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문화 2008년 여름호(통권59호)
<권두언> 글로벌 인천, 누구를 위한 ‘드라마’인가?
전진삼 (편집위원·건축비평가)
TV를 켰다. 늦은 밤, 공중파가 띄운 「동행」이란 타이틀의 ‘굿바이, 부개동 산7번지’ 자막이 흘렀다. 인천 부개동 이야기다. 달동네 재개발을 앞두고 강제철거기일을 통보받고도 이사 갈 곳을 마련하지 못하여 전전긍긍하는 40대 초반 엄마와 두 명의 연년생 중학생 딸과 초등학생 아들 하나를 둔 빈곤 가정의 가슴 저린 드라마다. 4월 15일, 통고받은 이주 최종기일을 하루 앞두고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철거반원들에게 집 살림이 함부로 취급되는 것이 싫어서 아이들과 함께 하나둘 짐 박스를 만들어가는 엄마가 말한다. “우리 아들 생일이 4월 16일인데 철거하더라도 그날만은 지났으면 좋겠다.” 엄마에겐 철거이주비용으로 받게 될 800만 원과 낮일 밤일 마다않고 벌어서 근근이 모은 통장의 200만원 남짓 돈이 전부다. 부동산중개업소 문지방이 닳도록 쫓아다녀보지만 그 돈으로 네 식구가 마땅히 찾아들어갈 집이 없다. 중개업소 벽면에 나붙은 광고전단의 보증금 1천만 원에 월세 40만 원짜리 방은 언감생심 엄두도 내지 못한다. 시쳇말로 길바닥으로 쫓겨난다는 말이 이 가족에겐 현실이다. 방송의 테마는 어렵게 살아가는 이웃들의 비참한 삶에 세상의 따뜻한 마음을 더해주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사이, 부개동 산7번지 가족은 어디에 어떻게 피신하였는지 모른다. 집은 구했을까?
이번호 특집을 준비하는 도중, 인천시의 주력 홍보사업인 2009인천세계도시엑스포가 국제박람회기구BIE의 제소로 엑스포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등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버티기로 연연하던 시는 급기야 행사 명칭을 인천세계도시축전(그나마 영문에는 ‘도시 city’라는 표기조차 누락되었다. 2010상하이엑스포가 ‘도시’를 주제로 하는 까닭이다.)으로 변경했다. 이미 많은 자금과 시간이 투입된 짝퉁 프로젝트를 원위치로 돌리기는 불가하다고 판단한 시는 행사 규모를 대폭 축소하였고 ‘도시’에서 ‘기업’ 축제로 방향도 틀었다. 주먹구구식 행정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시민들은 그 일로 안상수 인천시장의 사과발언을 접하지 못했다. 그뿐 아니다. 그동안 시가 펼쳐보였던 전시성 대형 프로젝트들이 곳곳에서 문제를 야기하며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시민사회의 반대에 봉착해 있다. 하나같이 비정상적인 방법과 밀실행정의 편린들로서 인천시의 도덕성을 의심케 하는 것이며, 시의회는 물론 인천시민사회의 견제능력이 바닥을 긋고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져 있다.
