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  어김없이 데모룸과 신문을 챙기고, 오자마자 앉아서 열심히 하는 척한다. 급한 일들은

다 끝내놓아 이제는 설문조사 엑셀만 한다. 오전에는 별다른 일을 시키지 않는다. 팀 사람들과도 말을 하지 않는다. 일단 그들은 하나의 부서처럼 마주보며 앉아있는데, 나는 옆 부서 끄트머리에 앉아있어서 그들과 등을 맞대어 있다.그래서 나는 어쩐지 외롭다. 이별한지도 얼마되지 않았는데, 혼자서 감상에 빠지라고 이렇게 자리를 해 놓았나, 입구에서 들어올 때 지나치는 자리여서 인사는 꼬박꼬박한다. 그렇게 오전이 갔다. 

점심은 부장님과 단둘이 먹는다. 미리 예정되어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부장님은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먹었었나 보다. 둘이서 일식집에 들어가서 알탕을 시켜 먹는다. 그리고 이제 이야기를 해야 한다. 나의 장래희망 이야기, 일주일동안의 감상, 궁금한 점. 예전에 몇번 없던 소개팅, 미팅 경험을 살려 겨우겨우 이야기를 꺼낸다. 알탕은 맛있다. 한그릇 만원짜리라서 그런지 알들이 싱싱하다. 부장님도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다. 이 회사에 바로 들어오는 것은 개인적으로 비추천한다고. 이 회사는 참 편한 곳이라 한국회사에서 미리 고생을 해보고 와야 초심을 잃지 않고 잘할 수 있다고. 인턴부터해서 정직원이 되는 많은 사람들과 달리 부장님은 이직한 케이스다. 첫직장이 중소기업 공장과도 같은 곳인데, 들어보니 고생을 참 많이 하셨다.여자직원이니 여자화장실 청소하고, 아저씨들하고 싸우고, 그 뒤에 여기로 오니 일이 너무 편하고 돈도 훨씬 많이 준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부장님은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오후     - 여전히 일이 없다. 오늘은 조용하다. 다들 할일이 있는데 나만 없는 기분. 그래서 그냥
열심히 한다. 뭔지도 모른채. 그렇게 하루가 끝난다. 쓰다보니 피곤하다.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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