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 새로운 사회와 대중의 탄생
클레이 셔키 지음, 송연석 옮김 / 갤리온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과거에는 돈이 되었던 서비스가 이제 고객들이 직접 있는 일이 되어 가고 있다.

-          대중의 진화에 대하여

저자인 클레이 서키가 책을 쓰고 있을 무렵에 트위터가 나왔다고 한다. 2006년에 트위터가 출시 되었으니 벌써 9년이나 지났는데, 현재 전세계는 단언컨대 클레이 서키가 말한대로 변화하는 중이고 진화하는 중이다. 근데 정말로 진화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성이 급격히 개선되어서 나는 그대로인데 연결이 훨씬 쉬워진 사회가 되었다. 리더라고 칭해지던 사람들은 대표성을 점점 잃어가고 내가 내는 목소리가 즉각적인 힘을 가지게 되었다. 어떤 문제에 대해 투표하는 시스템은 너무나도 쉬워졌고, 결과도 빠른 시간 안에 도출 되었다. 지금 당장 SNS 투표 시스템을 하나 만들면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한다. 인류는 지금까지 평등한 사회를 꿈꾸었지만 결코 이루지 않았다. 원시시대에는 힘이 자가 권력을 차지하였고, 권력의 의미는 계급의 차이를 의미한다. 이후, 경제적 힘이 권력의 힘이 되고, 지식이 권력이 되는 사회로 변화해왔는데, 결론은 언제나 우리는 평등을 추구하면서 계층 분화도 동시에 추구해왔다. 지금은 내가 최상위층이 아니기에 평등을 요구하지만 최상위권으로 올라가는 순간 그와 같은 최상위권의 특권 유지를 바라는 모순적인 태도라고나 할까. 결국 본문에서 말하는 새로운 대중도 등장은 화려했으나 끝을 내지는 못했다. (물론 아직 끝이 일수도 있지만)  2 , ‘안녕들하십니까라는 대자보 사건은 우리 나라에서의 대중의 진화를 정확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대자보도 처음에는 인기를 끌고 새로운 대중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것에 그치고 변화는 이룩해 내지 못하였다. 위키피디아 역시 처음의 혁신성에서 이제는 교수님들이 과제를 해올 위키피디아를 참조하지 말라고 특별히 말할 정도의 위치로 떨어지고 말았는데, 이는 새로운 대중, 새로운 권력의 지속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하는 사건들이다.  앞으로도 새로운 형태의 끌리고 쏠리고 들끓는 형태의 사회모습이 많이 등장할 것이다. 구권력자의 힘이 예전만큼 강하지 않고 약해지는 때에 혁신적인 사회 변화를 기대해본다.

-          비행기 사건에 관하여

최근 나의 경험과 비슷한 케이스가 본문에 나온다. 본문에는 과거 어떤 항공사의 승객들이 날씨의 문제로 비행기를 채로 공항에 5시간 동안 갇혀 있는 상황이 나온다. 승객들은 어처구니 없는 서비스, 늦은 대응에 분통을 터트리지만 그것은 개인의 분통일 하나로 응집되지 못했다. 연결할 있는 창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뒤에 거의 유사한 상황이 터졌을 때에는 정반대의 상황이 나타났다. 인터넷으로 모두가 연결되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응집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비슷한 경험을 가졌던 사람들까지 가세해서 인터넷으로 동조하는 사람들은 당시 승객의 수보다 훨씬 많아졌고, 결국 항공사로부터 보상을 받게 이르렀다. 역시 최근에 다르지만 비슷한 상황을 겪었는데, 비행기가 도착지의 날씨문제로 한번 연착이 되고 , 다음 출발 예정시간에는 항공기 결함으로 한번 연착이 되었다. 거기 있던 많은 사람들이 분통을 터트렸고, 기다리는 장면은 뉴스에 까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본문의 경우처럼 우리는 응집하지 않았다. 몇몇의 성깔있는 사람들만 관계자를 붙잡고 소리를 높였을 , 승객들의 단결된 불만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본문의 경우보다 훨씬 최신의 상황, 사람들은 스마트기기를 2,3개씩 들고 다니는 상황, 인터넷 연결이 어느 때보다 쉬운 상황에서 단결을 이루어 내지 못했을까. 본문에는 명씩 총대를 메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본문에서 80% 중요성을 강조한 롱테일법칙에서조차 20% 열성적인 참여를 집중적으로 다루기도 했다. 아무리 연결이 쉬워지고 개인의 목소리가 커졌다 한들, 결국 누군가가 나서서 대표성을 띄고 사람들을 모은다는 아이러니. 대표성을 띄는 사람들은 사람들을 모으면 모을수록 대표성이 강해짐과 동시에 약해진다. 과거에는 정보의 전체공유가 어려웠기에 효율성을 위해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당연했지만, 나의 목소리를 내기도 쉽고, 다른 목소리를 듣기도 너무나 쉬워졌다. 그래서 대표자의 말은 나와 다른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의 의견으로 격하되고, 응집은 어려워진다. 본문에 나온 소위 크라우드 산업에서 성공한 기업들은 하나같이 기업의 역할을 최소한으로 제한한다. 대표성을 만들고 싶어도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뿐더러, 참여자들이 대표성을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나선다는 것은 그에 대한 보상이 있을 나오는 행동이다. 아무리 사람들을 모이는 데에 비용이 낮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며 보상이 없다면 누군가가 희생을 해야 한다.  사회가 변화하고 있고 그런 희생을 감수할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기존의 권력사회가 기둥을 받치고 있다. 새로운 권력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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