그럼 같은 시간대에 인천 밖의 도시들은 어떤가? 중앙정부 차원에서 추진되는 국가균형발전의 상징성을 띤 세종도시와 기업도시, 혁신도시 등의 대형 기획사업과 중소도시의 재생 프로그램으로 전국이 공사장을 방불케 한다. 본지는 특집을 준비하는 기획 단계에서 전국의 기초자치단체 이상에서 내건 도시 비전 슬로건을 수집하여 실제로 행하는 프로젝트와 어떤 연관성이 있으며, 각 도시는 어떻게 다른가를 집중 분석하고자 했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자료수집이 완료된 시점에 이르러 그 아이템을 편집기획안에서 삭제하자는 내부결론에 도달했다. 이유인즉 각각의 장소가 지닌 역사와 문화를 기반으로 특색 있는 도시를 만드는 노력보다는 “명품”이라는 화두 아래 차이가 발견되지 않는 그렇고 그런 도시개발 패턴의 현주소 앞에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왜 저들은 명품도시에 혈안이 되어 있는가? 그것의 순의미가 ‘좋은 도시’를 뜻하는 것이라면 ‘명품’이란 애당초 불필요했을 것이다. 좋은 도시보다는 치적형 도시를 만드는 것에 집착해있음이다. 명품이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고유한 전통으로 자리매김된 정품의 다른 이름이다. 정품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회는 외부에서 이미 존재하는 명품들을 사재기 하거나, 그게 안 되면 짝퉁으로라도 명품의 허위의식에 근접하고자 한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그 땅 그 장소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간이 어우러진 정통성에 관심을 두며 도시의 개발을 추진한다면 우리 도시의 고유한 모습을 보려고 세계인들이 찾아주는 좋은 도시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정품의 가치를 파기하는 비품의 사용이 성행하고, 급기야 짝퉁으로 도배되는 도시는 겉으로 보여지는 도시의 형상과 달리 세계인이 외면하는 도시가 되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런 도시일수록 명품이란 이름의 원조도시가 있기 마련이고, 그런 이유로 굳이 세계인들의 시선과 발길이 그곳으로 모이지 않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글로벌 짝퉁도시’라는 오명으로 도시를 홍보하면 모를까. 그건 미친 짓 아닌가.
특집 <글로벌 도시, 공간정치의 격전지>는 “명품도시”를 슬로건으로 앞세운 채 시민의 소리에 아랑곳 않고 오로지 밀어붙이기 식으로 일관하는 인천시와 여러 지자체들을 향하여 글로벌 도시의 정체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환기시키고 나아가 선진 사례들을 살펴봄으로써 현재 추진하고 있는 각종 사업들을 중간 점검할 수 있는 계기로 삼기 바라는 의도에서 마련된 것이다. 본지의 특집지면에 11인의 필자가 대거 집필에 참여한 것도 흔치 않은 일이지만 돌이켜보면 글로벌 도시에 대한 시민의 알권리가 무시된 채 일방적으로 추진되어온 작금의 정황으로부터 심각한 위기의식을 감지했기 때문이며, 그에 대한 대응의 차원에서 선진화된 도시를 구현하기 위한 정책의 일관성과 투명성 그리고 행정과 민간의 협치에 의한 도시 만들기의 합리성을 되살리자는 편집자의 의지가 모아진 까닭이다.
우리는 ‘공간정치’의 최대 격전지가 바로 ‘인천’이라고 생각했다. 『황해문화』의 모토대로 지역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본다는 자세로 인천의 내부문제부터 점검해 보았다. 박병상 선생은 땅의 화폐가치를 쫓아다니는 시민의식의 변화를 염려한다. 골프장 유치를 반대했던 시민단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양산 골프장 저지선이 무너진 작금의 사태를 통해서 침묵하는 시민들의 한계를 노정시킨다. 인천시종합건설본부가 상부의 지시라는 미명 하에 배다리 주민들이 죽기를 각오로 사수하고 있는 50미터 폭의 산업도로 건설 현장의 맹목적 공사강행을 고발한다. 그 사이 인천시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역이기주의적 발상의 도시개발 청사진을 비호하는 세력이 암투하고 있으며, 이전까지의 마을공동체 의식은 실종되어 버렸음을 개탄한다. 생태학자의 눈에 비친 인천의 현주소는 너무나도 비정상적이다. 날로 희미해지는 시민들의 환경에 대한 관심이반이 불러올 미래의 재앙을 경고하는 것에도 지쳐 보인다. 그만큼 작금의 인천이 도시 발전의 중심이 되어주어야 할 철학도, 이론도, 인물도 부재하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안상수 시장의 독주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요구되는 이유다. 시민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며 문제를 극복해가는 ‘과정이 아름다운 도시’를 연출할 때가 되었다는 그의 주장이 새삼스럽다.
