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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부자 척피니 - 억만장자가 아니었던 억만장자
코너 오클리어리 지음, 이순영 옮김 / 물푸레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지하철 역사나 인적이 많은 거리의 한복판에서는 어김없이 종소리가 울린다. 멀리까지 은은하게 퍼지는 종소리의 정체는 구세군으로 어려운 이웃을 위한 기부를 독려한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이 제갈길가기 바쁘지만 그에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이 빨간 냄비에천원, 만원, 어쩔 땐 익명의 수표를 넣어간다. 서울 중심 어딘가에 있는 사랑의 온도탑은 매년 그 목표온도를 달성하여 우리네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그렇다. 그 외에도 포인트 기부, 물건을 사면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혜택이 가는 상품을 구입하는 행위 등 생활 속에는 기부를 위한 많은 방법들이존재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기부를 하는 것일까? 자기만족? 순수하게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 행위? 돈을 지독히도 모으고 싶어하는 사람의 이기적인 특성이 강한 세상에서 무엇이 기부라는 행위를 이끄는지 항상 궁금해 하던 찰나, 수십년동안 남몰래 엄청난 기부를 해온 미국의 사업가에 대한책을 신문을 통해 알게 되었고,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사실 처음 책의 소개글을 봤을 때에는 어떻게 면세점 사업을 성공적으로 만들고 운영할 수 있었을까라는 주제에 대해 주로 다루고 기부활동은 말미에 나올 줄 알았지만 책의 구성은 그의 파란만장한 성공기, 밑바닥부터 올라온 불세출의 사업가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적게 할당하고 성공 이후 기부인생에 대해 책의 많은 면을 할애했다. 성공보다는 나눔을 중시한 사업가, 과연 억만장자가 아닌 억만장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라를 바꾼 기부, 나의 돈이 어떤 나라를 근본적으로 바꾸었다는 것은 그 어떤 성취감보다도 좋을것이다. 우리는 항상 부자를 꿈꾸고 기부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내가 일을 해서 번 돈이 삶이 힘든 사람들에게, 경제가 힘든 나라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기부자에게 있어서도 보람 있는 일이라는것은 자명하다. 실제로 이 책의 주인공 척 피니는 자국인 미국뿐만 아니라 태생인 아일랜드를 비롯전쟁 상태였던 베트남, 아무런 관계도 없는 호주, 심지어 극단적 관계에 있는 쿠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나라에서 어마어마한 금액을 기부하며 그 나라들의 발전의 초석을 닦은 인물로 묘사된다. 한개인이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다.
척 피니는 자신의 기부가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고 한다. 때문에 자신의 재산을 모두 재단에 기부한 상태인데도 5년 동안 ‘포브스’에서 매년 발표하는 백만장자 순위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였다. 기부의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처럼기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경우와 척 피니처럼 기부 자체를 숨기는 경우. 전자는 자신의 기부활동을 공개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기부에 대한 관심을 이끌고 행동으로 옮기기 위한 것이고 후자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알지 못하게 하라’라는 말이 대변하는 것처럼 기부 그 자체에 목적을 두고 남들이 알지 못하게 하는 행동이다. 공개적인 기부활동이 요즘 미국에서 열풍이 되고 있는것처럼 남에게 알리는 기부가 더 좋다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척 피니의 기부활동을 보면 숨겨진 기부 역시 그 영향력이 무시할 수 없다. 그때 그 시절,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이 베트남이나 쿠바, 그러한 나라들이 아니더라도 제3국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모든 매체들이 공격할 것이고 그로 인해 기부의 유연성과 자유성을 급격히 떨어질 것이다. 반면에 척 피니는 자신의 마음을 움직인 나라나 분야에 아낌없이 기부를 했고, 성공적인 기부활동을 이끌어냈다. 드러나있지 않기 때문에 도움이 더 필요한 곳에 확실하고 빠르게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추운 겨울 날에 동네 친구들과 술을 마시기 위해 자주 만나는 편의점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어김없이 친구들보다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는데, 노숙자로 보이는 아저씨가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것이 보였다. 먹을 것이 없던지 그냥 돌아서서 가는데 나도 모르게 저 아저씨한테 뭘 사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당시 지출이 심해 친구들과 먹을 술값도 아까워 빨리 취할 수 있는 소주를 먹자고 했을 정도로 돈이 부족할 때였는데 나도 모르게 사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내가 너무 나대는 것이 아닌가. 어린 놈한테 빵을 받는 것이 그 아저씨한텐 치욕이 되지는 않을까라는 마음이 들어 갈팡질팡하는 사이 그 아저씨는 저만치 가고 있었다. 결국 나는 편의점에서 빵을 사서 거의 달려가다시피 해서 빵을 드렸는데, 드리면서 나도 모르게 ‘죄송합니다’라고 말을 했다. 아저씨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 나는 그냥 획 돌아서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왔다. 아직도 왜‘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어쩌면 그런 말 속에 담겨 있는 의미가 기부를 이끌어내는 동기가 될 수도 있겠다. 나는 누리고 있는 혜택을 같은 인간인 당신이 누리지 못하는 있는 것에 대한 연민. 그런데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그 날의 기억이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어떤 기부활동이나 봉사활동보다도 기억에 남는다는 것이다. 그날 그 아저씨의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빵을 건네줄 때의 그 강렬한 기억은 절대 잊혀지지 않았다. 아마 그 행동이 지금까지 짧은 생을 살면서 참된 기부에 가장 가까웠던 행동이어서 그렇지 않을까 싶다. 그 동안 기부를 할 적에는 항상 보는 눈들이 있다. 구세군 냄비에서는 냄비 옆에서 기부를 독려하는 사람들, 봉사활동을 할 때에는 봉사기관의 사람들과 봉사기록들. 하지만 그 날 일어났던 일은 그 아저씨와 나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기부이다. 때문에 남의 시선에 의식하지 않고 순수한 마음이 표출되어 미안하다는 말까지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나의 경험을 통해 척 피니의 그 지독하리만큼 기부를 숨기고 싶어하는 태도도 어느 정도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철저하게 비밀에 붙여 기부를 받는 사람들조차 모르게 함으로써 결국 자신만 아는 기부, 그 어떤 기부보다 철저히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기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싶다. 척 피니가 기부활동을 하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자신의 기부를 통해 설립된 수많은 병원과도서관을 방문해 그 시설들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이라고 한다. 그 행복이 기부의 원동력이자 이유이지 않을까. 그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남을 도와주었다는, 나의 힘이 누군가에게 힘이된다는 사실을 알게된다는 것을 말이다. 인간은 이기적이기도 하지만 참으로 이타적인 동물이기도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