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남원시 금동에는 '들독거리'란 도로 명칭이 있다. '들독놀이'란 전래 놀이에서 유래된 것인데, 놀이와 노동이 결부된 농경사회의 전통적인 놀이 중 하나다. 예전에 외국 여행 프로그램에서 스위스인지 오스트리아인지 지역에서도 이와 흡사한 놀이가 전통 축제에서 시연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들독놀이'란 일정한 크기의 돌을 장정이 들어올릴 수 있는지를 평가해 장정의 노동력을 평가하여 머슴의 품삯인 새경을 정했던 놀이다.

요즘엔 이런 놀이를 하지 않지만 과거에는 음력 6월 보름에 이런 놀이를 통해 새경을 결정했고, 머슴의 우두머리인 상머슴을 정하였다고 한다. 머슴끼리의 힘겨루기이기도 했지만 두레를 조직하는데 있어 자격을 시험하는 것으로도 이용되었다고 한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무거운 돌을 들고 돌아다니며 힘 자랑을 했다고 한다. 들독놀이는 노동력을 평가하고, 그에 따라 사회적 지위와 품삯이 결정되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행사였고, 동시에 축제의 장이기도 했다.

들독놀이는 힘자랑이 관건이었기 때문인지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처럼 여성들에게는 구경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그리스와 달리 한국에선 이를 구경했다고 해서 특별한 처벌을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많은 아녀자들이 담장 안에서 널띄기 놀이를 빙자해 훔쳐보거나 울타리 안에 숨어서 몰래 훔쳐보았다. 들독놀이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이들은 아무래도 머슴의 가족이나 머슴의 주인들로 가족들은 높은 품삯과 지위로 인해, 주인들은 자기가 거느리고 있는 머슴이 동네에서 서열이 낮은 것이 자신의 명예와도 관련이 있다고 여겨서 머슴이 들독놀이에서 지기라도 하면 몹시 서운해했다고 한다.

들독놀이에서 지면 그 날부터 머슴에게 고기를 먹였고(안방 마님은 왜 마당쇠에게만 고기를 주시나? 의문을 품은 분들은 이제 그 이유를 알 것이다.), 자식에게  살림이 닿는 한 인삼, 꿀, 닭 등을 장복시켜 남들에게 뒤지지 않도록 노력했고, 가난한 집안에서는 보약 대신 산야초를 구해 먹이기도 했다고 한다.

몇 주 전부터 어떤 사람이 내 홈페이지에 몇 차례에 걸쳐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을 퍼나르며 올리길래 한 차례 이야기를 했으나 그 이후에도 여전히 변치 않길래 글을 삭제했다. 과거처럼 커뮤니티 사이트였다면 나는 광고나 욕설, 근거 없는 비난이 아니라면 남의 글을 삭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 홈페이지인 이상 굳이 그런 게재 행위를 참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글을 지웠다. 그랬더니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이 "저는 님의 그릇을 보기위해 시험삼아 무리를 해서 글을 올려보았습니다."라고 한다. 그가 올린 글들도 어이없었지만 나란 사람의 그릇을 보기 위해 일부러 예의없는 행위를 했다는 것이 더욱 어이가 없었다.

광대한 인터넷상에서의 만남이란 것이 벼라별 사람과 벼라별 일들이 다 벌어지기 마련이지만 한 번씩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참 맥없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강제로 들독놀이 시험에 참가당한 셈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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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4 1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9-08-24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내 정령치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거기 가서 저도 들독놀이 하고 싶었는가 모르겠어요. 향단이가 힘이 너무 세서. 그냥 웃으시라고요.

Arch 2009-08-24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무례한 사람이네요.
자기한테 그랬으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도 궁금하지만, 뭔가 다른걸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려는 틀이란게 고작 그런거라는 것도 어이가 없습니다.기분이 안 좋았겠어요.

2009-08-24 1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9-08-24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어이없겠네요. 속상하지만 뭐 무시하고 잊어버려야지 어쩌겠어요. ㅠ.ㅠ 힘내세요.

paviana 2009-08-24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분의 그릇이야말로 알만 하네요.