그러면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글로벌 도시화의 전위에서 디자인시티의 구현을 화두로 도시의 시각적 치유를 감행하고 있는 서울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도시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청계천 개발사업과 서울시청의 잔디광장 이후 서울시는 도시의 깊이보다는 표면의 화장술에만 연연하고 있는 도시로 비추고 있다. 김란기 선생은 서울시가 벌이고 있는 이벤트성 개발 프로젝트의 허상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 특히 이명박 시장 재임 당시에 추진되었던 청계천 ‘복원’사업과 세계문화유산인 종묘를 지척에 둔 세운상가 재개발 현장의 무모함을 지적한다. 대를 이어 개발만능주의의 닮은꼴로 도시개발을 추진하는 오세훈 시장의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 및 하나하나 열거하기조차 버거운 도시재생 프로젝트들의 계획 및 성사과정에서 빚어진 과오들을 들춰낸다. 문화재청을 들러리로 내세운 인상에서 자유롭지 못한 서울시 신청사의 최종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우여곡절은 정치적 프로파간다로서의 우리 건축이 직면한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그는 동대문운동장이 외국 유명건축가의 브랜드에 침몰되는 과정에서 보여준 근대건축 유적 말살의 현장을 바라보며 서울시가 추구하는 역사도시로서의 도심재창조가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상기시켜준다.
초고층건축은 동시대 글로벌 도시의 트레이드마크로 부상되었다. 심재현 선생은 인천경제자유구역의 상징적인 표상으로 계획된 송도지구의 151층 인천타워와 65층 동북아트레이드센터 그리고 청라지구의 77층 WTC 건립 계획은 국제 경쟁을 향한 강력한 의지의 표현으로는 손색이 없다고 전제한다. 반면 그러한 계획이 ‘미래도시의 랜드마크’ 구현이라는 형상적인 접근에서 나온 결과라면 앞으로 수많은 난관과 그로 인한 기존 도시의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환경적인 비용을 감수하여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초고층 건축 계획은 형상이 우선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대량 공급에 대비한 실질적인 수요와 사용 목적에 맞는 공간의 효용성으로부터 도출되는 결과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초고층 개발로 인한 정주환경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반건축물 수준에 머물러 있는 안전과 방재 대책을 초고층의 특성에 맞는 법과 제도로 개선하여야 하며 에너지 과소비를 줄일 수 있는 저비용 기술이 개발되어야 할뿐더러 고밀의 건축물을 유지할 수 있는 인프라 시설이 사전에 정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천엔 오래된 공장이 많다. 주지하다시피 바다와 서울의 근접성으로 일찍 산업화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시환경은 도시재생 프로그램의 적용에 있어서도 장소의 특수성을 고려한 다양한 접근법이 요구됨을 의미한다. 또한 이들 공장을 생계의 터전으로 삼아 인천에서의 삶을 영위해온 주민들의 존재를 간과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들 대부분이 거주하는 노후한 연립주택 및 단독주택과 저층아파트가 많은 지역에서 뉴타운이란 이름의 도시재생사업이 고개를 쳐들고 있다. 문제는 재개발 또는 도시재생사업으로 거주지를 쫓겨난 도시의 빈민들에 의해 피치 못하게 도시의 슬럼화가 가속된다는 것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에 도입되는 산업구조는 이전까지 인천경제의 대명사였던 제조업보다는 IT, BT 산업과 같은 신종 산업이 중심을 이룬다. 허동훈 선생은 산업구조의 고도화로 인한 도시개발의 폐해 증 하나로 주민을 갈아 끼워야 하는 사태를 막을 수 없다는 점을 경고한다. 정작 도시가 꾸는 꿈의 수혜자여야 할 애꿎은 시민들이 피해당사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산업구조 재편의 부정적인 단면이 드러난다.
