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 건축가 조한의 서울 탐구
조한 지음 / 돌베개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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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일상 공간에서 오랜 시간 쌓인 '공간의 기억'을 찾고 '기억의 공간'으로 되살려낸다는 이 책의 스무 꼭지 글을 글쓴이는 스무 개의 '시간의 단면'이라고 한다. 그것은 건축에서는 왜 감동을 느끼기 어려운가라는 건축가로서 도발적인 질문에 대해 스스로 찾아낸 해답 중 하나이다. 감동은 바로 시간성에 있고 공간에서 기억을 가로지르는 시간의 단면을 자를 때 바로 그 감동이 오기 때문이란다. 그럼 어쩌면 이 책은 작가가 서울의 여러 공간에서 경험한 감동의 고백서이자 탐구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부제 '건축가 조한의 서울 탐구'는 '건축가 조한의 시간의 감동 탐구'로 바꿔봐도 무방할 것 같다.

 

내 생각에 이 책의 진가는 서울의 여러 곳의 건축적 특징과 역사적 지식을 소개한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공간 속에서 감동을 받는 이유를 때론 역사적, 사회적으로  때론 경험적, 감각적으로 때론 학문적으로 밝히려는 다원적이고 생생한 '감각과 사유의 과정'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스무가지 모든 글이 하나하나 특색 있고 와닿았는데 '인사동보다 더 인사동 같은 인사동 쌈지길' 편을 예로 들어 책의 특징을 설명하자면 이런 식이다.

 

먼저 책은 풍부한 역사 정보로 역사적 시간 감동을 느끼게 해준다. 인사동이 조선시대 고관대작, 권세가들의 저택에서 일제시대 도심형 한옥과 고서점, 60년대 70년대 80년대 각각의 전통 공방과 화랑건물, 2000년 최신식의 갤러리까지 600년의 건축 변화의 자취를 찾아볼 수 있는 곳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물길이었던 인사동길이 광복 전후의 골동품 상권에서 70년대엔 화랑거리로 80년대엔 민중미술운동의 거점으로 거리문화가 변천한 역사와 그 기원으로 조선시대 도화서의 영향까지도 알려준다. 이 글을 읽으면 깊이 없이 평면 같았던 인사동이 600년의 시간의 파노라마가 겹겹히 펼쳐지는 역동적인 공간으로 새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그곳에 가서 나도 고고학자처럼 역사의 자취를 찾고 싶은 생각이 절로 일어난다. 역사의 감동이란게 이런 것일까하고 새로이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과거의 역사뿐만 아니라 현재 살아숨쉬는 공간을 둘러싼 이해와 갈등, 사회적 이슈도 보여줌으로써 동시대 인간적 시간도 생생하게 와닿는다. 인사동 상가들이 왜 변화를 겪고 있는지, 지금의 쌈지길 건물이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인사동 터줏대감 가게들을 감싸안고 공공건물의 가치를 띠게 된 과정을 알려준다.

 

그리고 작가는 찬찬히 건물과 거리를 한걸음 한걸음 걸으며 발바닥에 닿는 촉감부터 청각 시각 등 자신의 오감을 활짝 열어 느낀다. 쌈지길에 들어섬을 울퉁불퉁한 전돌바닥의 촉감으로 느낀다거나, 쌈지길을 빙글빙글 돌아올라가면서 좁은 쌈지상가길과 트인 마당너머가 교차로 보이면서 달라지는 느낌도 놓치지 않고, 코너 돌때마다 보이는 다른 풍경과 건물의 갖가지 소재와 물성에서 어린시절부터의 다양한 시공간의 기억과 경험을 떠올리며 감각의 시간 감동을 만끽한다. 건물 자체의 인상을 '500미터 길이의 인사동길을 수직으로 감아서 말아올린 것 같다'라고 표현한 것은 얼마나 또 감각적인지. 건축가의 입장에서 자신의 건축물을 이렇게 감각적으로 느껴주는 것이 얼마나 감동적일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작가의 건축에 대한 감각적 감동은 건축적인 분석으로 연결된다. 쌈지길 건물 폭에서 느껴지는 다중적인 스케일과 바닥, 공간의 다채로운 물성이 몸에 축적된 기억을 일깨우며 시간 감동을 주는 것이라고. 그러면서 지금의 인사동길의 황량함은 바로 이 다중적인 스케일감과 물성의 상실때문이라고 깨닫는다. 촘촘했던 전돌과 긴밀한 관계를 맺던 돌방석, 물확걸상들이 미끈한 마천석 바닥재로 바뀌면서 덩그러니 버려진 느낌이 들기 때문이고, 찻길과 인도 사이에서 다중적인 스케일의 가로 풍경을 만들던 노점상의 사라짐 때문이라고.