딸기 2009-08-24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참 별별 사람 다 있네. -_-

머큐리 2009-08-24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효...세상이 넓은만큼 정말 다양하게 별종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유명세 치룬다고 생각하십시요...다 신경쓰면서 살 순 없잖아요...

무해한모리군 2009-08-25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참 어이가 없군요 --;;

가을산 2009-08-25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 내 그릇은 요만하다. 그러니 까불지 마~~~~ 이럼 되겠네요.

하얀마녀 2009-08-25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의 집에 똥 싸질러놓고 집 주인의 그릇 크기를 논하다니 적반하장이란 말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경우도 잘 없겠네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국상으로 치를 것이냐를 놓고 또 한 차례 회오리가 몰려올 뻔 했다. 일단 MB정부가 이번엔 학습효과란 것이 있어서인지 제법 유연하게 대처한 셈이지만,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한 편으론 이 자들의 역사인식이란 이다지도 몰지각하구나란 것을 새삼 느꼈다. 대통령 재임 중 서거한 경우에만 국상으로 치른다는 원칙이 있기 때문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국상으로 치르기 어렵다고 말한다면 차라리 이해가 된다. 다만 이왕 국상을 치르기로 했다면 그냥 국상으로 치뤄도 좋을 것을 두고, 청와대 보좌진들 가운데 일부가  이승만 전 대통령도 국상을 치르지 않았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을 국상으로 치르느냐며 볼멘소리를 했다는 기사를 보고 나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누군가 나에게 국상에 대해 묻길래 딱 한 마디 해주었다. "지들 애비면 그렇게 말하겠느냐?"고... 물론 이때의 지들 애비란 친아비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정치적 정통성, 계보의 의미로 한 말이었다. 나는 부분적으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의미 역시 평가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건국의 어려움을 전제로 이해해보자는 의미이지 그가 한강다리 끊고 도망가면서도 '서울 시민 여러분! 국군은 용감하게 반격하고 있고, 정부는 끝까지 수도 서울을 사수하겠으니 안심하라'고 한 것도 이해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물론 그 뒤에 벌어진 일은 더더욱 이해해주면 안 될 일이다. 그렇게 도망간 정부가 돌아와서 서울에 남겨진 시민들 가운데 부역자를 골라내 죽이거나 빨간 칠을 하여 입도 뻥긋 못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그가 비록 국부였을지는 몰라도, 사사오입 개헌을 비롯해 결국 국가공권력을 동원해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수많은 학생과 시민에게 피를 뿌리게 만들었던 인물이란 점이다. 그 시점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통치자로서의 정당성을 상실했다. 하와이 망명생활 끝에 죽음 뒤에야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인물을 국상으로 모시지 못했으니 김대중 전 대통령을 국상으로 모실 수 없다는 논리, 아니 그런 해괴한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대통령을 보필할 자격을 상실한 자임은 물론 어떤 공직에도 나서면 안 되는 자다.   

자신들의 정치적 아비가 누구인지, 자신들이 누구의 자식이고, 누구를 계승하고 있는 정부인지 이 보다 잘 보여주는 말도 없다. 이해해줄 부분과 이해해주어선 안될 부분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국민신뢰도 최하위인 <조선일보>와 그 추종자들이면 족하다. 정부 기관의 종사자들, 그것도 최고 통치기관인 대통령을 보필해야 하는 보좌관들의 역사 인식 수준이 그 정도라면 국가의 품격이 한참 떨어진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가 국상으로 치러질 수 있었던 배경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가장 큰 이유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우리 국민들에게 지닌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장례가 국상으로 치러질 수 있게 된 또 다른 배경은 국내보다 국외에 있는 것 같다. 우리 곁에 있을 때는 잘 알지 못했으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세기 대한민국이 배출한 가장 세계적인 인물이었다. 그의 죽음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이 그러하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수많은 세계인들의 추모 분위기와 조문 행렬의 수준이 몰인정하기 그지 없고, 몰지각한 정부로 하여금 자신들의 정치적 의지와 상관없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상으로 승격시키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꼼수다. 전통적으로 동양에서 장례절차는 9일장, 7일장, 5일장, 3일장 같이 홀수일로 치르는 법이고, 전통을 지킨다는 것이야말로 전통적인 의미에서 '보수주의'다. 어떻게 갑자기 6일장이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 임금이 죽으면 9일장, 제후는 7일장, 사대부는 5일장, 평민이 3일장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국상은 9일장을 치렀는데, 같은 국상임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6일장이라니 이건 격이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 일이 아닌가? 이승만도 국상을 치르지 않았으니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상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던 이들이니까, 이번엔 국상을 치르기로 해놓고도 박정희보다 길게는 치를 수 없는게 아니냔 꼼수를, 그것도 7일장과 5일장 사이의 애매한 기간을 국상 기간으로 한다니 참 하는 짓이 치사하게 여겨진다.  