이왕기 선생은 인천의 수공간 개발의 당위와 전개방향에 대한 원고를 보내왔다. 인천은 당초 내륙지역의 3분의 1을 넘어서는 도시적 용도의 토지가 매립을 통해서 공급되었고, 그 과정을 겪으며 리아스식 해안구조를 갖던 도시 형태는 점차 기하학적인 단순 구조의 해안선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문제는 이렇게 매립을 통해 공급된 토지의 대부분에 항만시설과 공업 및 농업용도 그리고 일부 혐오시설이라 할 수 있는 쓰레기 매립장과 발전소 등이 입지함으로써 사실상 사람이 바다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이는 63km라는 엄청난 길이의 해안선을 보유한 인천이 제대로 된 친수공간을 하나 갖지 못한 이유가 되었다. 그나마 인천의 내륙을 통과하는 하천은 규모가 작거나 건천이었던 관계로 시민들의 접근이 원활하지 못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의 지정이 인천의 오랜 숙원인 친수도시로의 접근을 가능케 했지만 그는 현재 경제자유구역개발계획이나 각종 단위사업계획에서 친수공간 조성에 대한 기본적인 원칙이나 방향성 제시가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고밀도 주거단지 개발이 대세인 것은 시장의 반응에서 곧바로 채집된다. 인천도 예외는 아니다. 박철수 선생은 저층주거단지의 해법이 될 수 있는 타운하우스의 사례를 예의 주시한 글을 보내왔다. 타운하우스는 모도시로부터 일정한 이격거리를 가지는 곳으로서 지가압력의 부담으로부터 벗어나 합리적인 건축비용을 통해 새로운 도시건축을 만들고자 할 때 성립 가능하다. 파주 등 서울의 외곽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저층형 도시화의 다양한 실험이나 시도가 적어도 불안정한 시도의 국면에서 벗어나 통상적이며 범용적이고 규범적인 21세기의 공간환경 만들기의 주도적 수단이자 방법으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극복해야 할 과제가 상정될 수 있다고 말한다. 현재의 다세대, 다가구 밀집지역의 환경개선을 위한 새로운 타운하우스 주택 유형의 개발과 보급을 위한 지속적인 건축적 실험, 주거지역에서의 맞벽건축 허용을 통한 고밀도 단독주택의 확산 가능성 확보 등을 모색하는 일과 개발단위의 대형화와 집단화, 그리고 동시성이 주는 달콤한 개발관성으로부터 벗어나 그 공간적, 생활환경적 폐해를 심각하게 재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도시의 개념과 실제 구현 사례를 총체적으로 개관하고 있는 한광야 선생은 파리, 런던, 뉴욕, 도쿄 등 글로벌 시티의 성공사례로 벤치마킹되는 주요도시들을 통해서 글로벌 시티의 공통적이며 핵심적인 이슈가 단핵구조에서 다핵구조로의 창조적인 진화를 단행함에 있다고 진단한다. 여기서의 다핵도시란 비중심적 혹은 분산된 도시구조와는 다르다. 다핵화된 글로벌 도시는 크고 넓어서 복잡한 도시가 아니라 크고 넓기 때문에 더욱 더 콤팩트하고 단순한 도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항공, 철도, 지하철 등의 통합시스템이 갖춰진 도시이면서 또한 보행네트워크로 도시의 중심을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네이버후드의 결합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다양한 네이버후드가 공존하는 도시란 문화적 포괄성이 존중되는 도시를 의미하며 이를 위해서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의 조화를 필요로 한다는 것. 그는 또한 글로벌 도시의 경쟁력을 견인하는 것은 무엇보다 엘리트 경제활동에 기대는 바가 크므로 국제적 업무환경의 조성이 관건이라고 전제하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런던, 파리, 뉴욕, 도쿄가 어떤 정책 기조로 콤플렉스의 조성에 경주하게 되는 지를 설명한다.
