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 피니
코너 오클레어리 지음, 김정아 옮김 / 가나출판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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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6 - 듀티프리쇼퍼의 사업 구상은 미국 국경 바깥 어디에서든 미국인 관강객에게 면세품을 팔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척과 해리 애들러는 시장을 확인하고자 멕시코시티로 날아갔다. 한 중개인에게 5,000달러를 주고, 여러 문화가 뒤섞인 소나로사 지구 한복판에 자그마한 매장을 하나 열었다. 진열대에는 이웃 상점에서 산 시계, 스카프, 캐시미어 스웨터, 술병을 견본으로 전시했다. 매장에 견본 말고 다른 재고는 없었다. 그러면 물건은 어떻게 팔았을까? 애들러는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인 관광객이 가게에 들러 카탈로그나 가게 안에 있는 견본을 보고 물건을 사는 거죠. 그러면 우리는 '댁으로 상품을 보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고요. 이 관광객이 귀국할 때 예컨데 스코틀랜드 프링글사의 캐시미어 스웨터를 해외에서 사 별송 수화물로 부쳤다고 세관에 신고합니다. 그러면 제네바로 주문서가 들어가고, 암스테르담의 창고에서 미국으로 상품을 발송하는 거죠. 이제 우체부가 소포를 들고 고객을 방문해 '관세를 내야 합니다.'라고 말하겠지요. 그러면 고객이 멕시코에서 귀국할 때 별송 수화물로 신고했다고 말하고 영수증을 건네줍니다. 우체부가 영수증을 우리한테 보내고요. 이 방식이 꽤 효과가 좋았습니다."
P97 - 척과 밀러의 재정 상태가 아직 불안정했던 1965년 어느 날, 훤칠하고 품위 있어 보이는 프랑스인 남성이 호놀룰루 공항의 국제선 대기실을 지나 DFS 매장을 둘러본 뒤 물었다. "여긴느 왜 카뮈를 진열하지 않습니까?" 남자는 코냑 회사 카뮈의 회장 미셸 카뮈였다. 미셸 카뮈는 당시만 해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카뮈의 브랜디를 홍보하러 아시아로 가는 길이었다. DFS가 유동성 문제로 신용 거래를 하기 어려워서라는 답을 듣자, 카뮈가 척을 파리로 초대했다.

P126 - "일본 산와은행에서 이자율 1%로 5,500만 달러를 빌린 뒤 계좌에 넣고, 이 돈을 이자율 7%인 미국 단기 국채에 투자했어요. 위험률 0%에 수익률 6%! 크리스마스 선물 보따리가 따로 없었죠."

P152 - 카네기는 부를 사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큰 꿈을 품은 사람들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 즉 대학교나 도서관을 짓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P157 - 어설라는 기부할 때 명심해야 할 교훈을 하나 얻었다. 자선 사업을 할 때는,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을 도와야 했다. 데이브니 기금은 하와이 DFS의 직원 자녀 약 스무 명에게 장학금으로 1인당 2,000달러를 준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출석만 하면 학위를 주는 이상한 대학에 가더군요. 안 되겠다 싶어 내가 악역을 맡기로 했어요. 나한테 성적표를 보내라고 했죠. 두어 명이 놀랍도록 순식간에 명단에서 사라졌어요. 그 뒤로는 장학금 지원자들이 무임승차를 못 했죠. 기준치만큼 학점을 따야 했으니까요."

P296 - "우리 누구도 그 사업에 동전 한 닢 투자하지 않았는데, 대략 80억 달러를 벌었습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많은 돈을 벌 만큼 똑똑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많은 일이 겹친 덕분이지요."

P297 - 척을 볼 때 언제나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결단을 내리는 방식이었습니다. 우리 대다수는 사람들과 대화를 거쳐 꽤 이성적인 방식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그런데 척이라는 사람은 아무리 자세히 살펴봐도 어떤 과정을 거쳐 결론에 이르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척은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에게 셀 수 없이 많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니 척이 어디쯤에서 결론에 이르렀는지 알 길이 없었지요.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결론을 내곤 했어요. 척이 회사를 팔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 방식, LVMH에 지분을 매각하는 상황에 대처한 방식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자 모여봐요. 회사를 팔지 말지 결정합시다.' 같은 경우가 아니었다는 거지요. 척은 남들보다 한참 앞서 상황을 읽었어요.

P299 - DFS 지분을 판 척과 앨런 커는 DFS에서 오랫동안 일한 직원 2,400명에게 수익 일부를 수표로 나눠주기로 했다. 척이 2,600만 달러, 파커가 1,350만 달러를 내놓았다. 혜택을 받을 사람들은 5년 이상 근무한 관리자, 10년 이상 일한 직원, 15년 이상 일하고 은퇴한 지 5년이 안된 직원들이었다. 함께 보낸 편지에 척은 수표가 '성의와 존경과 인정을 보이려는'선물이라고 적었다. 기업계에서는 거의 처음 있는 호의였다. 생각지도 못한 수표에 고마움을 느낀 직원들이 척과 파커에게 편지 수백 통을 보냈다.

P310 - 성명은 애틀랜틱 재단이 1982년부터 1,500곳에 6억 1,000만 달러를 기부한 사실도 밝혔다. 주요 기부 분야는 고등 교육, 아동과 청소년, 비영리 부문, 노화와 보건, 해외 자선 단체였다. 단일 수혜처로 기부금을 가장 많이 받은 곳은 코넬대였다.

P500 - 척은 말했다. "나는 인생을 5년 단위로 나눠 봅니다. 그러니 앞으로 적어도 5년은 더 살 것 같군요." 5년이면 재단이 문을 닫고 생전에 기부한다는 척의 목적을 이루기에 충분할 시간이었다.

P502- "한 손으로는 신문이 든 비닐봉지를 들고, 다른 손은 철제 난간을 붙잡은 이 작달만한 뉴저지 출신 인사를 뒤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성 패트릭 이후로 누구보다 아일랜드에 크게 이바지했을 이 사람은 절뚝이는 걸음으로 천천히 역에서 나왔다. 누구 하나 피니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것이 피니가 좋아하는 방식이었다."

P503 - "우리 엘모라 아이들은 똘똘 뭉쳐야 합니다. 동양에 이런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돈이 사람을 바꾸는 게 아니다. 그 사람의 민낯을 보여줄 뿐이다.' 나는 그 가면 아래 야구 모자를 쓴 엘모라 출신 아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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