국상(國喪)의 품격(品格)이 국격(國格)이다. 너희들이 국가와 민족을 생각한다는 보수우파가 맞는지 의심스럽다. 차라리 '나'라도 이 나라를 '보수(保守)'해주고, '우파(右破)'해주고 싶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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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9-08-20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해괴한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대통령을 보필할 자격을 상실한 자임은 물론 어떤 공직에도 나서면 안 되는 자"라는 데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자들이라서 발탁해놓은 것 아닌가 해서요...

바람구두 2009-08-21 23:08   좋아요 0 | URL
흠, 농담하시는 건 알지만, 약간 정색을 하자면...
저는 그 지점(그런 자들이라서 발탁)에서 전선이 형성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원래 그런 애들이라고 해줘 버릇하면 진짜 버릇이 드럽게 들거든요.


치유 2009-08-20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기가 막혔어요..뭐 기막힌 일이 이것뿐이겠습니까..만은;;
신문보다 눈물이 쏟아지더라구요..
아무래도 우리 나라 전통부터 배워야 할듯..6일이란 숫자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참;
나같은 무지랭이도 기가 막히는데..하물며...

바람돌이 2009-08-21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하는 짓 하고는...유치하고 치사한걸로는 세계최고수준일듯...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해주었던 분으로 그를 기억합니다.(다음 대통령은 기대보다도 훨씬 못했었습니다) 돌아가셔서까지 이런 모욕을 당해야 하는 상황을 보니 정말 어이가 없어서... 그래도 역사는 그분의 공과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가을산 2009-08-21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상이 7일이면 월요일이 되잖아요... 그러면 관공서가 하루 쉬게 되니,
어디 쉬는 꼴을 보겠습니까.... 그래서 6일이 된것이겠지요. (농반 진반...)

비로그인 2009-08-21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전부도 그렇지만 마지막 말씀에 특히 공감합니다.

조선인 2009-08-21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걔네들은 3,6,9로 아는 듯 해요. 바보새끼들. 천하의 상것들.

syyjys 2009-08-21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최대한의 예우를 갖춰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저는 지금 그들이 큰 두려움에 빠져있다고 봅니다.

paviana 2009-08-21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들 생각의 최대한 예우가 서울광장 봉쇄안한거라고 생각할걸요.

무해한모리군 2009-08-21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늘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이 나도 어디 유럽 태어났으면 '우파'해보는 건데 이런겁니다 --;; 머리를 뜯어보고 싶다니까요.. 정말 삽한자루 들어있는거 아닐까요 ㅠ.ㅠ

바람구두 2009-08-21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효, 이 글을 언제 썼냐 하고 되돌아보니 어제 일이네요.
마감은 했는데, 다른 일로 쫓기다보니 여러분 글에 일일이 댓글도 못달았습니다.
속이 뒤집혀도 이것이 현재 우리 수준이기도 한 거니까요.