백승만 선생은 문화도시 패러다임이라는 주제 하에 서울과 파리를 비교분석한 글을 보내왔다. 파리가 보행자중심의 도시체계를 갖추게 되는 배경을 설명하며 파리의 가로 개념이 보행자편의 뿐 아니라 가로변의 자연환경, 건축유산 보호 등 보다 총체적인 도시환경으로서의 ‘시민화 거리’ 만들기에 주력해왔다고 강조한다. 또한 신도시 라데팡스의 개발과정을 주시하며 국가주최로 실현된 대규모 건축계획들이 국제사회에 프랑스건축을 개방하는 계기가 되고 그로써 폭넓은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내었으며 언론과 대중매체는 각 건축계획의 과정을 세세히 보도하고, 때때로 그 현장에서 야기되는 논쟁을 퍼뜨리는 역할을 통해서 건축의 대중화에 기여함은 물론, 자국의 신예 건축가가 세계적 건축가로 급부상하는 장치를 만든 사례를 주목한다. 그는 문화적 도시재생이 디자인 만능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며 단기성의 과시형 도시화보다 장기적 안목의 지속가능한 도시 만들기에 민관이 힘을 모아야한다고 말한다.
김정후 선생은 런던의 도시재생이 보존을 위한 보존이 아닌 개발을 위한 보존방식이라며 원칙적으로는 보존하되 더 나은 방식이 있다면 개발이 가능하다는 유연함을 특징으로 한다고 전한다. 그런 이유로 런던의 도시경관이 다양한 역사적 층위를 가지는데 장엄함과 통일감 대신 그 자리를 경관의 다양함이 대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런던에서는 개발을 하되 도시의 역사적 공간구조를 견인해온 길과 집의 소중한 가치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회적 합의에 주목한다. 한편 1999년에 설립된 케이브CABE는 건축 및 도시와 관련해서 정부 및 지방 정부를 자문하는 기관으로서 도시재생의 실질적인 견인차 역할을 해오고 있는데 시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정책을 개발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작은 규모의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시행함에 있어서도 공청회가 요식행위가 아닌 주민의 의사를 모으는 실질적인 프로그램으로 활용되고 있는 등 이들이 보여주는 행정의 기본자세는 교훈적이다. 특히 런던의 도시재생 사업이 관심을 끄는 것은 그 중심에 ‘문화’가 놓여있다는 점이다. 문화가 관광산업의 중추적 역할을 함으로써 가시적 측면의 경제적 효과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의 참여를 진작시키고 궁극적으로 사회의 질적 수준을 높였다는 것이다.
오민근 선생은 미래 업무형 신시가지 미나토미라이21로 상징되는 도시 요코하마에서 창조도시라는 관점을 투영하여 기존시가지를 성공적으로 재생시킨 ‘역사를 살린 마을 만들기’의 수법에 대한 글을 보내왔다. 요코하마는 문화예술로 도시의 매력을 만들고, 기존의 건축유산을 활용하여 도시 활성화를 이룬 항구도시다. 1971년 ‘요코하마다운 개성 있는 도시공간형성’을 목적으로 한 도시디자인 활동을 개시로 여러 사업을 벌여왔는데 특히 BankART 사업을 주목한다. 이는 아티스트, 크리에이터 등 창조적 산업의 집적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의 네트워킹과 그들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 서비스 체계를 갖추는 등 문화예술 소프트웨어 중시 정책이라 정의할 수 있다. 이 같은 제도의 정착으로 말미암아 요코하마의 도시재생은 창조적 인재들의 역할이 커지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포지션이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닌 ‘마을 만들기를 위한 예술, 마을 만들기를 위한 도구로서의 예술’로 정위된다는 사실이다. 지역 내 역사적 건축물을 활용하여 창조적 산업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시민이 주도하는 문화예술 도시의 창조성이 접목되면서 요코하마다운 도시경관이 형성되고 도심임해부가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관주도의 도시 만들기가 아니라 도시의 역사로부터 특질을 찾아내는 민관의 공동대응과 노력을 엿볼 수 있다.
