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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사회 (반양장) - 새로운 근대(성)을 향하여
울리히 벡 지음, 홍성태 옮김 / 새물결 / 2006년 1월
평점 :
- 위험사회에 대하여
1993년 서해 훼리로 침몰 사고,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2005년 상주 콘서트 압사 사고, 올해 들어서는 경주 리조트 붕괴 사고, 세월호 사고, 판교 환풍기 붕괴 사고. 앞서 나열한 사고들은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사고들인데,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지금도 전세계적으로 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분명, 과거보다 살기 좋아졌고, 안전한 사회인 것 같은데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울리히 벡은 현대의 여러 문제에 대해 그 근원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준다. 책을 통해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근대화는 결코 우리에게 이점만 준 것이 아니라 그에 비례하여 위험 또한 발달했다는 것이다. 근대화의 물결 이후, 우리 사회는 더욱 복잡해지고 세밀해졌으며 사회의 규모 역시 과거 어느 때와 비교하더라도 비대해졌다. 문제는 위험 역시 그와 대등하게 비대해져서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위험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핵발전소의 위험인데, 평소에는 우리에게 혜택을 주는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한 번 터지면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문제로 까지 커진다. 체르노빌 사고나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통해 그 피해가 얼마나 막심한지 우리는 잘 알 수 있다. 이렇게 근대화가 위험도 키운 이유는 과학의 계몽을 넘어선 진리 추구 때문이다. 과학적 합리성은 사회적 합리성과는 그 방향을 달리하여 사회로의 영향을 고려하지 않았고, 과학 발전의 파편들이 정치, 기업의 이해관계에 의해 위험으로 둔갑되어 버린 것이다. 과학적 합리성들을 이용하여 큰 이득을 본 사람들은 하지만 결코 책임을 지려하지 않고 지지도 못한다. 과학적 합리성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위험은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크기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근대화를 올바르게 이끌어가기 위한 성찰적 근대화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만 유독 큰 사건, 사고들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 이는 저자가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언급한 한국의 유래 없는 발전 속도로 설명이 가능하다. 책을 보면 근대화의 정도에 따라 그에 따른 위험들이 달라지고 그것을 극복하면 또 다른 위험이 계속해서 나오는 구조가 현대와 미래의 구조가 될 것이라 말하였다. 하지만 한국은 50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너무나 빠르게 발전하는 바람에 전통사회나 제1 근대화에서 나타날 수 있는 위험들을 충분히 제어하지 못한 채, 제 2근대화를 맞이하였다는 것이다. 결국 과거의 발전으로부터 내재되어 있던 여러 위험들이 현대의 위험들과 더불어 같이 나타나기 때문에 한국은 특별히 위험사회라고 저자는 말하였다. 이는 일견 타당한 말로 국내에서도 이런 자성의 목소리들이 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나왔지만 여전히 변화되고 있지 않다.
- 한국의 개혁에 대하여
변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시민들의 인식 전환이다. 위험사회에 대한 대책들, 개선점들을 보면 법 제도화, 안전문제에 대한 처벌 강화, 긴급 대응 센터 건립 등, 주로 정부와 사회의 역할만을 강조할 뿐이다. 하지만 사회나 정부가 모든 위험에 대해 대처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시민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위험은 계속해서 발생하기 때문에 적절한 대처가 아니다. 모든 것이 빠른 성장을 위해서만 초점이 맞춰져 있던 이 사회를 바꾸어야 한다. 교육의 개혁이 가장 절실하고 효과적이다. 산업화 시대에 맞게 기술 위주, 조직 위주의 교육이 아직까지도 주 교육 체계인데 현재 여러 한계점들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학업성취도가 세계 1,2위를 다투는 실정에서 학문계에서 가장 위대한 상이라고 하는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학생들에게, 더 나아가 시민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무더기로 지식을 주입하여 사회에 투입하게 하는 현재의 교육체계에서는 사회의 위험이 계속해서 나올 수 밖에 없다. 깊게 생각하지 않는 한, 위험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없고 그것은 또 다른 위험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참사, 판교 환풍기 사고에 대한 대응 역시 위험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본다. 물론 사고현장의 환풍기가 설계상 부실했고 주최측이 무책임하게 행사를 진행했다고 하나(이
역시 빨리빨리, 효율을 추구하는 우리 교육, 우리 사회의 영향일 것이다.) 사고가 일어난 후, 국회에서 발의한 대응책은 4m 높이의 환풍기나 30명이 올라가도 거뜬한 환풍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환풍기는 바람을 통하게 하는 기능만 필요하지 애초에 사람들이 올라가서는 안 되는 구조물이다. 4m 높이나 강철 재질의 환풍기를 주장하는 것은 시민들의 인식 부족이라는 핵심을 짚지 못한 것으로 환풍기 개선에 투입된 추가 비용으로 인해 국고를 받지 못한 다른 곳에서 반드시 위험이 또 일어날 것이다. 우리 모두가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공유하기 위해서는 깊이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인데, 경기도 시흥의 장곡중학교의 혁신적인 교육 방식은 눈 여겨 볼만하다. 책상을 칠판을 향해서가 아닌 마주보게 만들어 서로 토론하는 수업을 만드는 방식으로 학생들의 열성적이 참여와 깊이 있는 교육이 가능하다고 한다. 학창시절에는 일방향적인 수업만을 들었고, 사회에 나가서 주위 사람들과 깊이 있는 토론을 할라치면 깊이 있는 생각에 익숙하지 않아 서로 갈등만 나타내고 심하면 사상주의자로 몰고 가는 사회에서 장곡중의 ‘생각
있는’ 수업은 미래를 위한 한가지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또 한가지 위험사회에 대한 대응은 독서이다. 언뜻 보면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독서는 사람들의 행동을 급하게 만들지 않고 깊게 생각하게 한다. 책은 그것을 모두 읽고 생각을 해야만 주제를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스마트폰이 많이 보급된 우리나라에서는 ‘지식, 지혜’가 아닌 정보만을 스마트 기기를 통해 얻고 있으며 단편적인 지식들로 인해 깊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우매한 군중들은 위험을 미리 예방하지 못하고 단지 반응할 뿐이다. 안전사회라는 것은 경제적 척도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들의 의식, 생각의 깊이로 판가름 날 수 있다는 것을 정부, 사회, 개개인이 모두 견지하고 독서 진흥책을 펼쳐야 할 것이다. 저자가 주장한 성찰적 근대화는 결국 성찰하는 ‘생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