제 결론은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고민이 좀더 깊어져야 한다는 겁니다.
^^;;;
 

잠시후면 마감이다. 월간지나 주간지 마감과 계간지 마감은 생각하기에 따라 조금씩 다를 거다. 내가 월간지나 주간지 편집을 해본 건 아니니까, 섣부르게 내가 더 힘들다고 말할 순 없다. 기껏해야 1년에 4번만 마감을 하는 거니까, 힘들다고 말하는 것도 건방지게 들릴 수 있다. 단행본 마감이라고 해서 쫓기는 기분이 안 드는 건 아니니까. 이건 나도 해봐서 안다.  

다만, 주간지가 단거리, 월간지가 중거리라면 계간지는 마라톤 같은 장거리 레이스가 아닐까 싶다. 마감의 횟수는 적어도 기간이 길다. 그러다 보니 한 차례 일을 마칠 무렵이 되면 진이 쪽 빠진다. 문제는 내가 잡지 편집에만 전념할 수 없는 구조란 것이다. 이 구조는 내가 이 직장에 몸을 담고 있는 이상 절대로 변화하지 않을 조건이자 구조이기 때문에 또한 내가 감내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긴 하다.  

이번 마감 중에 함께 처리해야 했던 일들을 대충 헤아려 보니 브로슈어 하나, 팸플릿 2개, 내 원고 2개, 영감님이 쓴 칼럼글 교정교열까지 해서 여섯 가지다. 팸플릿 하나당 인사말이나 축사가 서넛씩 딸려가게 되어 있는데, 이것도 죄다 내 몫이다. 이번 달에 쓴 인사말과 축사만 해도 일곱 꼭지가 넘는다. 전문적인 '고스트 라이터'까지는 아니어도 전문적인 축사대필업자쯤은 된다. 글이란 건 하나의 감각으로 쭈욱 밀고 가야 하기 때문에 내 원고를 쓰는 동안에라도 남의 글을 대신 써줘야 하는 일감이 들어오면 감이 끊겨 버린다. 

새로 들어온 후배가 조금 분담을 해줄 수 있다면 좋겠는데, 아직 그럴 깜냥은 못되는 것 같다. 몸이 물먹은 솜처럼 축축 쳐지고, 요즘엔 밤에 운동할 생각도 못할 만큼 바빴다. 아내 혼자 방치해두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하기만 한데, 내일은 직장 동료의 송별회, 금요일은 다른 지역문화재단의 문화교육지원사업 심사위원으로도 나가봐야 한다. 토요일은 대학원 동기 내외의 첫 아이 돌이고, 일요일엔 내 원고를 써야 할 듯 싶다. 월말이면 역사기행을 가야하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시간이 없다. 다녀오고나면 곧바로 조찬강연회를 준비해야 하고, 그 일이 끝나면 <국악의밤> 음악회 행사가 있다.  

아마도 나의 휴가는 9월 중순은 지나야 될 듯 싶다. 잠도 잠이지만 마음이라도 좀 편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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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9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9-08-19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페이퍼는 자주 써주세요.^^;

세실 2009-08-19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사말, 축사 쓰는거 정말 힘들어요. 한달에 일곱꼭지라....대단하십니다.
맞아요. 몸보다 마음이 편해야 최고죠.

paviana 2009-08-20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제일 바쁘신거 인정 !!!
이렇게 바쁘시니 식사나 한번 이라는 말도 선뜻 하기가 어렵잖아요..
어쨌든 건강은 챙겨가면서 일하세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잃은 나라'라고 제목을 적어놓고 보니 국가적인 인물의 서거에 지나치게 사적인 제목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민주개혁진영의 입장에서 보자면(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이 입장을 이해하는 편이긴 하지만 내 입장은 아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불과 두 달여 사이에 한꺼번에 잃어버린 셈이다. 며칠 전 어느 정치학자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DJ가 후광으로 존재하는 민주당과 그렇지 않은 민주당은 많이 다를 것이며, 지금의 MB정국에서 DJ만한 돌파력을 보여줄 수 있는 정치인이 다시 나오기는 쉽지 않을 거란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아직 초등학생이던 무렵, 그는 풍문의 정치인이었다. 마을 어귀 쉰내 나는 개천 사이 골목길로 접어들면 지금도 눈에 선연하게 남아있는 이미지는 '김대중 선생 연설회' 벽보였다. 그는 아직 미국에 있었고, 한국에 들어올 수 없었으나 그의 육성이 담긴 카세트 테이프는 광주 비디오가 돌아다니기 전부터 호남향우회든, 아니면 다른 조직이든 비밀스럽게 그의 연설을 듣는 모임을 가졌다. 내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알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김형욱 회고록 때문이었다. 당시엔 깨알 같은 글씨로 세 권 정도로 출판된 것으로 기억하는데, 한때 박정희의 수족이었던 김형욱의 회고록은 5공 치하에서 유신 정국을 생각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책 중 하나였다. 물론 지금은 충분한 편집자주가 따라붙어야 할 테지만 말이다.