특집 원고의 마지막은 두바이의 최근 소식이다. 국내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의 순례코스로 각광받고 있는 두바이. 극초고층 건축의 신화와 바다를 이용한 신개념 도시로 떠오르고 있는 두바이 현지에서 글을 보내온 김병철 선생은 변방의 작은 도시국가에 불과했던 두바이가 ‘탈 역사, 탈 맥락’의 전략으로 서구와 극동아시아의 중심적 시각을 일탈하게 되는 배경과 함께 개발현장의 생생한 소식을 전해왔다. 특히 최근 몇 달 사이에 불거지고 있는 현지의 위기의식-건설비용의 급등과 서브프라임 사태의 후유증으로 오일머니의 서방으로의 회전 등 투자자의 투자심리 위축-이 사실무근이 아니라는 정황을 포착한 내용이 눈에 띈다. 무엇보다도 두바이의 재정 불투명성과 과도한 성장 정책이 정작 두바이의 미래를 불신케 한다는 것이다. 시민의 삶이 권리로 찾아지는 곳이 아닌 ‘두바이 주식회사’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두바이인의 모습이야말로 이 도시가 지니는 취약점이라는 것을 간파해내고 있다. 두바이의 모래바람이 수상하다는 보고다.
눈 밝은 독자들은 이미 파악했겠지만 이번 호 특집은 2007년 본지 여름호(통권 55호)의 <글로벌 인천은 살기 좋은 인천인가>의 후속작업이다. 그 때 우리는 21세기 인천 르네상스를 궁구하는 개발 붐이 기형적이며, 폭력적이라는 관점을 투사한 바 있다. 잡지가 총탄이 아닐진대 편집진의 올곧은 생각이 표적이 된 저들 개발지상주의자들의 심부를 건드리기나 했겠는가. 반응은 잠잠했고 대신 도시개발의 현장들은 대항군 없는 전선에서 거침없이 진군의 나팔을 불러 제켰다. 다수의 시민들은 도시발전의 반사이익을 기대하는 듯 부동산 투기 광풍의 도시라는 언론의 질타조차 오히려 즐기는 반응이었고, 시민사회를 이끄는 소수의 지도급 인사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위기의식 하에 마땅한 대응방안을 찾느라 골몰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다시 여름을 맞아 <글로벌 도시, 공간정치의 격전지>를 찾아가는 특집을 통하여 때늦게 글로벌 도시의 A, B, C를 개관하는 것을 필두로 파리, 런던, 뉴욕, 도쿄 등 도시건축의 선험적인 사례를 집중적으로 탐사하는 배경에는 전제한 상황이 기폭제가 되었다. 글로벌 도시의 실체는 어떤 것이며, 명품 도시와는 어떤 관계를 맺는가 등의 원론적인 접근으로부터 후발 도시인 인천이 어떤 목표와 정책과 철학을 가지고 나아가야할 것인가를 개발 모형의 예시를 들어가며 제안하고자 하였다. 가깝게는 글로벌 도시 서울의 공간 전략과 차이를 두며, 인천의 지리적 특수성을 잘 살리고 인천이 고향인 주민들의 삶의 질을 담보한 바람직한 도시개발이 어떤 절차를 밟고, 어디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무엇을 위한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제시코자 하였다.
모두(冒頭)에도 적었지만 새롭게 변하는 주변 환경을 통해 어제까지 별 탈 없이 살아왔던 인천에서의 삶이 낯설어지고, 자괴감을 일으키며, 종국엔 길거리로 쫓겨나야 하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이 도시가 비현실적인 환영의 공간정치로 인하여 선량한 시민들을 불량시민으로, 생각 있는 시민들을 생각 없는 시민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현실을 인식하게 된다. 도대체가 누구를 위한 명품도시인가? 주인이 떠난 자리에 객이 들어 앉아 특별한 공간적 지위를 누리기에 바쁘고, 구도심의 멍에를 떠안은 저급한 공간 환경의 도시동네는 경쟁적으로 재개발을 연호하며, 이제껏 살아온 마을의 역사며 맥락을 외면하는 행태를 당연시하는 풍토에 젖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조차 판단하지 못하는 우매한 주민으로 전락하고 있음이다. 시민이 스스로 주인의식을 방기하는, 시민리더십 부재의 국면은 도시 만들기를 통해 한 개인의 정치적 야심을 불태우는 모노드라마의 희생양을 자처하는 것과 매양 같은 것이다. 이 지점에서 시민들이 찾아야 할 것은 도시를 개조하는 진정한 주체가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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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 <창작>란에는 두 편의 소설에 게재되었다. 이경자 선생의 신작 단편 「언니를 놓치다」는 한국전쟁으로 헤어진 자매가 이산가족 상봉장에서 이념과 풍진 세월의 앙금을 털어내고 서로의 자매애를 확인하는 순간을 세심한 심리묘사로 그려내고 있다. 다른 한 편의 작품은 올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신예작가 양진채 선생의 「딸기 샐러드 이야기」이다. 양진채 선생의 작품은 비록 경제적으로는 몰락했지만 여전히 과거 방식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인 철없는 어머니와 담뿍 철이 들어버린 딸의 일상을 발랄한 상상력과 어법으로 그려내고 있다. 연배도, 경륜도 남다른 두 여성작가가 비슷한 시기에 자매와 모녀라는 여성주인공을 앞세운 단편작품을 발표했다. 더불어 날이 갈수록 깊이를 더해가는 김해화 시인의 작품과 공광규, 정끝별, 윤희상, 박관서, 이면우 시인의 신작시들이 창작란을 읽는 독자들에게 가슴 서늘한 아름다움을 선사할 것이다.
