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눈은 살아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靈魂과 肉體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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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여름 나는 생애에서 가장 훌륭한 생각이 떠오른다 

 

나무를 가꾸는 방식으로 구름을 가질 수 있다면...... 

 

그해 여름 나는 생애에서 가장 훌륭한 생각이 다시 떠오른다 

 

구름의 형상과 구름의 습기는 무관한 것인가 

구름이 물고 가는 것은 나의 상상력 

 

존재의 근원을 체험하고 스스로를 다시 선택할 때 

구름은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가 

 

나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아름다운 방향과 

치어 죽은 고양이와 새들의 영혼이 추스르는 

조각난 뼈와 살점들 

 

골목에서 담장 위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웃고 있는 구름  

 

1999년 그 여름의 습도는 전부 형상을 가졌지만 

사라진 동물들의 꼬리에서 다음 해가 이어졌다 

 

나는 한결같이 생애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생각에 매달린다 

 

전쟁은 분명하지 않으며 

매번 다시 죽기 위해 

 

구름은 구름의 뒤를 물고 

치어 죽은 동물들은 더욱 납작하게 엎드리는 것이다 

 

-이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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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가시다람쥐는 가시다람쥐를 찌른다 

가시다람쥐는 장미다 가시다 

가시다람쥐는 가시다람쥐를 찌른다 

담장은 장미와 가시를 키운다 

가시다람쥐는 가시다람쥐를 찌르고 

담장은 가시다람쥐를 품는다 

가시다람쥐도 가시다람쥐를 품는다 

장미도 가시도 오월이라 웃는다 

온통 찔리고 웃는다 

장미도 가시도 가시다람쥐가 품는다 

가시다람쥐는 가시다람쥐를 찌른다 

 

-이근화 

 

-소리내 읽으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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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이 많은 요리점 힘찬문고 19
미야자와 겐지 지음, 민영 옮김, 이가경 그림 / 우리교육 / 2000년 8월
평점 :
품절


쏙독새가 이렇게 생겼구나, 이렇게 생긴 새를 위해 동화를 쓰다니, 참 아름답다.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는 어딘가 재밌다. 그 어딘가란 게 다른 동화들과 지점이 어긋난다. 낮잠 자다 꾼 꿈 같기도 하고(도토리와 살쾡이, 주문이 많은 요리점, 첼리스트 고오슈) 인생의 모습을 아주 멀리서 바라본 것 같기도 한데(기러기 동자, 켄쥬 공원의 숲) 구분하다 보면 그 양면이 겹쳐지기도 한다. 인생은 낮잠 자다 꾼 꿈과 같은 것일 테지만 산다는 것은 또한 지독한 투쟁이기도 해서, 이리저리 뒤척이게 될 수밖에 없다.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는 그런 삶의 모습을 자기가 좋아하는 색으로 그려놓은 듯 하다. ‘사람은 남을 위해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기러기 동자)라는 기러기 동자의 아버지의 말이나 켄쥬나 쏙독색와 같은 바보인지 천재인지 모를 인물들이 미야자와 겐지의 대표적인 색채다. 그의 시 「비에도 지지 않고」에 나온 그가 바라던 인간형이 동화 속에서 나타나는 것 같다. 그런 인물들은 정말 사람들에게 천치라고 불리며 미움도 받지 않고 칭찬도 받지 않고 냉해일 때는 빨리 걷고 여름에는 땀을 흘릴 것만 같다. 심지어 자기가 살기 위해 먹는 음식(쏙독새가 먹는 벌레)에 대해서도 미안한 마음을 갖기도 한다. 그래서 사랑스럽고 존경스럽다.

게다가 그의 동화의 또 다른 묘미는 끝부분이다. 다른 동화들이 대부분 이야기를 정리하려 든다면 그의 동화의 끝은 이제 막 열린 문으로 들어선 기분이 든다. 첼로 켜는 고슈의 고슈가 뻐꾸기에게 미안하다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끝나는 부분은 최고로 좋다. 가장 작은 존재에 대한 애정 같은 것들을 이렇게 하나도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다니. 아름다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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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 소동 

 

지하 식당의 음식 속에는 

여주인의 표정이 있고 

더러운 행주가 있고 

그리고 당근이 있다 

 

나는 음식 속의 이 풍부한 영양과 

여주인의 행방에 

모종의 함수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며 

덜 익은 당근을 꼭꼭 씹는다 

 

당근은 분명 감자와 다르다 

입속에 씹히는  

이 알 수 없는 뿌리는 

누구의 아름다운 발목인가 

 

나는 흙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겠지만 저기 

육개장 닭도리탕을 

주문하는 손님들 

당근은 붉고 가지런하고 

당근은 도마의 깊이를 가로지른다 

 

알 수 없는 식욕과 

채찍에 길들여진 밥상과 

초원을 달리는 

늙은 말의 상상력 

 

당근의 육질은 감자와 다르지 

영 다르지 

지하 주차장의 푸른 용달과 

당근 박스와 어지러운 

비닐봉지들 

 

뿌리가 있고 

행주가 있고 

용달이 있는 

 

지하 식당의 오후와 

조용하고 가지런한 바퀴들 

 

-이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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