한국 정치사의 한 흐름 속에서 DJ는 결코 진보(좌파)란 손가락질(?)을 받아야 할 인물이 아니다. 그의 정치역정과 계보를 따지더라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젊은 시절, 잠시 몽양(건준)을 기웃거리긴 했으나(이것이 두고두고 그를 좌파빨갱이로 낙인 찍히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만으로도 한국 사회의 우편향을 가늠하게 해준다) 이후 그는 줄곧 소규모 지주 계급이 지지기반이자 뿌리였던 민주당 신파(장면)의 계보를 잇는 인물이었다. 익히 잘 알려진 대로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적 뿌리는 호남이었다.  

나는 가끔 지역감정의 일부 원인을 호남(혹은 호남 사람들)에서 찾는 이들에게 분개하곤 한다. 그건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가부장적 질서의 원인을 여성에게서 찾는 것과 흡사할 정도로 무책임한 짓이라 여긴다. 호남과 광주를 민주화의 성지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일이긴 하지만 한국 사회의 근대화(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호남은 한국의 식민지(지역적으로는 말이다)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희생자에게 그 결과물로 생긴 현상에 대해서까지 책임을 묻는 것은 어찌 되었든 잔인한 일이란 뜻이다. 만약 김대중 전 대통령이 30년쯤 전에 한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과거와 또 많이 다른 길을 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지역 감정의 양상도 많이 달랐을 것이다(우리 집안은 호남쪽과 별 관련은 없었다. 도리어 비호남계 사람들 중 많은 수가 그러하듯 DJ와 호남에 대해 차별의 정서를 은연중에 나타내는 편에 가까왔다).  

김대중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은 무엇보다 통일을 향한 그의 노력이었다. 불과 몇 해 전 서울 불바다를 뚫고, 그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전쟁 일보 직전 상황까지 치달았던 한반도를 전쟁의 위협에서 구해냈다. 남북한은 그 어느 때보다 통일에 가까이 다가선 듯 보였다. 민주적인 정권교체는 통일에 대한 그의 업적에 비하면 도리어 작은 편에 속하며 IMF외환위기 극복은 업적 축에도 들지 못할 만큼 위태로운 것이었다. 그리고 전두환, 노태우에 대한 그의 용서는 천주교 신자로서 그만의 개인적인 것이었더라면 좋았을 뻔했다. 그가 잘못 뿌린 씨앗 중 하나를 노무현이 바로 잡으려 했으나 그만큼 후임자를 힘들게 만든 일 중 하나였다. '과거사 진상규명' 말이다.     

가끔 한국 사회의 '소중화주의' 내지 '리틀 아메리카니즘'은 한국 사람들에게 세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게 만든다. 자신의 입장이나 처지를 모르는 사람은 길을 잃기 십상이다. 한국 사회의 정치는 여전히 '지역정서'에 의해 지배당하며 앞으로도 꽤 오래도록 존속될 것이다. 그러나 지역정서가 한 편으론 종교적 열정과 흡사해보일지라도 종교적 열정이 정치적으로 발산되는 밑바탕에조차 정치경제적 이해관계가 작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역정서의 실제 내막 역시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일 뿐이다. 지역감정으로 이득을 보는 이들은 솔직히 매우 많다. 그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거나 지역 연고가 이들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현실(공적인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상식적인 수준으로 후퇴하기 전까지)이 도래하기 전까지 지역정서는 여전히 막강한 힘을 발휘할 것이고, 이것이 제3세계, 정치적 후진국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당연히 한국도 한국인들의 일반적인 체감과 상관없이 그 후진국들 반열에 포함된다.  