『황해문화』는 계간지 중에서는 최초로 창작란에 신작 단편만화를 게재하여 우리 만화의 발전을 함께 도모해 왔다. 만화가 ‘에호’의 작품 「복불복」은 이제 하나의 일반 명사가 되어버린 ‘88만원 세대’의 항변을 담고 있다. 이들은 등록금 천만 원 시대의 대학에 입학했어도 여전히 졸업 이후의 생활에 대해선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는 세대다. 과연 이들 세대가 처한 이 막막하고, 팍팍한 사회 속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체념하는 것밖에 없는 것일까? 작가와 청년 세대의 질문에 우리 사회는 무엇이라고 답할 수 있을지 다시 한 번 곱씹게 된다.
‘팍스 차이나’의 도래를 예언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요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흡사한 근대화 과정을 치렀던 중국 내부의 문제들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얼마 전 국내에도 개봉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던 리안 감독의 영화 「색, 계(色, 戒)」다. 임우경 선생의 「「색, 계」 논쟁, 중국 좌파 민족주의의 굴기(屈起) 혹은 위기」는 하나의 사회적 현안을 놓고 민족주의의 그림자에 휘말리지 않으면서도 올바른 시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시선을 견지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 사회에도 여러 방면으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개혁개방 이래 30여 년 동안 중국 사회는 계급보다 개인을 중시하는 자유주의 사조가 사회의 주류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밀려드는 다국적 자본과 세계화 과정에서 빈부 격차는 더욱 극심해지고 사회 내부에서 자유주의적 문화에 응전하기 위해 반서구주의와 민족국가적 정체성이 점차 강조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민족주의는 이제 중국 내부에서 좌파의 정당성을 보장하는 핵심이자 동시에 좌파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모호하게 만드는 가장 큰 유혹이 되어가고 있다. 임우경 선생은 좌우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계급적 입장이 무화되는 이 지점에 맹목적 애국주의에 포섭되기 쉬운 억압적 민족상상이 들어찰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비판한다. “지난 20여 년간 우리가 목도한 것은 우파의 승리가 아니라 좌파의 실종”이었다는 아리프 딜릭의 지적은 자본주의의 바깥과 대안을 상상할 능력이 상실된 좌파의 자화상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번 호 시평은 세계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죽은 강사들의 사회’로 내몰리고 있는 대학가 지식인들의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강수돌 선생은 「대학강사를 교원으로 인정해야 할 10가지 이유」를 통해 문제는 “예산”이 아니라 “철학”이라고 말한다. 국고지원 중인 학술진흥재단 누리사업과 BK21에 지원하는 한 해 예산 1조 5천억 원 중 3분지 1만 투자해도 국립대학 100%, 사립대 50%의 시간강사를 교원으로 대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아픔은 대학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다. ‘죽은 강사들의 사회’란 ‘죽은 대학의 사회’, ‘죽은 사회의 대학’을 재생산할 뿐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기득권이요, 그에 대한 우리의 태도라고 필자는 진단하고 있다.
