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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7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평점 :
상상을 해보자. 내가 우연히 어떤 지역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고오래 머물고 싶지도 않은 곳.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지역이 완전히 폐쇄되어 버린다. 자신이 걸리지도 않은 병 때문에. 아무리 이곳 저곳을 찾아 다니며 하소연해봐도 어쩔 수가 없단다. 그럼 도대체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이 소설은 위에서 설명하고 있는 인물이 주인공이 아니다. 주인공은 페스트가 갑자기 발생한 지역에 사는 의사로써 페스트가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 마을에서 환자들을 치료하며 페스트의 모든 것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본 사람이다. 하지만 필자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연민을 느끼고 관심을가지고 지켜본 이는 신문기자로 오랑 지역에 들어온 랑베르라는 사람이다. 물론 그 지역 주민이라고 지역 폐쇄를 차분히 맞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주인공인 의사의 눈을 통해서 본 랑베르라는 인물의 변화과정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익숙함에 약한 동물이고 순응의 동물인지 잘 알수 있었다. 폐쇄 초기 랑베르는 어떻게든 지역에서 벗어나길 위해 발버둥친다. 자신이 살던 마을에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 있던 이유로 그녀를 만나기 위해, 신문기자라는 증명서를 가지고 시청 고위 관계자도 만나보고 나중에는 으레 폐쇄지역에서 그러하듯 비밀 통로를 이용해 빠져나가기 위해노력한다. 계속된 실패(지역 폐쇄와 관련된 책이나 영화를 보면 항상 구멍은 있기 마련이다. 어디에도 완전한 폐쇄가 가능하지 않은 것 같다) 에도 그는 나가고 싶어하지만 주인공인 의사의 행동과진심에 마음을 바꾸어 그 마을에서 환자들을 위한 봉사단에 참여한다. 여기서 나는 인간은 또한 어딘가에 소속되기를 갈구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 인간은 자유를 원하면서도 정작 완전한 자유가 주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이는 앞서 말한 순응의 동물과도 같은 이야기인데,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사회라는 조직 안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것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랑베르는 지역폐쇄로 인해 신문사에 소속되어 있지도 않았고, 오랑안에서 아는 사람도 없었기에 완전한 자유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가 봉사정신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일 테지만 어느 정도 조직에 대한 갈망이 있었기에 그리 행동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페스트가 어느 순가 끝나버리고 사랑하는 연인과 만나는 순간, 랑베르는 지금 자신 앞에 있는 사람이 내가 사랑했었던 사람이었는지 문득 되묻는다. 변한 것이다. 필자가 만약 랑베르와 같은 상황이었으면 어떠하였을까? 우선적으로 랑베르처럼 뒷거래를 이용해서라도 그 지역에서 나오고 싶어할 것이다. 나는 단지 잠시 들른 것일 뿐이고 페스트가 이 지역에서 시작되는데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았는데 왜 나까지 피해를 봐야 하냐는 피해망상을 가지고 말이다. 그리고 시간을 쏟을 만한 어떤 일을 찾았을 것이다. 필자는 과연 랑베르처럼 봉사단원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의사인 리외가 랑베르에게 한 얘기와 그의 상황이 나에게는 와 닿지 않았고 랑베르처럼 그렇기 때문에 위인도 되지 못하였으리라.
이 책의 주인공인 리외. 어떻게 보면 이 책에서의 영웅이다. 처음부터 환자를 위해 일했고, 페스트가 물러갔다는 발표가 있은 후에도 여전히 페스트와 싸우는 환자들을 위해 일하는 그를 보면 이 세상에 있는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영웅들을 생각난다. 사실 생각나지 않는 것이 맞는 얘기일 것이다.알려지지 않았으니까. 세상은 알려진 영웅만을 선호하고 열광한다. 사실 필자가 이 책을 읽으면서예상했던 결말은 주인공인 의사 리외가 혁신적인 백신을 발견하던가, 다 죽어가는 환자들을 수술로 용케 살려낸 명의로 알려진다 정도 이었다. 하지만 의사 리외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페스트 환자들을 치료하는데 의사로써 최선을 다했고 그 뿐이었다. 그렇다면 왜 그가 영웅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의 행동과 성격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역시 랑베르와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있었다. 그보다 더 나쁘다고도 할 수 있는 상태인데, 아픈 아내를 치료 차 다른 지역으로 보냈는데, 그후 지역이 폐쇄되어 부인의 소식조차 들을 수 없던 것이다. 그리고 페스트가 거의 물러갈 때쯤 아내의 죽음을 알 게 된다. 그는 한 여자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차라리 랑베르보다 더 오랑을 벗어나고싶어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선택을 했고, 랑베르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 그의 마음을 바꾼다. 리외를 보며 우리는 과연 우리가 직업으로 삼고 있는 것에 대해 충분한 사명을 다하고 있는 것인가를되묻고 싶다. 우리는 리외처럼 주어진 사명에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 필자 역시 항상 사회의 영웅이 되고 싶었는데 많은 것을 깨달았다.
페스트. 이 책의 마지막은 의미심장하다. ‘페스트 균은 절대로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으며, 그 균은수십 년의 세월 동안 가구며 속옷 사이에서 자면서 또 방이나 지하실, 트렁크나 손수건, 휴지 같은것들 틈에서도 계속 참을성 있게 앞으로 또 언젠가는 인간에게 교훈을 일러 주기 위하여,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떤 행복의 도시로 몰아 넣고서는, 그곳에서 죽게 할 날이 오리라는 것을.’
아프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지금에 감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