어떤 의미에서든 노무현은 DJ의 자식이다. 그가 친아들이 아니라 양아들이라 할지라도 선택이 아니라 스스로 차지한 것이라 하더라도 노무현을 선택한 것은 그의 출신 지역과 상관없이 광주와 호남의 선택이기도 했다. 이제 노무현이 떠나고, 김대중도 떠났다. 한국의 민주개혁진영, 호남 지역의 정치적 아이콘이 삽시간에 사라졌다. DJ는 살아 생전 후계자를 키우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해 왔지만 노무현의 출현으로 전근대적인 후계자 지명 같은 정치질서는 사라졌다. 이제 한국의 자유주의 정치세력은 오래된 구세주와 새로운 구세주 모두를 잃었다. 마치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버지와 어머니를 동시에 잃은 '고애자(孤哀子)' 신세처럼 보인다.   

내게 '한겨울 매서운 추위, 눈밭을 뚫고 피어난 인동초'로 표현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마음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못지 않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통령되던 해 선거에서 나는 그에게 표를 찍었고, 노무현 대통령 선거에서 나는 진보정당를 지지했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우리에게 그만한 여유는 생겼다고 여겼었다. 그러나 불과 10년 세월로는 아니, 한국 사회에서 (자유주의)민주화란 관용이 폭넓게 자리매김하기까지는 아직 우리 모두가 좀더 외롭고, 슬퍼야 하는 시절인가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한다. 아니, 몽양 여운형, 백범 김구, 죽산 조봉암, 장면의 뒤를 이은 김대중 선생의 서거를 깊이 애도한다. 한국 사회의 자유주의 중도정치인의 한 맥을 그가 이었다.   

부디, 이들에 대한 추모와 기억을 밑거름으로 이 땅에서 새로운 정치, 올바른 정치가 꽃피어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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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파비아나님이 바쁜 걸로 치면 마태우스님이 나보다 더할 거란 말을 무심히 했다.
겉으론 그러냐고 했지만 속으론 '울컥'했다. 내가 이렇게 바빠 죽을 지경인데, 
마태님이 나보다 얼마나 더 바쁘단 말인가? 하고 말이다. 흠, 바쁜 걸로도 뭐 경쟁인가?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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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8-18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여우세요 풋!

바람구두 2009-08-18 13:09   좋아요 0 | URL
그게 참 이상하게 열받드라구요.
흐흐...

paviana 2009-08-18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그니까 마태님이 바쁘신건 일 외적인 일로다 바쁜 거고요. 그분은 강의말고 다른 일이 훨씬 더 많으시고요. 일로 바쁘신건 아마 님이 최고이실거에요. (아 왤케 땀이 날까요? )
산이 태어나면 아마 일 외적인 걸로도 님이 지존이 되실거니 화푸세요. 흑흑

바람구두 2009-08-18 13:10   좋아요 0 | URL
^^;;;;
웃자고 한 말이예요. 흐흐
아, 8월 한 달은 정말 죽음이거든요.

2009-08-19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구두 2009-08-19 10:58   좋아요 0 | URL
파비님 글에 비밀글을 다시면 파비님도 보실 수 있는데요. ^^
어쨌든 축하 감사드려요.
저는 일찌감치 공개했는 걸요. ㅋㅋ, 뒷북이십니다.

2009-08-18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구두 2009-08-18 13:11   좋아요 0 | URL
흐흐, 신세는요, 무슨...
하여간 다른 미녀분들은 늘 맛난 거 사준다고 하시니
저는 꼬옥 그보다는 맛이 떨어져도 푸짐한 걸루다가...