾀하는 자들보다 큰 기술을 통해 자신의 이득을 꾀하는 자가 살아남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적정기술, 정답을 외치는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돌연변이일 것이다. 신체적, 육체적 돌연변이가 아닌 정신적 돌연변이. 이런 정신적 돌연변이를 많이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의 과정을 흔들어야 한다. 자신 회사의 특허를 모두 공개하여 전인류적 발전을 도모하는 앨런 머스크, 자신의 재산을 기부하는 빌 게이츠, 이런 사람들이 슈마허를 포함하여 정신적 돌연변이 들이며, 이런 돌연변이들이 많아져야 돌연변이가 주류가 되고, 인간 중심의 경제학이 가능할 것이다. 그럼 이런 제2의, 제 3의 앨런 머스크를 탄생시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사람의 본성을 건드려야 한다. 이를 위해 나는 장애인 학교의 철폐를 주장한다. 장애인 학교 제도는 비장애인들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이기심을 조장하는 제도이다. 장애인 학교 없이 모든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같이 학교를 다닌다면, 사람 그 자체에 대한 이해, 서로를 도와준다는 배려심, 협동심을 자라면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식들에게 안 좋은 것을 보이기 싫다며 ‘님비’를 외치는 사람들을 불도저처럼 밀어버리며 추진할 사람이 필요하다. 작은 근본을 만드는 것, 거기서부터 작은 기술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다.
- 손을 쓰는 업무에 대하여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는 간디는 물레라는 기계를 참으로 좋아하며 물레와 같은 기계의 확산을 주장했었다. 방직이 주 수입원인 인도에서 능률을 올려주는 기계인 물레는 사람의 일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도와주는 기계였다.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부속품이라 느끼지 않기에 주체적으로 일할 수 있었고, 자신들이 직접 만들어냈기에 자부심이 대단했다. 저자 슈마허 역시 이런 간디의 주장에 동의하며 손을 쓰는 업무, 직접 창조하는 업무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였다. 과거에 우리는 일과 놀이의 구분을 딱히 두지 않았었다. 일이 곧 삶이고 재미였다. 농사일을 보자면 내가 가꾸는 벼나 밀이 자라서 가을에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큰 보람과 재미를 느끼지 않는 농부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손으로 일을 했고, 일의 전체 과정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보면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다. 모두가 창조, 창의라고 외치며 손이 갈만한 일은 모두 기계에게 맡겨버리고 생각만 하라고 강요한다. 어려운 계산, 물건을 옮기는 일 따위는 쉴 새 없이 일하는 기계가 대신하고, 노동자들은 컴퓨터를 바라보며 수치를 입력한다. 큰 그림은 알지 못한 채, 자신에게 주어진 좁은 범위의 일만 계속해서 하는 것이다. 타자를 치며 손을 쓰는 것만 같지만 사실 글을 쓰는 것은 컴퓨터일 뿐이다.
우리가 얼마나 손 쓰는 일을 좋아하는지, 또한 얼마나 쓰고 있지 않은지 잘 보여주는 것이 현대 직장인들의 색칠 열풍이다. 어린 유치원생들에게 색에 대한 감각과 창의력을 길러주기 위한 색칠이 직장인들 사이에서 동호회를 만들 정도로 인기가 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직장에서 쓰지 못한 나의 손, 나의 창의력을 발휘하고 싶어하는 내면의 욕구가 아닐까 싶다. 레고의 끊임없는 인기 역시 이를 방증한다.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레고, 손을 써가며 내가 원하는 모양을 창조하기 위해 열중하는 모습은 우리를 참으로 순진하고 열정적으로 만든다. 현대 사회가 이런 기류를 계속해서 이어간다면 색칠 열풍이나 레고 열풍과 같은 손을 쓰게 만드는 아이디어가 가능성이 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