얼마 전 광화문 네거리는 붉은 오성홍기(五星紅旗)의 애국주의 쓰나미에 점령당했다. 세계 곳곳 성화가 닿는 곳마다 티베트의 자유를 요구하는 시위대와 베이징 올림픽을 지지하는 중국인들 사이에 치열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중국의 국가적 개입이 있었다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 이희옥 선생의 시평 「올림픽, 중국과 티베트의 딜레마」는 올림픽을 통해 개혁개방 30년을 결산하며 중화주의라는 중국적 자부심을 대내외에 표방하려는 중국의 의도와 달리 티베트인들에게는 올림픽이 자치와 독립이라는 열망을 드러낼 마지막 기회였다고 말한다.
개혁개방을 통해 축적된 중국의 발전 이면에는 농촌 문제, 실업 문제, 사회적 격차 문제, 민족 문제 등 ‘성공의 역설’에 발목을 잡히고 있다고 진단한다. 또 대외적으로는 티베트 문제, 민주주의 과소, 인권 문제, 올림픽 이후 중국위협론 등 국제사회의 따가운 여론에 직면하고 있다. 만약 중국이 평화적 대국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그간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금과옥조로 삼았던 마르크스의 “각국의 길에는 각국의 길이 있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때라는 것이다.
이 외에도 『황해문화』에는 인천 시민의 일상사의 애환이 녹아든 <인천, 이 사람>을 비롯해 우리 사회 곳곳의 문화 현상을 날카롭게 짚고 있는 <문화비평> 등 여러 알찬 글들이 가득하다. 독자 여러분의 일독을 권한다. 그리고 짬짬이 거리의 촛불들에도 주목해주기 바란다. 우리는 그들의 배후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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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2 권두언
글로벌 인천, 누구를 위한 ‘드라마’인가? 전진삼
특집│글로벌 도시, 공간정치의 격전지
16 투기하는 도시, 정주하는 도시 박병상
39 내 마음의 지우개, 기억상실증, 그리고 서울 김란기
62 글로벌 인천 도시 조감도 비판 심재현
78 인천도시개발과 지역경제 허동훈
94 도시의 새로운 화두, 친수공간 이왕기
111 저층형 도시화와 타운하우스 박철수
125 글로벌 도시의 형성과 진화 한광야
142 서울과 파리의 문화적 도시재생 백승만
157 21세기 런던의 도시 르네상스 김정후
181 문화의 창조적 활용, 도시재생에서 창조도시로
―일본의 경우 오민근
213 ‘포스트모던’ 두바이! 그 아슬아슬함 김병철
시
220 김해화 공광규 정끝별 윤희상 박관서 이면우
만화
241 복불복 에호
소설
253 언니를 놓치다 이경자
270 딸기샐러드 이야기 양진채
황해리포트
288 「색, 계」 논쟁, 중국 좌파 민족주의의 굴기(漫起) 혹은 위기 임우경
시평
307 대학 강사를 교원으로 인정해야 할 10가지 이유 강수돌
318 올림픽, 중국과 티베트의 딜레마 이희옥
인천, 이 사람
329 수봉공원 입구의 점술가, 김성선 씨 김윤식
문화비평
339 미디어 선거보도, 민주주의를 위해서 변해야… 김서중
346 식민지의 기억, 또는 낯선 독법(讀法)들에 대하여 박명진
353 대중음악과 외국어 가사 신현준
358 「찬란한 오후」의 연극성 안치운
363 여성 사진사 이홍경, 조선 최초가 되다 이경민
375 문학 김원우의 신작과 산문집에 대하여 김경수
381 <스쿱>, 그 예고된 실패 최성일
386 문제를 진단하는 상반된 태도와 해법 민운기
― 「인천현대조형작가협회 창립전」과 「월세방 프로젝트-1」
서평
393『재벌개혁의 현실과 대안 찾기』유철규
『불편을 위하여』김종헌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진태원
『냉전 아시아의 문화풍경 1:1940-1950년대』권명아
『대항해 시대-해상 팽창과 근대세계의 형성』한승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