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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 - 개정판 ㅣ 레이첼 카슨 전집 5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 에코리브르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노벨상;스웨덴의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의 유언에 따라 인류의 복지에 공헌한 사람이나 단체에게 수여되는 상이다.(네이버 백과사전). 스위스의 파울 뮐러는 1948년 노벨 생리, 의학상을 수상하는데 수상 이유는 DDT라는 물질의 효능을 발견해 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전쟁 중 군대와 피난민, 포로들에게 발생하는 기생충의 박멸에 강한 효과를 냈기 때문이다. 이런 효과로 인해 미국에서는 경비행기에 DDT를 싣고 해충 박멸을 위해 비처럼 뿌리는 경우도 많았는데, 조사에 의하면 한마디로 동의된 테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결과는 심각했다. 가장 강력한 살충제에 닿은 사람들은 암이나 골다공증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리다 죽는 경우가 태반이었고, 가축이나 새들 역시 의외는 없었다. 눈 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인간의 실수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조금만 더 조사하고 연구했으면 예방할 수 있었을텐데, 단지 해충을 빠르게 죽일 수 있다는 효과하나로 땅과 물 모든 생물을 오염시키는 독극물을 비처럼 뿌리고 다닌 것이다. 조사를 위해 사용된 모든 사례가 미국에서 일어나서 크게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필자의 경험에서도 인간의 무분별한 약물 사용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필자는 미군부대에서 군생활을 했는데, 겨울철 눈을 녹이기 위해 뿌리는 염화칼슘을 너무 많이 뿌려 오히려 염화칼슘이 눈처럼 쌓이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또한 정체불명의 파란 물질이 한쪽 정원을 물들인 것을 본적이 있는데, 약을 뿌린 것이라고 한다. 미국인들의 과다사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고, 그들이 현대에 와서 제재를 받기 이전까지 얼마나 많은 화학약품들을 땅과 바다에 쏟아붓고 그것이 얼마나 지구를 오염시켰을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본문의 가장 마지막 파트에서 저자는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또다른 길로써 박멸이 아닌 다른 방법을 제시하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아쉬운 방법이다. 예를 들어, 번식을 할 수 없는 해충을 살포해서 자연적으로 줄이겠다는 방법인데 그 역시 과연 '자연적'인 방법인지는 의문이다. 인간의 힘이 개입된 순간 그것은 자연의 법칙을 벗어난 인위적인 해결방법일 뿐이다. 저자의 해결방법을 보면서 필자는 약육강식의 피라미드에서의 인간의 위치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도구를 쓸 줄 모르는 인간의 위치는 원숭이, 침팬지와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도구를 쓸 수 있는 능력 덕에 인간은 피라미드의 정점에 설 수 있게 되었고,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위치한 생물은 그 개체 수가 가장 적어야 생태계가 원활하게 돌아간다는 것이 정설인데, 인간의 수는 어떠한가. 나날이 그 개체 수를 늘려나가며 피라미드 아래층에 있는 생물들을 하나씩 멸종시켜 버리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담 필자의 질문은 인간은 과연 알맞은 위치에 있는 것이며, 만약 그 위치가 맞다면 최정점에 있는 포식자는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 것이냐이다. 인간은 탐욕적이다. 다른 동물과 비교해보면 명확한데, 수달은 아무리 나뭇가지가 많아도 적절한 크기의 집을 짓지 호화스럽게 2층 나무집을 짓지는 않는다. 또한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은 자기가 겨울철을 나기 알맞은 음식만 섭취할 뿐, 과다하게 먹거나 저장하지 않는다. 인간과 같이 거의 최정점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사자는 배가 부를 때는 사냥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인간의 끝도 없는 탐욕을 잘 파악할 수 있다. 탐욕이 인간의 특성이고 그것이 인간을 그 자리에 오를 수 있게 했다면, 생태계의 파괴는 더 빨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서양의 사고체계이다. 자연을 이용해야할 대상으로 보고 자연을 고문해야 한다고 주장한 프란시스 베이컨 처럼 서양은 자연을 이용해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사용가치 만을 따졌다. 그런 사고체계로 과학의 발전을 이룩했지만 결과는 우리가 보는 자연 그대로다. 이제는 동양의 사고체계가 힘을 내서 인간과 자연의 순환론에 대한 인식의 확산이 필요한 시점이다.
유기농 야채. 더 비싸고 건강한 야채이다. 우리는 유기농 야채에 열광하고 더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보다 더 좋은 야채인 것일까. 평범한 야채는 무엇이기에 유기농 야채에 비해 안 좋다는 인식이 있을까. 우리는 모두 보통의 야채에 농약 범벅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야채의 분류가 100년 전, 아니 50년 전에는 절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과거는 깨끗했다. 그러한 깨끗함을 다시 되찾을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