 

덧붙여 작가는 건축학자로서 건축에 대한 가치를 평가하고 건축적 제안도 빠뜨리지 않는다. 그는 도시의 시간성 맥락에서 한국성은 골목길에 있다고 한다. 서촌, 북촌, 세운상가 주변 등의 미로같은 골목길이 바로 역사적 시간과 삶의 시간이 쌓인 시간 감동의 보고라고 강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쌈지길 건물은 시간을 경험할 수 있는 골목길을 수직적으로 재현한 한국적 건축이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제안한다. 이런 골목길을 존중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고, 아파트 단지 조성에도 골목길을 살려 넣자고. 그리고는 여유자적하게 다시 자신의 존재감과 시간성을 느끼게 해주는 또다른 시간의 골목길, 또다른 쌈지골목길 출입문을 찾아 걸어간다.

 

특히 매력적인 것은 이 탐구 과정이 정해진 계획대로 미리 학습된 이론을 좇아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걸으면서 우연히 마주친 장면에서 자유롭게 느낌과 생각이 뻗어나면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감각과 느낌으로부터 건축의 감동을 찾으려는 작가의 끝없는 여로의 과정과 그 결과 또 어떤 보물같은 아이디어가 나올지 개인적으로 참 기대된다.

 

이러한 글쓴이의 공간에 대한 감동은 다른 열 아홉가지 꼭지글에서 여러 시공간으로 변주되면서 눈부시게 펼쳐진다.

'홍대 앞 벽돌거리'에서는 그만의 원조 벽돌거리 김기석의 우리 마당 연작들의 예전 구조를 일일이 손으로 그려 보여주며, 그 변형을 아쉬워하면서도 새 프로그램을 만난 옛건물의 시간과 생명력에 감동한다. 그리고 가로수 길에서는 화려한 건물이 아닌, 건물의 원래 모습과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에서 다중적인 '시간의 중첩'의 묘미를 찾아낸다. 도시의 흉물로만 간주되던 세운상가는 그가 펼쳐놓는 세운상가가 품고 있는 다양한 인간의 욕망으로 오히려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으로 다가온다. 마찬가지로 낙후된 상가쯤으로 치부되던 낙원상가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시공간을 연출할 수 있는 영화 속 한 장면 같이 여겨진다. 세운상가처럼 도시 욕망의 비운아 강남 고속터미널도 그의 글 속에선 보물이 숨은 고대 유적으로 변한다. 리모델링 되어 90년을 버틴 링코트 피아트 건물처럼 지은지 30년된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이 꿋꿋이 버텨서 작가가 그의 바램대로 60년 후에 꼭 다시 가볼 수 있길 나도 간절히 바랬다. 건축가 김수근의 지킬과 하이드라는 공간 사옥과 남영동 대공분실에 대한 글쓴이의 묘사와 평도 건물의 아름다움에 대해선 너무나 감미롭게, 건축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너무나 매섭게 교차된다. 기존의 낡은 수도가압장을 너무나 영감어린 윤동주문학관으로 리모델링한 건축가 이소진을 공간으로 시를 쓰는 진정한 건축가라며 경의를 표하고, 후각 청각 이미지 텍스트를 넘나드는 공간에서의 전이의 감동을 생생하게 전달해준다. 역시 옛 정수장을 그대로 활용한 선유도 공원에서 시간의 콜라주를 감상하고 어린이 대공원의 원래 모습인 클럽하우스를 다시 살려낸 꿈마루에서 시간여행의 출입구를 넘나들며 감동한다. 그런가하면 서울시신청사에 대한 세간의 평에 대해 반대하며 진정 무엇이 문제인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또 귀중한 문화재인 환구단을 기껏 호텔 후원으로만 방치하는 것을 '예의가 아니라'며 역시 근대역사공간인 호텔과 상생하면서 시민에게 가까운 공간이 될 방법을 모색한다. 교통의 섬이 되버린 광화문 광장과 뜸금없는 거대 세종대왕 동상을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스페인 광장같은 진정한 광장으로 거듭나게 할 매력적인 아이디어도 제시한다.

 

이 책의 색다름은 바로 작가 개인의 사적인 경험 즉 어린시절, 대학생때, 데이트할 때의 기억과 맞물린 공간에서 역시 자신만의 느낌으로 건축과 공간을 탐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역사학자 전우용씨의 서평이 참 와닿는다. ' 이 책은 사적인 경험과 시선도 장소를 역사화하는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장소에 대한 통념과 전복과 탈출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래서 자기 경험과 기억의 가치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만들어갈 서울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라는...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의 사적인 기억과 감각이 내게도 그대로 와닿아 공유되는 문학적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단언컨대 이 책은 역사적 사회적 철학적 '이성'과 몽환적이고 감각적이면서 뭉클하기까지한 영화적 '감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팔색조의 매력을 가진 책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백미인 섹슈얼하기까지한 건축과 감동에 대한 감각적 묘사를 인용하고 독후감을 마무리해야겠다.

 

" 좁고 답답한 공간 속에 있다가도 코너를 돌면 열린 공간이 나오고, 어두운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천창에서 빛이 쏟아지는 복층 공간이 눈앞에 펼쳐지는가 하면, 절묘하게 배치된 창들을 통해 스며드는 빛은 층층이 쌓인 벽돌의 촉감을 살려낸다.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는 공간을 한참 오르내리면, 내가 어느 층에 있는지,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심지어 어느 시간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나는 더 이상 시각적인 공간이 아닌 촉감적인 공간을 걷고 있다. 공간 사옥은 전체 공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눈의 공간'이 아니라, 빛과 그림자로 활성화된 촉감적인 공간을 걸으며 온몸으로 느껴야하는 '몸의 공간'인 것이다."(눈의 공간 몸의 공간-공간 사옥과 남영동 대공분실)

 

"오래된 물 냄새 속에서 느껴지는 후각의 시간, 벽에 투영된 이미지로 보는 역사의 시간, 윤동주의 글에서 느껴지는 시의 사간, 그리고 공간 전체의 울림에서 느껴지는 청각의 시간, 후각에서 시각으로, 이미지에서 글로, 다시 청각으로. 작은 공간 안에서 축적된 시간과 감각의 시간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 말로 다 할 수 없이 감동스럽다."(시간을 넘나드는 감각의 집-윤동주 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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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 건축가 조한의 서울 탐구
조한 지음 / 돌베개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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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마지막에 광화문의 세종대왕상을 문화의 중심 세종문화회관으로 옮기자는 제안을 하면서 로마의 휴일의 오드리햅번과 그레고리펙이 등장하는 스페인 계단처럼 합성해 직접 스케치하신 그림을 보고 어찌나 기발하고 유쾌하던지... 곳곳에 감성과 위트가 넘치는 작가의 글과 스케치가 돋보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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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 건축가 조한의 서울 탐구
조한 지음 / 돌베개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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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조한님의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을 주문하고 지금 기다리는 중이다.^^ 

내겐 특별히 더 기대되고 반가운 책이다.

건축학과에 관심을 가진 딸과 함께 평소 트위터서 만나 뵈었던 조한 교수님을 찾아 뵈었었다. 방학 때라 비교적 한가하셔서 홍대앞 가이드도 해주신 댔는데, 하필이면 그날 비가 억수같이 오는 바람에 제대로 못보고 쫄딱 젖었지만, 그 비에 같이 젖으면서도 열심히 설명해주신 건 아직도 감동이다.
...

그리고 지난 겨울 딸과 팀버튼 전 보러 가면서, 평소 즐겨듣던 교통방송 '도시는 살아있다' 코너에서 조한님이 소개해주신 옥류동천길과 서울시 신청사도 둘러보고, 또다시 홍대 가서 지난 여름에 제대로 못봤던 서교365길이며 벽돌거리도 교수님께 가이드 받고 왔다.
얼마 전 서울 갔을 때도 방송에서 들은 고속터미널과 신사동 가로수길, 정동길, 환구단까지 보고와 알찬 서울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공간에 대한 재밌고 풍부한 역사며 현재적 가치와 문제점까지 참신한 시각과 감각적 표현으로 들려주신 것을 듣고 따라가봤더니, 청각경험의 시각화라는 경험의 재구성과 더불어 무의미했던 공간의 재발견을 할 수 있었던 즐거운 서울여행이었다.

그렇게 듣고 보고 온 공간들을 고스란히 책에 담으셨다니, 마치 나의 여행경험기 같은 설레임마저 든다.
내겐 '이 책'이 '그때 그 공간의 기억'이고, '내 기억 속의 공간'이 될 듯하다^^*
어서 펼쳐보고 싶은 맘이 굴뚝~

예전 서울 살 때도 그렇고 가끔 서울을 갈 일이 있어도 어디를 어떻게 가봐야 제대로 서울을 느끼고 볼 수 있을지 몰랐는데, 제대로된 가이드 덕분에 이제 서울 가는 일이 한결 풍성해질 듯하다.
못가본 또다른 곳도 책으로 먼저 가보고, 담에 서울가면 또 그대로 따라 가봐야겠다...^^

 

책 주문한 후 부산 교보문고 센텀시티점에 들렀더니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이 떡~하니 '한국사 신간 코너'에 놓여있어 얼마나 반갑던지~~~ 미리 펼쳐보고 왔는데 과연 기대했던 바대로 예쁘고 내용과 사진 그림이 꽉꽉 찬 책이라 대 만족!!! 어서 읽고 리뷰도 올려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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